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레벨업 속도는 9.8m/s^2 199화
윤성의 마력이 펼쳐지자 헌터들이 풀썩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로서는 윤성이 뿜어내는 마력의 압력을 견디며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던 것이다.
그 상황을 확인한 윤성이 마왕에게 말했다.
“마왕. 옛날에 그룬헤잘드 영지에서 글로디안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내가 싸운 적이 있어.”
“알고 있다.”
“그 녀석이 검은색 마법 장막 같은 걸 쳐서 방어용으로 썼었는데, 혹시 비슷한 것 할 줄 알아?”
“……네 마력압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것이지?”
마왕이 손을 뻗어 마력을 방출했다.
<마계 군주의 장막 발동!>
마치 썬탠한 유리처럼 안쪽에서만 밖이 보이는 검은색 장막이 헌터들과 마족들, 메탈로이드를 덮어씌웠다.
차희 옆에서 숨을 고르던 용제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나도 가세하마, 마왕.”
용안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용제의 네스트 발동!>
이번엔 금색의 불꽃이 장막 안쪽에서 피어올랐다.
“불?”
헌터들이 깜짝 놀라자 용제가 한국어로 설명했다.
“해로운 것을 차단하는 신비의 불꽃이다. 뜨겁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관리자 둘의 최고의 방어 마법들이다.
‘저 정도면 괜찮겠지.’
헌터들이 모두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윤성이 단검을 빼 들었다.
<단검 투척 타깃.>
긴장한 표정의 베아트리체의 이마에 떠 있는 메시지창을 보며 윤성이 단검을 가볍게 튕겼다.
싸악!
단검을 주시하면서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는 단검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그녀의 뺨에 길고 날카로운 상처가 났다.
뺨을 한 손으로 움켜쥔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윤성을 쳐다보았다.
단검이 손에서 튕겨 나오는 순간 쾅! 하는 작은 폭발음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단검은 하얀 안개 같은 것을 몰고 날아왔다.
비록 정도는 약했지만 그것은 소닉붐과 수증기 응축 현상이다.
마스크맨이 원래 준비 동작 없이도 단검을 투척할 수 있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이건 음속이잖아?’
달에서부터 이루어진 유성 낙하는 그저 막강한 버프만 준 게 아니다.
<임무 완료 : 음속도 이상의 최종 속력으로 랜딩.>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도대체 무엇이 나올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일단 이건 천천히 하기로 하자.
‘종단 속도의 단검의 기본 속도가 유성 낙하 속도로 보정되었다.’
윤성이 손을 뻗자 단검이 공중에서 휘리릭 회전하며 다시 되돌아왔다.
“에어포스, 정신 좀 들어요?”
윤성이 물었다.
에어포스는 아직도 허공에 뜬 채로 엄청난 마력을 몸에 끊임없이 누적시키고 있었다.
빛이 번쩍거리니 꼭 90년대 마법소녀 만화 주인공의 변신 같군.
전신에 하얀빛을 실크 드레스처럼 휘감은 채, 천사 날개 다섯 쌍이 우아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젠 의식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녀는 공중에서 천천히 몸을 가누며 고개를 숙여 윤성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을 마제스티엘로 각성시켰어요.”
에어포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이미 반 시체나 다름없는 마이어와 클리앙, 그리고 처음 보는 핏빛야수가 둘 있었다.
“적이 늘었군요.”
“새로 얻은 힘이 적응도 안 되실 텐데 쉬고 계세요. 제가 다 할 테니.”
에어포스는 허공을 박차고 빙글 회전하더니 윤성의 옆에 착지했다.
그녀가 윤성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당신도 그 힘은 새로 얻은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게 익숙해서 이제 적응 금방 해요.”
윤성은 에어포스를 뒤로하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마이어!”
베아트리체가 황급히 소리쳤다.
“우리 앞을 지켜라! 클리앙, 마력 주입해!”
“알겠습니다!”
<마력 주입 발동!>
클리앙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이 마이어의 머릿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크으으…….”
그러나 윤성이 힐끔 쳐다보자 마이어는 꼼짝하지 못했다.
그는 윤성의 존재감에 완전히 눌려 있었다.
클리앙의 마력 버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이다.
“마, 마스크맨……. 뭐든지 네 뜻대로 할 테니 살려만…….”
“늦었어.”
