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레벨업 속도는 9.8m/s^2 203화
“말도 안 돼요.”
에어포스가 부정했다.
“만약 콜로라 전사가 고제하 협회장님을 살해하고 변신해서 그 자릴 대체했다면, 그 이유는 차원 연합과 관련된 정보를 캐려는 것 아니겠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렇겠죠.”
윤성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저렇게 정신 오락가락한 모습을 연기하지 않겠죠. 수호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하셨는데요.”
“치매나 정신착란을 연기하는 건 실수했을 때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일 거예요.”
차희가 말했다.
“예를 들어 만약 협회장님과 에어포스만이 아는 어떤 비밀 같은 게 있는데, 콜로라 전사가 그걸 기억 못 한다면 의심받을 것 아니에요?”
“그 의심을 피하려고 치매 연기를 한다고요?”
“저도 차희 생각에 동의합니다.”
윤성이 말했다.
“아예 수호자도 모른다는 식으로. 완전히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죠. 그렇게 우리의 기대치를 낮춰두고, 전력 외의 존재로 분류된 다음 정보를 캐겠죠.”
“우리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다음에 말이에요.”
“말도 안 돼요. 너무 억지예요.”
에어포스가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님이……. 깨어나신 것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중요한 순간이 넘어갈 때까지는 협회장님을 여기에 숨겨두자는 거예요.”
“…….”
“좀 비인도적이지만 참읍시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잠깐 침울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에어포스. 당신이 천계의 관리자이기 때문에 천계에 가면 어렵지 않게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윤성이 말했다.
“천계를 지배하던 콜로라 정당은 이미 붕괴했으니까요. 천계로 가시면 헬라엘이라는 천사를 찾아서 도움을 받으세요. 용제가 아마 그 사람 천계로 보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천계의 정권을 잡고 나면 콜로라와 전투할 준비를 해주세요.”
윤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꺼삐딴 궤멸 작전을 짜고 있으니까요.”
“꺼삐딴 궤멸 작전?”
“그런 게 있어요. 나중에 차원 통신으로 관리자들에겐 전해드릴 거예요. 차희는 잠깐 나랑 올라가서 얘기 좀 해. 설명해 줄게.”
윤성이 차희를 데리고 대표 사무실로 이동했다.
차희는 방문을 꼭 닫고 소파에 앉았다.
“네 작전 듣기 전에 얘기해 둘 게 있어.”
그녀가 말했다.
“뭔데?”
“콜로라 전사 클리앙. 그 녀석이 전에 날 협박했었거든? 근데 날 살해하고 꺼삐딴 전사를 투입해서 나로 변신하겠다는 얘길 했었어.”
차희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고제하 협회장님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나. 그 상황을 대비해서 암호 같은 걸 정했으면 좋겠어.”
“좋아. 암호는 민차희 락앤락요정으로 하자. 내가 ‘민차희!’라고 하면 네가 ‘락앤락요정!’ 이렇게.”
“뭐야, 그게?”
차희가 황당한 듯 웃었다.
“근데 차희. 클리앙이 널 죽이겠다는 건 허세일 거야.”
“왜?”
“우리 쪽엔 마력 진단 쪽으로 일곱 차원에서 가장 예민한 마족들이 있어.”
윤성이 설명했다.
“고제하 협회장님은 S급 상위권 헌터셨기 때문에 콜로라 전사가 변신해도 위화감이 없지. 그만 한 실력자를 보내면 되니까.”
“하지만 난 일반인이라서?”
“그렇지. 민간인 수준의 마력을 가진 콜로라 전사가 꺼삐딴에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을 내 바로 옆 같은 중요하고 위험한 자리에 밀어 넣긴 힘들겠지.”
윤성이 말했다.
“그리고 마스크맨과 민차희의 업무상 친밀함을 생각해 보면 금방 탄로 날 가능성이 높고. 꺼삐딴 입장에서 널 건드리는 건 부담이 큰일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너무 걱정하진 마. 그리고 다니엘이 통신기 개발했으니까 여차하면 그거 이용해서 나한테 신호 보내고.”
“알았어. 그럼 이제 네 작전 한 번 들어볼까?”
“일단 난 꺼삐딴으로 다시 잠입할 거야.”
“그래?”
“어. 하지만 문제가 있어.”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꺼내어 작동시켰다.
<충분히 큰 차원문을 열 수 없습니다.>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게 문제다. X등급 전사가 순간이동으로 지구에 오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윤성도 꺼삐딴으로 이동할 수 없다.
