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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84화 (184/260)

# 184

레벨업 속도는 9.8m/s^2 184화

백마 길드 본관에서 월마트 방향으로 이동하면 백마 길드 별관이 나타난다.

대로변에는 기이한 조합이 나타나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로봇 한 대와 젊은 여자, 그리고 온몸이 쇠사슬에 포박된 채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쓴 죄수.

사람들은 그들을 구경하고 수군댔지만 그들을 멈춰 세우고 신원에 대해 묻거나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아리가 인계에 제법 알려진 까닭이다.

구속된 죄수도 백마 길드와 관련된 중요한 무슨 사고를 쳤고 합법적인 상황일 것이리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근데 래티시아. 당신이 모셔온 분, 쯔위민이랬나요? 그분은 콜로라에서 지위가 어떤가요?”

이동하면서 아리가 물었다.

“엄청난 분이죠. 옌뚜르 대표님 다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굉장히 세 보이더군요.”

“힘으로는 옌뚜르 대표님 이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성격이 좀 급하고 생각이 짧을 때가 가끔 있어서.”

“아하. 제가 잘 아는 마족 하나랑 비슷하군요. 그 녀석도 생각이, 아니, 아예 머리란 게 없는 수준이니.”

“순간 이동할 장소는 멀었나요?”

광장을 가로지르면서 래티시아가 물었다.

“이제 다 왔어요. 여기에요.”

아리는 백마 길드 별관을 쭉 가로질렀다. 끝에는 조그만 비밀 통로로 이동하는 길목이 있었다.

“이쪽으로. 대부분의 최상급 헌터들이 여기서 순간이동 하거든요.”

그러나 아리를 따라 이동한 래티시아의 눈앞에는, 그녀가 상상도 못 했던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쿰세…….”

래티시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황급히 순간이동석을 꺼내려고 했지만 늦었다.

퍽!

아리의 강력한 손날이 래티시아의 목 뒤를 갈겼다.

그녀의 몸이 휘청, 무너져 내리는 순간 미들로드가 쇠사슬을 풀어버렸다.

“흐흐흐흐.”

미들로드가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웃었다.

“다 먹어치우면 안 됩니다. 알아볼 수 있어야 해요. 알죠?”

아리가 말했다.

“물론이다. 참혹하게 만들라고 했지?”

미들로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리의 눈이 노란색으로 반짝였다.

미들로드는 우선 래티시아의 숨을 끊었다. 목 아래를 한 번 물어뜯는 것으로 족했다.

래티시아의 폴리모프가 풀려 콜로라 성인의 몸으로 돌아갔다.

매끈한 사람 피부 위에 털이 올라오자 미들로드는 약간 짜증을 냈지만 그걸 찍찍 뜯어가며 우적우적 씹었다.

“우윽…….”

제다이는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의 구토감을 느꼈다.

테쿰세가 말했다.

“메탈로이드, 자네 혼자서도 충분했겠군. 나와 제다이가 굳이 올 필욘 없었겠어.”

“그럴 거라 예상했죠. 만약을 대비했던 것뿐이에요.”

“만약?”

“콜로라 전사가 순간이동석을 꺼내든 상황까지 간다면 발동시키기 전에, 테쿰세 헌터님이 정신 교란으로 방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치밀한 사람이야.”

“우리 비서님이요?”

“그래.”

“뭐, 백마 길드의 실질적인 지휘관이니까요.”

제다이가 갑자기 미들로드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어이. 얼굴은 안 먹기로 했잖아.”

“아. 미안.”

미들로드가 피가 철철 흐르는 입가를 쓱 닦았다.

“좀 흥분했군. 별식이라.”

“꽤 참혹하게 만들었군요.”

아리가 흡족한 듯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 작전으로?”

테쿰세가 묻자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앙!

갑자기 미들로드가 아리의 가슴을 강력하게 후려쳤다.

엔진에 타격을 입은 아리가 풀썩 주저앉았다.

“깜빡이 좀 켜고……. 치직……. 들어오세요.”

“어디를 부러뜨릴까?”

“왼발.”

와직!

이번엔 미들로드가 아리의 왼쪽 발목을 밟아 부쉈다.

“우린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 있겠다.”

제다이가 말했다.

“나가면서 사이렌을 켜주지.”

두 사람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고 몇 분이 흘렀다. 미들로드는 따분한 듯 하품을 했고 아리는 오른팔과 몸통 여기저기에 자잘한 상처를 만들어서 전투의 흔적을 그렸다.

위이이이이이잉!

제다이가 켠 사이렌이 울렸다.

“뭐야!”

“공습이다! 마수가 나타났어!”

