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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05화 (205/260)

# 205

레벨업 속도는 9.8m/s^2 205화

헌터 협회.

한 남자가 본관 6층의 인사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은 강윤성이다.

그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사방에서 수군거렸다.

“저 사람 강윤성 씨 아닌가?”

“그게 누군데?”

“옛날에 그 왜 포천 사건 때.”

“앗! 그 E급 헌터?”

“D급이라던데.”

헌터들은 나름대로는 목소리를 낮추어 자기들끼리 쑥덕댄 것이지만, 윤성의 감각 능력은 5,000점이다.

버프가 전혀 없어도 그들의 말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꽂힌다.

‘이제 곧 더 놀라게 될 거다.’

윤성은 속으로 생각하며 인사과 헌터 등급 관리 부서에 이르렀다.

백마 길드에 들어가는 걸 미끼로 옌뚜르의 환심을 사서 꺼삐딴의 중역에 오르는 것은 계획한 대로다.

하지만 인계에서 이 정도의 어그로를 끄는 것을 원치는 않았었다.

기자들이 꼬이고 윤성에 대한 정보들이 자꾸 떠돌아다니다 보면 둘러댈 수 없는 것들이 나오거나 스파이짓이 복잡해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하지만 옌뚜르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어쩌면 치킨 게임처럼 될 수도 있다.

‘내 정체가 먼저 까발려지느냐, 꺼삐딴의 작전들을 먼저 알아내느냐의 싸움.’

꺼삐딴에 들어갔을 때 버프를 켜고 혼자서 몽땅 파괴해 버리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당장은 어렵다.

이유는 둘이다.

첫째, 유성 랜딩 버프는 꺼삐딴의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과버프의 페널티 시기는 무력하다.

그 타이밍에 꺼삐딴 간부들로부터 지켜줄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옌뚜르의 힘이 정확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가 옛날 마제스티엘과 막상막하였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옛날 일이다.

마정석을 먹어서 성장할 수 있는 콜로라 전사 옌뚜르가 그동안 얼마나 컸을지 모른다.

그 증거로 옌뚜르를 직접 만났을 때 윤성은 그의 마력을 잘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5,000점의 지능과 감각 능력에서 나오는 기감이었기 때문에 옌뚜르의 체급을 진단하기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 실력은 여전히 마제스티엘 근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이니 불확실한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안전하게 가자.’

에어포스와 아리, 마왕, 미들로드, 용제를 소환하고 퀸과 함께 안팎에서 붕괴를 일으킨다.

그 타이밍에 유성 랜딩을 쓰면 한 시간 내에 충분히 꺼삐딴을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설마 닷새 안에 정체를 들키거나 하겠어?’

윤성은 헌터 등급 관리부서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행정 직원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재각성 심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헌터 자격증 주세요.”

윤성은 지갑에서 헌터 자격증을 꺼내어 내밀었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신분증이다.

S급 자격증은 집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지갑에서 빼내어 서랍에 보관해두었다.

손에 너무 익어서 실수하거나 누가 지갑 속에 있는 걸 볼지도 모르니까.

“전에 재각성 심사를 한 번 하셨었네요?”

직원이 컴퓨터로 신원 조회를 해보더니 말했다.

“네. 몇 달 전에 했었죠.”

“그때 E급에서 D급이 되셨었고요.”

“맞아요.”

“보통 재각성 심사를 또 하진 않는데……. 심사실에 들어가서 조금 기다려주세요.”

등급 심사장으로 이동해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으니까 인사과 직원들이 들어왔다.

“강윤성 씨?”

약간 귀찮다는 표정이다.

“전에도 이거 하시지 않았나요?”

얼굴을 자세히 보니 에어포스 헌터 스쿨 침식 사건 이후에 윤성의 재각성 심사를 했던 그 사람들이다.

“근데 다시 받으려고요.”

“에이. 귀찮게…….”

그들이 중얼거리며 윤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악력 테스트부터 해봅시다. 근접전 스타일이시죠?”

“네.”

인사과 직원이 악력 테스트기를 내밀었다.

“일단 이거부터 한 번 꽉 눌러보세요. 몇 점이나 나오는지 봅시…….”

