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217화 (217/260)

# 217

레벨업 속도는 9.8m/s^2 217화

윤성은 딘야차가 가지고 있었던 보안 카드로 손쉽게 출입할 수 있었다.

‘상황을 점검해볼까.’

지금 목표는 크게 세 가지.

첫째, 차희를 되찾는다. 이것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옌뚜르는 차희의 기억을 지우겠다고 했고, 시간이 꽤 소요된다고 했다. 옌뚜르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아마 차희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전투를 벌이더라도 그 놈들이 차희를 인질로 잡으면 또 움직이기가 어려워진다.

최소한 차희를 엘리지아 퀸 곁으로 는 보내야 한다.

두 번째 목표는 장비들을 되찾는 것이다.

랜더의 용품들은 꺼삐딴이 보기에도 특이한 물건들이다.

그놈들의 마법 물품에 대한 탐욕과 관심을 볼 때 아마 아무 데나 방치해 두진 않았을 거다.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옌뚜르의 방에 보관되어 있거나 꺼삐딴의 마법 아이템 감식반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옌뚜르는 자신의 파워업보다 길드의 파워업을 우선시하는 남자니까.

마지막 목표는 옌뚜르의 마력 배터리를 훔치는 것이다.

옌뚜르의 마력 흐름을 보면 그가 직접 평소에 그것을 휴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분명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었겠지.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위치를 쉽게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간부급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심받을 수 있으니 윤성이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굴러간다면 옌뚜르가 직접 그 물건을 가지러 가거나, 부하 직원들에게 심부름을 시킬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엘리지아 퀸 같은 게 지하에서부터 꺼삐딴을 침공한다든가 하는 상황이 일어나면.

‘작전의 키는 퀸이다.’

하지만 퀸에게 보낼 신호는 아직.

일단 차희의 안전이 우선이다. 모두가 방심하고 있을 때 의표를 찔러야 하니까.

“혹시 전에 대표님이 데려온 인간 여자,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윤성이 행정실 근처를 지나다니던 전사들에게 물었다.

하급 전사들은 딘야차의 얼굴을 잘 모른다. 딘야차는 이곳까지 내려와서 일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윤성에겐 간부 신분증이 있고, 메탈로이드계의 엘리베이터에서 랜딩하며 얻은 막대한 마력이 있다.

그 자체가 누구든 신뢰할 만한 신분의 증거였기 때문에 전사들은 윤성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아마 5층 포로실에 있을 겁니다.”

전사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제가 좀 전에 식사를 가져다주러 갔었거든요.”

“상태는 어떻던가?”

“어디 상한 데는 없습니다. 대표님 지시대로 일단 보호하고 있으니까요.”

“좋아.”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전사가 윤성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전에 척루인 대전사님이 데려온 그 헌터 있잖습니까.”

“……?”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전사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왜, 얼마 전 인계에서 무슨 임무 수행하시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같이 순간이동해서 여기 잡아놓았다던.”

“아아. 그래. 들은 것 같군.”

누군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아는 척을 했다.

“딘야차 님. 그 녀석은 약간 상태가 안 좋아보이더군요. 대표님께 보고할까요?”

“내가 보고하겠다. 신경 쓰지 마라.”

윤성이 대답했다.

대체 그게 누군가 고민하며 5층으로 올라간 윤성은 이윽고 포로 수용실 앞에 이르렀다.

백마 길드 지하 감옥에 비해선 훨씬 크다.

6평짜리 원룸 같은 방들이 닭장처럼 붙어 있었다.

다만 전면 유리라서 안쪽이 모두 보이는 구조다.

하긴. 전쟁 포로에게 사생활까지 만들어줄 수는 없겠지.

“딘야차 님 아니십니까?”

포로들을 지키고 있던 전사 한 명이 윤성에게 인사했다.

“수고가 많군.”

“포로들을 보러 오셨습니까?”

“그래.”

“안 그래도 곧 척루인 전사님이 오신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일로?”

“2번방에 갇혀 있는 인간 헌터를 취조하시겠다고요. 이제 오실 때가 됐습니다.”

“흠.”

윤성은 첫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꽤 해쓱해진 차희가 죄수복 같은 것을 입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윤성을 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당신 꺼삐딴 간부지?”

차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렇다. 꺼삐딴 간부 딘야차다.”

“마스크맨은……. 어떻게 됐지? 저기 있는 간수가 이상한 소리를 했어. 마스크맨이 죽었다고.”

윤성은 간수를 힐끔 돌아보았다.

거리가 꽤 있었다.

윤성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차희, 날 믿으라고 했지?”

그가 살며시 미소 짓자 정체를 눈치챈 차희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윤성이 말했다.

이왕 구출할 거, 2번 방에 있다는 헌터도 같이 빼내야겠다.

대체 어떤 놈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인간 주제에 꺼삐딴까지 날아와서 납치가 된 건지.

윤성이 옆방 앞으로 이동했다. 전면 유리 안쪽에는 너덜너덜한 상태의 무언가가 축 처진 채 누워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윤성의 표정이 굳었다.

신차민!

‘대체 이 녀석이 여길 왜?’

철컥!

포로 수용실 도어가 열리면서 척루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앗. 딘야차 선배님이 와 계셨군요.”

“척루인…….”

“제 포로를 보고 계셨습니까?”

척루인이 간수에게서 2번 방 열쇠를 받으며 말을 걸었다.

“네가 이 녀석을 잡아 왔나?”

“네. 모르셨습니까? 마스크맨의 동생들을 잡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방해해서 실패했습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에서 절 붙잡고 뛰어내리더군요. 추락해서 동반자살하려고 했던 거죠.”