별관 카운터 쪽에서 헌터들이 소리쳤다.

잠시 후, S급 헌터 파스칼과 프랑수아 마르셀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헉…….”

그들은 미들로드와 박살 난 아리를 보고 움직임이 굳었다.

“주, 죽여!”

<매직 개틀링 발동!>

두두두두!

파스칼이 꺼낸 개틀링건에서 마력 총탄이 연사되었다.

그러나 미들로드에겐 모기가 물어대는 것 같은 공격이다.

그는 두 사람을 향해서 정면으로 돌진했다.

“아악!”

놀란 헌터들이 양쪽으로 물러났다. 기겁하며 양팔을 들고 방어하려 했지만 미들로드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현장을 이탈했다.

“내가 쫓는다! 파스칼, 로봇 상태를 살펴! 마스크맨이 아끼는 로봇이야. 망가지면 안 돼!”

프랑수아는 재빨리 미들로드를 뒤쫓아 복도 밖으로 튀어나갔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저분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

“밖이 소란스럽군.”

쯔위민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보음이 울렸던 것 같은데. 별 것 아닐 겁니다.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하죠.”

“연기 말인가?”

“확답을 듣고 싶군요.”

“꺼삐딴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지. 원한다면 해주겠다.”

“좋아요. 준비해 두겠어요.”

똑똑똑

누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차희가 열어주자 신차민이 창백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비서님, 큰일 났어요.”

“큰일?”

“대표님의 로봇 있잖아요. 아리?”

“네. 아리가 왜요?”

“지금 박살 났어요. 아까 경보 울렸을 때 아주 강력한 마수가 나타났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대요.”

“뭐라고요?”

차희가 경악했다.

“대체 어떤 마수가 나왔기에 아리가 부서져?”

뒤에서 얘길 듣던 쯔위민이 끼어들었다.

“아리가 뭔데?”

“아까 그 로봇이에요. 습격을 받은 것 같아요.”

차희의 답을 듣고 쯔위민의 표정이 굳었다.

“래티시아는? 같이 있었던 거 아닌가?”

“그곳에 다른 피해자가 있었어요?”

차희가 묻자 신차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어요. 근데 이상한 건 핏빛야수 사체가 하나 있더군요.”

“다시 말해봐.”

쯔위민이 성난 표정으로 다가왔다.

“현장에 뭐가 있다고? 아니, 날 그곳으로 안내해라. 내가 직접 볼 테니.”

“누구예요, 이 사람?”

신차민이 황당하다는 듯 쯔위민을 가리키면서 차희에게 물었다.

“중요한 손님이에요. 일단 같이 갑시다.”

차희가 신차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신차민이 보고를 올리는 동안, 파스칼과 프랑수아가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헉.”

그 참혹한 장면을 맞닥뜨린 차희가 숨을 들이마셨다.

래티시아의 사체는 끔찍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현장까지 이동하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고, 살해된 지 얼마 안 된 시체는 아직도 피가 뜨겁다.

불과 수 분 사이에 갈기갈기 찢어진 몸뚱이. 다리 하나는 통째로 뜯겨나갔고, 배는 완전히 찢어져서 이빨 자국이 선명한 내장이 줄줄 내려와 있었다.

“래, 래티시아…….”

쯔위민이 충격이 큰 듯 비틀거렸다.

“아리, 괜찮아요?”

차희가 아리에게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

“치지직!”

아리의 머리에서 잡음이 튀었다.

“엔진이 망가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습격을 받았습니다.”

“대체 어떤 놈이?”

쯔위민이 분노에 차서 이를 부득 갈았다. 래티시아의 사체를 다시 관찰했다.

곳곳에 난 흉측한 이빨 자국과 손톱에 긁힌 상처. 마구잡이로 찢어진 피부들.

누가 봐도 마이어계의 누군가가 저지른 흔적이다.

“포로는?”

쯔위민이 아리에게 물었다.

“절 습격한 녀석이 구출해서 도망쳤습니다.”

아리가 대답했다.

“잠깐만요. 지금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군요.”

파스칼이 끼어들었다.

“프랑수아가 저한테 통역 마법을 걸어줬는데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건가요? 제가 한국말을 이해 못 하는 거예요?”

그는 혼란스럽다는 듯 쯔위민을 가리켰다. 루이도 이 남자에 대해 궁금해했었지. 이참에 알아볼 생각이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고 그 괴물은 무엇이었죠? 차희. 이 상황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이분은 외국에서 온 중요한 용병입니다. 그리고 괴물이라고 하셨나요? 본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차희가 역으로 질문했다. 쯔위민이 들으라고 물은 것이었다.

