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레벨업 속도는 9.8m/s^2 221화
옌뚜르의 침실.
클리앙은 들어오자마자 곧장 침대 뒤의 금고로 달려갔다.
옌뚜르에게 봉인을 푸는 암호를 받았다.
암호는 문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꺼삐딴 길드를 이끄는 대표의 금고는 마력 파장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1분 동안 44개의 서로 다른 진동수의 마력 파장을 흘려 넣는다.
이 섬세한 마력 컨트롤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중간한 실력자들은 전부 걸러내는 보안 장치다.
게다가 44개의 서로 다른 진동수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그야말로 무한한 숫자에 가깝다.
하지만 클리앙은 그 정도의 마력을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었고, 44개의 마력 키의 고유한 진동수도 옌뚜르에게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암호를 풀던 중, 클리앙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대표님 침실 방문이 잠겨 있었던가?’
원래 옌뚜르는 방을 나설 때 문을 잠근다.
클리앙에게 방문을 여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여차하면 문짝을 뜯어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클리앙이 문고리를 돌렸을 때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마치 누군가 이미 잠금 장치를 완력으로 파괴해 버린 것처럼.
철컥.
금고 문이 열리는 순간 클리앙은 반사적으로 몸을 튕겼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단검을 클로로 받아친 것은 공격을 눈치채서라기보다는 그의 천재적인 전투 감각과 운 때문이었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클리앙은 상대의 얼굴을 파악했다.
“강윤성!”
“기습한 거였는데.”
“……어떻게 살아났지? 아니,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무 기척이 없었는데.”
“다 방법이 있지.”
윤성이 말했다.
카이야쓰를 처치하고 옌뚜르의 침실에 들어온 윤성은 금고를 여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분명 옌뚜르 본인, 또는 그가 보낸 믿을 만한 누군가가 금고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윤성은 랜더의 전투복의 스킬 <은신>을 발동해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옌뚜르 배터리는 내 거야.”
콰직!
윤성의 주먹이 클리앙의 얼굴에 꽂혔다.
흡사 쯔위민이 연상될 정도의 힘.
클리앙은 한 번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용조 발동!>
이번엔 윤성의 손가락이 날카로운 드래곤의 발톱으로 변해 클리앙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 번 내리찍어 머리를 쪼개 버릴 셈이었다.
쾅!
그러나 그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클리앙이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윤성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머리 대신 어깨가 박살났다.
큰 혈관이 찢어진 듯 피가 왈칵왈칵 솟구쳤다.
“크윽…….”
클리앙은 어깨를 움켜쥐고 물러났다.
바로 그때.
“클리앙 님!”
대전사 몇 명이 문 밖에서 뛰쳐 들어왔다. 클리앙의 통신을 들은 이들 중 일부가 클리앙을 지원하기 위해 쫓아온 것이다.
“안 돼! 모두 여기서 피해!”
클리앙이 그들에게 소리쳤으나 이미 윤성은 공격을 시작했다.
<인페르노 발동!>
전사들의 발 아래.
뜨거운 화염이 피어올랐다.
“크악!”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인 전사 중 하나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다른 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불꽃은 침실 입구를 차단해 버렸다. 전사들은 더 이상 현장에 접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새끼!”
클리앙이 매섭게 파고들며 윤성에게 클로를 날렸다.
깡!
가뿐히 받아냈다.
윤성은 몸을 빙글 돌리며 클리앙의 복부를 향해 펀치를 먹였다.
“크학!”
그러고는 손가락 몇 개를 폈다.
<빛의 산탄 발동!>
근거리에서 더욱 막강한 스킬이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튀어 오르는 파열한 살점들.
치명적인 일격이다. 클리앙의 눈이 풀렸다.
‘지금이 끝낼 때다.’
윤성은 클리앙의 목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픽!
그러나 이번에도 단검은 클리앙의 뺨을 스쳤을 뿐이다.
