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레벨업 속도는 9.8m/s^2 231화
등에 새긴 문양은 일종의 마법 지도이자 암호 코드다. 수호자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코드.
에어포스는 고제하가 죽기 전 전해주었던 메시지를 따라, 그가 기록해 둔 암호 코드를 찾아냈으며 마치 그림을 그리듯 윤성의 등에 충실히 따라 썼다.
남은 것은 마력을 불어넣는 것.
그리고 타깃의 마력과 공명시키는 것이다.
“최대한 끌어올리세요. S등급 이상이면 됩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그녀의 손바닥이 윤성의 등에 닿았다. 천사의 피부는 인간보다 체온이 1도 높아 따뜻하다.
윤성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에어포스가 깜짝 놀랐다.
“너무 높아요!”
“그럼 이 정도로?”
“약간 더 낮추세요. 제 마력이랑 공명해야 합니다.”
“음.”
에어포스의 표정이 약간 우울해졌다.
“일산을 소탕하던 때 기억하십니까?”
에어포스가 마력을 공명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저는 그때 우리가 최상의 콤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랜딩 능력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주니 강해진 것을 보았으니까요.”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그랬죠.”
“이제는 제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에이. 아직 이것저것 많이 도와달라고 할 거니까 빠져나가지 마세요.”
“안 빠지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죠.”
찌이잉!
윤성의 등에서 빛과 함께 따끔한 통증이 흘렀다.
“에어포스! 등이 아픈…….”
팍!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간 것처럼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눈앞에 달의 울퉁불퉁한 크레이터들이 나타났다.
수호자의 집도 함께다.
“뭐 이런 특이한 방법이…….”
윤성은 수호자의 집을 향했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수호자가 먼저 열고 나타났다.
“또 왔군.”
수호자가 빙긋 웃었다.
“불만이야?”
“언제든 환영이다. 들어와.”
“근데 차원 통신으로 너하고도 소통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시도해 봤지만 잘 안 되던데.”
“그래?”
“그래.”
“그럼 아직 멀었군. 좀 더 열심히 해.”
“뭘 열심히 하란 거야?”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 정진하라고.”
“이건 또 무슨 종류의 헛소리지? 내가 관리자가 아니란 거야?”
윤성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넌 아냐. 유력하지만.”
“그럼 난 뭔데?”
“넌 내 후계자지.”
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호자는 몸을 통통 튕겨 의자 위에 올라가더니 책상에 짧은 발을 걸쳤다.
“강윤성. 나한텐 시간이 많지 않다. 콜로라의 X등급에게 당했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어.”
“뭐라고?”
“그 상처 틈으로 내 생명력이 계속 새어 나가고 있다. 게다가 Joker 프로그램을 짜면서 남은 걸 거의 다 소진했지.”
“그래서 네가 죽으면 나한테 그 일을 맡긴다고?”
“Joker 카드를 쥔 시점부터 넌 그런 길을 걷기 시작한 거야.”
“이런 미친. 난 그런 얘긴 못 들었어. 말도 안 돼. 달에서 평생 혼자 살라고?”
“그러라곤 안 했어. 다만 외롭게 살긴 하겠지. 인간의 수명은 짧고, 넌 평생을 살 테니까.”
“X를 만나면 죽이면 안 되겠네. 반만 죽여 놓고 나중에 내가 늙으면 날 죽여 달라고 부탁해야지.”
“안 그럴 거 알고 있어. 아무튼 그 문제 때문에 마제스티엘에게 Joker를 주려고 했던 건데.”
“천사는 늙지 않나?”
“질병에도 면역 상태니 누가 공격하지만 않으면 불로불사지.”
“젠장.”
“아. 등 돌려봐. 등에 문신 새겨서 왔지? 그걸 지워야 해.”
“왜 지워?”
“그 문양에 마력 불어넣으면 독성 생기거든.”
윤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순순히 등을 가져다 댔다.
“허리에 알파벳 AF는 뭐야? 어떤 미친놈이 문양을 그리고 끝에 자기 사인을 남겨놨군.”
