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234화 (234/260)

# 234

레벨업 속도는 9.8m/s^2 234화

미국 펜타곤 5층 VIP 미팅룸.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다니엘 윈턴과 차희.

마지막 하나는 메탈로이드 아톰.

대통령과 장관은 메탈로이드가 미팅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낯설고 공포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메탈로이드계의 관리자가 보내서 온 로봇입니다. 사람 해칠 일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들의 표정을 읽은 차희가 말했다.

대통령은 침을 꿀꺽 삼키며 아톰을 쳐다보았다. 이 로봇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안면 근섬유를 가지고 있지만, 필요치 않으면 굳이 웃기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아톰은 아르곤 라이트가 박힌 눈으로 사람들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민차희가 다니엘 윈턴과 함께 이 로봇을 데리고 들어오던 당시. 펜타곤의 보안을 책임지던 헌터들은 이 로봇의 전투력을 SS급 이상으로 진단했다.

만약 난동을 부린다면 펜타곤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비공식 미팅. 게다가 백악관에서 펜타곤까지는 기껏해야 자동차로 8분 걸리는 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보좌관으로 하여금 핵가방을 들고 오도록 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이 로봇이 난동을 부린다면 핵 버튼을 눌러 한국을 날려 버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서.

“그래서 우릴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SL-0521.”

차희가 말했다.

코드 네임을 들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NASA에서 개발 중인 우주 유인 탐사정이죠?”

“어떻게 아십니까?”

“요 근래에 연달아 터졌던 핏빛야수 사건 이후 콜로라 행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은 탐사선을 연달아 발사했고, 그중에서도 우주에서 벌어질 전투를 대비한, 헌터를 실어 보낼 수 있는 유인 탐사정을 개발 중. 그 암호명이 SL-0521. 맞나요?”

“우리가 콜로라 행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건 1급 보안입니다. 중요한 국가 안보 문제고 여기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내셨죠?”

국방부 장관이 다시 캐묻자 차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있는 다니엘 윈턴이 일곱 차원의 수호자의 시스템도 해킹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펜타곤 정도야 못 뚫으려고요.”

“…….”

“하지만 개발 단계에 대한 정보는 아예 서버에 업데이트를 안 했더군요. 우선 그걸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얘기해 줘야 하죠?”

“그 개발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개발됐습니까?”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대통령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유인 우주선이 달에 간 지가 백 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우리의 기술력은 가파르게 진보했어요. 덕분에 SL-0521은 거의 완성 직전입니다.”

“얼마나 멀리 나갈 수 있죠?”

“그 질문은 잘못됐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끼어들었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걸 고려한다면 아무리 잘 비행하더라도 최대 거리의 반 토막이겠죠. 다른 행성들의 중력 영향권을 생각하면 방향과 돌아올 때의 대기권 진입 각도 따위를 계산해야 합니다. 단순히 ‘어디까지 갈 수 있다’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화성까지 갔다 올 수 있습니까?”

“화성에 착륙했다가 돌아올 수 있냐는 뜻인가요?”

“화성에 착륙할 필요는 없어요.”

“가능…… 할 겁니다.”

“좋아요. 그 탐사정을 우리한테 넘기세요.”

차희가 말했다.

“뭐라고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동시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 우주선의 목표가 콜로라와의 전쟁을 대비하는 거라면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강윤성 헌터 때문입니까?”

“물론이죠.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왜 콜로라와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이런 걸 연구하면서 백마 길드에 지원을 구하거나 메탈로이드, 다니엘의 기술 자문을 요청하지 않았죠?”

“그건…….”

“강윤성 대표님이 외국인이라서 이런 극비 정보를 논의하기가 불편하세요? 그런 국가주의적인 개념은 이제 버리셔야 해요. 그분은 인계 대표예요.”

“……. 백마 길드와 대화하는 것은 우리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겁니다. 아직 이르다 생각했을 뿐. 그보다 탐사정을 받으면 그걸 어디다 쓸 겁니까?”

“다니엘과 여기 있는 아톰이 그 탐사정을 개조할 거예요. 1인용으로, 그리고 최대 거리로 나갈 수 있도록.”

“강윤성 헌터의 슈퍼히어로 랜딩에 쓸 겁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차희가 빙긋 웃었다.

