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레벨업 속도는 9.8m/s^2 219화
“아직 몸 회복도 안 됐는데 그냥 앉아서 쉬고 있어.”
베아트리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클리앙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확인만 하고 오는 건데요 뭐.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가지. 앉아 있어.”
쯔위민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클리앙은 누가 따라올까 두렵기라도 한 듯 후다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무리하는군.”
쯔위민이 말했다.
옌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습니까? 대표님. 엘리지아가 돌아다닌댔는데요.”
카이야쓰가 물었다. 옌뚜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클리앙은 나이도 어리고 신입이다. 내 도움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조급해하는 거야.”
옌뚜르가 말했다.
“빨리 간부 한 사람 몫을 해서 길드에 도움이 되어야 빚을 갚는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옌뚜르는 잠깐 고민에 잠겨 있다가 카이야쓰에게 말했다.
“클리앙이 아직 덜 회복되었지만 엘리지아 따위에게 당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저렇게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좀 걱정되네.”
“제가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자기 뒤를 밟는다고 생각하면 자존심 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자신을 못 믿는다고 오해할지도 모르지.”
“충분히 거리 두고 조심히 뒤따라가죠.”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쯔위민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질색했다.
그러나 카이야쓰나 옌뚜르는 그보다 훨씬 세심한 성격이다.
카이야쓰는 클리앙이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게끔 하고 조용히 계단으로 뒤따랐다.
그가 나간 후 사무실.
“어쩌면 딘야차 선배랑 셋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네요.”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딘야차한테 통신이나 해볼까?”
옌뚜르가 통신기를 꺼냈다.
삐비비빅-
알림음과 함께 윤성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통신이 왔습니다 : 옌뚜르 선배>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딘야차의 통신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옌뚜르와의 접촉은 예상했던 것이다. 오히려 생각보다 늦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차희를 찾으러 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까지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네. 딘야차입니다.”
윤성이 통신을 받았다.
이쯤 되면 이제 정체가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 해볼 만한 도박.
-딘야차, 지금 어디에 있어?
“행정실입니다.”
윤성이 말했다.
행정실 직원에게 주인 등록이 안 된 순간이동석 하나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어둔 참이었다.
-엘리지아는 잡았나?
“아직입니다.”
-멀리 다녀오느라 피곤할 텐데 그냥 올라와서 쉬어. 엘리지아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곧 가겠습니다.”
윤성은 복도로 나와서 사람이 없는 간부용 비상계단으로 이동했다.
<천까마귀 발동!>
옌뚜르와의 통신을 유지한 채 한 손으로 까마귀를 일으켜 세웠다.
까마귀의 발목에 순간이동석을 가져다 대고 딘야차가 가지고 있었던 핸드커프로 묶었다.
-그보다 마계 쪽은 어때? 마왕의 루비를 찾았나?
옌뚜르가 물었다.
“네. 제가 회수했습니다. 대표님 배터리를 손에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윤성이 슬쩍 떡밥을 던졌다.
-내 배터리는 그것보다 훨씬 세지.
딱!
윤성이 손가락을 튕겨 천 까마귀를 날려 보내면서 물었다.
“혹시. 그거 언제든 쓰실 수 있습니까? 조만간 써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왜?
“마스크맨이 다운되었지만 아직 지구에는 천계가 있어요. 부활한 마제스티엘을 중심으로 연합이 다시 뭉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차원들을 돌아보니 그런 분위기던가?
“마계는 빠졌지만 다른 차원들은 확신할 수 없어요. 천계는 말할 것도 없고, 메탈로이드계의 새로운 마더는 마스크맨의 오른팔이었잖아요?”
-흠.
“게다가 X등급 전사도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지구를 선점하는 데 실패해서 X등급이 직접 파괴하겠다고 나서면…….”
-내가 배터리를 쓰고 막아야겠지.
“자신 있으세요?”
-솔직히 자신은 없다.
“배터리에 더 많은 마력을 누적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마스크맨도 죽었고. 인계를 우리가 지배하게 되었으니 인계의 마력을 모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건 불가능하다고 전에 알려주지 않았나. 배터리는 이미 과포화 상태다.