<빛의 탄환 발동!>
손가락에서 발사된 섬광의 직경이 달라졌다.
그걸 쏜 윤성조차 놀랄 정도다. 이젠 마제스티엘로 각성하여 이 스킬의 오리지널을 보유하게 된 에어포스보다도 더 크고 강했다.
콰아앙!
마이어의 어깨가 통째로 소멸되면서 팔 한쪽이 떨어졌다.
“크아아악!”
마이어가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의 무릎이 채 땅에 닿기도 전, 무언가가 가슴을 관통했다.
이번에도 종단속도의 단검.
베아트리체는 간신히 피했었지만 마이어에겐 그만한 반사 신경도 주의력도 없었다.
뻥 뚫린 가슴에서 피가 왈칵 치솟았다. 그가 피를 토하며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윤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장을 파괴했는데…….”
마이어가 아직도 살아있다.
공격 위치를 틀린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감각 능력으로 마이어의 심장 소리를 정확히 듣고 있었다.
잠깐 의아해하던 윤성이 어찌 된 것인지를 깨닫고 빙긋 웃었다.
<용조 발동!>
순식간에 마이어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윤성의 손가락이 마이어의 심장 바로 아래 명치를 파고들었다.
쫘아아악!
안에서 뽑아버린 것은 마이어의 몸속에 들어있던 마더의 메인보드.
털썩.
마이어의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많은 부상과 피로가 누적되어있었다고 해도 관리자 둘의 융합체치고는 초라한 죽음이었다.
윤성은 그대로 콜로라 전사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클리앙. 쭈코. 지금부터 온 힘을 다해서 여기서 벗어나.”
“뭐라고요?”
클리앙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저놈을 잡고 있을 테니 여기서 달아나라고. 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면 순간이동석을 쓸 수 있을 거야.”
“누구 맘대로.”
수 미터는 떨어져 있었던 윤성의 목소리가 갑자기 베아트리체의 귀 바로 옆에서 울렸다.
“크윽!”
베아트리체가 경악하며 클로를 휘둘렀지만 그녀의 등 뒤까지 다가왔던 윤성은 마치 실체 없는 유령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너희는 도망은 못 쳐. 하지만 죽이지도 않겠다. 꺼삐딴을 협박할 인질이 되어야 하니까.”
“감히!”
<테어링 발동!>
베아트리체가 사납게 클로를 날렸다. 용조와 비슷한 스킬이다. 날카로운 클로에 마력을 실어 맹렬히 잡아 찢어버리는 공격.
근접전 스킬로는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것 중 하나지만 윤성에겐 통하지 않았다.
윤성은 몸을 살짝 틀어서 최소한의 동작으로 그 공격을 피하고는 베아트리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우두둑!
살짝 뒤틀자 손목이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졌다.
과연 꺼삐딴의 간부답게 베아트리체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죽일 듯이 윤성을 노려볼 뿐.
“뭐 하고 있냐. 클리앙! 쭈코!”
베아트리체가 소리쳤다.
쭈코가 클리앙의 팔을 잡아당겼다.
“빨리 나갑시다! 옌뚜르 대표님을 불러와야죠!”
그 말에 반응한 클리앙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 등 뒤에서 윤성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도망가는 거야? 콜로라 놈들은 정말 어쩔 수 없군. 척루인도 도망치려고 하더라고. 혹시 옌뚜르가 그렇게 가르치나?”
클리앙이 우뚝 멈추었다. 윤성이 계속 말했다.
“하긴. 옌뚜르 그놈도 X등급 콜로라 전사한테 접어주는 패배자 아닌가? 지구에 대해 인도적인 지배 어쩌고 했던 것도 결국 그런 맥락이지. 실력이 없으니 착한 척도 하고 도망도 치고. 아냐?”
콰앙!
베아트리체가 주먹을 날렸지만 윤성이 가뿐히 붙잡아 꺾었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아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윤성이 계속 말했다.
“척루인 잡아놓고 있으니 어떤 전사 한 놈이 은신처를 찾겠다고 용안을 들고 마이어 계를 헤매더라고. 그놈한테 그걸 빼앗아서 용제를 끌어들였지.”
윤성이 베아트리체의 목을 쥐고 바닥에 쿵 처박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옌뚜르가 보낸 조공이 아니었을까 싶어. 너희 셋을 잡아놓으면 이번엔 옌뚜르가 직접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꺼삐딴이라도 넘겨주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네.”