척루인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순간이동석을 썼는데, 마스크맨의 동생들을 옮기려고 차체까지 통째로 마력 동조화를 걸어놓았던 상태라 이놈이 같이 순간이동했습니다. 마스크맨의 동생들은 게이트로 들어가 버렸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다친 거지?”

“그게……. 제가 좀 때렸습니다.”

“왜?”

“이 새끼 때문에 임무에 실패했으니까요. 솔직히 너무 짜증나서.”

척루인이 큭큭 웃었다.

“게다가 수용실로 옮겨져서 민차희를 보고 나더니 눈이 뒤집어져서 날뛰더라고요.”

척루인은 감옥 문을 열었다.

“머저리 같은 새끼. A급 나부랭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나대봤자 바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쓰러진 신차민에게 다가가더니 발로 툭 찼다.

“일어나. 새끼야. 일단 죽으면 안 되니까 치료는 해줄…….”

쾅!

척루인은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갑자기 윤성이 그의 뒤통수를 붙잡고 벽에다 찍어버렸기 때문이다.

벽은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마법 처리가 5중으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힘이 실린 주먹이 벽을 부수고 차희가 있는 옆방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 손아귀에 들려 있는 것은 이미 한 줌의 핏덩어리에 불과했다.

척루인이 아무리 튼튼해도 그 머리가 포로 수용실의 감옥 벽보다 단단할 수는 없으니까.

머리를 잃어버린 그의 시체에서 피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져 내렸다.

“무, 무슨 일입니까?”

큰 소음을 들은 간수가 본능적으로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에서 발사된 마법 탄환이 일격에 그의 목을 꿰뚫었다.

힘껏 주먹을 내지르고 나니까 분노가 약간 진정된다.

그제야 벽에 난 구멍 너머로 충격에 빠진 차희의 얼굴이 보였다.

“사, 살살 좀 해…….”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 꺼내줄게. 나와.”

<용조 발동!>

윤성은 스킬로 주먹을 강화해서 벽면을 뜯어냈다.

간수의 주머니를 뒤지면 1번 방의 열쇠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이게 더 빨랐다.

차희가 넘어오자 윤성은 신차민에게 다가갔다.

<치유 발동!>

막대한 치유 마법이 신차민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크헉.”

신차민이 숨을 토해내더니 잇달아 기침을 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면서 옆으로 돌아눕더니 곧 눈을 떴다.

“뭐, 뭐야?”

여전히 딘야차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윤성을 보고 신차민이 식겁하며 엉덩이 걸음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비서님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인계의 집으로 데려갈 거다.”

윤성이 말했다.

“그리고 너도.”

“뭐?”

“신차민. 이 분은 마스크맨입니다.”

차희가 설명했다. 신차민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멍청한 표정으로 윤성을 쳐다보았다.

“근데 어떻게 나갈 거야?”

차희가 물었다.

“너희를 여기로 압송할 때 어떤 식으로 했지? 손을 묶었나?”

“수갑 같은 걸로 했어.”

“기다려 봐.”

윤성은 인벤토리 주머니를 꺼냈다.

척루인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매직 핸드커프>

인벤토리 주머니 안에는 마치 야광 팔찌같이 생긴 마법 띠 일곱 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이름이 핸드커프였다.

딘야차는 다른 차원들을 돌면서 연합을 와해시키고 가입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볼모로 잡는다거나 저항하는 관리자를 체포해야 할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이런 것을 준비했을 것이다.

“손 내밀어 봐.”

차희가 두 손을 내밀자 윤성은 핸드커프를 가져다 댔다.

착!

손목에 감기면서 그녀의 두 손이 묶였다.

“뭐, 이렇게 하는 건가 보지?”

윤성은 신차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어정쩡한 자세를 잡았다.

“손 내밀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테니까.”

차희가 신차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은 두 사람을 포박해서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급 전사들과 행정관들이 윤성과 인간 헌터 포로 둘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딘야차 님?”

그 중 용감한 전사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포로들을 이송시키는 겁니까?”

“그래.”

윤성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옌뚜르 대표님이 내일 보겠다고 하셨는데 포로 수용실 외의 다른 장소에서 기억 제거 마법 같은 걸 쓰면 안 되는데요…….”

“포로 수용실이 습격당했다. 그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옮기는 것이다.”

“네에?”

주위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가봐라. 척루인과 간수를 보던 녀석이 죽었으니.”

“정말입니까?”

“엘리지아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둘 다 가능성이 없었어. 그리고 그 엘리지아가 포로들도 죽이려 했다. 가까스로 막았지.”

“엘리지아는 잡으셨습니까?”

“도망쳤다.”

“세상에. 길드 안에 엘리지아가 돌아다닌다니!”

“딘야차 님. 경보를 울릴까요?”

행정관 하나가 물었다.

“필요 없다. 내가 추적 마법을 달았으니 직접 잡을 수 있다. 괜히 소란 만들지 말고 포로 수용실이나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대표님껜 내가 직접 보고할 것이다. 간부들에게 허용된 다른 공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기억 제거 마법을 쓰시면 될 거다.”

행정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 몇몇은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꺼삐딴 간부 딘야차의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에 감동한 느낌이었다.

윤성은 차희와 신차민을 길드 지하로 데리고 이동했다.

웅웅 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퀸은 통신으로 완전히 성체가 되었다고 했다. 비행선의 파장이 너무 막강했던 덕분에 순식간에 성장했댔지.’

모함이 보관된 지하실에 이른 윤성은 주위의 보는 눈이 없어지자 차희와 신차민의 손목을 풀어주었다.

“둘 다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이 안엔 엘리지아가 있다.”

윤성이 지하실 문고리를 돌렸다.

차희와 신차민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게다가 윤성조차 놀라고 말았다.

비행선을 포함한 지하실 전체가 엘리지아의 점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