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레벨업 속도는 9.8m/s^2 195화
“콜로라…….”
테쿰세가 바짝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다른 최상급 헌터들과 아리, 미들로드, 바토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마이어만이 상대가 아니다.
이 전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았다.
게다가 적은 니드호그를 단번에 처치해버린 남자다.
아무리 니드호그가 저항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해도 공격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건 진짜 안 좋군요…….”
아리가 옆에 서있던 일렉트로닉스에게 말했다.
“차라리 마이어가 훨씬 낫습니다.”
“마력은 마이어가 더 높은데요?”
일렉트로닉스가 물었다.
“총 든 사람보단 고릴라가 힘이 더 세죠. 이 인원으로 둘 중 하나를 레이드 하라면 누구를 잡겠어요?”
“…….”
“클리앙!”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차희였다.
모두가 클리앙의 기세에 눌려 있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호전적이고 목소리는 더욱 칼칼했다.
“에어포스를 이리 넘겨.”
차희가 마이어의 발 옆에 누워 있는 에어포스를 가리켰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넘기면 마스크맨에 대한 정보를 하나 주지.”
클리앙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모른다더니?”
“정말 모를 것 같아?”
클리앙은 조금 고민하다가 에어포스를 한 손으로 집어 들어서 차희 쪽으로 던졌다.
제다이가 재빨리 그녀를 받아주었다.
“치료해요.”
차희의 말에 힐러들이 몰려들어 그녀에게 힐링 마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상태가 몹시 안 좋았기 때문에 보조 계열 최고의 헌터들이 붙었음에도 회복이 쉽지 않았다.
“살릴 수 있겠어요?”
“모릅니다…….”
힐러 한 명이 대답했다. 동유럽 어디서 온 S급 힐러였다. 그의 목선에 땀이 벌써 흥건하다.
“이제 마스크맨에 대한 정보를 꺼내 봐요.”
클리앙이 말했다.
“그 사람 인계의 관리자야.”
“우리도 아는 정보입니다.”
“그래? 안됐군.”
“후,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클리앙이 웃었다.
민차희가 에어포스를 받아도 쓸 만한 정보를 내주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 심리전이 필요 없는 법이다.
조무래기 인간 헌터들쯤.
클리앙의 몸에서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천천히 대기 중에 번져 나왔다.
단단하고 안정된 마력이다.
단순히 강한 게 아니라 마력 컨트롤에 숙달된 전사다. 굉장한 실력의 헌터를 보는 느낌.
“마스크맨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지만 마스크맨이 없으니 타깃을 바꿔야겠습니다.”
클리앙이 말했다.
그의 클로가 천천히 올라와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제다이.”
제다이가 바짝 긴장하며 광선검을 세웠다.
클리앙이 말했다. 이번엔 영어다.
“꺼삐딴은 길드원에게 부상을 입힌 적을 살려두지 않습니다.”
“너희가 먼저 공격했잖아 미친 새끼들아.”
제다이가 이를 갈면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는 오랜 실전 경험을 토대로 클리앙의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재고 있었다.
따라서 클리앙의 클로가 그의 복부에 꽂혔을 때는 아픔보다 당혹감이 더 먼저 몰려왔다.
“크헉…….”
몇 미터 앞에 마이어와 함께 서 있었던 그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제다이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모두가 그 움직임에 얼어붙었다.
체급이 다르다. 이런 조무래기들이 모여서 어찌해 볼 수 있는 그런 적이 아니다.
푸우욱!
클로를 뽑아버리자 피가 왈칵 치솟았다.
“마스크맨을 죽이는 것도,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모두 실패했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클리앙이 말했다.
“마스크맨의 전력인 당신들을 몰살시키는 것. 마스크맨이 돌아와서 폐허가 된 이곳과 주검이 된 친구들을 보고 울부짖는다면.”
클리앙은 마이어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것도 나름대로 즐거울 테죠. 제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단지.”
<마력 주입 발동!>
“마이어를 폭주시킬 뿐.”
클리앙의 마력이 또 한 번 마이어의 몸에서 요동쳤다.
슈우우우
에어포스의 희생으로 간신히 막아냈던 그 공격을 마이어가 다시 발동하고 있었다.
마이어의 손아귀에 몰려드는 고농도의 마력압에 모두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콰과광!
