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레벨업 속도는 9.8m/s^2 218화
“맙소사. 이게 다 뭐야?”
차희가 징그럽다는 듯 바닥을 보며 몸서리쳤다.
끈적이는 점액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불끈불끈했다.
“비행선 아래에 저거……. 알인가요?”
신차민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정말이다.
퀸이 탄생할 때와 비슷하게 생긴 고치들이 어림잡아도 수백 개는 있었다.
“퀸, 이 새끼…….”
윤성이 중얼거렸다.
“너무 잘했어.”
그가 나직하게 박수를 쳤다.
“알에서 부화한 놈들도 좀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면 성체까지 자랐으면 더 좋겠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지아 쪽에서 움직임을 보였다.
지하실 천장 근처에서 무언가가 윤성의 바로 앞으로 확 뛰어내린 것이다.
‘모함이 내뿜는 마력 파장이 너무 커서 이런 사소한 것들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윤성이 엘리지아를 자세히 관찰했다. 차희는 윤성의 팔을 쥐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신차민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맨손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가 있다.
A급 신차민 정도로는 절대 못 당할 마수다.
콰앙!
갑자기 엘리지아가 윤성을 향해 촉수를 내찔렀으나 윤성은 가뿐히 받아냈다.
“준성체냐?”
윤성이 엘리지아 언어로 물었다.
“큭……. 성체다!”
엘리지아는 붙잡힌 촉수를 끊어버리면서 윤성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힘은 좋다만 경험이 너무 없군.”
윤성이 그를 붙잡아 짓눌렀다.
“레벨 차가 많이 나는 상대에겐 이런 식으로 덤벼드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난 네 적이 아냐.”
윤성이 말했다.
“콜로라 전사는 모두 우리의 적이라고 퀸께서 말씀하셨다!”
“난 콜로라 전사가 아닌데…….”
“일호!”
비행선 쪽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퀸의 목소리였다. 일호라고 불린 엘리지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돌아와!”
퀸이 명령하자 그는 강아지처럼 비행선을 향해 쫄쫄 달려갔다.
비행선 안쪽에서 거대한 크기의 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암회색 피부, 약 3미터가 훌쩍 넘는 키. 마르고 단단한 몸뚱이 곳곳에 늘어진 촉수가 우아하게 흐느적거렸다.
“여기 있는 알 전부 네가 낳은 거야?”
윤성이 물었다.
“물론.”
퀸이 도도한 표정으로 윤성을 향해 다가오며 답했다.
“부화한 녀석은 몇이나 되지?”
“삼백이 조금 안 된다.”
“성체는?”
“열둘.”
“충분하군.”
윤성이 흡족한 듯 웃었다.
“이쪽은 내 사람들이다. 꺼삐딴을 전부 파괴한 후에 인계로 데리고 갈 거야.”
윤성이 차희와 신차민을 소개했다. 퀸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보호하고 있으면 될까?”
“부탁할게.”
갑자기 퀸이 고개를 돌리더니 입에서 휘익 하는 소릴 냈다.
“넌밀!”
그녀가 소리쳤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엘리지아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보고 윤성은 깜짝 놀랐다.
퀸의 핵을 심어놓기 위해 지하로 내려왔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던 콜로라 전사 하나가 있었다.
윤성이 척루인을 구해온 에이스라며 금지된 지하 출입을 몰래 허락해주었던 녀석이다.
“저놈이 왜 여기에 있지?”
윤성이 묻자 퀸이 빙그레 웃었다.
“오늘 아침에 지하실을 보겠다고 내려왔다. 내가 흡수해 버렸지.”
그녀가 말했다.
“뭐, 아직 준성체 정도밖에 안 되지만.”
“대단하군.”
“저 녀석에게 둘의 보호를 맡기겠다. 넌밀은 콜로라 성인일 때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 건물의 구조에 대해서도 잘 알거든. 위험한 상황이 오면 도망칠 곳도 금방 찾아내겠지.”
“좋아.”
생각보다 훨씬 좋은 보디가드다. 윤성은 차희와 신차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여기 숨어 있어.”
차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설마 외계에서 핏빛야수를 모체로 한 엘리지아의 보호를 받게 될 줄이야…….”