“그건 뭐랄까요. 구울 같은 거였습니다. 근데 엄청나게 크고 막강했어요. 그런 괴물은 처음 봤습니다. 웬만한 SS급 헌터들보다도 훨씬 강했어요.”

차희는 쯔위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가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쯔위민은 파스칼의 말을 해석하고 있었다.

‘마이어계는 인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인간 헌터들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비서님. 이 사체는 핏빛야수인 걸로 보이는데, 수거해 둘까요?”

아직도 쯔위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신차민이 묻자 차희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 전부 극비 사항입니다. 아무도 발설해선 안 됩니다. 신차민, 그리고 프랑수아, 파스칼. 세 분 외에 이 사실을 아는 다른 헌터들이 또 있나요?”

“아뇨. 지금은 저희가 다예요.”

신차민이 대답했다.“

“그럼 세 분은 지금부터 모든 걸 잊어버리세요. 신차민. 아리를 데리고 나가서 공학실에서 수리해요.”

“알겠습니다.”

신차민은 A급 헌터답게, 그 무겁고 거대한 아리의 몸뚱이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아리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는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유감입니다.”

차희가 말했다.

“이럴 줄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저희 책임이에요. 마이어 쪽의 사자가 제 예상보다 인계에 일찍 와있었던 모양입니다.”

“…….”

“시신을 수습해 드릴까요?”

“필요 없다. 콜로라엔 죽은 전사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기술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다만 잠시 혼자 있고 싶군. 래티시아는 나와 가장 오래 일한 동료였다.”

“작전은……. 하실 거죠?”

“그래. 곧 찾아가지.”

차희는 쯔위민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나왔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를 졸졸 따라왔다.

“훌륭했어요.”

차희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왜 아직 여기 있어요? 빨리 위치로 가 있어요. 난 지금 바로 다음 손님을 만나야 하니까.”

차희는 빠르게 별관을 빠져나와 뛰다시피 본관으로 돌아갔다.

***

아리는 공학실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금고에서 엔진을 꺼냈다.

에이비의 엔진.

진품은 여기 있었다. 미들로드가 부순 건 B급 보급형이었다.

“발 고쳐주세요.”

엔진을 갈아 끼우면서 아리가 말했다. 공학실 작업대에 고글을 낀 채 뭔가를 만들던 남자가 일어났다.

“어, 어쩌다 부쉈, 부숴졌어요?”

최근 백마 길드에 계약직으로 합류한 다니엘 윈턴이 고글을 벗으며 다가왔다.

“좀 일이 있었어요. 얼른 수리해 주세요.”

아리가 보챘다. 공학실 입구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귀빈용 접객실.

붕대를 칭칭 감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부패한 시체 같은 악취가 물씬 풍겼다.

차희는 접객실 문을 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섰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미안합니다.”

“아. 방금 왔습니다.”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썩은 생선 같은 초점 없는 눈동자.

“브리트마입니다.”

“인계는 처음이시죠? 반가워요.”

차희가 손을 내밀어 브리트마와 악수했다.

‘돌아가면 세정제 발라서 손부터 씻어야겠군.’

그녀는 속으로 생각을 삼켰다.

“미들로드는 어디에 있습니까?”

브리트마가 물었다.

차희는 접객실의 전화를 들고 어딘가로 연락했다.

잠시 후, 방 앞에 또다시 아리가 나타났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이번에도 쇠사슬에 포박된 미들로드였다.

아리는 미들로드를 거칠게 떠밀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차희가 브리트마 쪽에 보이지 않도록 미들로드에게 눈을 찡긋했다.

미들로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아리. 이제 가보셔도 좋아요.”

차희가 말했다. 그녀는 브리트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들로드, 분명 넘겨드렸습니다.”

“흐흐흐. 감사합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대표님을 만나실 거예요. 동맹 제안에 대한 준비는 다 되셨나요?”

“물론이죠.”

“근데 가능하면 대표님 앞에서 미들로드 얘긴 하지 마세요. 팁입니다.”

“왜죠?”

“미들로드를 숨기는 것 때문에 대표님이 정부와 마찰이 있었거든요. 굉장히 대표님의 신경을 거스르는 녀석이니 가급적 언급 자체를 자제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동맹 제안에 관해서 구미 당길 만한 논리와 동맹의 증표를 줄 수 있길 바라요. 뭐, 콜로라 전사 중 누군가를 구속해 두었다거나. 그런 거 말이에요.”

브리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계와 동맹 전선을 굳힌 다음 구울로 타락시키는 영약을 퍼뜨리고 콜로라와 연합해서 인계를 집어삼킨다.’

마이어의 인계 점령 계획의 포문이 멋지게 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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