그 순간 갑자기 천둥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대기가 일그러졌다.
“뭐야?”
“대체 뭐가 또 나오려고.”
“게이트가 또 열린다…….”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차희의 머리 위에 거대 게이트 두 개가 떠 있었다.
***
삐비비비빅!
수호자와의 대화에 집중하려던 순간 갑자기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윤성의 눈앞에 메시지창들이 우르르 떠올랐다.
“뭐야 이건? 네가 한 거야?”
윤성이 당황해서 물었지만 수호자도 매우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아닌데. 뭐라고 적혀 있어? 시스템 에러인가?”
윤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메시지창을 읽었다.
문자가 깨졌지만 메시지창이 워낙 많아서 읽을 수 있는 글자들끼리 모으면 문장이 되었다.
<다니엘입니다 백마 길드가 위험합니다>
“이런!”
윤성이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어! 난 지금 백마로 돌아가야겠다. 내 친구들이 위험한 것 같아.”
“어떤 미친놈이 이 시스템을 해킹을 하는 거지? 천재, 뭐 이런 레벨이 아니잖아?”
수호자가 짜증을 부리자 윤성이 설명해주었다.
“우리 길드에 최근 들어온 천재가 한 명 있어. 이런 시스템 개발하라고 차희가 얘기했을 거야. 아무튼 난 돌아가 봐야겠어.”
“그럴 필요 없다, 강윤성. 네 길드는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위험이란 거 나도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인데?”
“콜로라 전사 하나가 마이어와 마더를 데리고 쳐들어왔지.”
“미친…….”
윤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당장 돌아가야지, 내가!”
“이미 믿을 만한 지원군을 보냈다.”
“믿을 만한?”
***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것이 다른 두 차원의 관리자들이라는 걸.
마왕은 현장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소집하더니 소집 위치가 여기였나?”
그의 말에 용제가 피식 웃었다.
“이것 봐, 마왕. 수호자가 임무를 보냈다.”
용제가 눈앞의 메시지창을 가리켰다.
<임무 발생! 꺼삐딴 전사로부터 백마 길드를 지켜라.>
“꺼삐딴을 막으라는군.”
마왕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마왕, 아무래도 넌 진영 선택을 빨리 해야겠군. 나는 오늘 마스크맨을 위해 이 길드를 지킨다.”
“이봐요!”
갑자기 조그만 여자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바토리에게 두 사람의 정체를 들은 차희였다.
“한국어 하실 수 있죠? 통역 마법 쓸 수 있죠?”
“관리자 쯤 되면 그런 마법은 패시브다. 인간.”
용제가 한국어로 말했다.
“마스크맨은 어디에 있죠?”
“지금 수호자와 면담 중이다.”
“그렇군요. 무사하면 됐어요. 당신들은……. 우리의 아군인가요?”
“나는 그렇지.”
용제의 이마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지며 금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클리앙은 상황이 몹시 성가시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용제가 저쪽에 붙었기 때문이 아니다.
‘용안을 가지고 있잖아?’
천계 대전 당시 가장 막강한 적은 마제스티엘이었지만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은 용제였다.
용안을 가지고 있을 때 그는 모든 정신 공격에 면역인 상태였으며, 엄청난 동체 시력으로 쯔위민조차 그에게 공격을 적중시키기 힘들었다.
힘으로 그를 붙잡고 용안을 뽑아버린 X등급 전사가 아니었다면, 꺼삐딴은 용제와 마제스티엘 두 사람의 연합을 파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옌뚜르 대표님이 무슨 수든 쓰셨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상황이 아주 불리해졌군.’
클리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왕은 아직 진영을 결정하지 않았다. 그는 꺼삐딴에 고분고분한 남자다.
“마왕.”
클리앙이 그를 불렀다.
“꺼삐딴을 배신할 겁니까? 어째서 당신이 용제와 함께하는지 모르겠군요.”
“배신하지 않았다.”
마왕이 짧게 대답했다.
“그럼 용제를 잡으십시오. 이 싸움은 꺼삐딴 주관입니다. 제게 방해가 되어선 안 됩니다.”
마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콜로라 전사. 미안하지만 수호자가 내게 준 임무는 용제가 받은 것과 좀 다른 모양이다.”
“뭐라고?”
“난 꺼삐딴을 막으라는 게 아냐.”
