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레벨업 속도는 9.8m/s^2 213화
콰과광!
민간인 두 명이 탄 자동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계의 척박한 땅에 착지했다.
붕! 부우웅!
게이트를 넘나들면서 자동차의 마력 배터리가 망가졌다. 엔진에서 요란한 소음과 연기가 나고 있었다.
다윤은 문을 열려고 했지만 마계의 땅에 착지할 때 부딪힌 것 때문인지 열리지 않았다.
“소윤아, 뒷좌석 열려?”
그녀가 물었다. 겁에 질린 소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와직. 쩌어억!
갑자기 누군가 완력으로 자동차의 문짝을 뜯어냈다.
바토리가 서 있었다.
“둘 다 내려라.”
그녀가 한국어로 말했다.
다윤, 소윤에게도 바토리는 아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계의 스산한 공기와, 게이트 내부라는 사실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들은 와들와들 떨면서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다. 강윤성과 민차희가 꺼삐딴에 붙잡혔거든.”
“저희가 쫓기는 건 어떻게 아셨죠?”
“백마 길드에 마족도 몇 명 있다. 저번 연합 이후에 인계로 내려가 합류했지. 일종의 대사관 비슷한 건데.”
“네?”
“아무튼 그들이 내게 연락해 왔다. 마스크맨이 죽었다고.”
“죽었다고요?”
“체포됐다고 했잖아. 죽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인간 헌터들은 지금 그렇게 아는 모양이다.”
“그럼 바토리 씨는 어떻게 사실을 아신 거예요?”
다윤이 물었다.
“아까 콜로라에서 여기로 사람이 왔다. 간부 카이야쓰와 딘야차.”
“카이야쓰…… 딘야차?”
“마왕님을 설득하고 있어.”
“설득이요?”
“곧 킹을 잡을 거고 연합은 끝났으니 포기하라는 식으로. 어쩌면 막대한 손해 배상을 해주고 연합을 탈퇴하게 될지도 모른다.”
“…….”
“마왕께서 연합을 포기하면 너희에게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
바토리가 다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다른 차원의 포탈을 열어주마. 이쪽은 더 안전할 거다. 콜로라에 끝까지 강경할 테니까.”
<차원문 발동!>
“천계다. 너희가 아는 얼굴도 있을 테니 보호해 달라고 해라.”
그녀가 천계의 게이트를 가리켰다.
같은 시각.
마왕이 두 사람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마스크맨을 너희들이 잡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그는 X등급 수준의 저력을 보여주었는데.”
“마스크맨을 잡아서 증명해 준 후에는 늦는다니까. 대표님이 널 살려두려고 할 것 같아?”
딘야차가 따졌다. 그러나 마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난 연합에 남는다. 바토리를 지지할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그대들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그대들이 사자의 신분으로 왔기 때문일 뿐이다. 어서 돌아가라.”
“그 결심 확고한 거야?”
“확고하다.”
“아, 정말 고집불통이네.”
카이야쓰가 짜증을 부렸다. 그 순간, 딘야차가 눈이 커져서 외쳤다.
“대표님한테 통신 왔어!”
그가 통신기를 들어 보여주었다.
“녹화 영상이 날아오는군.”
카이야쓰도 통신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크맨을 지금 무장해제 시켰고, 지하로 압송 중이라고 한다.”
“우리 말대로지? 마스크맨을 잡을 거라고 했잖아.”
마왕의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 그는 주의를 기울인 채 두 사람의 통신기로 시선을 옮겼다.
“이것 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 영상이야.”
딘야차가 통신기를 가까이 가져갔다.
***
백마 길드 지하 감옥. 윤성은 무력하게 포박된 채 바닥에 꿇어앉았다.
자경단이 모두 따라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SS급 일부만 함께 이동했다.
다만 고제하는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이유로 함께 옥 앞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제가 심문해 보겠습니다.”
고제하가 말했다.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테쿰세가 물었다.
“여기, 쿠바에서 오신 옌데르 헌터님이 테러리스트 심문 같은 일에 달인이라고 하셨으니 절 좀 도와주십시오.”
