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90화 (190/260)

# 190

레벨업 속도는 9.8m/s^2 190화

교사 치치는 윤성이 주었던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롬펠에서 온 불법 이민자. 최근에 시민 등록을 마친 신인이다.

방금 들어온 데이터에 따르면 이론 시험은 34점. 전부 객관식이라는 걸 감안하면 모든 문제를 찍어버린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별로 기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띠아 때문에 올라간 모두의 눈과 부담감을 낮춰주기엔 적당하겠지.

“위치로 오세요.”

치치의 말에 윤성은 시뮬레이션 스타트 포인트에 가서 섰다.

“서전트 점프부터 시작합니다. 순간적인 힘을 측정하는 것이고, SSS급 전사들은 일반적으로 최대 100미터 정도를 뛸 수 있습니다.”

치치가 천장을 가리켰다.

“이곳 천장 높이는 15미터. 대부분의 전사들은 이 안에서 끝나지만 자신의 점프력이 이보다 더 높다고 생각되면 야외로 나가야…….”

“나가죠.”

윤성이 현관을 가리켰다.

SSS급 전사들이 100미터?

‘아르동 때려잡던 시절에도 그 정도는 했는데.’

새삼 랜더의 전투화가 어떤 물건인가 실감이 난다.

학생들은 윤성을 살짝 비웃었지만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와 교사를 따라 밖을 향했다.

“근데 말이에요.”

야외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길. 윤성이 치치에게 말했다.

“제 이론 점수가 좀 낮잖아요? 만약 체력 시험을 잘 보면 그걸 뒤집고 에이스가 될 수 있나요?”

“규정상 가능하긴 하지만 엄청난 성적이 나와야 할 거예요. 업적이 뛰어나면 좀 더 쉬워질 거고요.”

“업적은 최고 점수라고 가정하고요.”

“흠. 서전트 점프 100미터, 물감탄 회피 1분 이상, 투검 정확도 2센티미터 이내라면 가능성 있죠.”

“좋습니다.”

지나치게 높이 뛰어오르면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을 수도 있다.

적당히 100미터 정도로 할까. 그게 SSS급의 기준이라고 했으니.

S급 상위권 정도의 실력을 가진 전사가 어떻게 그런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추궁당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헌터도 그렇지만 콜로라 전사로서의 ‘등급’ 역시 마력을 기준으로 하는 듯 보인다.

옌뚜르도 윤성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마력을 발산해 보라고 했었으니까.

물론 마력 수준과 전투 능력은 일반적으로 비례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타고난 전투 기술이나 운동능력까지 완전히 결정짓는 건 아니다.

지금 윤성의 능력치 정도라면, 난 원래 이렇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충분히 의심을 뭉개 버릴 수 있다.

“갑니다.”

윤성은 신발에 마력을 슬쩍 불어넣었다.

“잠깐만요. 이걸 가져가요.”

치치가 고도계를 내밀었다.

“자동으로 점프 고도가 기록되는 기계에요.”

“좋아요. 가겠습니다.”

윤성은 고도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점프 자세를 취했다.

본래 랜더의 전투화는 준비 자세 없이 곧장 솟구칠 수 있는 물건이지만, ‘점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을 추가한 것이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콰아앙!

엄청난 기세로 솟구치는 윤성을 보고 지상에서 구경하던 학생들이 경악했다.

하늘로 뛰어 오른 윤성은 지상에선 작은 점처럼 보였다.

‘큰일이다.’

생각보다 더 높이 뛰어버렸다. 100미터 근처라는 게 너무 낮은 값이라서 조절하기가 어렵다.

마치 샤워기 온수의 따뜻함을 정하기 위해서 굉장한 세심함이 필요한 것처럼.

‘수도꼭지 잘못 돌려서 찬물이 나와 버린 셈이군.’

슈우우우우.

‘이제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세는 어떡하지?’

랜딩 자세를 잡았다간 나중에 의심을 살 빌미가 될 수 있다.

만약 떨어지면서 다친다고 하더라도 엘리지아의 정복자 칭호가 있으니 곧바로 부상이 회복될 거다.

하지만 부상당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을 점프했다는 뜻이 되니까.

‘랜딩을 할까?’

생각해 보니 허공에 사선으로 펼친 오른팔을, 지면에 왼손과 두 발이 닿는 순간 곧바로 구부린다면 심하게 티가 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좋아. 랜딩을 하자.

윤성은 눈을 부릅뜨고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면을 노려보았다.

쿠웅!