마왕이 눈앞의 메시지창을 툭툭 두들겼다.
<임무 발생! 마더를 흡수한 마이어로부터 백마 길드를 지켜라.>
“내 임무는 마이어를 막는 거다. 콜로라에게 저항하진 않아. 단지 지구 내에서, 우리들의 집안 문제 같은 것을 처리하는 것뿐.”
“헛소리. 마이어는 지금 꺼삐딴의 일원입니다.”
“그 전에 마이어계의 주인이지. 그리고 저자는.”
마왕이 옆에 서 있던 바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아끼는 후계자와 싸움을 벌였다. 나 역시 한 차원의 관리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널 방해하진 않겠지만 마이어를 놔줄 수도 없는 이 입장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군.”
“…….”
용제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그가 마왕에게 눈을 찡긋했다.
‘잘 빠져나가는군.’
그의 눈빛을 읽은 마왕도 따라 웃었다.
“그래, 마이어는 맡을 수 있겠나?”
용제가 묻자 마왕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몸 상태 멀쩡한 마이어와 싸웠다면 어려웠겠지만. 마더를 먹다 만 반푼이 따위.”
마왕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마이어는 네게 맡기겠다. 마왕. 나는 꺼삐딴 전사를 잡는다.”
“변신할 거냐?”
“당연한 것 아닌가? 인간형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니.”
용제의 용안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그의 목이 길어졌다.
부풀어 오르는 몸은 점점 거대해져서 순식간에 광장을 꽉 메웠다.
모두의 경악 속에서 용제는 그 막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완전한 드래곤으로 돌아갔다.
이젠 웬만한 꼬마 빌딩 같은 크기의 황금색 드래곤.
“크아아아!”
용계의 관리자 용제가 포효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마왕이 검을 힘껏 휘두르며 마이어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앙!
마왕의 공격이 만들어낸 박력은 여태껏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들을 애들 장난처럼 만들어버렸다.
단순한 찌르기 공격이었음에도 폭발하는 마력의 풍압에 바토리, 아리, 미들로드조차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들보다 체급이 낮은 헌터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도 버겁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에어포스를 차희가 붙들었다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아리가 얼른 달려와 두 사람을 몸으로 감싸고 테쿰세가 그 앞에 슈피리어 프로텍션을 쳤다.
“이제 우리 싸움은 끝난 것 같습니다.”
테쿰세가 말했다.
“아리. 저들이 이길 수 있을까?”
차희가 묻자 아리가 바토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길 수 있을까요?”
아리의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그의 생산 시기는 매우 최근이다.
용제나 마왕에 대한 데이터는 거의 없다.
“물론이지.”
바토리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왕님께 패배라는 단어는 사용될 수 없다.”
“캬아아악!”
웬만한 높이까지 올라간 용제가 엄청난 기세로 강하하고 있었다.
“도망쳐!”
헌터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래 싸움이다.
이런 데 말려들었다간 전부 끝장이다.
콰아앙!
용제의 앞발이 클리앙을 짓눌러 아스팔트 속에 처박아버렸다.
그 뛰어난 실력의 클리앙이 제대로 반응조차 못 했다.
<용조 발동!>
몸뚱이를 붙잡은 드래곤의 제왕의 발톱이 전투복을 찢어버렸다.
꺼삐딴 최고의 전투복 중 하나였으나 용제의 용조가 더욱 강하다.
“끄아악!”
가슴팍과 아랫배에 발톱이 박히자 클리앙이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그가 떨리는 손을 들어서 용제를 겨냥했다.
<스페이스 스퀴즈 발동!>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공간 축을 쥐고 비트는 것처럼 허공이 일그러졌다.
콰아악!
그러나 용제를 정확히 노렸음에도 공격은 빗나갔다.
용안은 모든 공격의 수를 읽을 수 있다. 반 박자 빠르게 튀어 올라 하늘로 솟구친 것이다.
용제가 세 개의 눈으로 클리앙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마스크맨은 수호자와 이 세계의 존망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요한 시간을 방해할 순 없다.
콜로라의 지원군이 올지도 모르고, 이 전투가 얼마나 커질지,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지만.
‘마스크맨, 그대에게 내 모든 것을 걸겠다. 내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 그대의 네스트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클리앙을 겨냥한 용제의 입에서 뜨거운 불꽃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