“난 지금 가지고 있는 유성 랜딩 버프를 끌 거야.”
윤성이 말했다.
“그래도 되겠어? 안 아까워?”
“아깝지. 아직 시간도 꽤 남았는데.”
“그걸 갖고 있다가 꺼삐딴이 침공하면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꺼삐딴이 침공한다면 유성 랜딩한 마스크맨을 잡을 수 있는 전력과 작전을 갖추고 오겠지. 그땐 늦어.”
“음.”
“그리고 랜더의 손목시계를 사용하면 한 시간 동안 버프를 부활시킬 수 있어.”
윤성이 말했다.
“그럼 꺼삐딴으로 가서 버프를 다시 켠다는 거야?”
“나중엔 그렇게 할 거야.”
윤성이 빙긋 웃었다.
***
“어떡할 거야? 벌써 만 하루가 지났어. 간부들도 동요하고 있다고.”
쯔위민이 책상에 다리를 척 걸쳐놓은 채 말했다.
옌뚜르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팔짱을 낀 채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어이, 옌뚜르. 그냥 전력으로 박살 내자.”
“놈의 전투력이 어떤 수준인지 몰라. 그리고 콜로라 전사인지 인간인지도 모른다.”
“알 거 다 알아내고 나면 늦을 수도 있어. 클리앙과 베아트리체가 잡혀 있다고.”
“그것도 문제다. 그들이 포박되어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백마 길드의 별관 지하는 아니라고 했다.”
“마스크맨의 둥지인 만큼 백마 길드에는 비밀 공간이 많겠지.”
“섣불리 건드렸다간 그 녀석들이 위험할 수도 있어.”
“마스크맨을 먼저 잡아서 족쳐버린 후에 심문하면 돼. 마스크맨만 꺾으면 나머진 쫄아서 인질극을 벌일 생각조차 못 할 거다.”
“그 마스크맨을 잡는 게 쉽지 않으니 문제지.”
옌뚜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클리앙과 베아트리체와 마이어. 이 셋을 동시에 간단히 꺾었다. 쯔위민,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나?”
“못하지. 하지만 넌 마력 배터리가 있잖아.”
쯔위민이 말했다.
천계를 점령한 이후 옌뚜르는 X등급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마력 배터리.
그것은 콜로라의 최첨단 기술력이 집약되어 마족들의 루비를 모방한 물건이다.
지구의 마력은 콜로라와 달리 대기 중에 풍성하다.
마정석을 굳이 섭취하지 않아도 그 마력들을 모아서 담을 수 있다면 상당한 양이 된다.
옌뚜르는 일곱 차원에서 지금까지 마력을 꾸준히 모은 강력한 배터리를 제작했다.
일회용 소모품이다. 원래는 X등급 전사와 마찰이 생기면 쓸 생각이었지만.
“클리앙과 베아트리체를 구출할 수 있다면 배터리를 써도 아깝지 않지.”
옌뚜르가 말했다.
“하지만 배터리를 써도 그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잖아? 두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신중해야지.”
“그럼 다른 방법 있어?”
“마스크맨이 클리앙이나 베아트리체를 함부로 처형하진 못할 거다. 우리에게 시간이 조금은 있어. 조바심낼 필요 없다.”
옌뚜르가 말했다.
“쯔위민, 전에 신입 강윤성이 백마 길드에 입단하겠다고 했었지. 기억나냐?”
“아. 기억나.”
“그 녀석을 좀 불러봐.”
쯔위민은 회의실의 통신기를 꺼내어 전사 관리 센터에 연결했다.
“나다. 쯔위민. 혹시 강윤성 전사 그곳에 있나?”
-아, 좀 전에 들어오셨는데요. 연결해 드릴까요?
“그럴 필욘 없고. 지금 옌뚜르 대표 사무실로 보내줄 수 있나?”
-얘기해 보겠습니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꺼삐딴의 신입 강윤성이 대표 사무실에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강윤성.”
옌뚜르가 반갑게 맞이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가 테이블 한쪽을 가리켰다. 윤성이 자리에 앉자 옌뚜르가 약간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지금 클리앙과 베아트리체가 감금된 것 알고 계시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마스크맨의 차원 연합과 전면전을 치르기 전에 두 가지 정보를 알아내고 싶습니다.”
“두 가지 정보요?”
“하나는 클리앙과 베아트리체가 감금된 장소. 또 하나는 마스크맨의 힘의 한계나 작동 원리.”
옌뚜르가 말했다.
