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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94화 (194/260)

# 194

레벨업 속도는 9.8m/s^2 194화

“내가 직접 서류나 물건을 찾다간 한세월이겠군.”

클리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대표 사무실은 난장판이 된 후다. 성질 더러운 상사가 부하 직원한테 몇 번 서류를 던진 후의 현장 같다.

꽤 꼼꼼히 뒤진 것 같은데 마스크맨에 대한 자료라곤 특별한 게 없다.

“한 세월 걸려도 넌 못 찾을 거야. 그런 자료는 여기 없으니까.”

차희가 말했다.

“없다고요?”

“거의 모든 일을 내가 대신 처리해주지만 나조차도 대표님 정체를 모르는걸.”

“정말입니까?”

“이제 목소리 정도는 좀 알아볼 수 있지. 그분 마스크 쓰면 목소리 좀 바뀌는 거 알아? 배트맨처럼. 콜로라에 그런 정보도 있나?”

클리앙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건 모르겠고 콜로라 최고의 전사 중 하나를 눈앞에 두고도 태연자약한 이 아가씨가 보통 인물이 아닌 건 이해했다.

하긴. 그 정도 배짱과 충성심이 있으니까 마스크맨이 믿고 경영을 맡겼겠지.

“자료가 없다는 건 당신에게 매우 안 좋은 일입니다.”

클리앙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살려줄 이유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원래는 살려둘 생각이었어?”

“충분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면 굳이 마스크맨 근처에 우리가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는 거죠.”

클리앙이 클로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글렀으니 당신을 죽이고 우리 전사들이 민차희로 폴리모프하는 길을 취할 겁니다.”

“오.”

차희가 감탄을 터뜨렸다. 그녀는 책상에 전공 책 두 권을 합쳐놓은 분량으로 쌓여있는 서류들을 툭툭 두드렸다.

“이걸 하루에 전부 처리하는 직장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야근은 숨 쉬듯이 당연한 거고 주말 출근도 일상인데.”

“이 상황에서도 허세를.”

클리앙이 빙긋 웃었다. 그가 달려들기 직전이었다.

“그보다 바깥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아? 마이어가 당하고 있는데.”

차희가 화제를 바꿨다.

클리앙은 움찔하더니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진짜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백여 기에 이르는 메탈로이드 군단과 마계의 기사들이 마이어를 둘러싸고 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죄다 헌터로 치면 S급 이상의 강자들이다.

게다가 니드호그도 아직 멀쩡하다.

물론 하나하나 잡으면 마이어가 전부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움직임이 안 좋아 보였다.

‘마더와의 융합이 오히려 독이 됐다.’

메인보드를 해킹한 아리가 시스템에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이다.

마이어의 움직임은 둔해졌고 바토리의 군단 지휘 능력은 우수했다.

기사들과 로봇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이어를 사방에서 공격해대고 있었다.

마이어에겐 요지로 찔러대는 수준이었지만 데미지는 착실히 누적된다.

또한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니드호그나 미들로드, 바토리, 아리의 공격은 꽤 매섭기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

“이건 정말 안 좋군.”

클리앙이 팔짱을 끼며 잠깐 고민했다.

백마 길드를 너무 우습게 봤나.

헌터들만 있었다면 마이어가 가뿐히 짓밟았겠지만 메탈로이드와 마계의 군단이 참전할 줄이야.

적어도 마계의 관리자는 콜로라에 대해 중립적이라 움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토리의 독단인가?’

“마이어를 조금 도와줘야겠군.”

쨍!

클리앙이 창문을 발로 차서 깨버렸다. 강력한 보호 마법이 들어가 있었으나 발차기 한 번에 가뿐히 박살났다.

SSS급 꺼삐딴의 간부 클리앙.

<마력 주입 발동!>

그의 스킬 중 하나는 강력한 마력을 다른 전사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인형술과는 조금 다른, 일종의 버프 마법 같은 것.

지금 그 대상은 물론 마이어다.

“……!”