<최종 속력=43.96m/s, 낙하 거리=176.6m, 낙하 시간=6.67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1176.6점. 남은 시간 86,40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반사적 회피, 남은 시간 86,400초>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근력과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4점>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위압’>

다행히 윤성의 착지 자세를 전사들은 특별하게 느끼지 않았다. 착지하자마자 오른팔을 접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하게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보다 메시지창들이 좀 재밌어졌는데.

윤성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문자들을 읽었다.

<랜더의 시계에 의한 랜딩 버프의 기본값 보정은 1,000점이 한계입니다.>

<남은 값이 능력치 포인트로 환산됩니다. 이는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분배 가능한 능력치 : 8,020>

분배 가능한 능력치가 8,020점이 되었다.

분명 이전엔 7,200이었는데. 820점이 오른 셈. 지금 레벨이 920이다. 100레벨의 버프 보정인 1,000점을 제외하고 남은 820레벨만큼 분배 포인트가 올랐다.

‘굉장한데?’

41레벨만큼의 포인트를 한 번에 쌓은 셈이다.

흥미로운 건 또 하나 있다.

‘스킬 위압을 얻었다.’

분명 이 높이에서라면 수중 호흡 스킬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체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떠야 한다.

레벨이 충분히 높아져서 이 낙하 구간의 두 번째 스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건가?

윤성이 고민에 잠겨 있는데 치치가 말을 걸었다.

“저기. 고, 고도계를…….”

“아. 잠시만요.”

윤성은 주머니에서 고도계를 꺼내었다.

“176.6미터.”

치치가 침을 꼴깍 삼켰다.

‘대체 어디서 온 괴물이야?’

학생들 모두가 충격으로 할 말을 잃었다.

“여태 쯔위민 전사님의 169미터가 최고 기록이었는데 오늘 바뀌었군요. 축하합니다.”

치치가 말했다.

윤성은 욱신거리는 발목을 주물렀다.

“다음 시험 치러 가죠.”

두 번째 시험은 물감탄 회피.

사방에서 날아오는 물감탄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피해야 한다.

스타팅 포인트에 들어간 윤성은 또 한 번 뜻밖의 행운을 경험했다.

물감탄 몇 개를 피한 다음 호기심에 사용해본 버프 스킬이 놀라운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반사적 회피 발동!>

그것은 마치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형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물감탄을 그냥 회피하는 게 아니라 약 1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학생들이나 치치보다도 윤성이 더 당황했다.

스킬 반사적 회피는 시전자의 감각 능력과 순발력의 범위 이내에서 다룰 수 있는 공격이라면 최선의 동작으로 회피한다.

뇌와 같은 정보처리 중추를 거치지 않는, 그야말로 기계적이고 조건 반사적인 회피.

실제 윤성이 가진 능력치들보다 훨씬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다.

“벌써 1분이 지났어…….”

학생 중 하나가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윤성의 물감탄 회피에는 아직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물감탄 회피 시험이 어려운 이유는 매초가 지날 때마다 발사되는 물감탄의 개수가 많아지거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

1분 정도가 되면 매 순간 수험생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물감탄이 20개 이상이다.

옌뚜르 정도의 기감과 순발력이 아닌 이상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1분 49초 27…….”

윤성의 어깨에 물감탄이 맞으며 시험이 종료된 시점. 치치가 타이머를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이 기록이면 어느 정도인가요?”

“근 몇 년 중에는 최고 기록이군요.”

치치가 혀를 내둘렀다.

“다음 시험 갈까요?”

윤성은 단검을 투척하는 위치에 가서 섰다.

표적 거리는 500미터. 최대 거리다.

수험생이 원하면 표적을 더 당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점수에 페널티가 생긴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표적에서 80센티미터 이상 벗어난 변두리라도 맞추긴 맞추기에 사실 표적 위치를 좁혀달라는 사람은 없다.

“표적을 더 멀리 둘 순 없나요?”

윤성이 물었다. 치치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좁혀달라는 사람도 없지만 거리를 늘려달라는 사람은 또 처음이군요.”

치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분이 학생 시절 지금 강윤성 전사님처럼 표적을 더 멀리 놔달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죠.”

“그분이요?”

“X등급 전사님 말입니다.”

“…….”

“650미터 거리에 두고 오차 0센티미터라는 기적을 만드셨죠. 역시 그분은 학생 때부터 남달랐으니까요.”

“저도 650미터 하겠습니다.”

“진심이에요? 표적의 거리를 늘린다고 점수에 어드밴티지가 생기진 않아요.”

“그럼 그 X등급 전사님은 왜 그랬죠?”

“자신의 한계를 보고 싶다고 그랬대요. 사실 650미터 이상도 가능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당시에는 시험장이 좁아서 그 이상 거리를 만들 수가 없었거든요.”