“둘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계에서 헌터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하셨죠?”
“네.”
“급수가 어떻게 됩니까?”
“D급입니다.”
“굉장히 낮군요? 당신의 전투력은 그보다 훨씬 높은데?”
옌뚜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강윤성을 죽이고 이 인물로 폴리모프했을 당시, 그의 급수가 D급이었거든요. 그 후로 재심사를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윤성이 대답했다.
예상 질문이었다. 윤성이 D급이 되었던 것은 에어포스 헌터 스쿨이 침식 던전에 먹힌 이후다.
그 전에 강윤성을 죽이고 폴리모프했다고 얘길 한다면 D급 수준의 전투력에서 평균 능력치가 5,000점에 이르는 지금까지 넉 달 만에 폭풍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 성장력은 콜로라 전사 기준에서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의심받을 우려가 크다.
따라서 윤성은 그가 D급으로 재심사를 받은 이후의 시점을 고른 것이다.
“그렇게 레벨 차이가 나는 인물로 폴리모프하면 좀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일단 강윤성이라는 인간이 저와 이름의 발음이 똑같은 게 마음에 들었고요.”
윤성이 말했다.
“그자가 연락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야인처럼 파묻혀 사는 것도 맘에 들었죠. 활동하기 편하니.”
“지금은 동생들과 같이 사는 것 아닌가?”
쯔위민이 물었다.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약간 불편하긴 한데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편이 인간인 척하기 좋습니다.”
“동생들이 뭔가 눈치챘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에 이놈이 동생들하고 연락을 거의 끊고 살았더라고요.”
“좋아요. 그건 그쯤하고.”
옌뚜르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만약 지금 재각성 심사를 받으면 꽤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겠죠?”
“그렇겠죠. S급까지 재각성하는 셈이니까요.”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윤성은 원래 포천 던전 전멸 사건을 겪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옌뚜르와 쯔위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포천?”
“두 분은 모르시는군요?”
윤성이 말했다.
“콜로라 전사 하나가 옛날 강윤성 헌터의 레이드 팀원들을 몰살한 적 있습니다. 인계 한국의 포천이란 곳에서요.”
“그런 일이 있었군.”
옌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이 추가로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엔 콜로라 전사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강윤성의 말을 믿지 않았죠. 강윤성은 동료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고생한 모양이고요.”
“그럼 이제 콜로라 전사가 존재함이 밝혀졌으니까 다시 더욱 유명해질 수 있겠네요?”
“그렇긴 합니다.”
“좋아. 강윤성. 인계에서 재각성 심사를 받으세요. 그리고 포천 사건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서 화제를 만들어요.”
“그리고요?”
“그대로 백마 길드에 입단하세요. 그 정도 유명세면 차희와 마스크맨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특히 콜로라 전사에 의한 피해자였다면.”
“그렇겠죠.”
“그들과 충분히 친해진 다음 정보를 수집해요.”
“그런데 백마 길드에 심어둔 다른 정보원은 없습니까?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윤성이 물었다.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이걸로 고제하의 지금 상태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겠지?
윤성이 기대에 차서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옌뚜르는 쉽게 정보를 오픈하지 않았다.
“몇몇 있지만 대부분 지위가 낮습니다. 차희나 마스크맨에게 접근하긴 어렵죠.”
“그렇군요.”
“그리고 협회에도 정보원들이 잔뜩 있지만 그들을 갑자기 백마로 옮기기도 어렵고 옮긴다 해도 자신의 지위 때문에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강윤성, 당신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윤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간 후, 쯔위민과 회의를 더 진행하던 옌뚜르는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또 하나의 정보를 들고 들어왔다.
“카이야쓰?”
옌뚜르의 눈이 커졌다.
“마계 가서 글로디안을 조사해 본다더니 벌써 다녀온 거냐?”
“방금 다녀왔습니다. 선배님. 마스크맨의 힘의 원천을 알았어요.”
“뭐지?”
“버프입니다.”
“버프?”
둘의 대화를 듣던 쯔위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놈의 버프가 X등급 수준이야? 말이 되냐?”
“그렇지만 아마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잠깐만. 그렇다면 우리한텐 좋은 일이잖아?”
옌뚜르가 말했다.
꺼삐딴의 전투 모함에는 강력한 마력 파장을 쏘아 보내는 장치가 있다.
원래는 마제스티엘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의 <빛의 강체>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기계다.
카이야쓰가 말했다.
“전투 모함을 쓰시죠. 버프 제거하면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