와지직!

힘주어 눌러버리자 테스트기가 구겨졌다.

용수철이 압축되는 정도가 아니라 손가락 모양대로 지판기가 찌그러진 것이다.

인사과 직원이 놀란 낙타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테스트 또 뭐 하면 되나요?”

“자, 잠깐만요…….”

그가 후배 직원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야, 가서 마력 측정기 준비해.”

“그걸로 안 될 겁니다.”

윤성이 말했다.

“지금 제 능력치 넷은 각각 5,000점이에요.”

“스탯창이 보이십니까?”

“네.”

“맙소사……. 등급이 뭐라고 나오나요?”

“S급.”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뭐가요?”

“어떻게 D급 헌터가 S급이 돼요?”

“재각성이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끔씩 나오지 않습니까. D급이 S급 되는 건 좀 이례적이긴 하지만.”

“그게, 그렇긴 한데…….”

“다른 테스트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전부 해드릴 테니.”

***

S급 판정을 받았다.

자격증 발급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지만, 임시 자격증을 준다기에 챙겼다.

심사에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순식간에 인사과 내에 소문이 싹 퍼졌다.

윤성이 임시 자격증을 주머니에 넣고 인사과 밖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는 이미 기자들이 있었다.

“어라?”

그 중엔 아는 얼굴도 있다.

김이나 기자.

다윤이 아르바이트하는 헌터 커피에 찾아와서 포천 사건에 대해서 대서특필해 주겠다고 인터뷰를 졸라댔던 그 여자다.

“강윤성 헌터님!”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S급 각성하셨다면서요!”

“어떻게 아셨나요?”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인사과 직원들하고 친하게 지내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인맥에 대해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다른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다가와 마이크를 내밀었지만 김이나가 질문을 주도하고 있었다.

“제 재각성 기사를 내실 건가요?”

윤성이 물었다.

“물론이죠.”

김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기사 내십시오.”

“혹시 인터뷰는……?”

윤성은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해드리죠.”

김이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잠시 후, 그녀는 윤성과 함께 바깥에서 따로 만났다. 대로 건너편의 스타벅스로 이동했다.

“카페모카 한 잔이요. 그리고, 뭐 드실래요? 사드릴게요.”

김이나가 물었다.

“아메리카노요.”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둘은 음료를 받아서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이나는 맥북을 켜서 워드 파일을 켜놓고 안에 저장되어 있었던 질문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혹시 포천 던전 사건 당시에 대해 기억나는 걸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리더 송민석과 현철, 박윤수, 안은실.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사람이 포천의 D급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동굴 촉수 타입이었죠.”

“동굴 촉수요.”

김이나가 맥북에 타이핑했다.

“윤성 씨, 제가 법원 자료를 찾아본 바로는 보스 방에 가보니 동굴 촉수가 없었고 핏빛야수가 나타났다고 하더라고요.”

“맞습니다.”

“핏빛야수가 헌터들을 모두 죽였고요?”

“네. 다들 속수무책이었죠.”

“근데 그 핏빛야수가 왜 윤성 씨만 살려두었을까요?”

“법원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질문이에요. 답부터 얘기하면, 저야 모르죠, 그 이유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제가 너무 약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렇군요. 최근에 백마 길드의 대표 마스크맨이 핏빛야수를 생포하고 공개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김이나가 말했다.

“그보다 먼저 핏빛야수를 만나신, 어찌 보면 이쪽으로는 선배님이신데요.”

“뭐, 그런 셈이죠.”

두 사람이 살짝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핏빛야수에 대해 궁금해하시는데, 혹시 윤성 씨가 보았던 핏빛야수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 부분에서요?”

“뭐, 핏빛야수의 전투 방식이라든가, 윤성 씨와 동료분들이 어떻게 당했다든가, 그런 것들이요. 힘드시면 대답 안 하셔도 괜찮고요.”

“아뇨. 뭐. 이젠 시간도 많이 지났고.”

윤성이 대답했다.

이왕 인터뷰에 응한 것, 이런 질문을 피할 이유는 없다. 더 많은 헌터들이 콜로라 전사들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좋은 것이니까.

