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레벨업 속도는 9.8m/s^2 189화
60. 무관 학교 에이스
“솔직히 정말로 해낼 줄 몰랐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옌뚜르 대표 사무실. 옌뚜르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간부 중 몇 명이 모여 있다. 쯔위민이 말했다.
“클리앙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훌륭한 전사가 하나 더 생겨서 기쁘군.”
“정말 큰일을 해줬습니다. 강윤성.”
옌뚜르가 다시 칭찬했다.
“단순히 대전사 한 명의 전력을 회복한 데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조직원의 안전과 진로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꺼삐딴의 명성을 살려낸 겁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씀푸 전사님은 못 찾았는걸요.”
윤성이 말했다.
“한 명이라도 어딥니까.”
옌뚜르가 흡족한 듯 잔에 차를 부었다.
“강윤성,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보십시오.”
“필요한 거요?”
윤성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사실 필요한 것은 지구 침공의 핵심 정보들에 대해 접근할 권한뿐이다.
하지만 그걸 바로 요구하거나 간부 직위를 달라고 하면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지.’
“필요한 건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멀리 롬펠에서 온 외지인이고, 인정받고 싶은 열망은 있군요.”
“인정받고 싶다고?”
“꺼삐딴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럼 무관 학교 시험부터 봐야지.”
옆에서 카이야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용안은 어떻게 됐지?”
쯔위민이 물었다.
“다행히 지하실을 찾아내는 동안 부서지지 않고 잘 버텨냈습니다만 뺏겼습니다.”
“뺏겼다고? 누구한테?”
“마스크맨한테요.”
“마스크맨? 하지만 척루인이 감금된 곳은 마이어계가 아니었나?”
쯔위민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랬죠. 하지만 그곳에 마스크맨이 있었습니다.”
“쯔위민. 마이어가 마스크맨에게 협력 전선을 제안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옌뚜르가 물었다.
“그랬지.”
“그럼 이미 마스크맨이 그 협력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닐까요?”
윤성이 물었다.
“그건 아닐 텐데. 백마 길드에선 마스크맨의 비서가 내게 마이어의 계획을 전부 오픈하고 마이어 쪽 전사를 넘겨줬었다.”
쯔위민이 대답했다.
“어쩌면 우리가 마스크맨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것일지도 모르죠. 마이어에게서 단물만 빼먹고 우리 손을 이용해 처리했다거나.”
윤성이 말했다.
쯔위민이 작게 신음하며 팔짱을 꼈다.
옌뚜르도 고민에 잠겨 있었다.
마이어와 그 부하, 브리트마는 쯔위민에게 계속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했다.
꺼삐딴에 거짓말을 했던 건 인계를 삼키려는 계획에서였다고.
만약 마스크맨이 그 계획을 알았고, 같은 편이었던 마이어를 팔아치웠다면?
마이어와 같은 편이었던 만큼 척루인이 숨겨진 곳도 알고 있었을 테고, 그를 수색하는 콜로라를 예의주시했다는 것도 말이 된다.
그 와중에 용안 같은 중요한 아이템을 사용하는 강윤성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그걸 빼앗으려고 덤벼들었을 거다. 카일란도 제압하는 마스크맨의 실력이라면 강윤성 정도로는 당연히 상대가 안 되었을 테고.
“도망쳐온 것도 기적이군.”
옌뚜르가 말했다.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 들고 있던 용안을 떨어뜨렸는데, 그대로 순간이동석을 썼습니다. 싸웠다간 죽을 것 같아서요.”
윤성이 설명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척루인이 들어왔다.
“마침 잘 들어오셨습니다. 척루인 대전사.”
옌뚜르가 그를 환영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이제 좀 괜찮습니다. 제가 모두에게 심려를 끼쳤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척루인. 당신을 납치했던 건 마이어입니까? 아니면 마스크맨입니까?”
“둘 다입니다.”
척루인이 말했다.
“정확히는 마이어계의 전사 하나와 마스크맨이 직접 절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께 꼭 말씀드려야 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뭐죠?”
“마스크맨이 마안을 사용했습니다.”
“……!”
옌뚜르와 쯔위민, 카이야쓰 등 모든 간부들의 표정에 충격이 번졌다.
“마안을…… 썼다고……?”