테쿰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정장 입은 쿠바의 헌터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제하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전 믿으십니까?”
“마스크맨으로 위장한 핏빛야수를 까발리셨잖습니까?”
“그렇죠. 그럼 쭉 믿어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고제하가 말했다.
테쿰세는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납득했다.
괜찮겠지. 어차피 SS급 모두 감옥 바로 밖에서 대기할 테니까.
“그럼 우린 모두 나가보죠.”
철컥.
감옥 문이 닫히자마자 옌뚜르는 윤성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쾅!
옌뚜르가 윤성의 머리를 발로 찼다.
“크윽…….”
“마스크맨.”
옌뚜르가 말했다.
“전사로 데뷔한 나는 수많은 전장을 구르고 굴러 동료를 모집했고 자금을 모아서 길드를 세우고, 그걸 키워서 여기까지 왔다.”
“…….”
“내가 전투를 치렀던 시간만 누적해도 네가 살아온 날보다 많을 거다. 그런데 내가 네깟 놈의 잔머리에 넘어갈 것 같았나?”
“난 전부 네 요구대로 했다. 이제 차희를 놔줘.”
“물론 놔줘야지. 기억을 좀 지우고. 널 불구로 만들고.”
“아, 잠깐. 그 전에 차희와 날 한 번만 통화하게 해줘.”
“통화?”
“이제 마지막이잖아?”
옌뚜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통신기로 쯔위민에게 연결했다. 곧 쯔위민은 차희를 바꿔주었다.
-윤성아?
차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튼 소리하면 바로 죽이겠다.”
옌뚜르가 말했다.
“알겠어.”
옌뚜르는 윤성의 귀에 통신기를 대주었다.
“차희.”
-너 어디야? 난 지금……. 꺼삐딴에 있는 거 같아.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이제 어떡해?
“심기 거스르지 말고 가능하면 얌전히 하라는 대로 따라줘.”
-알았어…….
“차희. 내가 헌터 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심을 바꾸었던 계기를 기억해?”
-어?
“다 괜찮을 거야. 날 믿어. 걱정하지 마.”
윤성이 통신기를 다시 옌뚜르에게 내밀었다. 옌뚜르는 통신기를 끄면서 빙긋 웃었다.
“사랑한다거나, 그런 말은 안 해도 되나? 마지막인데.”
“어차피 잊을 텐데.”
“그렇지.”
“기억을 지우는 과정은 고통스럽나?”
“아니. 다만 시간은 좀 걸린다. 사흘 정도. 그 후엔 반드시 민차희를 석방하지.”
“사흘? 좋아.”
<마안 발동!>
옌뚜르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항하지 마라. 강윤성. 헬라엘과 달리 네 마력은 파멸시키기 어려우니. 빗나가면 널 죽일지도 모른다.”
찌이잉!
마안이 가해지자 윤성이 작게 신음했다.
용암 속에 몸을 담근 기분이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듯하다. 뼈마디가 녹아내리고 살이 불탄다.
시야가 멀었다. 시신경이 모두 사멸해 버렸다.
대뇌 기저핵이 파괴되고 있었다.
윤성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모든 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수고했다. 민차희는 사흘 후에 석방하마.”
옌뚜르가 고제하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
“자, 어때?”
딘야차가 물었다.
통신기의 실시간 영상을 본 마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딘야차가 말했다.
“X등급의 전투력을 보여주었던 마스크맨은 끝났다. 이젠 상황이 마제스티엘이 당한 직후의 시점과 동일해졌군.”
“…….”
“자아. 마왕. 이제 어떻게 할까. 넌 어쩌길 바라지? 다시 예전처럼 와해될 연합을 탈퇴하고 꺼삐딴에 협조할 건가?”
딘야차의 물음 끝에 카이야쓰가 빈정거렸다.
“마왕. X가 오면 다 죽는다. 그 전에 꺼삐딴에 붙어야지? 마계를 살리려면.”
“난…… 좋다. 마계는 연합에서 나가겠다.”
“좋아. 꺼삐딴은 실수를 용서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
“무엇을 원하는가?”
“마계에서 꺼삐딴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의 귀족이 바토리라고 들었다.”
