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레벨업 속도는 9.8m/s^2 193화
62. 수호자
“10분만 맡아주세요.”
아리는 테쿰세에게 당부하고는 후다닥 본관 건물 뒤로 돌아갔다.
자리에 털썩 퍼질러 앉은 채 메탈로이드의 마력 신경망에 접속했다.
잠깐 전투불능이 될 테지만 다른 이들을 믿는다.
에어포스는 추락하는 기자와 파일럿을 구출해 백마 길드 옥상에 올려놓았다.
“여기 가만 계십시오.”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차라리 여기가 안전하다.
백마 길드에 걸려 있는 보호 마법들은 막강하므로 여간해서는 이 건물이 무너질 걱정은 없다.
에어포스는 옥상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펴보았다.
니드호그나 바토리의 공격은 어느 정도 유효한 듯 보였지만 마이어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불가했다.
그리고 마이어는 마더와 합쳐지면서 반쯤 잃어버렸던 의식을 이제는 완벽하게 회복했다.
“니드호그인가? 용제가 이쪽에 붙은 줄 몰랐는데.”
마이어가 영체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장 강한 적을 먼저 없애자, 마이어.
니드호그는 마력만 따지면 용제와 비슷하다.
하지만 영체인 이상 체력도 지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성적인 판단력도 없다. 소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콜로라와의 대전쟁 당시엔 용제가 오기까지의 시간 벌이용밖에 안 되던 것이다.
그리고 콜로라의 핵심 전력들이 니드호그와 싸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니드호그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어는 다르다.
검은 마력의 에너지가 광전자포의 필터로 스며든다.
마더의 마력과 완벽하게 융화된 그것은 고밀도로 광전자포에 집적되어 뜨거운 열을 발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피해라!”
이 공격이 예사로운 게 아님을 깨달은 바토리가 소리를 질렀지만 니드호그는 반지를 통한 명령이 아니면 듣지 않는다.
<브레스 발동!>
니드호그는 공격을 피하기보단 마주 쏘는 쪽을 택했다.
화염계열로는 일곱 차원 최강의 스킬과, 관리자 둘 몫을 합친 광전자포의 충돌.
“크윽!”
순식간에 사방에 엄청난 고열이 올랐다.
<슈피리어 프로텍션 발동!>
테쿰세가 자신의 최고의 방어마법을 시전했다. 새파란 보호막이 헌터들을 덮었다.
“드래곤의 브레스가 밀리는군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에어포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 드래곤이 당하면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
테쿰세가 말했다.
“비켜라. 인간들.”
누군가가 그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프로텍션 바깥은 압력솥 내부처럼 뜨거운 공간이었지만 미들로드에겐 견딜 만한 정도다.
촤아악!
미들로드가 집어던진 마력 사슬이 마이어의 손목을 묶었다.
콰아앙!
그대로 잡아당기자 마이어의 손이 미끄러지면서 광전자포의 방향이 어긋났다.
그러나 쏟아지는 화염을 마이어는 덮어쓰지 않았다.
그 막대한 체구로 날렵하게 움직여 화상을 피한 것이다.
제다이가 침음을 뱉었다.
이 싸움이 더욱 어려워질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이어는 이전에 에어포스나 아리가 공격했을 때처럼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움직임이 정확해졌고 영민해졌다.
“미들로드.”
마이어가 사악하게 웃었다.
“네놈 때문에 이젠 모든 걸 잃었다. 만족하나? 마이어계를 멸망시키니 만족해?”
“멸망은 무슨.”
미들로드가 미소 지었다.
“겁쟁이 사기꾼들을 숙청한 거지.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마이어. 이제는 그 타이틀을 내게 넘겨라. 네 배신의 값은 피로 물어야겠다.”
미들로드가 마력 사슬로 바닥을 쾅, 쾅! 치며 말했다.
그러나 공격하기 직전 바토리가 끼어들었다.
“좀비. 패기는 좋지만 참새가 독수리에게 덤비는 꼴이다.”
그녀는 미들로드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하등한 것들은 아직 이런 걸 모르는 모양이지만, 나는 마계의 공작, 바토리다.”
그녀가 손을 펼쳤다.
“내 영지의 기사단을 불러주마. 마스크맨의 친구들은 이제 모두 뒤로 빠져라. 마계에서 이것을 방어할 테니.”
쿠우우웅!
맹렬한 진동 소리와 함께 허공이 일그러지며 붉은색 게이트가 나타났다.
“엇?”
바토리가 당혹스러워했다. 게이트의 파장이 그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공이군요.”
본관에서 아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마더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게이트를 열었습니다. 레지스탕스가 있는 에이비의 도시에 직통으로.”
아리는 껑충껑충 뛰어서 게이트 앞으로 달려가더니 그 앞에서 터미널 제어기를 꺼냈다.
<범람 발동!>
“2차전 시작입니다. 아, 근데 하등하신 마계 귀족께선 기사단 부른다 어쩐다 하시더니 포기하셨나요?”
“까불지 마라.”
바토리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쿠구우웅!
새빨간 게이트 하나가 또 나타났다.
흑갈색 투구를 쓴 무장한 마계의 기사들이 인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반대편 게이트에서는 메탈로이드가 나오고 있었다.
***
“헉……. 헉!”
차희는 건물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오는 중이었다. 이미 최고 전력들을 불러 모아 전투 소집을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윤성과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다니엘 윈턴이 있다.
그는 게이트와 순간이동 역학에 대해 연구했던 천재다.
최근에 차희는 그에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순간이동 머신, 또는 통신할 수 있는 통신기의 개발을 의뢰한 적 있다.
