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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83화 (183/260)

# 183

레벨업 속도는 9.8m/s^2 183화

58. 민차희

백마 길드 본사 앞.

그룬헤잘드 때문에 파손된 광장은 이제 거의 다 복구되었다.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헌터계 비즈니스의 중심 구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요즘 떠도는 인터넷 유머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S급 헌터의 사인을 받고 싶으면 국제 헌터 컨퍼런스 참석하는 것보다 백마 길드 옆 국밥집 가는 게 낫다.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든 발 빠른 헌터들은 백마 길드에 대거 영입되었다.

예컨대 길드 입구에 앉아 있는 헌터 루이 알뤼세르 같은 경우가 그렇다.

프랑스의 최상급 헌터.

다만 그는 레이드를 뛰는 헌터보다도 헤드헌터로 더 유명하다.

인재 발탁 능력이 귀신 같아서 이 방면으로는 백마중의 글로벌 버전이다.

마력 냄새를 기막히게 느끼고는 힘 있어 보이는 헌터들을 꼬셔서는 적재적소에 꽂아 넣는 것이다.

“키아.”

그가 벤치에서 발을 까딱거리며 지나다니는 헌터들을 구경했다.

벌써 SS급을 두 명 봤다.

S급은 이미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봤다.

“나 지금 헌터 컨퍼런스 온 거 아니지?”

그가 수행원으로 따라온 파스칼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백마 길드. 말로는 들었지만 진짜 이젠 세계 최정상이네요.”

“근데 내가 미국에서 듣기로는 이게 백마의 전력에서는 1할밖에 안 된다더라고.”

“그럼요?”

“2할은 메탈로이드고 2할은 마계래.”

“다른 차원이랑 연합을 한다는 거예요?”

“소문이야 소문. 아직까진.”

“나머지 5할은요?”

“마스크맨이 X라 개 짱 세다고 그러더라고. 나머지 다 합친 것보다.”

“에이. 저도 뉴욕 국제 연합 레이드 참전했어요. 저도 마스크맨 직접 봤지만 그 정도는……. 맞나? 그쯤 될 수도?”

“솔직히 이젠 우리의 예측 범위 밖의 인물이야.”

“글로벌 헤드헌터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웃기네요.”

“잠깐만. 쉿.”

루이가 파스칼에게 주의를 주었다.

“왜요?”

“저 사람…….”

“네?”

루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 머리가 삐쭉삐쭉 뻗친 건장한 중년 남자와 30대 정도 된 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외국인이다. 다만 국적을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외모다.

“저 사람이 왜요? 세요?”

파스칼이 물었다.

“야……. 미쳤어. 저거.”

루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강력한 헌터라도 마력 통제력이 충분히 뛰어나면 자신의 마력을 감출 수 있다.

그렇게 가라앉힌 마력을 알아볼 수 있는 축복받은 기감을 가진 헌터들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백마중이나 루이 같은 이들은 기감의 스펙트럼이 마치 마족처럼 예외적인 것이다.

가시광선 범위 밖의 적외선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조차도 고양이로 변신한 미들로드에게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 루이의 기감에 잡힌 남자에게선 차분히 가라앉은 심도 높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 깊이감은 SS급 헌터들을 모조리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강하다.

이런 걸 느껴본 적이 평생에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엘리지아 퀸이 나타났을 때.

또 한 번은 그 퀸을 마스크맨이 때려죽일 때.

“방금까지 마스크맨의 진짜 얼굴이 저건가 했는데 아닌 것 같아. 마력의 종류가 좀 다르군.”

“누군데요 그럼?”

“몰라! 처음 보는 얼굴이야.”

루이와 파스칼이 떠드는 사이, 두 남녀는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홀을 가로지르며 여자가 입을 열었다.

“입구의 남자가 당신에 대해서 얘길 했어요.”

쯔위민의 비서, 콜로라의 S급 전사 래티시아는 쯔위민을 힐끔 쳐다보았다.

“쯔위민. 조심하는 게 좋겠군요. 당신 마력을 느끼는 것 같았거든요.”

“느끼면 지가 뭘 어쩔 거야.”

“옌뚜르 대표님이 당신이 허튼짓 못 하게 하라고 제게 당부하셨어요.”

“래트시아, 너 옌뚜르 밑에서 일하냐? 내 비서 아니었어?”

쯔위민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긴 한데, 당신을 위해서 옌뚜르 대표의 말을 듣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거든요.”