불가능한 거였군.
“하지만 이번에는 마왕의 루비가 있잖습니까? 이걸 연구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한 번 시도해 보시죠. 배터리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내 침실 금고에 있는데, 꺼내려면 봉인을 풀어야 해서 복잡하다. 일단 올라와라.
침실 금고.
윤성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클리앙이나 베아트리체는 좀 어떻습니까?”
-둘 다 많이 좋아졌다. 아직 마력은 회복되지 않은 것 같지만.
“마계에서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좀 가져왔습니다. 그 둘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내 사무실에 있는데. 모두 같이 모여 있어. 하지만 클리앙과 카이야쓰가 방금 차례로 나갔다.
“나갔다고요?”
-지하에 모함이 이상하게 계속 작동해서. 그걸 끄려고 내려갔지. 카이야쓰는 걱정된다고 뒤따랐고.
“그랬군요. 제게 말씀하셨으면 제가 했을 텐데요.”
-넌 방금 임무 끝내고 돌아왔잖아. 쯔위민은 이런 잡일 할 성격이 아니고. 베아트리체는 아직 부상이 있고. 아무튼 넌 내 사무실로 올라와. 얘기 좀 하자.
“앗.”
윤성이 약간 당혹감 섞인 탄성을 뱉었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윤성이 통신기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카이야쓰를 만났거든요.”
눈앞에 카이야쓰가 서 있었다. 그는 딘야차를 보더니 한껏 반가운 표정으로 양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윤성은 반기는 척, 그를 껴안아 주었다.
카이야쓰는 윤성이 손에 든 통신기를 보고는 허리를 숙여 그 앞에 입을 가져다 댔다.
“아, 대표님? 들립니까?”
-카이야쓰냐?
“딘야차 합류했고요. 클리앙하고 같이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다.
카이야쓰가 통신을 껐다. 멋대로 남의 통신기를 눌러댈 정도로 그는 딘야차와 절친한 사이였다.
“전투복은 어쩌고 이상한 걸 입고 있냐?”
그가 물었다.
“아. 마계에서 일이 있어서 좀 상했거든.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그랬군. 근데 이건 펨토몰 브랜드잖아?”
“음…….”
“이쪽 브랜드 촌티 난다고 싫어하더니?”
“이건 괜찮더라고.”
“엘리지아는 잡았냐?”
“아니. 아직.”
“그럼 같이 막내 데리러 갈까? 엘리지아는 아마 쯔위민 선배가 처리할 거야.”
“막내?”
“클리앙이 지하로 내려갔어.”
카이야쓰가 계단 아래로 앞장섰다.
철컥!
갑자기 아래층 비상구의 문을 잠근 카이야쓰가 윤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공기가 변했다.
“너 누구냐?”
카이야쓰가 물었다.
“내가 누구냐니?”
“딘야차 그 새끼 마력 너처럼 안 높다. 혼탁하지도 않지.”
“마계에 있다가 와서 그런 것 같…….”
“그놈 인벤토리에 전투복 안 들어간다. 마력 초과 물품이라. 말투도 너랑 다르고.”
윤성이 피식 웃었다.
“친절하네. 난 딘야차를 죽일 때 기습해서 잡았는데.”
카이야쓰가 눈썹을 꿈틀했다.
예리한 긴장감.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손끝 발끝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확히 체크하고 있었다.
확!
선공을 날린 것은 카이야쓰.
강력한 마력이 실린 그의 클로가 윤성을 향해 쇄도했지만 윤성은 몸을 바짝 숙이며 피했다.
키기기기기긱!
마법 처리된 벽면이 클로에 찢어지면서 무시무시한 소음이 튀었다.
<용조 발동!>
아래에서 위쪽으로 날리는 드래곤의 발톱.
콰앙!
그러나 카이야쓰는 미꾸라지처럼 몸이 빙글 돌더니 윤성의 팔을 꺾으며 벽으로 밀쳐버렸다.
“큭…….”
“꺼삐딴의 마력은 대표님이 최고. 무력은 쯔위민 선배가 최고다. 하지만 전투 기술만큼은 내가 모두에게 압승이야.”