“걱정 마. 안전할 거야. 금방 집에 보내줄게. 그리고 신차민.”
윤성이 차민에게 말했다.
“내 동생들 지켜줘서 고맙다.”
그는 차민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두드렸다. 그가 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퀸. 이 모함의 버프 제거기는 나한테 꽤 위협적이거든. 가능하면 지금 파괴하고 싶은데.”
“내게 맡겨둬.”
퀸이 말했다.
“필요한 때에 파괴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써야 해.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엘리지아들을 더 키우고 싶거든.”
“좋아. 그럼 믿고 맡길게.”
윤성은 퀸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이제 급한 불은 껐다. 다음은 장비를 되찾는 것이다.
딘야차의 얼굴로도 그리 쉽진 않을 거다. 그 물건들의 소유자는 옌뚜르니까.
하지만 윤성은 이미 엘리지아가 길드 안을 돌아다닌다는 얘길 퍼뜨렸다.
마법 아이템 감식반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과학자들이고 뛰어난 전사는 별로 없다.
감식반에 도착한 윤성은 전투원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보았다.
느껴지는 마력을 토대로 짐작건대 총 일곱 명.
나머지는 모두 과학자들이다.
“전부 들어라.”
감식반 입구에서 윤성이 벽을 탕탕 쳐서 모두의 주의를 환기했다.
“5층에 엘리지아가 나타났었다.”
윤성이 말했다.
“내가 놈을 추적 중인데 그 마력이 이곳에서 느껴진다. 지금 엘리지아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뭐라고요?”
과학자들의 표정에 불안감이 번졌다.
“하지만 딘야차 님. 저흰 누가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가드를 서던 전사 중 하나가 윤성에게 말했다.
“아마 너희는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엘리지아는 잠복에 능하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잡을 것이다. 다만.”
윤성이 과학자들에게 말했다.
“적은 꽤 강하고 잔인하며 영리하다. 너희들이 이곳에 있다간 다치거나 인질로 잡힐 가능성이 높다.”
“바깥에 나가 있을까요?”
과학자들이 물었다.
“오늘은 모두 퇴근해라. 어차피 마스크맨을 잡았으니 어떤 일도 서두를 필요는 없다.”
퇴근이란 말에 과학자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그들은 쓰던 데이터들을 정리해 놓고 하나씩 가방을 메고 바깥으로 나갔다.
“감식반 보안은 저희 책임입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전사들이 말했다.
“고맙지만 괜찮다. 방해만 되니 나가 있어라.”
“하지만…….”
“괜찮다. 내가 놈을 잡고 나면 알려주겠다.”
전사들은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수긍했다. 하나씩 그들이 자리를 빠져나간 후, 윤성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들어오자마자 물건들을 찾았다.
감식반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후드 옆의 실험 테이블.
그 위에 랜더의 전투복과 코트, 전투화, 시계와 팔찌와 종단 속도의 단검이 있었다.
“휴우.”
한때는 이걸 빼앗기고 어쩌나 싶었는데.
윤성은 빠뜨의 가게에서 샀던 옷을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고 랜더의 장비를 하나씩 착용했다.
<랜더의 전투복 발동!>
<디스가이징 발동!>
다행히 스킬들도 정상 작동한다.
윤성은 디스가이징 스킬을 이용해 랜더의 전투복의 외형을 이전에 입고 있던 빠뜨의 전투복으로 바꾸었다.
이제 겉모습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알맹이는 랜더 장비 풀세트다.
***
“그놈 높은 데서 떨어지면 세져요.”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대체 뭐 그딴 정신 나간 고유 스킬을. 아니, 그게 고유 스킬인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놈 높은 데서 떨어지면 세져요.”
“특이한 능력이군.”
옌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 사무실.
딘야차를 제외한 모든 간부들이 집결해있었다.
옥살이를 했던 클리앙과 베아트리체는 몸을 좀 회복하고는 곧장 사무실로 찾아왔다.
알아낸 것들에 대해 보고하고 고생한 것에 대한 회포를 풀기 위해서다.
“퀸을 잡을 때도 어디서 떨어졌다고 했었지.”
쯔위민이 말했다.