추가로 백마 길드의 랜드마크가 될 우주 엘리베이터도.
후자는 아직 기획 단계지만 전자는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고 들었다.
통신이라도 가능하다면 윤성과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1층까지 내려온 차희가 과학기술부를 찾아 모서리를 도는 순간이었다.
“꺄악!”
갑자기 누군가와 코너에서 부딪치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 뭐에요?”
푸른 눈동자와 금발의 그린 듯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차희가 소리쳤다.
“전 직원 대피에요! 지하 방공호로 피하라고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
“저는 백마 길드의 직원이 아니라서요.”
남자가 빙긋 웃으며 차희에게 바짝 다가왔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훅 끼친다.
놀란 차희가 뒤로 물러났다.
“누구예요, 당신?”
“누군 것 같아요?”
“…….”
차희가 몇 걸음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남자는 그 걸음 수만큼 차희를 쫓았다.
일정한 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콰악!
차희가 재빨리 칸자르를 내질렀다. 그러나 남자는 가뿐히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뭡니까? 이 장난감. 마스크맨이 주던가요?”
남자가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차희가 고통스러워하며 단검을 놓았다.
“뭐, 뭐야 당신?”
“꺼삐딴의 전사, 클리앙이라고 합니다.”
클리앙은 단검을 빼앗아 들고는 차희를 잡아당겼다.
“마스크맨에게 안내하십시오.”
“지금 이곳에 없어요.”
“어디에 있죠?”
“저도 몰라요.”
“그렇다면 마스크맨의 사무실로 갑시다. 당신이 마스크맨의 비서죠?”
“…….”
“마스크맨에 대해서 잘 아시겠죠. 가서 그의 정체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그러지 않으면 인계는 멸망할 테니까.”
클리앙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겨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대표 사무실의 위치 정도는 클리앙도 이미 알고 있다.
백마에 심어둔 꺼삐딴의 정보원들을 통해서 사전에 확인해두었으니까.
마이어가 앞에서 전투를 벌이면 마스크맨이 튀어나올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
첫째는 마스크맨이 실력 있는 부하들을 믿고 마이어와의 전투를 피했거나 연기했다는 것이다.
부하들이 마이어를 처치할 수 있다면 가장 좋고, 못하더라도 마이어의 전투력을 파악한 후 행동에 나선다는 것.
둘째는 비서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마스크맨이 이곳에 없는 경우다.
만약 그렇다면 마스크맨의 사무실을 지키는 전력이 모두 바깥으로 나가서 마이어와 싸우고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적어도 대표 사무실에는 마스크맨의 개인적인 물건이나 서류가 있을 테고,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테지.
철컥.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클리앙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무실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가 서랍이나 책장 따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인계를 멸망시키지 못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차희가 말했다.
“왜 못하죠?”
“마이어는 백마 길드의 군대에게 죽임을 당할 테니까. 그리고 콜로라도 결국 대표님이 물리치실 테고.”
“이 정도면 마스크맨에 대한 신뢰가 종교 수준이군요.”
클리앙이 말했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콜로라의 전사들을 막아낼 순 없습니다. 체급이 달라요.”
“대봐야 아는 거지…….”
“서류가 너무 많군요. 죄다 길드 가입 신청서들이군.”
클리앙이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
“곧 일식이다.”
용제가 윤성을 제단에 앉히며 말했다.
“인계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갔을까? 이렇게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면 알았을 것 같은데.”
윤성이 제단을 가리키며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모르지. 수호자를 만나는 방법은 각 차원마다 다르다. 다만 모두가 일식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지.”
“왜 일식이 필요한 거야?”
“수호자가 달에 있거든.”
용제의 대답에 윤성이 약간 충격을 받았다.
“달에 있다고?”
“그래.”
“하지만 그자는 지구의 수호자잖아?”
“지구에서 쫓겨났다. X등급의 공격을 받아 도망쳤지. 지금은 달에서 은신하고 있다.”
“맙소사. 거긴 안전한 거야?”
“일단은 그런 모양이야.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윤성이 제단에 앉자 용제는 커다란 쌕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윤성의 목에 걸어주었다.
“우리 차원에서 수호자를 만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고마워. 이제 뭘 하면 되지?”
“마력을 최대로 높여라.”
“발산하라고?”
“그래.”
윤성은 눈을 감고 마력 컨트롤에 집중했다. 누군가를 공격할 때처럼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사방으로 분출했다.
지금은 그리 높은 버프를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용제나 마왕이 보기에는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다가 마왕이 용제에게 말을 걸었다.
“용제. 정말로 이 남자를 믿나?”
“그래.”
“네 용안을 찾아줘서?”
“그뿐만이 아니다. 이자는…….”
용제가 잠깐 말을 골랐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다.”
“흠.”
“신비한 사람이야. 지금 보면 약해 빠진 인간처럼 보이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강한 적들에게 용감하게 맞섰다.”
“…….”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마스크맨에게 패했어.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무조건 멸망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제 그의 편에 서고 있지.”
윤성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호자의 차원으로 들어가는군.”
마왕이 말했다.
“이 남자가 과연 수호자에게서 무엇을 받아서 돌아올까?”
“잠깐.”
용제가 무언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메시지창이 떠 있었다.
<수호자가 관리자들을 소집했습니다.>
“마력도 얼마 안 남은 양반이 소집을 또?”
마왕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스크맨을 보냈기 때문일까? 용제. 어찌 생각하나?”
“일단 가보는 게 좋겠군.”
두 사람이 메시지창을 활성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