“잘 아시네요. 미국 대통령도 유튜브 보시는 줄은 몰랐는데?”

“최우선순위 보고로 들어온 내용입니다. 그분이 이른바 슈퍼히어로 랜딩이란 걸 하고 나면 강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우주선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인 줄은 몰랐군요.”

“우주선을 쓸 거예요. 아무튼 말이 잘 통해서 좋군요. 혹시 탐사정의 암호 네임 SL. 이거 혹시 슈퍼히어로 랜딩-Superhero Landing-의 약자로 작명했던 게 아닌지?”

“뭐, 그건 아닙니다만.”

미국 대통령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우리가 탐사정을 제공하는 대신 뭘 주시겠습니까?”

“돈을 드리죠. 탐사정 가격을 두 배로.”

“그건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럼 원하시는 게 있나요?”

“강윤성 헌터님과 만나게 해주십시오. 핏빛야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지, 그들을 어떻게 막을 계획이신지 들어야겠습니다.”

차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소개해 드릴 순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이 알고 계신 건 저도 거의 다 알고 있으니 제게 물으셔도 돼요. 대표님은 바쁜 분이니 그쪽에서 제공할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가급적 미팅을 주선하고 싶지 않군요.”

차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끼이이익.

갑자기 미팅룸의 방문이 저절로 열렸다.

미팅룸 안에 있던 인물들 모두가 놀라 바깥을 쳐다보았다.

SS급 헌터 오스칼이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직 회의 중입니다.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국방부 장관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오스칼에겐 그들보다 더 우선순위인 명령이 있다.

“밖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절 보고 싶다고 하셔서.”

오스칼 뒤에서 윤성이 빙긋 웃으며 들어왔다.

“대표님!”

차희와 다니엘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언제 온 거예요?”

“몇 분 전에 날아왔어.”

윤성은 테이블에 털썩 걸터앉았다.

“미팅룸의 방음은 완벽합니다. 밖으로 대화가 새어나갈 수가 없는데…….”

국방부 장관이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윤성은 자기 귀를 가리켰다.

“제가 귀가 좀 밝아서. 아무튼 절 보고 싶다고 하셨으니 얘기들 하시죠. 궁금한 게, 콜로라에 대해서 아는 것, 뭐 그런 거였나?”

윤성이 말했다.

“콜로라 최대 길드 꺼삐딴은 제가 멸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콜로라 군대의 본선은 아직 지구에 도착하지 않았죠.”

“본선의 규모에 대해 아십니까?”

“모릅니다.”

“언제 오는지는요?”

“그것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약간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

“어떻게 막으실 겁니까?”

“SL 어쩌구 하는 걸 차희한테 넘긴다면서요? 그거면 충분해요.”

윤성이 말했다.

“그리고 콜로라에 대해서 궁금해하셨던 것들. 조만간 알려드리겠습니다.”

“알려준다고요?”

대통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른다면서요? 어떻게 알아내실 겁니까?”

“또 해킹인가요?”

국방부 장관이 다니엘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직접 콜로라로 들어가서 알아낼 겁니다.”

“네에?”

“제겐 그런 방법이 있거든요. 아무튼 다들 좀 기다리고 계시고. 차희는 제가 잠깐 빌려가겠습니다.”

윤성은 차희의 손목을 잡고 벌떡 일어났다.

“뭐야? 아직 미팅 안 끝났…….”

“차희. 나 한동안 자리 비울 거야.”

윤성이 차희와 함께 미팅룸을 빠져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다음 창문을 열고, 차희를 안은 채 밖으로 날았다.

순식간에 공중을 날게 되자, 윤성의 목을 끌어안은 차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겁을 먹지는 않았다. 윤성에 대한 믿음이 겨우 이 정도에 흔들리 정도는 아니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콜로라에 가서 그놈들 본대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는 거야?”

차희가 물었다.

“맞아. 그리고 가능하면 레벨 업도.”

“레벨 업?”

“탐사정이 그저 높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왜?”

“수호자가 그러더라고. 너무 버프가 크면 컨트롤을 못해서 역효과만 날 수 있다고. 사실 달에서 떨어졌던 유성 랜딩도 많이 버거웠어.”

“콜로라에 가서 전투하고 레벨을 올리겠다?”

