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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26화 (226/260)

# 226

레벨업 속도는 9.8m/s^2 226화

이번에도 백마 길드다.

이제 지구를 대표하는 것은 미국 정부나 UN 같은 게 아니라 백마 길드로 확실히 굳어진 것 같다.

“만약 핏빛야수가 우주선을 타고 와서 지구를 침공한다면 어딜 먼저 공격할 것 같냐?”는 질문이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나왔던 적 있다.

방송을 진행하던 코미디언들이 약간은 자조적인 뉘앙스로 백마 길드라고 답변했었다.

이제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지나 팍스백마나의 시대가 되었노라고.

가파르게 급상승한 백마 길드의 위상을 나타내는 농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백마 길드 상공에 나타난 거대 비행선.

길드 내의 헌터들 모두에게 비상이 걸렸다.

홍창민은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산 엘리지아 던전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골칫덩이였던 시절이 그립군.’

이젠 엘리지아 몇 정도는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저 비행선에서는 뭐가 내릴까?

적이라면 핏빛야수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띠리링

홍창민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홍창민입니다.”

-헌터님, 여기 긴급 상황 컨트롤 센터입니다.

“네.”

-C급 이하 헌터는 모두 대피하고 B급 헌터들은 1선에서 물러나서 시민들을 인솔해 반경 10킬로미터 밖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입니다.

“A급은요?”

-A급은 일단 대기 명령입니다.

“뭐라고요? 전투는 S급 이상 시키려고 그런 거라 치고, 차라리 B급 헌터들 할 일을 우리한테 맡기시죠. 대체 누가 이런 지시를……?”

-민차희 비서님입니다.

“네에? 하지만 그분은 지금 행방불명이잖아요?”

-통신 센터에서 다니엘 헌터님이 수신탑을 통해서 통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

-바빠서 이만 끊습니다. 길드 후미 주차장 앞에 집결 명령입니다. 빨리 움직여주세요.

긴급 상황 컨트롤 센터의 직원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다니엘을 힐끔 돌아보았다.

센터 구석에 다니엘이 쪼그리고 앉은 채 통신기를 들고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뭐 하면 됩니까?”

센터 직원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별관 지하 8층……. 아니, 제, 제가 갈게요.”

“별관 지하 7층까지밖에 없어요.”

“아, 아니에요.”

다니엘은 통신기를 든 채 얼른 자리에서 빠져나가더니 허둥지둥 별관 지하를 향했다.

옛날 테쿰세와 제다이를 숨겨두었던 곳을 지나쳐 지하 깊숙이 내려갔다.

지하 7층.

엘리베이터에도 백마 길드의 설계도에도 이 아래층은 존재하지 않지만 다니엘은 방금 비밀을 들었다.

지하 8층이 있다.

연구실 창고로 들어가 실험용 테이블을 밀어버린 후 마법 파장으로 암호화된 잠금장치를 반응시킨다.

우우웅.

다니엘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일정한 주파수와 파장을 갖추고 진동했다.

곧, 바닥의 한쪽 면이 하얗게 빛나더니 암호 패드가 나타났다.

1005.

다니엘이 암호를 입력하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지, 지금 들어왔습니다.”

다니엘이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좋아요. 다니엘. 이제부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거기서 나오지 마세요.

차희가 대답했다.

-그곳은 세이프 벙커예요. 대표님하고 비밀리에 같이 만들어놓은 곳이죠. 안전할 거예요.

“근데 왜 저, 저를 여기로?”

-길드 내에 숨어 있는 핏빛야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요. 현장에서 뛰다간 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현장을 지휘하세요. 길드 전역에 대한 방송 장비와 광장 모니터가 있으니까.

정말이다.

전면에 모니터 40개가 길드 인근 지역의 전경을 비추고 있었다.

다니엘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근처 책상 잘 뒤져보면 차원 통신기도 있어요. 보여요?

“이, 이거!”

-맞아요.

