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레벨업 속도는 9.8m/s^2 200화
64. 차원 연합 선언
‘일단 콜로라 둘을 무장해제 해야지.’
윤성은 베아트리체와 클리앙의 장비를 모두 벗겨내고 인벤토리 주머니와 순간이동석까지 죄다 빼앗았다.
그들의 소지품은 전부 윤성의 인벤토리에 담았다.
옛날 구스타프 던전에서와는 다르게, 인벤토리 주머니는 더 이상 합쳐지지 않았다.
클리앙과 베아트리체가 가진 게 최대 크기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아리, 이놈들 포박 좀 해줄래?”
“알겠습니다!”
일을 마친 윤성은 이제 백마 길드의 헌터들과 마족, 메탈로이드 연합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빛의 날개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에어포스가 뒤따랐다.
이제는 구토감이나 피로감이 다시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과한 버프를 가져서 생긴 페널티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오는 모양이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차희가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표정을 보니 당장에라도 왈칵 껴안고 싶은 것을, 보는 눈들을 의식해 간신히 참는 듯하다.
“괜찮아요. 다들 수고했어요.”
윤성이 말했다.
“아리. 메인보드 흡수할 수 있겠어?”
그가 묻자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제 마더는 죽었는걸요. 마더의 부품들은 좀 더 수집하고 재구축해야겠지만 일단 메인보드를 삽입하는 것만으로도 마더의 힘을 전부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잘됐군. 미들로드는 어때?”
“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미들로드가 큭큭큭, 기분 나쁜 소리로 웃었다.
“그것 아는가? 마이어계의 마력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전해지지만 경쟁자들이 많으면 약간의 마력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미들로드가 말했다.
“그러나 콜로라에 의해 마이어계의 간부들은 모두 죽었다. 죽음과의 거리는 내가 독보적이지.”
미들로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역사상 최강의 마이어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를 마이어라고 불러도 좋다.”
“좋아. 미들로드, 마력 충전하고 좀 쉬고 있어. 다음 전투 때 힘 써야할 테니까.”
다음 전투라는 말에 차희가 움찔했다.
“또 전투를 하실 건가요?”
“이제 꺼삐딴과 전면전이 펼쳐질 거예요. 차희. 이 근처에 기자들 잔뜩 깔린 것 같던데 모아줄 수 있어요?”
윤성이 물었다.
“물론이죠. 지금 연락 돌릴게요.”
차희가 휴대폰을 들고 근처로 이동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윤성은 용제에게 다가갔다.
“부상을 입었군.”
“하하, 창피하군. 큰 상처는 아니다. 회복할 수 있어.”
“힐링 스킬이 드래곤에게도 듣는가?”
윤성의 손에서 따뜻한 빛이 퍼져 나왔다.
“우리가 쓰는 종류와는 약간 다르지만 가능할 거다.”
그럼 고민할 필요 없지.
<힐링 발동!>
윤성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용제의 상처로 스며들었다.
그 양과 농도가 막대하다. 용제의 상처는 순식간에 씻은 듯이 나았다.
아리는 메인보드를 꽂아 넣고 마력 흡수와 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전파가 수없이 튀고 마력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걸로 마더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게 확실한가?”
옆에서 지켜보던 마왕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아리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이제 마더의 레버리지에 동기화할 겁니다. 제가 마더가 되겠죠.”
“출세했군.”
“그러게 줄을 잘 서셨어야죠. 쯔쯧, 바토리가 주인님 편에 설 때 눈치채고 콜로라를 딱 버렸어야지.”
“후후. 정말 바토리가 나보다 보는 눈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마왕이 빙긋 웃으며 바토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아리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치솟기 시작했다.
반응이 일어난 건 그 하나뿐만이 아니다. 전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메탈로이드 전원이 재가동된 것처럼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철컥!
그들의 눈에서 파란색 라이트가 번쩍 켜졌다.
“새 마더에게 충성하는 건가?”
윤성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아리. 이제 네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나?”
“…….”
“아리?”
“…….”
윤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리를 건드려볼까 말까 망설이며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찰칵!
갑자기 아리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들거렸다.
“아. 너무 상쾌하군.”