“더 이상 지구에서 상대할 녀석은 없으니까. 콜로라 근처 오지들을 돌면서 레벨을 올릴 거야. 일일 랜딩도 꾸준히 할 거고.”

“알겠어. 그럼 네가 돌아올 때까지 최상의 랜딩 우주선을 갖추기만 하면 되는 거지?”

“바로 그거야. 부탁해.”

***

소행성 MEK.

콜로라 본대는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정식을 앞두고 대표 익시튬은 자리를 비웠다.

행성의 중부에는 사막이 있는데 익시튬은 그중에서도 가장 해가 뜨거운 곳을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아직 앳된, 꺼삐딴의 마지막 전사가 뒤따르는 중이다.

“어디 가는 거야?”

클리앙이 물었다.

“클리앙. 이 사막이 어떤 곳인지 아나?”

“내 알 바인가? 내게 성장할 방법을 일러준다면서?”

“물론이다.”

익시튬이 우뚝 섰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특별하지. 풀 한 포기 없어 죽음만이 남은 공간일 것 같지만, 사실 이곳은 무엇보다 강력한 생명력이 꿈틀대는 곳이다.”

“뭐?”

“마치 옌뚜르와 같지.”

클리앙의 안색이 변했다.

“대표님을 모욕하려는 거라면…….”

“그럴 리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남자였는데.”

“뭐라고?”

“난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클리앙. 너 같은 노력형 천재라든지 뭐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익시튬이 말했다.

“파괴하고 집어삼키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다. 콜로라의 수호자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 그게 나였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옌뚜르에게 패배했다.”

익시튬이 말했다.

“우리 둘 다 무관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둘 다 어렸고 풋내기였지. 하지만 내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지만 옌뚜르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옌뚜르 대표님과 싸웠다고?”

“이 행성의 사막은 아니었지만, 이 모래와 똑같은 게 있는 곳이었다.”

“그럴 수가…….”

“그 녀석과 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전부터 라이벌이었어. 후후. 당시 반에서 대장을 하겠다고 나대던 쯔위민을 내가 손봐주면서 문제가 시작됐지.”

“……?”

“그때 옌뚜르는 쯔위민보다도 훨씬 약했다. 하지만 쯔위민이 당한 걸 보고 내게 결투를 신청한 거야.”

“대표님이 널 어떻게 이겼지?”

“고민해 봐라. 그걸 깨달으면 너도 X등급의 영역에 이를 수 있다.”

“그 얘길 하려고 날 이곳까지 데려온 건가?”

“아니.”

익시튬은 인벤토리에서 술병을 꺼냈다.

“옌뚜르에게 이걸 부어주고 싶었다.”

그는 뚜껑을 따서 사막의 모래 위로 콸콸 붓기 시작했다.

“옌뚜르가 날 꺾은 후에 줬던 술이었지.”

익시튬은 술병이 빌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병을 주시했다.

“본대는 곧 출발한다. 함께 지구로 갈 테냐?”

“아니.”

“가면 두 달 안에 놈에게 복수할 수 있을 텐데?”

“내 손으로 할 수 없으면 의미 없어. 그리고 당신은 마스크맨을 못 이겨.”

“그럴지도.”

“진심이야. 그놈은 강하기만 한 게 아니야. 교활한 놈이야. 대표님조차 놈과의 수 싸움에 당하고 말았어.”

“그건 확실히 의외였다. 옌뚜르가 그렇게 무너지다니.”

“그리고 X등급의 힘도 갖추고 있지. 내가 당신이라면 본대를 여기 좀 더 대기시키면서 전략을 짜겠어.”

“후후. 충고는 고맙지만 사양하지. 클리앙. 아직 배터리는 안 먹었겠지?”

익시튬이 물었다.

“먹지 말라면서?”

“지금 먹으면 네 마력이 너무 커져서 차원 이동을 못 하거든.”

익시튬이 말했다.

“본국으로 가라. 클리앙. 툴바족이 살던 세 번째 위성으로 가.”

“미쳤어? 거긴 괴수들밖에 없는 곳이야!”

“그렇기에 널 성장시켜 줄 수 있지. 레벨이 아무리 올라도 포인트를 분배하지 말고 계속 쌓아라. 위성들을 순항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익시튬이 빙긋 웃었다.

“사막에서 피는 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순간, 널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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