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레벨업 속도는 9.8m/s^2 196화
천계, 마계, 용계, 마이어의 연합이 콜로라와 한참 전쟁을 진행하던 어느 날.
강력한 천사 둘이 황폐한 달의 분화구 사이를 걷고 있었다.
바로 천계의 지배자 마제스티엘과 플라멘 카엘룩스였다.
“이쯤에 계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카엘룩스가 물었다. 마제스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겐 그렇게 통신을 보내셨다. 이 근처일 텐데.”
“근데 왜 수호자께서 달에 숨어 계신 거죠?”
“달의 마력은 지구와는 또 파장이 다르거든. 콜로라 전사들이 달에 들어오려면 파장을 다시 맞춰야 해.”
“수호자께선 쉽게 들어가실 수 있고요?”
“콜로라 쪽 수호자가 강력한 전사를 잘 만들어낸다면, 우리 쪽 수호자는 행성 관리를 잘 하시는 편이었지. 일곱 차원을 넘나들면서 시민들을 키워낸 경력을 얕보면 안 돼.”
“일곱 차원을 넘나들 정도로 파장 조절력이 뛰어나다는 건가요?”
“그래서 달에도 쉽게 들어가실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바로 옆 행성이니까. 차원은 좀 다르지만.”
“앗. 저기 계십니다.”
카엘룩스가 멀리 떨어진 거대한 분화구 옆을 가리켰다. 작은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는 천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봐서는 리베르티 계급의 천민처럼 보였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결함이 전해졌다.
수호자의 가슴에 끔찍한 자상이 있었다.
“수호자!”
마제스티엘이 급히 그를 향해 달려갔다.
<대천사의 힐링 발동!>
천사들에게만 듣는 스킬이지만 수호자에게는 먹힐 것이다. 그는 천사뿐 아니라 모든 종족의 모체니까.
그러나 힐링을 아무리 퍼부어도 수호자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마제스티엘의 이마에 땀이 흥건히 고이자 수호자가 그의 손목을 가만히 잡아당겼다.
“괜찮다.”
“하지만 이 부상은…….”
“내가 혼자 회복할 수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네가 여기다 힐링을 퍼부어댔다간 네 목숨이 다해도 아물지 않을 거야.”
마제스티엘이 침울한 표정이 되자 수호자는 빙긋 웃어주었다.
“마제스티엘. 알고 있겠지만 X등급 전사가 왔다.”
수호자가 말했다.
“그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지구에 없어. 하지만 그 녀석이 날 습격했을 때, 내가 표식을 하나 남겨뒀어.”
“표식이요?”
“최근에 개발한 프로그램이야. 다만 작동하는 데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다. 그걸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쓰면 어떻게 되죠?”
“X등급 전사를 추방할 수 있다. 추방 위치는 랜덤이지만 적어도 지구에서 몇 광년 이상 거리로 날아갈 거야.”
“X등급은 차원문을 통해서 이동할 수 없는 크기니까 시간을 좀 벌겠군요.”
“그사이에 일곱 차원 연합을 만들고 다음 프로그램을 짜겠어.”
“알겠습니다. 다음 프로그램은 어떤 건가요?”
수호자가 잠깐 머뭇거리다 답했다.
“Joker.”
***
“그때부터 계획된 거였군.”
“그래. 난 콜로라 쪽 수호자처럼 전투를 잘하진 못하지만 프로그램은 그쪽보다 훨씬 잘 짜. Joker는 내 모든 마력을 다 퍼부은 프로그램이었지.”
수호자가 꽤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내가 짠 프로그램은 사용자에 따라서 나보다 훨씬 강한 힘을 휘두르기도 해. 그래서 아무한테나 그 프로그램을 적용시킬 순 없었다.”
“마제스티엘한테 주려고 했겠군.”
“용제는 용안을 빼앗긴 후 겁을 먹었어. 마이어는 처음부터 콜로라 쪽에 붙을까 간을 보고 있었지. 마왕은 콜로라를 막는 것보다 자기 차원의 마족들을 지키는 걸 우선시했어.”
수호자가 말했다.
“엘리지아 퀸은 난폭해서 안 돼. 그녀가 큰 힘을 가졌다간 다른 차원 전부를 침탈할 테니. 그리고 기계 제국의 지배자인 마더는 자신의 메인보드로 모든 걸 통제할 뿐, 이견을 용납지 않는 독재자라서 안 되지.”
“인간은?”
“인간은 관리자가 없으니. 아무튼 나는 그 프로그램을 마제스티엘에게 주고 싶었다. 가장 정의롭고 가장 희생적이면서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
“하지만 마제스티엘이 죽어서 프로그램 작동을 못 한 건가?”
“맞아. 그리고 마제스티엘이 부활했을 때, 나는 천계의 믿을 만한 천사들을 부려서 그를 인계로 빼돌렸다. 거기서 자랐다간 백 퍼센트 카일란한테 죽을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인간 에어포스가 되었다. 이런 건가? 그럼 왜 에어포스한테 Joker를 주지 않았지?”