옛날에 다니엘이 메탈로이드계에서 아리의 최종 조립을 마친 후, 윤성은 그를 인계로 데려오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긴 적 있다.

통신기를 개발한 것을 보고 가능하리라 생각되어 부탁했던 것이다.

일곱 차원 통신기.

통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상대를 골라야 한다.

파장의 정보는 윤성이 이미 주었다.

지금 개발된 통신기들은 그 파장대로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다른 차원들에 지원 요청하세요.

차희의 지시에 다니엘이 침을 꼴깍 삼켰다.

쿠구궁!

길드 상층부에서부터 큰 소음이 터졌다.

비명과 욕지거리.

모니터에 잡히는 화면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잇달아 나온다.

헌터들이 콜로라 전사로 변하고 있었다.

자경단의 경우에는 약 7퍼센트.

백마 길드 전체에선 2퍼센트.

헌터 협회의 경우에는 38퍼센트가 콜로라 전사였다.

천계를 삼킨 꺼삐딴의 다음 타깃이 인계였기에 수많은 전사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크맨 등장 후에는 그들 중 대다수가 한국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급수는 높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변신은 모두에게 충격적이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자 꺼삐딴 전사들은 더 이상의 잠입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폴리모프를 풀었다.

위이이잉!

비행선이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부터 마법 패러슈트를 덮어쓴 콜로라 전사들이 하나씩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테쿰세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가 너무 많다.

많을 뿐 아니라 강하기까지 하다.

협회나 백마 길드에 숨어든 녀석들은 강해봤자 B급, A급 헌터 수준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강해봤자 신분을 유지할 정도여야 하니까.

자경단에 숨어든 콜로라 전사라고 해봤자 S급 수준이 대부분.

그러나 지금 비행선에서 내려오는 이들은 SS급 헌터들보다도 훨씬 강하다.

체감상 옛날 제다이와 함께 싸웠던 척루인 정도.

그리고 마지막에 내려오는 이는 아예 몇 단계는 다른 레벨이다.

“저건……. 베아트리체?”

테쿰세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옛날에 잡아두었던 베아트리체가 사라져서 한 번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 비행선에서 내려오고 있다.

저 마수의 싸움을 한 번 봤기에 아는 것인데, 저건 마스크맨이 없으면 막을 수 없다.

“젠장…….”

-아, 저, 저기…….

갑자기 광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음울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집결한 S급 이상의 헌터들이 황당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니, 다니엘입니다. 민, 민차희 비서님 전언입니다.

“어디서 통신하는 거야?”

“다니엘!”

헌터들이 사방에 대고 소리쳤다.

-세, 세르게이 헌터님을 비, 비롯한 그, 근접 계열 최상급 헌터님들 1선으로 서주…… 서주세요. 앗! 자, 잠깐만요…….

다니엘이 말했다.

잠깐 통신이 끊어지더니 곧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치직 하는 잡음이 튀었지만 발음이 명확하다.

민차희의 목소리였다.

-다들 들립니까? 민차희입니다. 통신기의 전원을 마이크에 꽂으라고 다니엘한테 부탁했습니다.

차희가 말했다.

-전원, 제 지시를 들어주십시오. 세르게이 헌터님을 최전방에, 차우 헌터님과 중국 SS급 헌터 두 분을 2선에 세웁니다. 다니엘. 적들 중 콜로라 간부가 있나요?

다니엘한테 하는 질문도 같이 스피커를 탔다.

다니엘이 어물거리며 ‘베아트리체……’ 하고 답변하는 것이 들렸다.

-좋습니다. 베아트리체와는 맞서지 마십시오. 테쿰세 헌터님이 멀리서 베아트리체의 정신을 조작해 주세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흔들어주면서 최대한 시간을 끄세요.

차희가 말했다.