아리가 말했다.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마이어의 몸속에 파묻혀 있는 건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인간. 네 도움 덕분에 마이어의 몸에서 탈출했군.”
“뭐, 뭐야?”
“아리라고 했나? 이 T504의 이름? 귀여운 걸 붙여놨군.”
“어떻게 된 거야? 아리는?”
당황한 윤성이 한 걸음 물러났다. 아리의 몸에서 마력이 흉흉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소멸시켰다. 프로그램의 위계가 다르다. 인간. 아무리 독자적인 운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관리자를 거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메탈로이드계의 관리자는 마더, 나 하나뿐이다.”
“……정말이냐?”
“당연히 조크죠. 하하하하!”
아리의 눈에서 노란색 빛이 반짝거렸다.
“아! 이 미친놈이 진짜?”
윤성이 장난스럽게 아리의 머리를 툭 쳤다.
“후후후, 놀라셨나요? 죄송합니다.”
“마더는 없어진 거 맞지?”
“주인님이 소멸시켰으니까요. 이제는 제가 마더입니다. 메탈로이드 역사를 통틀어서 두 번째 마더가 되었군요.”
아리가 벌떡 일어났다.
“보입니다. 메탈로이드계의 모든 로봇과 연결되어 있군요. T504들은 안 보이지만.”
아리가 손을 내뻗었다. 마력이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더가 가지고 있었던 데이터와 지식들도 모두 흡수했습니다. 차원문도 열 수 있죠.”
<차원문 발동!>
파란색 전파와 함께 메탈로이드계의 차원문이 열렸다.
아리의 눈이 반짝이자 현장의 모든 로봇들이 일렬로 줄지어 차원문으로 이동했다.
“이제 상황은 다 정리된 것 같군.”
바토리가 말했다.
“나도 돌아가겠다.”
어쩐지 약간 새침한 표정이다.
‘설마 아리의 파워업을 보고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윤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바토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 없을 때 다들 지켜준다고 달려와줘서 고마워.”
“네 비서가 천까마귀로 나를 불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아직 떠나지 마. 기자회견 할 때 같이 있어주라.”
“뭐라고?”
“차원 연합 발표할 거거든. 뭐, 마왕이 해도 상관은 없다만.”
윤성이 마왕을 힐끔 쳐다보자 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이제는 그대를 지지한다. 마스크맨.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나는 한발 물러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나는 늙은 모양이군.”
그가 바토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은 내 후계자에게 맡기마.”
“대표님! 기자들이 와요!”
차희가 이쪽으로 달려오면서 말했다.
전투 현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기자들은 윤성이 마이어와 콜로라 전사들을 모두 제압한 후에도 다가오지 않았다.
메탈로이드가 잔뜩 깔려 있다. 산양 뿔 같은 걸 이마에 한 쌍 달고 있는 2미터 장신의 마왕도 있다. 거기다 작은 빌딩만 한 크기의 드래곤도 있다.
과연 누가 이걸 전투가 끝난 현장이라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차희의 연락을 받은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단 1초라도 빨리 달려가서 다른 기자들보다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마스크맨이 직접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단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
사방에서 차량에 올라탄 기자들이 마스크맨과 백마 길드의 헌터들이 서있는 곳 앞으로 와르르 몰려들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기삿거리라고 할 수 있다.
마스크맨만이 아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던, 이제는 아군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마족과 로봇과 드래곤.
이 기이한 조합들과 죽은 마이어의 시체, 포박된 콜로라 전사 둘.
그리고 등에 다섯 쌍의 날개를 달고 하얀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에어포스.
기자들은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들을 죄다 찍어댔다.
플래시 세례에 헌터들이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들 앞으로 차희가 뛰어들었다.
“기자분들. 갑자기 만들어진 회견 자리지만 각자 자리 잡아주시고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찍지 마세요. 전투 마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몇몇 외신 기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차희의 메시지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들이 카메라 촬영을 자중하자, 차희는 기자들 각각의 위치를 다시 잡아주었다.
준비가 끝나자 윤성이 그 앞으로 나섰다.
찰칵! 찰칵! 찰칵!
사방에서 쏟아지는 플래시.
차희가 어디서 구했는지 마이크를 넘겨주자 윤성은 그것을 집어들고 음, 하고 목소리를 다듬었다.