“휴우…….”
수호자가 고통스럽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구에 다른 차원의 던전들이 왜 그렇게 많이 범람했었는지 혹시 아냐?”
“왜지?”
“내가 터뜨린 거야.”
“뭐라고?”
윤성의 눈빛이 약간 공격적으로 변했다.
“천계를 지배하게 된 꺼삐딴의 다음 목표는 인계였다. 천계 다음으로 마정석이 풍부한 곳이면서 전투력은 거의 제로였거든.”
“…….”
“인계를 침공하는 콜로라를 잡기 위해 던전 범람을 일으킨 거야. 다른 차원의 강자들을 소환해서 죽이려고.”
“대체 그게 무슨…….”
“예를 들면, 네가 동해 바닷속에서 찾아냈던 그룬헤잘드의 게이트.”
그룬헤잘드의 최측근 둘을 처치하고 콜로라 전사를 하나 제거했던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그 게이트가 발생할 날짜는 따로 정해져 있었지만 내가 이틀 당긴 거야. 그룬헤잘드는 몰라. 그냥 게이트가 빨리 생성되었나 보다. 했겠지.”
“이틀 당긴 이유는 콜로라 전사를 잡으려고?”
“콜로라 전사 하나가 인계로 이동하는 마력 파장을 타고 있었어. 난 그놈을 그룬헤잘드의 게이트로 흘려보내고 게이트를 범람시켰지.”
“…….”
“그 밖에도 내가 터뜨린 게이트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도?”
“그곳엔 카일란 길드의 펠리코라는 전사가 있었다. 난 그놈을 죽여 버리기 위해 용계의 SS급 드래곤 하나를 보냈지.”
윤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아? 제다이가 그것 때문에…….”
말을 하던 윤성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잠깐만.”
윤성의 손이 떨렸다.
“설마……. 일산의 엘리지아도…….”
“내가 한 거다.”
콰악!
저도 모르게 수호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윤성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내 부모님이 거기서 돌아가셨어.”
“나도 안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 하지만 그게 최선이었어. 일산 지하철 역사 내에서 꺼삐딴의 중요한 모임이 있었거든.”
수호자가 말했다.
“고제하나 테쿰세 같은 협회장들에게 알려주면 됐잖아!”
“알려줘도 콜로라는 그들이 어찌할 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그리고 범람이 내가 한 짓이었다는 걸 알면 인계가 아예 콜로라에 붙을 위험도 있었지.
“이 개자식! 인간은 얼마나 죽든 상관없다는 거야?”
“솔직히 말하면 상관없었다. 난 인간을 일곱 차원에서 가장 사랑했지만, 솔직히 그들은 전력에 보탬이 안 되었으니까.”
“인간을 사랑했다고? 전부 죽게 내버려 뒀으면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인간은 언제든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일곱 차원의 모든 존재 중에서 인간을 가장 아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이…….”
윤성이 이를 부득 갈았다.
“날 쳐서 화가 풀린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지금 칠 게 아니라면 좀 더 얘기하게 해줄래?”
수호자가 물었다. 윤성은 그의 멱살을 놓았다.
“계속해 봐.”
“넌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산 게이트가 꺼삐딴 모임을 급습한 덕에 일곱 차원은 많은 시간을 벌었어.”
수호자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일도 일어나고 말았지. 에어포스가 헌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거야.”
“맞아. 그때 헌터 스쿨을 조기 졸업하고 신민수의 팔 한쪽을 날리면서 데뷔했지. 근데 왜 그게 걱정할 상황이란 거지?”
“비행을 써서 날아다니고 빛의 강체를 쓰면 꺼삐딴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챌 테니까.”
“에어포스가 살해당할까 봐?”
“그래. 다행히 꺼삐딴이 인도적 지배 방식을 내세우고 고제하가 인계와 에어포스는 꺼삐딴에 항복할 거라는 식으로 외교를 잘해 줘서 살았지.”
수호자는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콜로라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에어포스를 노리고 있었지. 그녀는 마제스티엘에 비하면 솜털이었고 스톤 회수도 잘 안 됐고. 그래서 Joker를 급히 작동시킨 거야.”
“근데 그럼 왜 에어포스에게 Joker가 가지 않고 내게 온 거지?”
“이걸 봐.”
수호자가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에 프로그램을 띄웠다.
<프로그램 Joker>
<조건 1 : 인계에서 헌터로 활동 중.>
<조건 2 : 헌터업에 종사한 기간 대비 클리어 던전 수가 가장 많은 자>
<조건 3 : 랜딩을 함. 랜딩 자세는 별도 첨부>
<조건 4 : 위기에 처한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정의로움.>
<조건 5 :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희생적임.>
“이게 다 뭐야?”
“내 프로그램은 ‘에어포스’ 같은 인물 하나를 직접 특정할 수가 없어. 내가 모든 차원을 총괄하는 수호자이기 때문이야.”
수호자가 설명했다.