강력한 마력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이어의 움직임이 잠깐 멈추었다.

“지금이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 기사들이 마력의 창을 던지고 메탈로이드들이 광전자포와 마력포를 쏘아댔지만 마이어에겐 타격이 없다.

끊임없이 힘이 솟음치고 있었다.

“비켜라! 전부 물러나!”

마력 사슬로 보조하던 미들로드가 소리를 질렀다.

쉬이이익!

좁은 건물 틈 사이로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소름끼치는 바람 소리가 울렸다.

마이어의 두 손 사이에 마력의 구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오, 갓…….”

일렉트로닉스가 작게 성호를 그었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에어포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옥상에 있는 기자와 파일럿.

여간해선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저게 터지면 백마 길드가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저런 힘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너무나 압도적이라 당혹감에 질려 움직일 생각이 안 든다.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초재기에 들어간 핵탄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다.

“저걸…… 저걸 터뜨리면 전부 죽을 겁니다.”

테쿰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슈피리어 프로텍션 같은 걸로 절대 못 막는다.

갑자기 에어포스가 아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아리의 어깨에 달린 통신기를 집어 들더니 차희에게 말했다.

“차희.”

에어포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스크맨을 잘 부탁합니다.”

“에어포스? 뭐 하시려고요?”

그녀의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비장하다. 테쿰세는 위화감이 느꼈다.

“다음은 몰라도 일단 이 공격은 누군가 막아야죠.”

콰아앙!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간 에어포스가 마이어의 등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비행 발동!>

그러고는 그대로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차희는 책상 위를 힐끔 쳐다보았다.

클리앙은 그녀를 너무나 얕본 나머지 칸자르를 그 위에 대충 던져두었다.

물론 칸자르가 아무리 우수한 단검이라고 해도 상대가 클리앙이라면 일반인인 차희가 이걸로 해를 끼칠 수는 없다.

그러나 차희는 단검을 집어 들었다. 또한 서랍 속에 있었던 확성기도 들었다.

“니드호그!”

그녀가 갑자기 클리앙의 옆으로 달려오면서 창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확성기에 의해 증폭된 그녀의 목소리가 지상의 헌터들에게까지 들렸다.

“차희?”

“안주인님?”

헌터들과 아리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옆에 누가 있다. 금발 남자.”

제다이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적일 수도 있어!”

“제가 갑니다!”

아리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차희의 고함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니드호그! 에어포스 대신 마이어를 맡아라!”

그녀가 명령했다. 반지의 주인은 차희다. 니드호그는 이성이 없지만 그녀의 명령에는 복종한다.

용언이 아니기에 완벽한 통제는 어렵겠지만 소환은 이미 끝났으니 어느 정도는 부릴 수 있다.

니드호그가 방향을 틀어 마이어와 에어포스를 향했다.

클리앙은 지상의 헌터들에게 목격당한 것이 불편해 창가에서 물러났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차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지의 주인이 당신이었군요. 마스크맨이 맡긴 겁니까?”

“마스크맨이 없어도 백마 길드는 강력해야 하니까.”

“확실히 강력하군요. 이러면 어쩔 수가 없네.”

클리앙이 차희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탁!

갑자기 차희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클리앙은 혼란스러운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헌터 학교 졸업할 때 각성도 하지 않은 일반인이라고 했다. 이 높이에서 떨어져서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니드호그는 멀리 있어 구할 수 없고 에어포스도 마이어를 잡고 있지 않나.

‘무슨 생각을…….’

<역장 발동!>

떨어지는 차희는 지상을 칸자르로 겨누고 역장 마법을 발동시켰다.

외부 충격으로부터 시전자를 보호하는 충격 완화 마법이다.

지면에 충돌할 때의 충격도 똑같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반 쯤 도박이었지만 그녀의 작전은 성공했다.

파아앙!

반투명하게 펼쳐진 역장이 그녀의 몸을 떠받치며 부드럽게 감쌌다.

“당신 저 높이에서…….”

테쿰세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다들 뭣들 하고 있어요?”