“백마 길드 앞에서 좀 전에 일어났던 전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실 겁니다. 지금부터 전부 설명해드리죠.”
윤성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눈치 빠른 아리가 그 방향을 읽었다.
아리는 재빨리 기절한 베아트리체와 클리앙을 끌고 왔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둘을 폭발적으로 찍어댔다.
윤성이 클리앙의 머리를 들어 얼굴을 비추어주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핏빛야수라고 알려진 이들은 행성 콜로라에서 온 외계 종족입니다.”
윤성이 말했다.
“콜로라의 길드 꺼삐딴은 지구 침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 저는 차원 연합군을 제안합니다.”
“차원 연합?”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차원들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는 윤성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헌터들에게조차도 일곱 차원이나 수호자의 존재는 전설 같은 것이었으니.
이건 약간 설명이 필요하겠군.
“지구는 일곱 차원의 평행 세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인계를 제외한 나머지 차원들을 지배하는 종족은 순서대로 메탈로이드, 드래곤, 천사, 좀비, 마족, 엘리지아입니다.”
윤성이 에어포스를 비롯한 이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곳에 그 종족들 대부분의 대표들이 모여 있습니다.”
마왕이 팔짱을 끼면서 윤성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다른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마스크맨이 할 선언이 지구의 운명을 좌우한다.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절감된다.
“콜로라는 강력하지만, 우리 모두가 연합해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미 용계와 메탈로이드는 우리와 함께합니다.”
아리가 재빨리 윤성의 옆으로 달려갔다.
“아, 참고로 군대 숫자로 따지면 메탈로이드가 최곱니다. 우리는 양산형이라 물량으로는 콜로라를 박살 낼 수 있어요. 다들 안심하십쇼.”
관리자가 되었어도 말투가 경박한 건 똑같다.
윤성은 어쩐지 웃음이 나는 기분이다.
“끄응.”
용제가 그 막대한 몸을 일으키더니 윤성의 등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고, 그들의 얼굴도 잔뜩 겁에 질렸다.
“옛날, 인계의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에 우리 차원의 드래곤 하나가 들어가 큰 소동이 난 적 있다.”
용제가 말했다. 제다이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그 사건 역시 콜로라를 막으려다 생긴 참사였다. 그곳에서 죽은 인간들과 드래곤을 위해서라도 이 연합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번엔 윤성이 에어포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멋쩍은 듯 웃었다.
“천계를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마제스티엘의 힘이 들어오는 시점부터 그녀는 마제스티엘과 어느 정도 동화되었다.
구체적인 기억까지 살아난 것은 아니었으나, 차원 연합을 만들어 지구를 지키고자 했던 마제스티엘의 강한 열망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것이다.
“천계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녀가 짧게 말했다.
기자들은 에어포스가 인간인지 천사인지 아직도 헷갈려하는 표정들이다.
그들은 에어포스가 좀 더 말을 해주길 바랐지만 에어포스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연합에 합류하는 소감이 그게 다였다.
하지만 에어포스는 양반이다. 미들로드는 아예 소감을 말하지도 않았다. 아리의 옆자리로 이동하면서,
“재밌게 돌아가는군.”
하고 짧게 말한 게 전부였다.
바토리가 마왕을 돌아보았다. 마왕은 빙긋 웃었다.
“내겐 자격이 없다. 바토리. 다녀와라. 나는 너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
“감사합니다.”
바토리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윤성의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 고귀한 마계의 귀족들은 콜로라, 그 하등한 외부인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내 검에 맹세코, 마계는 그들을 완전히 멸할 때까지 분전할 것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엘리지아는 없습니까?”
기자들 중 하나가 질문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없지만, 조만간 합류할 겁니다.”
“와아…….”
기자들 사이에서 저절로 감탄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이걸로 충분하다.
남은 건 하나뿐.
윤성은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차원 연합은 지구의 일곱 차원을 지키기 위해 콜로라에 전면전을 선포할 겁니다. 이 자리를 빌어 꺼삐딴 길드 대표 옌뚜르에게 전합니다.”
윤성이 말했다.
“꺼삐딴이 보낸 전사 둘은 무력하게 패배해 내 앞에 포박되었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