“수호자에겐 공정함의 원리라는 게 있거든. 누구에게든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수호자의 편애에 의해서 특정된 누군가에게 큰 프로그램을 발동시킬 수가 없다고.”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걸어서 돌렸다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조건을 걸었으면 에어포스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근데 어떤 미친놈이 데뷔 이후 4년 동안 던전을 220개나 클리어했더라고. 그 일 중독인 에어포스보다 더했어.”
수호자가 역정을 냈다.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상급도 아니고 E급 나부랭이 중에 그런 정신 나간 놈이 있을 줄은.”
“…….”
“심지어 그놈이 랜딩을 했어! 어떤 조그만 애 하나 구한다고 맨몸으로 자기보다 훨씬 강한 카멜리 두 마리 한가운데 뛰어들었다고.”
수호자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처음에 내 프로그램이 해킹된 줄 알았다. 누군가 이걸 해킹하고 조건을 확인한 다음 거기 맞춰서 Joker를 훔쳤다고 생각했지. 근데 내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좀 전에 해킹됐잖아. 다니엘한테…….”
“그래……. 생각해 보니 그렇군. 정말이지 요즘은 이변의 연속이야. 아무튼 프로그램은 널 Joker로 지목했다.”
“그럼 지금에라도 다시 에어포스한테 돌려주면 되잖아. 난 이런 거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이미 작동한 프로그램이라 그게 안 돼. 그리고 강윤성. 이건 중요한 부분인데.”
수호자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Joker가 되었다는 건, E급 헌터 강윤성이 마제스티엘보다 프로그램의 조건에 더 부합했다는 뜻이기도 해.”
“…….”
“난 처음엔 에어포스가 Joker로 각성하지 않아서 전전긍긍했었다. 누가 Joker를 가져간 건지 몰랐거든. 혼란스러웠지. 그래서 널 찾으려고 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더 짰어.”
“다른 프로그램?”
수호자가 화면에 프로그램을 하나 더 띄웠다.
<조건 1 : Joker 근처엔 던전 범람 확률이 100배 증가한다.>
<조건 2 : Joker 근처엔 범죄 발생 확률이 100배 증가한다.>
<조건 3 : Joker 근처에서 범람한 게이트는 비정상적이다.>
“이 미친놈이!”
윤성이 화를 내자 수호자가 미안한 듯 웃음 지었다.
“네가 Joker 각성 후 처음엔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졌을 수도 있어. 백화점이라든지, 샌텀 타워라든지.”
“아오!”
“그것도 꽤 기이한 모습들이었겠지. C급 땅굴벌레가 E급 던전에서 나온다든가. A급 게이트 더블 범람이라든가.”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미안. 아무튼 네가 Joker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난 작전을 완전히 새로 썼다. 일단 넌 차원 밖의 존재가 됐어. Joker니까.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활동해 준 덕에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
“그래서 날 이중 스파이로 쓰려고 했다?”
“그래. 고제하 협회장을 불러서 그런 얘길 했지. 나중에 널 써먹을 거니까 외부에 정체 공개가 안 되도록 조심해 달라고.”
“협회장님을 많이 믿었나 보네. 그분도 콜로라에게 포섭될지도 모르는 거 아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가 아니었으면 너도 스파이 일을 못 했고 에어포스는 이미 죽었을걸.”
수호자가 말했다.
어쩐지 좀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고제하가 협회장의 자리에서 윤성의 정체를 숨기고 에어포스를 지키면서 콜로라를 막기 위해 도대체 어떤 고생을 했을까.
“한 번은 웬 헌터 두 놈을 나한테 던져주면서 좀 맡아달라고도 하더군. 네 정체를 아는 놈들이라며.”
수호자가 말했다.
“앗. 설마 황동수와 차태식인가?”
“이름은 기억 안 나. 아무튼 그 녀석들은 내가 잡아두려고 했는데 면담하러 왔던 퀸이 나 몰래 잡아서 끌고 가버렸다.”
“뭐, 그 녀석들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아무튼 이제 궁금한 건 거의 다 알았다.”
“넌 차원문과 차원 통신 스킬을 갖고 싶어 했지.”
수호자가 윤성의 이마를 짚었다.
“지금 주마.”
머릿속으로 찌릿한 감각과 함께 차가운 한기가 스며들었다.
“끝이야?”
생각보다 싱겁다.
“그래. 이제 원하면 스킬을 쓸 수 있다.”
“이 통신을 이용하면 다른 차원의 관리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거지?”
“나하고도 연결할 수 있다. 요령만 있으면.”
“좋았어. 난 그럼 일단 인계로 돌아가야겠어. 마왕과 용제가 맡아주고 있다 하더라도 직접 봐야 안심이 되니까.”
“잠깐만. 이왕 백마 길드로 돌아갈 거라면 다른 방법을 써주지.”
“다른 거?”
“이 달은 현재 인계에 존재한다. 인계의 달이지. 지구까지는 384,400킬로미터다.”
“설마…….”
“내가 얘기했잖아?”
수호자가 말했다.
“내가 짠 프로그램은 사용자에 따라서 나보다 훨씬 강한 힘을 휘두르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