딘야차가 말했다.
“그 여자를 죽이고 A급 이상 마정석 3만 개를 바쳐라.”
“뭐라고?”
마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만인가?”
“마정석은 내어주마. 하지만 바토리는 내 딸 같은 아이다.”
“우릴 죽일 각오를 하고 있었으면서 바토리의 죽음은 각오하지 못했던 건가?”
“실망스럽군.”
카이야쓰와 딘야차가 비웃었다.
마왕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마계에서는 그의 마력이 인계에서보다도 더욱 증가한다.
간부 둘이지만 이곳에서라면 해볼 만하다. 죽이진 못하더라도 쫓아낼 순 있다. 물론 치명상을 각오해야겠지만. 여차하면 기사들을 부르면 어찌어찌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다음엔?
두 사람을 쫓아버리면 다음엔 옌뚜르와 쯔위민이 올 것이다.
용제는 마스크맨을 믿고 연합에 참가했지만 그 마스크맨이 파멸했다.
얼굴은 처음 봤지만 영상 속 남자의 마력은 분명 용계에서 봤던 마스크맨이었다. 조작된 영상은 아니다.
사실상 연합에 무언가를 더 기대할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바토리를 죽일 순 없다.”
마왕이 말했다.
“내 목숨으로 끝내주길 바란다.”
카이야쓰와 딘야차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당신이 죽겠다고?”
마왕은 굳은 얼굴이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결이라도 할 건가?”
“원한다면.”
“하하하!”
딘야차가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야쓰. 이 자식 좀 봐. 완전 미친놈 아냐 이거?”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카이야쓰가 소리쳤다.
마왕은 착잡한 표정으로 검을 빼 들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사실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다.
‘내겐 너무 큰 왕관이었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왕은 굴욕을 참아야 했다.
그게 마계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계의 왕은 마왕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는 모든 전장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스크맨은 온 힘을 다해 적과 부딪히며, 손에 닿는 모든 걸 구해내려 투쟁하는 왕이었다.
마제스티엘보다 영악하고 마왕보다 신념에 올곧은.
마스크맨이 정말 이대로 무너질지 알 수 없다. 그 똑똑한 남자가 무언가 다른 수를 써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힘을 잃고 죽게 되든, 재기에 성공하든 무관하게 마왕은 자신이 옥좌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시대를 표류하고 있었다, 바토리.’
마왕은 머릿속으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당신의 백성으로 남지 않겠습니다’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그 애는 내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이 위기를 다른 기회로 바꾼다. 마계에 대한 꺼삐딴의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바토리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다.
그 뒤는 그녀에게 맡긴다.
더 현명하고 강인하게 벼려질, 마스크맨을 닮은 마왕에게.
콰아악!
마왕이 역수로 쥔 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분출하는 마력을 차분히 감싸서 작은 구슬처럼 압축시켰다. 심장에서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핏물이 작은 루비처럼 변하고 있었다.
이곳에 두면 카이야쓰, 딘야차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러나 기감과 마력의 섬세한 컨트롤이 일곱 차원 중 최고인 마계의 지배자다.
마왕이 손으로 가슴의 자상을 움켜쥐었다.
<차원문 발동!>
손바닥 안쪽에 만들어낸 초소형 차원문.
장검과 가슴의 상처 틈으로 흘러나오는 마왕의 루비는 차원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위치는 바토리의 성.
마왕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
꺼삐딴 전사들이 떠난 후. 백마 길드 지하실.
자경단 헌터 티엔과 쥔 챠이가 윤성의 상태를 보기 위해 들어왔다가 입을 틀어막고 놀랐다.
“주, 죽은 거 아닙니까?”
쥔 챠이가 물었다.
“흐으음. 글쎄.”
티엔이 가까이 다가가 윤성을 내려다보았다.
“살아는 있군.”
티엔이 말했다.
“하지만 글렀어. 얘길 좀 해보고 싶었는데. 나가자고.”
티엔과 쥔 챠이가 바깥으로 나가자 다시 지하실엔 어둠이 내렸다.
윤성은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젠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다. 하지만 윤성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칭호 : 엘리지아의 정복자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