차희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니드호그가 마이어를 뒤쫓고 있습니다. 전투 준비 해요! 에어포스를 구해야죠!”

“맞는 말이야.”

바토리가 마이어를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니드호그가 에어포스에게서 마이어를 넘겨받는 순간을 노린다.

바토리의 화살에 검은 마력이 고밀도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파아악!

차희가 떨어졌던 창문으로부터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핏빛 야수다!”

누군가 탄식을 뱉었다.

폴리모프를 해제한 꺼삐딴의 SSS급 전사 클리앙은 날아가는 니드호그의 등 위에 착지했다.

차희의 명령이 최우선인 니드호그는 그를 감지하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손쉬운 상대다.

클리앙의 클로가 수 미터로 길어지며 흉악한 마력을 뿜었다.

헌터들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다.

싸아악!

튀어 오르는 하얀 뼛가루. 일격에 니드호그의 목이 잘려나갔다.

흰 연기가 되어 퍼져나가는 니드호그의 몸뚱이 위에서, 추락하는 클리앙은 마이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력 주입 발동!>

콰아아아앙!

마이어가 만들던, 핵탄두 같은 느낌의 마력 구체에 마력을 주입해서 과부하를 일으켰다.

클리앙이 강제로 폭파시킨 마력의 폭풍이 지상을 휩쓸었다.

치지지직!

메탈로이드 수십 기가 망가져서 털썩, 털썩 쓰러졌다.

지상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모두가 당혹감과 공포에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수의 침공 같은 게 아니다. 이건 완전히 다른 무언가다. 지금 전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그걸 직감하고 있었다.

쿠웅.

곧이어 무언가가 초라하게 떨어져 내렸다.

끔찍한 몰골의 에어포스였다.

“힐러!”

차희가 소리쳤다. 하지만 달려오던 힐러들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리가 굳어버렸다.

에어포스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던 마이어가 내려오고 있었다.

메탈로이드의 마력 부스터를 써서 속도를 조절했다.

그의 어깨에는 무언가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클리앙…….”

차희가 이를 뿌득 씹었다.

***

달.

수호자가 사는 곳은 어떤 환상의 공간일까 많이 기대했는데 막상 와보니 실망이 크다.

진짜 달이다.

분화구가 사방에 널려있고 암회색, 적색 흙과 단단한 암석형 땅.

“이거 우주복 같은 거 안 입어도 되는 건가?”

윤성이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수호자의 마법으로 어느 정도 체내 압력이나 산소 따위가 통제되는 모양인지 괜찮아 보였다.

윤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꽤 떨어진 곳에 조그만 주택 하나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거대한 안테나와 송신탑 따위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윤성은 그 사이를 지나쳐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문에 노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왈칵!

안에서 조그만 꼬마가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바가지머리의 소년이었다.

“들어와.”

“네가…… 네가 수호자야?”

“어.”

수호자가 방 안으로 바쁘게 들어가며 짧게 답했다.

“난 좀 더, 뭐랄까. 수염 길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 같은 걸 생각했는데. 최소한 40대.”

“일곱 차원의 지배자인 내가 인간 기준에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냐?”

수호자가 말했다.

“내게 겉모습은 별 의미가 없어. 이 꼬마 모습은…… 랜덤으로 걸린 거다. 좀 전에 돌린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램?”

“휴. 뭐부터 얘길 해야 좋을까. 너 덕분에 콜로라를 막으려던 내 계획이 처음부터 죄다 꼬인 거? 아니면 네 말도 안 되는 활약상으로 뜻밖에 상황이 좋아진 것?”

윤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왜 내게 Joker를 줬는지 얘기해줘.”

“꼬인 것부터군. X발.”

“뭐라고?”

갑작스런 상스러운 욕에 윤성이 깜짝 놀랐다.

수호자는 신 비슷한 건줄 알았는데 이런 캐릭터였을 줄이야.

“강윤성. 일단 앉아봐라. 너하곤 할 얘기가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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