“슈퍼히어로랜딩이라고 인계에서 떠돌아다니는 동영상 같은 게 있습니다. 강윤성이 그걸 하면 버프를 얻게 되는 것 같은데요.”
“확실해요.”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분명 그때 무슨 유성처럼 떨어졌는데, 착지 전에는 마력 수준이 그렇게 대단치 않았어요. 하지만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부터 괴물이 되어서 날뛰더군요.”
“X등급 수준까지 갔다고 했지?”
옌뚜르가 턱을 괸 채 물었다.
“네! 저 X등급한테 마법 날린 여자예요.”
베아트리체가 웃으면서 말했다.
“클리앙은 왜 그렇게 조용해?”
쯔위민이 다리를 떨다가 물었다.
클리앙이 고개를 숙였다.
“너무……. 죄송해서요.”
“뭐가?”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표님은 마스크맨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내기 전까지 싸우지 않으려고 하셨는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움직였던 것 때문에 베아트리체 선배도 위험에 빠뜨리고…….”
“아냐! 됐어, 됐어.”
베아트리체가 클리앙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럴 수도 있지. 차기 꺼삐딴의 리더라면 이런 경험도 해봐야지.”
그녀가 웃었다. 카이야쓰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옌뚜르 선배 레벨이 되려면 아직 멀긴 했군요. 전투력만이 아니라 뭐랄까, 적을 통찰하고 판을 짜는 능력 같은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쯔위민이 면박을 줬다.
“옌뚜르의 전투 경력 햇수가 클리앙 나이보다 많다. 벌써 클리앙한테 따라잡히면 우리 다 은퇴해야지.”
옌뚜르가 피식 웃었다.
“클리앙, 우린 널 조금도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이 기회로 네가 더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클리앙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옌뚜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둘 다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아, 근데 대표님.”
베아트리체가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상식적으로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사람이 죽거나 해야 정상 아닌가요? 마스크맨이 오히려 힘을 얻었던 건 그 녀석이 가지고 있었던 장비들 때문이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안 그래도 감식반에서 그 물건들을 분석하고 있다. 마법 보안이 심한 물건들이라 알아내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물어볼까?”
“나도 궁금하군.”
쯔위민이 끼어들었다.
옌뚜르는 통신기를 꺼내어 감식반에 연결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사무실 전화들이 모두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받지 않았다.
“뭐야? 업무 시간인데.”
카이야쓰가 고개를 갸웃했다.
옌뚜르는 통신기의 버튼 몇 개를 눌러 조작했다.
감식반의 책임 반장의 비상 연락처로 통신을 돌린 것이다.
-네. 감식반입니다.
통신기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가 울렸다.
<옌뚜르입니다. 감식 진행이 지금 얼마나 되고 있나요?>
-아직 별달리 알아낸 건 없습니다. 단검이 자꾸 제멋대로 움직여서 그 원리에 대해 테스트 중입니다.
<흠. 그렇군요. 근데 지금 감식반에 아무도 없습니까? 연결이 안 되던데.>
-좀 전에 딘야차 전사님이 오셔서 모두 내보내셨습니다.
<뭐라고요?>
-엘리지아가 들어왔다고 하시던데요.
<엘리지아가 들어왔다?>
-5층에서도 사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누가 당했죠?>
-척루인 대전사님하고……. 어……. 이름은 모르겠고 간수라고 들었는데.
<알겠습니다.>
옌뚜르가 통신을 끊었다.
“엘리지아가 들어왔다고?”
쯔위민이 물었다.
“그렇다는군. 딘야차가 추적하고 있대.”
“그럼 별일 없겠지. 근데 엘리지아가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어디선가 순간이동석을 하나 습득했나 보지. 강윤성이 전해줬거나.”
“근데, 대표님.”
베아트리체가 다시 끼어들었다.
“길드 건물 전체에 계속 웅웅 하면서 소리 울리는 거. 지하에 모함을 작동시킨 거예요?”
“아, 맞아.”
말을 하던 옌뚜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나도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거 이상한데.”
“뭐가요?”
“아침에 넌밀이라는 하급 전사 한 명을 시켜서 작동 중지시키라고 했었다. 왜 아직까지 돌아가는 거지?”
“제가 내려가 보겠습니다.”
클리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