카이야쓰가 몸을 통통 튕기며 기묘한 전투 자세를 잡았다.
무에타이 자세와 비슷하다.
카이야쓰는 딘야차와 전투력이 비슷하다. 그러나 윤성이 딘야차를 잡을 때는 바토리가 가세하여 2 대 1 상황이었고, 기습한 것이었기에 딘야차가 방어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딘야차의 전문 분야인 저주 계열의 마법들은 모두 돔 오브 루인에 막혀서 차단된 상태였다.
즉, 이게 순수한 꺼삐딴 간부의 실력.
‘해볼 만하잖아?’
윤성이 품 안에서 종단 속도의 단검을 뽑았다.
콰아앙!
갑자기 저 아래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시작됐군.’
내려갔다는 클리앙이 퀸과 충돌했을 것이다.
퀸의 현재 전투력은 옛날 뉴욕을 침공했던 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아마 성장 환경이 고농도 마력 파장을 쉼 없이 뿜어대는 우주 모함 옆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클리앙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고. 지하엔 성체 엘리지아들도 득실대니까 퀸이 당하진 않겠지.
이제 작전을 시행할 때가 됐다.
<차원 통신 발동!>
윤성이 정신을 집중했다.
<전부 순간이동석 발동해! 꺼삐딴을 쓸어버려!>
쉬이익!
윤성이 꼼짝 않고 가만있자 카이야쓰가 다시 공격해 왔다.
카앙!
이번엔 윤성이 단검을 빼 들었다.
“미안하지만 빨리 올라가서 옌뚜르 금고 털어야 하거든.”
<단검 투척 타겟>
카이야쓰의 머리에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보며 윤성이 단검을 튕겼다.
***
“헉…… 헉…….”
클리앙이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도대체 엘리지아가 어떻게 들어와서 이곳에 둥지를 튼 걸까.
“캬아아악!”
다섯 마리의 엘리지아 성체가 안쪽에서 나오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쐐액!
그들 중 하나가 날린 촉수가 클리앙의 뺨을 스쳤다.
“큭!”
클리앙이 클로를 휘둘러 촉수를 쳐냈다.
‘이것들은 별것 아닌데.’
문제는 그 뒤에 있는 것.
좁은 지하실 문틈으로 몸을 빼내려고 애쓰던 퀸이 흐느적거리는 촉수를 한데 모았다.
콰아앙!
벽면을 통째로 뜯어버렸다. 퀸의 키는 클리앙보다 훨씬 크다. 그녀가 다가옴에 따라 클리앙은 위압되는 기분을 느꼈다.
쒸이익!
퀸이 휘두른 촉수는 성체들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고 날카롭다.
클리앙은 양팔을 교차해서 막았지만 수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큰일이다.’
장비도 부실하고 마력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강적을 상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네 이름이 뭐냐?”
갑자기 퀸이 물었다. 엘리지아 언어였지만 클리앙은 통역 마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간단히 이해했다.
“……클리앙.”
“클리앙. 엘리지아로 만들어주마. 내게 와라.”
퀸의 손끝에서 촉수 하나가 가느다랗게 뻗어 나왔다. 그 끝에 핵이 매달려 있다.
“죽이기엔 좀 아깝구나.”
촉수가 클리앙의 바로 앞으로 날아오는 순간.
땡!
엘리베이터에서 소음과 함께 누군가가 내렸다.
“대……. 대표님…….”
클리앙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상황이 좀 안 좋게 돌아가는 것 같군. 카이야쓰에게 긴급 구조 신호가 왔다. 지금은 끊어졌는데.”
옌뚜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쓰레기들이 내 길드를 좀먹고 있을 줄은 몰랐군.”
쿠우우우웅!
갑자기 위쪽에서 엄청난 소음이 터졌다. 그리고.
“크아아악!”
짧고 굵게, 세상을 찢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드래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옌뚜르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용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막대한 마력들이 사방에서 느껴진다.
“클리앙……. 내 금고로 가서 배터리를 가져와라. 봉인 해제법을 알려주마.”
옌뚜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