“핏빛야수들은 눈에서 붉은색 빛을 쏘는데, 그걸 마안이라고 불러요. 거기에 당하면 정신을 잃게 되죠. 최면 상태가 되기도 하고.”

“핏빛야수들이 클로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 무기는 어떻던가요?”

“아. 매우 치명적입니다. 단단한 건 물론이고 헌터들의 장비가 싹둑싹둑 잘려나갈 정도로 날카로워요.”

“그렇군요. 제가 법원 자료를 읽어봤는데요.”

김이나가 맥북에서 법원 속기록 자료를 열었다.

“여기 보면, 윤성 씨의 증언 중에 핏빛야수가 당시에 동굴 촉수 보스를 처치한 상태였다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동굴 촉수 시체를 밖에서부터 질질 끌고 들어오더군요.”

“아 그래요?”

“네. 보스방에 들어갔을 땐 아무도 없었고요. 잠시 후에 핏빛야수가 나타났었죠. 그리고 동굴 촉수 시체를 저희들 가운데 집어 던졌어요.”

“그랬군요. 근데 핏빛야수가 동굴 촉수 보스를 처치했는데 게이트가 왜 닫히지 않았을까요?”

“닫히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급수가 낮은 던전이기도 했고, 그 핏빛야수가 던전 촉수 보스를 잡은 지도 얼마 안 되어서 그렇게 보였겠죠.”

“그렇군요. 그때 마정석을 가지고 나오시다가 헌터들에게 붙잡혀서 문제가 되었었는데요.”

김이나가 물었다.

“그 마정석은 던전 촉수 보스가 가지고 있던 마정석이었나요?”

“잘 기억 안 나는데 아마 그랬을 겁니다. 동굴 촉수 사체에서 마정석이 흘러나왔었거든요.”

“그랬군요. 그럼 윤성 씨는 핏빛야수의 마안을 받아서 기절했다가, 일종의 최면 상태 같은 게 되어서 마정석을 들고 나오셨던 건가요?”

“그런 거죠.”

“아아. 그렇군요. 그 핏빛야수가 혹시 이번에 마스크맨한테 체포당한 그 녀석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얼굴이 다르더라고요.”

“아쉽군요. 아! 맞아. 질문할 게 조금 더 있었는데.”

김이나가 속기록을 다시 읽어보았다.

“여기. 이런 내용이 나오네요.”

그녀가 말했다.

“윤성 씨가 법원에서 증언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현장에 대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핏빛야수가 저를 벽에 집어 던졌고, 부딪힌 다음 바닥에 추락했는데, 쓰러진 저에게 눈빛으로 마법을 걸었습니다.’ 이렇게요.”

김이나가 속기록의 문장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벽에 집어 던졌다는데 그때 다치지는 않으셨나 봐요? 동굴 촉수 던전은 꽤 높이가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네, 뭐…….”

“떨어질 때 낙법으로 구르셨나 보죠?”

“하하. 그건 아니고요. 천장이 높다고 해도 그 핏빛야수가 저를 그렇게 높이 집어던진 건 아니니까.”

윤성이 말했다.

“오히려 그 전에 핏빛야수에게 몇 대 얻어맞은 게 부상이 컸죠. 마안에 당한 게 치명적이었고.”

윤성의 모든 답변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만약 콜로라 측의 누군가가, 그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억하느냐는 식으로 의심하면 ‘법원 기록을 미리 읽어보았고 대충 상상으로 둘러댔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김이나가 말했다.

“혹시 그 핏빛야수를 다시 만난다면 싸우실 생각인가요?”

“물론이죠.”

“그 핏빛야수의 생김새가 기억나시나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마스크맨이 공개한 녀석들하곤 달랐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이나가 고개를 꾸뻑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윤성 씨.”

그녀가 맥북을 껐다.

“내일 모든 신문 1면이 윤성 씨의 재각성과 포천 사건 재조명으로 도배될 거예요.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실 겁니다.”

그녀는 윤성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면서 물었다.

“혹시 백마 길드에 입단하실 건가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윤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마스크맨과 같이 일하면서 핏빛야수와 싸우고 싶군요.”

김이나가 묘한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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