갑자기 뛰어든 대전사 하나가 윤성을 붙잡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 충성심 강한 전사는 클리앙의 숨이 끊기기 직전이 되자 인페르노의 불꽃을 몸으로 뚫고 뛰어들었던 것이다.
“이……!”
윤성은 황급히 그를 발로 차버렸다.
<빛의 탄환 발동!>
조무래기들을 냅뒀더니 중요한 싸움을 귀찮게 하는군.
클리앙의 클로가 라이플처럼 변했다.
<콜로라 머신건 발동!>
마법 탄환 수백 발이 윤성을 향해 난사되었지만 별로 대단한 위협이 되진 않는다.
윤성은 총알들을 받아내며 클리앙의 머리를 단검으로 정확히 겨냥했다.
<단검 투척 타깃.>
파앙!
손끝에서 발사된 단검이 무서운 파공음을 내며 클리앙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클리앙은 정말이지 전투 감각으론 타고났다.
본능적인 위기감각과 반사신경으로 팔을 들어 올린 그는 머리에 박혔어야 할 단검을 팔뚝으로 막아냈다.
단검의 위력은 아직 줄지 않아서 팔뚝을 뚫어버렸으나, 몇 초 시간이 늦어진 것만으로 충분하다.
클리앙이 고개를 숙여 단검을 회피했다.
뇌를 거치지 않은 신경 단위의 회피였다.
<급속 냉각 발동!>
윤성의 손에서 막대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낮은 랭크에서도 자주 쓰는 스킬이지만 윤성의 높은 마력과 지능 탓에 완전히 다른 스킬처럼 보인다.
마치 액화 질소를 사방에 분사하는 것처럼 극도의 한기가 순식간에 침실을 가득 채웠다.
그 와중에도 인페르노의 불꽃이 꺼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클리앙은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있다간 모든 걸 빼앗기고 살해될 것이다.
절대 그럴 순 없다. 무엇을 잃어버리고 그 누가 죽더라도 상관없으니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
옌뚜르의 배터리를 전달하는 것.
최소한 이 남자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
클리앙은 클로를 바짝 세워들고 윤성을 향해 돌진했다.
윤성은 그의 공격을 받아내려고 단검을 들었지만 클리앙의 움직임은 페이크였다.
그는 윤성의 코앞에서 한 번 멈칫하며 윤성의 박자를 빼앗은 다음, 금고에서 배터리를 빼냈다.
“이런!”
윤성도 적이 노리는 게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클리앙은 이 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포기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쨍그랑!
그가 배터리를 품에 안은 채 창문을 깨고 투신했다.
저 아래에는 쯔위민이 있다.
비록 지구의 관리자 넷과 전투를 벌이면서 고전하고 있으나, 그 괴물 쯔위민이 패배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옌뚜르의 마정석 배터리를 지켜줄 것이다.
‘부탁입니다, 선배님.’
추락하는 클리앙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걸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꺼삐딴을 지켜주세요.”
<염력 발동!>
콰아악!
지상에 부딪히기 직전.
클리앙의 몸이 떠올랐다.
윤성이 창밖으로 상반신을 빼내어 스킬을 쓰고 있었다.
“이게 무, 무슨…….”
클리앙의 눈이 커졌다.
저자에게 이런 스킬도 있었던가?
콰앙!
윤성이 창문을 박차고 뛰어 내렸다. 쯔위민이 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다.
쾅! 쾅! 쾅!
고농도의 마력을 감은 발을 건물 벽에 수직으로 찍어 넣으면서 지상을 향해 내달렸다.
“저럴 수가…….”
지상에서 바토리가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역시 우리 주인님…….”
아리가 감탄했다.
윤성은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조가 아니다.
<빛펀치 발동!>
새하얀 빛에 휘감긴 주먹이 굉음을 내면서 클리앙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그들이 충돌하기 직전.
콰아앙!
무언가가 지상에서 튀어 올라 윤성을 덮쳤다.