옌뚜르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자가 콜로라 전사라는 말인가?”
쯔위민이 다그쳤다.
“그건 모릅니다. 얼굴이 안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마안을 쓴 건 확실합니다. 제가 그걸 맞고 쓰러졌거든요.”
“옌뚜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생각 좀 해봐야겠군.”
머릿속이 복잡해진 옌뚜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타이밍 괜찮군. 윤성이 눈치를 보며 슬쩍 끼어들었다.
“만약 그자가 콜로라 전사라면, 콜로라 전사가 배신했다는 것인데 마스크맨 근처에 정보원을 심어서 행적을 추적해야 하지 않을까요?”
윤성이 약간 기대감을 가지고 간부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잘 하면 지금 백마 길드에서 마스크맨 근처에 정보원이 심어져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심어야죠.”
옌뚜르가 말했다.
“이미 몇 넣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맨은 차희라는 비서 외에 다른 직원들은 거의 만나지도 않는 수준이라.”
“그렇군요.”
“그리고 차희. 그 여자는 보안이 철통같습니다. 그 여자를 통해서는 마스크맨의 정보를 캐낼 수가 없어요.”
미끼를 바꿔볼까.
“그럼 그냥 마스크맨을 죽여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윤성이 말했다.
“척루인 전사님 말씀대로라면, 마스크맨은 벌써 콜로라를 공격한 횟수가 두 번 아닌가요? 척루인 전사님께 한 번, 제게 한 번.”
“세 번이다. 카일란을 죽였으니.”
쯔위민이 끼어들었다.
“마스크맨이 강하긴 하지만 못 죽일 정도의 상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방법 없을까요?”
윤성이 말했다.
“이미 계획이 있다. 준비가 좀 필요하지만. 우리가 직접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대신…….”
쯔위민이 설명하는데 옌뚜르가 빠르게 들어왔다.
“간부진에서 계획해 둔 바가 있습니다. 지켜보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쯔위민이 눈썹을 꿈틀하며 옌뚜르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관찰하며 윤성이 말했다.
“저도 마스크맨의 길드에 잠입하겠습니다.”
“마스크맨의 길드에요?”
“저는 폴리모프한 인간 신분도 있거든요. 마침 한국입니다.”
“그래요?”
옌뚜르가 흥미를 보였다.
“D급 헌터 강윤성으로 인계에서 살고 있죠. 그 신분으로 백마 길드에 잠입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근데 혹시 우리 길드에서 백마에 심어놓은 정보원 중에서 제 가입을 처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직위를 가진 분이 있나요?”
“직접 권한을 가진 전사는 없고, 백마 길드의 간부 중 하나인 인간 헌터 홍창민의 오른팔 정도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락처를 드리죠.”
옌뚜르가 말했다.
“그렇군요.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
약 한 시간 후, 윤성은 자기 부상 셔틀을 타고 무관 학교로 이동했다.
우선 그 압도적인 크기에 할 말을 잃었다.
지구에 있는 웬만한 대학교보다 훨씬 크다. 자기부상 셔틀의 정거장 이름부터가 가관이다.
<무관 학교 우체국.>
<무관 학교 은행.>
<무관 학교 동문 앞.>
<무관 학교 동문.>
<무관 학교 기계공학 실습실.>
<무관 학교 기계공학 연구소.>
<무관 학교 병원.>
<무관 학교 암 병원.>
<무관 학교 어린이 병원.>
…….
셔틀을 탄 전사들, 학생들은 곳곳에서 내려서 다른 셔틀로 갈아타곤 했다.
셔틀 하나로 학교 하나를 다 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졸업 시험을 보려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해……?’
윤성은 초조한 듯 다리를 떨다가 셔틀에서 내렸다. 마법공학 수련장 근처였다.
어린 여전사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롬펠 출신인데 전사 자격이 필요해서 시험을 치려고 하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죠?”
윤성이 묻자 그녀는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가는 길이니 따라와요.”
콜로라 무관 학교 117기의 현 랭킹 2위, 또띠아는 꽤 긴장하고 있었지만 웬 애송이를 만나서 마음이 편해졌다.
무관 학교 자체를 처음 온 듯한 롬펠 출신의 소년.