“에어포스……?”
“귀여운 녀석일세.”
수호자는 간단한 동작으로 윤성의 등에서 문양을 모두 지웠다.
“자, 이제 네가 날 보러 온 이유를 좀 들어볼까?”
“궁금한 게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X등급이 언제 오느냐는 것일 테지?”
“맞아.”
“답부터 말하면 ‘나도 모른다’야. 하지만 그걸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뭔데?”
“폴리모프하고 콜로라로 잠입해서 조사해봐.”
“미쳤어?”
“너라면 할 수 있어. 네가 파괴한 꺼삐딴 본사는 콜로라 행성의 깔리앙 교외 지역에 있었어. 깔리앙은 인계로 치면 뉴욕쯤 되는 도시지. 당연히 벌집 쑤신 것처럼 뒤집어졌어. 꺼삐딴 멸망에 대해서 아직도 매스컴이 떠들고 있을 거야.”
“그 뉴스 방송들을 보기만 하면 굳이 콜로라 놈들하고 말 섞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X등급의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거지?”
“그렇지.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르군. 콜로라는 이 충격적인 패배를 용납 못 해. 분명 시민들에게 희망적인 얘길 해주려고 할 테고, 그건 당연히 X등급 얘기가 될 거야.”
“지금 그 녀석이 어디쯤 가 있고, 얼마의 시간만 있으면 지구를 박살 내서 꺼삐딴의 복수를 할 수 있다. 이런 게 뉴스에서 나온다 이거지?”
“그렇지.”
“좋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볼게.”
“또 궁금한 점은?”
“차희가 통역 스킬을 배우더니 순간이동석을 써서 차원 이동도 했어.”
“그게 왜?”
“걔는 마력이 하나도 없는 일반인이라고.”
“E등급 헌터 강윤성이 꺼삐딴도 멸망시키는 마당에 일반인이 순간이동석 쓰는 게 뭐 대수야?”
“아니. 장난하지 말고. 진지하게 궁금하고 걱정돼. Joker 등급을 젤 먼저 알아낸 사람이 걔야. 일반인 몸으로 꺼삐딴에도 다녀왔고. 온갖 전쟁터 가운데 있었다고.”
윤성이 말했다.
“그동안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걱정 마. 그 애는 정상이니.”
“확실해?”
수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일곱 차원을 통틀어 인간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던 것 기억나?”
“그랬었나?”
“내가 인간을 가장 아끼는 이유는, 인간은 일곱 차원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그 누구보다 끈기 있고 투쟁적이기 때문이야.”
수호자가 말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투쟁의 목표를 이루어내지. 등급 상승을 위해 분투하던 네가 Joker라는 행운을 얻었던 것처럼.”
“음.”
“인계를 코딩할 때, 나는 온갖 랜덤 변수를 넣었어. 어떤 기현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지.”
“정말 별난 인간이야.”
“궁금한 건 다 끝났나?”
“아, 하나 더 있어.”
“두 개라더니.”
“내 동생들한테 요즘 집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데, 솔직히 불안해. 걔들 안전만이라도 좀 확보하고 싶은데 방법 없을까?”
“코드를 하나 짜줄까?”
“어떤 건데?”
“위험에 처하면 네 옆으로 순간이동 하도록.”
“흠.”
윤성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만약 내가 전투 중이라면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 네 옆으로 순간이동 하는 건 어때?”
“그래도 명색이 지구 수호자인데 애나 보라니.”
“별로 할 일도 없잖아?”
“알았어. 일단 그렇게 코드를 짜주지.”
수호자가 말했다.
“하는 김에 차희한테도 부탁해.”
“알았어. 아,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거에 조금 보태면…….”
수호자의 말이 뚝 멈췄다.
“잠깐만.”
“왜?”
“밖에 뭔가 있다.”
“다른 관리자인가?”
“아냐! 적이야! 강윤성!”
“뭣, 뭐?”
윤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에게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성은 반사적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종단 속도의 단검을 꺼내 들고 문밖을 주시했다.