그 막강한 힘에 윤성은 벽을 뚫고 들어가 4층 복도로 난입하고 말았다.
“큭.”
정신을 차리고 보니 쯔위민이다.
관리자 넷을 상대로는 그 역시 버거웠던 모양이다. 전신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하고 얼굴엔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귀찮게.”
윤성이 전투복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쯔위민은 숨을 고르면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가 말했다.
“클리앙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부상자를 괴롭히지 마라. 내가 상대해주마.”
“너도 부상자 같은데.”
“내 경우엔 페널티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 따위와 밸런스를 맞추려면 컨디션을 낮추어야지 않겠나?”
“후회할걸.”
“닥치고 들어와라. 다섯 초 안에 찢어줄 테니.”
쿠구구구구!
갑자기 바깥에서 헬기 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거대한 로봇이 나타났다.
아리가 눈에 새빨간 라이트를 번쩍이며 4층의 박살 난 창밖에 떠있었다.
“감히 누가 누구를 상대한다는 겁니까? 옌뚜르가 아니면 주인님에게 맞는 적수는 없습니다.”
아리가 말했다.
“체급이 다른데 이리 와서 우리랑 승부하시죠.”
쯔위민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디멘션 디스트로이 캐논 발동!>
<메탈로이드 중성자포 발동!>
양쪽에서 발사한 막강한 마법 주포가 정면충돌했다. 당연히 아리로선 쯔위민의 상대가 못 된다.
하지만 3층 창가 쪽에서부터 대각선 방향으로, 4층 바닥을 뚫고 무언가가 치솟았다.
그것은 바토리가 쏜 무시무시한 마력 화살이었다.
“크악!”
화살이 옆구리에 박히자 쯔위민이 고통스러운 듯 비틀거렸다. 마력이 흐트러지자 아리의 주포가 쯔위민을 삼켰다.
큰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쯔위민은 날아갈 것 같은 의식을 간신히 붙들었다.
하지만 윤성의 움직임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용조를 발동한 윤성의 주먹이 쯔위민의 허리에 박혀 있었다.
“큭!”
쯔위민은 몸을 빼내면서 윤성의 얼굴을 힘껏 갈겼다.
콰앙!
윤성은 재빨리 한 쪽 팔로 가드했지만 팔뚝이 저릿저릿하다.
몸은 붕 떠서 아예 4층 복도 저편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저 몸으로 이런 힘과 공격 속도가 나오다니.’
적이지만 감탄이 나오는 상대다.
하지만 아리가 4층 내부로 난입하면서 쯔위민을 깍지 낀 주먹으로 힘껏 내리찍었다.
주먹이라곤 하지만 메탈로이드계 최고 강도의 합금이다. 막대한 마력과 힘이 실려 쯔위민에게도 위협적인 일격이다.
쯔위민의 몸이 휘청거리며 기울었다.
쿵!
그는 겨우 바닥을 짚고 섰지만 더 끔찍한 게 뒤에서 날아드는 중이었다.
빛의 강체를 최고 강도로 올린 에어포스가 막강한 빛을 뿜으며 서있었다.
<빛펀치 발동!>
콰앙!
쯔위민이 주먹을 마주 뻗어 에어포스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허리 아래와 몸 곳곳의 잔 상처들에서 피가 왈칵 치솟았다.
<메탈로이드 중성자포 발동!>
막대한 화력의 주포가 다시 한번 쯔위민을 삼켰다.
하지만 아리가 발사한 게 아니다. 윤성이 날아가 버린 쪽에서 온 것이었다.
“이건 새로 개발한 메탈로이드 스킬인데……. 주인님 당신은 도대체……?”
쉬이이익!
저 끝에서부터 윤성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날아오는 것이었다.
스킬 <비행>
5단계 이하의 알려진 모든 스킬의 사용 권한.
음속 랜딩의 보상이었다.
“이제 끝이다, 쯔위민!”
콰직!
윤성의 단검이 쯔위민의 목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