강윤성은 클리앙보다도 어려 보였다. 또띠아는 내친김에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길의 무관 학교 안내까지 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시험장 입구에서 웬 사내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이런 소란을 원치 않아서 일부러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온 것이었는데.
또띠아는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아가씨가 1위를 하실 겁니다.”
“클리앙 그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가씨 앞에선 별 것 아니지요.”
“고마워요.”
콜로라 고위 공관 포퍼의 딸, 또띠아는 윤성에게 인사하고 시험장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많은 학생이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저기 가서 줄을 서 있으렴.”
무관 학교의 교사이자 은퇴한 S급 전사, 치치가 말했다. 동시에 그녀는 윤성을 보고 눈이 가늘어졌다.
“학생? 학생인가? 너무 어려 보이는데. 당신은 이름이 뭐죠?”
“강윤성입니다.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시험 보러 왔습니다.”
학생들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무관 학교 재학생이 아닌 외부인이 시험을 보러 오는 경우는 나이 많은 외지 출신의 전사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꺼삐딴의 SSS급 캄블스 같은 남자가 그런 식이다.
하지만 캄블스와 같은 경우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몸의 품새도 완벽하여 누가 보아도 역전의 전사지만, 윤성은 너무 어려 보였다.
“이론 시험 보셨나요?”
치치가 물었다.
그런 것도 있었나?
“안 봤습니다.”
“옆방입니다. 이론 시험을 먼저 보고 오세요.”
“이론 시험이 낮으면 떨어지나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실전 테스트나 업적 쌓기로 극복하기 어렵겠죠.”
그럼 웬만큼 조져도 되겠군.
이쪽은 업적으로 죽을 뻔한 대전사를 구출해 온 전사니까.
윤성은 옆방으로 이동해서 신원 확인을 마치고 시험지를 받았다. 태블릿 PC에서 문제가 하나씩 떠오르고 객관식 답을 맞히는 식이었다.
첫 문제가 나타났다.
<다음의 보급형 중 가장 성능이 우수한 클로는?>
1. 강철 클로
2. 우르 클로
3. 카삐악 클로
4. 옐란 클로
5. 꺼삐딴 클로
‘젠장.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아? 일단 친숙한 꺼삐딴.’
윤성은 5번을 눌렀다.
<정답입니다.>
윤성이 이론 시험을 푸는 동안, 옆방에서는 실전 테스트가 한참이다.
시험 과목은 총 세 가지.
하나는 속근 테스트로 서전트 점프, 더미 일격, 더미 푸시 등의 순간적인 힘을 요구하는 종목들이 포함돼있다.
두 번째는 반응 속도 테스트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물감탄을 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집중력 테스트로, 단검 투척, 사격, 마안 적중 등의 종목들이 들어 있다.
“3.8센티미터.”
치치가 표적의 계기판을 읽었다.
또띠아가 던진 단검이 표적 위치에서 불과 3.8센티미터 떨어져 있다. 이 정도면 최상위권 점수다.
S급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전사들은 보통 세 과목 모두 최상위권 점수를 받는다.
‘클리앙한테 좀 위협이 되겠군. 둘이 업적 싸움이 되겠어.’
치치가 빙긋 웃었다.
“다음 시험 볼 학생?”
그녀가 지원자를 받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또띠아의 모범적인 전투를 본 학생들은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시선을 외면했다.
그들 중 일부는 또띠아의 전투를 구경하러 온 것이었고, 일부는 또띠아의 친구거나 팬이었다.
시험을 보려는 학생은 불과 몇 안 되었는데, 또띠아 바로 후에 시험을 보는 것은 좀 부담스러웠다.
덜컹.
옆방에서 윤성이 걸어 나왔다. 이론 시험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느라 약간 피곤한 표정.
운이 좀 따라주어서 생각보다 많이 맞췄지만 틀린 게 훨씬 많다.
“뭐야? 실전 시험은 끝났나요?”
윤성이 물었다.
“아니요. 다음 시험 볼 학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보시겠어요?”
“그러죠.”
“1번, 3번 시험의 종목은 뭘로 할래요? 실전 능력 테스트가 목적이기 때문에 개인 장비를 써도 됩니다.”
윤성은 치치가 준 서류를 읽으면서 풋, 웃음을 터뜨렸다.
“서전트 점프와 단검 투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