-좀 전에 들었는데, 길드 내부와 협회 내의 콜로라 전사들은 제 걱정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홍창민 헌터님 비롯한 A급 헌터들이 맡아주십시오. 자경단은 지금 자리에서 이탈하면 안 됩니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주차장 근처에서 방황하던 홍창민과 A급 헌터들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움직여! 1조, 2조, 3조는 협회로 간다. 나와 나머지는 길드 내부를 정리한다! 따라와!”

홍창민이 소리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조금만 버티십시오. 곧 지원군이 올 겁니다.

차희가 말했다.

SS급 헌터들이 바짝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적들 대부분이 지상에 내려왔다.

양쪽 숫자는 비슷하다. 그러나 전투력은 헌터들 쪽이 훨씬 모자란다.

‘솔직히 승산이 없군.’

테쿰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군이 온다는데 대체 누가 온다는 거…….’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리던 테쿰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티엔. 저게 뭘까요?”

쥔 차이가 물었다. 티엔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늘에 거대 게이트들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한두 개가 아니다.

무려 다섯 개.

이 시각에는 아직 꺼삐딴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엘리지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원이 집결했다.

차원문.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까만 색깔의 초거대 드래곤이었다.

크기만으로는 옛날에 보았던 용제와 흡사할 정도.

그 뒤를 따라서 수백의 드래곤들이 하나씩 차원문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열린 것은 아리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지금은 옛날 에이비 이상의 전투력을 갖추게 된 아톰이었다.

그 뒤엔 신세대 휴보와 새롭게 개조된 T510.

막대한 숫자의 양산형 전투 로봇들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며 헌터들의 앞에 섰다.

이제는 마계의 차원문이 열렸다.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진해서 선두에 선 글로디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는 적지만 기사단의 전투력은 클리앙과 베아트리체를 잡을 때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이어서 마이어 계의 차원문이 열렸다. 지휘관은 없었으나 원래 좀비들에겐 마이어 외의 지휘관 같은 게 없다.

“마지막 차원문은 천계인가?”

헌터들 중 누군가가 약간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지직

차원문에서 흰빛이 눈부시게 발산했다.

네 쌍 날개를 가진 막강한 플라멘이 차원문을 넘었다.

“우리가 왔다.”

헬라엘이 말했다.

“차원 연합은 무너지지 않는다. 옛날 마제스티엘이 염원했던 그것이 이제는 굳건하다.”

그가 창을 번쩍 치켜들었다.

“마스크맨의 차원 연합!”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테쿰세는 전신에 흐르는 전율에 저도 모르게 앞으로 성큼 나서고 말았다.

“돌격!”

헬라엘과 실렌티, 아톰과 글로디안이 소리쳤다.

강력한 차원 연합의 군단이 비행선과 그곳에서 내려온 콜로라의 전사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지상에 내려온 베아트리체가 서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깟 놈들 몇천을 데려와도 안 무서워. 우리 본진을 건드린 놈들을 살려둘 것 같아?”

그녀가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콜로라 스나이핑 라이플 발동!>

발사된 마법 탄환이 순식간에 드래곤 몇과 천사 몇을 추락시켰다.

<콜로라 개틀링 발동!>

왼손의 클로는 개틀링건이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좀비 떼와 로봇들에게 난사했다.

투두두두두!

메탈로이드 군단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은 듯했으나 좀비들은 우르르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생명력은 훨씬 질기다.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머리가 터져 버린 좀비들도 적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뒤에서 SS급 헌터들이 저마다의 무기와 마법을 발동하며 뛰어들었다.

<황룡 참파 발동!>

티엔이 쏘아 보낸 드래곤이 적들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곰으로 변한 세르게이는 메탈로이드 로봇들 사이에서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전투력을 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모두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대전사들과 베아트리체는 분투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삑, 삑, 삑.

갑자기 베아트리체의 통신기가 울렸다.

“뭡니까!”

베아트리체가 통신기를 작동시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전투 중에 보내는 메시지라 길게 쓸 수 없다. 베아트리체. 우리가 졌다. 모두를 데리고 퇴각해라.

옌뚜르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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