“어드밴티지 없으면 그냥 500미터 할게요.”

윤성이 얌전히 물러났다. 구태여 호승심을 부려서 이목을 끌 필요는 없으니까.

<단검 투척 타깃.>

멀찍이 떨어진 표적의 정 가운데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단검을 집어 든 윤성의 팔뚝에 힘줄이 불끈 섰다.

***

쾅!

전사들의 수련실 문이 박살 나듯 거칠게 열렸다.

SSS급 법관 베아트리체가 나타났다. 옌뚜르의 제자이자 꺼삐딴에서 클리앙 다음으로 젊은 전사이기도 하다.

“클리앙!”

그리고 클리앙을 격하게 아끼는 여자였다.

그녀는 마정석을 먹고 마력 호흡을 다듬던 클리앙에게 달려와 와락 껴안았다.

“어쩜 좋아! 우리 길드 신입이 전 과목 석권이래!”

“석권이요? 뭐가요?”

“무관 학교 졸업 시험!”

클리앙의 얼굴이 싸해졌다.

“전부 다 저보다 점수가 높은 겁니까?”

“너보다만 높은 게 아냐. 그냥 신기록 경신 수준이라고!”

“그럼 이미 에이스는 건너갔군요.”

클리앙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냐. 운동 능력만 그렇고, 이론 시험은 죽 쒔대. 롬펠 출신이잖아. 잘 몰랐겠지.”

“그래요?”

“응. 아직 너한테 기회가 있어! 운동 능력 쪽 세 과목이 전부 다 충격적인 점수라서 그놈이 현 랭킹 1위지만 너랑 몇 점 차이 안 나. 넌 이론도 만점이었으니까. 네가 큰 업적을 쌓으면 네가 우승이야.”

“그렇군요.”

“하지만 솔직히 업적도……. 그 신입은 마스크맨한테 납치되어 마이어 계에 감금된 대전사 척루인을 구해왔는데 어떡해.”

“괜찮습니다. 아직 해볼 만한 상황이라면 됐어요. 제가 에이스입니다.”

“뭐?”

클리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땀에 젖어 울퉁불퉁한 그의 근육이 생동감 넘치게 번질거렸다.

“후욱.”

오늘은 S급 마정석을 이미 다섯 개나 먹었다. 하루하루 전투력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클리앙은 옆에 있는 마정석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S급.

“너 몇 개나 먹는 거야?”

베아트리체가 깜짝 놀라며 만류하려 했지만,

“괜찮습니다.”

클리앙은 마정석을 씹었다. 핏줄이 울끈불끈 솟는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마안. 클리앙의 몸에서 감당할 수 없는 마력이 분출하여 피부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이미 마력이 고갈됐잖아! 지금 몸에 무리를 주면서 먹는 거야? 클리앙! 진정해!”

“괜찮다니까요. 이젠 마력도 늘었습니다.”

<해독 발동!>

클리앙의 몸에서 하얀빛이 나와 S급 마정석의 독소를 중화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E급 최하위의 전사를 거두어 꺼삐딴의 간부석까지 올려준 옌뚜르.

‘꺼삐딴의 미래를 제게 맡긴다는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슈우우우우.

클리앙의 몸에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그는 뒤에 있는 펀치 머신을 돌아보았다. 속근 테스트의 종목 중 하나인 ‘더미 일격’ 테스트기다.

꽈아앙!

수련실 전체에 끔찍한 굉음이 퍼져나갔다.

“뭐야? 쯔위민 선배 왔냐?”

수련실 반대편에 있던 전사들 몇이 두런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베아트리체 선배! SS급 수련실이에요 여기! 선배가 치면 다 부서질…….”

그들의 말이 멈추었다. 펀치 머신 앞에 서 있는 게 클리앙이었기 때문.

베아트리체조차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클리앙의 힘이 빠르게 늘어서 이젠 SSS급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간부진 내에선 최하위였다.

베아트리체 정도 되는 위치에서 보기엔 아직 귀여운 정도였는데.

<측정 불가>

펀치 머신에서 파직, 파직 하는 소음과 함께 전파가 튀고 있었다.

“부서질 줄은 몰랐는데. 새로 사야겠군요.”

“훌, 훌륭해.”

베아트리체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젠 자신도 클리앙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 정도의 실력자는 사실상 꺼삐딴 내에서 옌뚜르와 쯔위민밖에 없지 않을까.

“제가 에이스입니다.”

클리앙의 눈이 빛났다.

“뭘…… 하려고……?”

“카일란을 죽이고 꺼삐딴을 농락하고 척루인 전사님을 납치한 중죄인.”

클리앙이 말했다.

“마스크맨을 죽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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