수호자가 덜덜 떨고 있었다.
“나, 난 전투엔 젬병이야.”
“내가 할게.”
“부탁해. 어떤 놈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엄청 강해.”
쾅!
윤성이 문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어차피 벌어질 전투라면 적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고 지금 시작한다.
콜로라 전사 한 명이 서 있었다.
“뭐냐, 너?”
윤성이 물었다. 태연한 척했지만 솔직히 매우 당황스럽다.
털이 덥수룩하고 키와 덩치가 굉장히 큰 녀석이었다. 여태 윤성이 본 핏빛야수 중 가장 큰 건 쯔위민이었는데, 키나 체격이 쯔위민의 배 이상이다.
“콜로라 전사냐?”
윤성이 재차 물었다.
“그렇다. 툴바족은 처음 보나?”
윤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툴바족.
딱 한 번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탑에서 씀푸와 함께 레이드를 하던 때다.
씀푸가 탑의 한 층이 5미터 정도 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툴바족도 여길 이용하는데 그 녀석들은 장신이니까’라는 말을 했었다.
‘그게 이놈들이란 말이지…….’
아무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호자는 대체 어떻게 느낀 거지?
“수호자를 살해하려고 온 거냐?”
“지금 싸울 생각은 없다.”
툴바 전사가 고개를 저었다.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나는 콜로라 본대의 사단장. 디아만토풀루다.”
“여기까지 와서 고작 경고를?”
“내가 직접 수호자를 죽이는 것도 선택지의 하나였지만, 지구의 비밀 병기와 충돌하는 건 아직 이르다 생각되어서.”
“그렇게 솔직히 얘기해도 되는 거야?”
윤성이 단검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약간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수호자를 죽일 가능성이 있는 놈이라면, 내가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보지?”
“툴바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가 날 죽일 수는 없다.”
<단검 투척 타깃.>
핑!
윤성의 손가락 사이에서 노닥거리던 단검이 매서운 기세로 디아만토풀루를 향해 쇄도했다.
캉!
그러나 디아만토풀루는 클로를 휘둘러 윤성의 단검을 쳐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다. 이 정도는 쯔위민이나 옌뚜르, 카이야쓰도 쉽게 했으니까.
윤성은 이미 디아만토풀루의 가슴께 아래로 허리를 숙인 채 날카롭게 파고드는 중이었다.
<용조 발동!>
콰직!
디아만토풀루가 윤성의 손목을 움켜쥐어 꺾었다. 그가 말했다.
“그만하지. 강윤성. 죽자고 싸우면 나도 부상을 입을 텐데.”
“아니, 죽겠지!”
<빛의 산탄 발동!>
윤성이 붙잡힌 팔을 틀어서 디아만토풀루의 팔뚝을 겨냥하고 스킬을 썼다.
파앙! 하는 끔찍한 굉음과 함께 그의 손목이 날아갔고, 동시에 디아만토풀루의 주먹이 윤성의 얼굴에 꽂혔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완력이다.
단번에 수 미터를 날아가 수호자의 집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윤성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일어났다.
디아만토풀루는 박살 난 오른쪽 손목을 움켜쥔 채 윤성을 쏘아보고 있었다.
‘뭐야, 저게?’
비정상적인 신체구조다. 뼈가 부러진 게 눈으로 보이는데 피부는 조금도 찢어지지 않아서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뭐 어떻게 되먹은 몸뚱이야?’
“너희 수호자에게 손대지 않을 것을 약속하겠다. 툴바족은 약속은 지킨다.”
“필요 없다. 너는 오늘 죽게 되니까!”
“강윤성! 잠깐만.”
뒤에서 수호자가 문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말했다.
“뭐야?”
“투, 툴바족은 약속을 깨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믿어?”
“종교적인 신념이다. 이슬람에 깊이 빠진 무슬림이 라마단을 지키는 것과 같지.”
“하지만…….”
“이 싸움은 멈춰.”
수호자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못 이기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