“말 조심해라…….”
클리앙이 주먹을 불끈 쥐며 윤성을 돌아보았다.
“클리앙!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빠지라고!”
바닥에 눌린 채 베아트리체가 소리를 질렀다.
“아. 맞아.”
윤성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베아트리체를 한쪽 발로 밟아 누르면서 클리앙에게 고개를 돌렸다.
“척루인을 심문해 보니 클리앙이란 놈이 그렇게 천재라던데. 성장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그게 너였나 보지?”
“…….”
“사실 인질이 셋이나 필요하진 않아. 그렇지? 난 위험 요소는 미리 제거하자는 주의라.”
윤성의 손가락이 클리앙을 향했다.
<빛의 탄환 발동!>
“클리앙!”
베아트리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섬광은 클리앙을 죽이지 못했다.
그 앞에 뛰어든 쭈코가 윤성의 공격을 대신 맞았기 때문이다.
쭈코는 클리앙이나 베아트리체에 비하면 훨씬 급이 떨어지는 전사였다.
X등급에 필적하는 버프를 가진 윤성이 발사한 빛의 탄환.
쭈코로선 고통을 느낄 새조차 없었다.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쭈코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베아트리체가 이를 으득 깨물었다.
“크, 클리앙! 도망쳐라! 어서! 넌 꺼삐딴의 미래…….”
“좀 닥치고 있어.”
쩍!
윤성이 주먹으로 베아트리체의 턱을 힘껏 후려쳤다. 그녀는 기절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클리앙은 주먹을 부르르 떨더니 몸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쫓으려던 윤성이 비틀거렸다.
“크헉.”
갑자기 구토감이 울컥 올라왔다.
‘젠장.’
사실 아까부터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클리앙이 도망칠까 봐 도발해서 잡아두었던 것이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발작 비슷한 것. 솔직히 지금은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다.
빨간색 메시지창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너무 강한 버프.>
<현재 레벨이 버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강해진 건 좋은데 사실 머리가 핑핑 돈다. 에어포스한테 허세 부렸지만 솔직히 이 힘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군.
‘하지만 절대 보내줄 순 없다.’
클리앙은 꺼삐딴에서 예쁨받고 있으니 저놈을 잡아놓으면 옌뚜르와 쯔위민을 엮어서 보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윤성이 손가락을 뻗었다.
<천붕 발동!>
유성 랜딩으로 얻은 버프 스킬이다.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클리앙 근처엔 사람이 없으니 괜찮겠지.
‘천붕.’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
어떤 스킬인가 했는데 수호자의 작명 센스는 정직했다.
거대한 마력의 장막 같은 것이 클리앙이 달아나려는 방향으로 하늘에 쫙 펼쳐졌다.
그리고 위압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개미 새끼를 짓누르려는 두꺼운 사전 같은 것.
그 마력압을 느낀 클리앙은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달아날 수도 없고 견뎌낼 수도 없다. 압도적인 힘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앞은 완전히 막혔다.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저 장막에 짓눌릴 것이다. 마스크맨이 있는 뒤쪽만이 열린 길이다.
천붕의 끄트머리에 닿은 빌딩 하나가 마치 제철소의 철강 프레스로 누른 깡통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윤성이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건 실수했군. 저 건물 재건축 비용이…….’
차희한테 혼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윤성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큰 스킬을 썼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야!”
윤성이 소리쳤다.
“거기 있다가 눌려 죽을래? 이리 와!”
클리앙은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윤성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에어포스. 저놈 좀 체포해 줄래요?”
“역시 적응하기 힘들었죠?”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그녀가 빛과 함께 번쩍 튀더니 순식간에 클리앙을 붙잡아 돌아왔다.
윤성은 클리앙의 눈을 보며 마법을 썼다.
<마안 발동!>
털썩.
쓰러지는 클리앙을 보면서 에어포스가 말했다.
“수고했어요.”
“에어포스도 고생하셨어요.”
마왕과 용제가 썼던 방어 마법이 천천히 해제되고 있었다.
안쪽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헌터들과 마족들, 메탈로이드 모두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크크크큭.”
그 침묵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웃었다.
미들로드.
그의 몸에서 마이어의 힘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리!”
윤성이 소리쳤다.
“넵! 주인님!”
아리가 신난 듯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선물이다.”
윤성이 그에게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바로 마더의 메인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