“아이, 알았다. 사고 안 칠 테니 걱정 마. 그보다 씀푸에 대해서 뭐 좀 알아냈어?”

“아뇨. 마지막으로 여행했던 곳이 마이어계 쪽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 새끼들 수상해. 지난번에 척루인 실종됐을 때도 마지막으로 싸웠던 게 마이어계의 어떤 놈이랬어.”

“그렇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대표 사무실 앞에 이르렀다.

똑똑똑.

문을 노크하고 잠깐 기다리자 안에서 차희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콜로라에서 오신 분들이죠?”

“우린 마스크맨하고 얘기하러 왔는데. 네가 마스크맨인가?”

“아니요. 저는 마스크맨의 비서, 민차희라고 합니다.”

차희가 생긋 웃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녀는 두 사람을 들여 손님용 소파에 앉히고는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대표님이 지금 문제가 생겨 자릴 좀 비우셨어요.”

쯔위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오는 날인 걸 모르는가?”

“당연히 아시죠. 그래서 절 남겨두신 거예요.”

“뭐, 그렇다 치고.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척루인의 납치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했는데.”

“물론이죠. 대표님께 지시받은 부분이에요. 하지만 그 전에.”

차희가 쯔위민을 쳐다보았다.

“천계로 갔던 인계의 헌터 둘은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대표님이 궁금해하시더군요.”

“아직 전달받은 바 없다.”

쯔위민이 말했다.

“뭐 별일 있겠어? 옌뚜르 대표가 그쪽에 명령을 하달해 둔 걸로 알고 있다. 인간 헌터들을 포박하면 인계로 송환하라고.”

“그렇군요. 믿어보겠어요.”

“당연하지. 어서 정보부터 내놔.”

차희는 사무실 전화를 들어서 어딘가로 연결했다.

“아리. 데리고 와.”

그녀가 명령하자 쯔위민과 래티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데려오다니?”

“그런 게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깜짝 놀라실 테니.”

잠시 후.

아리가 대표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손아귀에 붙들린 것은 놀랍게도 포박된 마이어계의 강력한 마수였다.

쇠사슬에 칭칭 감긴 미들로드가 쯔위민과 래티시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뭐냐, 이놈은?”

쯔위민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척루인을 습격한 마이어계의 좀비예요.”

미들로드는 못마땅한 얼굴로 차희와 아리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리가 그의 등을 무릎으로 쿡 쳤다.

‘협조 좀 해요.’

아리가 눈빛으로 말했다. 미들로드는 몹시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티 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마이어계에서 척루인을 습격했다?”

“네. 그리고 약간 늦게 현장에 도착한 이 자의 동료가 척루인을 데리고 마이어계로 갔어요.”

“이 녀석은 왜 안 돌아가고 여기에 잡혀있지?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군. 마이어계에서 왜 척루인을 습격해?”

“잊으셨나요? 척루인은 테쿰세와 제다이를 살해하려고 했어요. 인계에서 가장 소중한 SS급 헌터 자원 둘을 없애려고 했죠. 그렇죠?”

쯔위민이 움찔했다.

“그렇…… 지.”

“마이어는 그 둘을 구해주어 우리 대표님의 호의를 산 후 협력을 요청했어요. 이 자는 대표님을 찾아왔고 같이 콜로라를 몰아내자고 하더군요.”

래티시아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말도 안 돼. 천계 몰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마이어는 고분고분했던 차원이에요. 갑자기 우리에게 저항할 리가 없어요.”

“그게 연기였다면요?”

“증명할 수 있나?”

차희가 미들로드를 쳐다보았다.

“네가 습격한 게 척루인이라는 걸 확인시켜드려.”

차희가 말했다.

“사실대로만 고하면 날 살려준다는 약속은 유효한 거겠지?”

“물론이지.”

차희가 단호하게 답했다.

의외로 미들로드는 훌륭한 액터였다. 그는 갑자기 역할에 과몰입하더니 메소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자는 일반적인 콜로라 전사들이 클로를 쓰는 것과 다르게 창을 쓴다.”

쯔위민과 래티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미들로드가 계속 말을 이었다.

“왼쪽 뺨에는 커다란 점이 있지. 그리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없더군. 쇄골 아래에 큰 상처가 있고. 투창을 만들어 던지는 기술이 주력이었고.”

“이…….”

갑자기 쯔위민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쓰레기가!”

아리와 래티시아가 뛰어드는 게 몇 초만 늦었더라도 미들로드의 머리가 박살 날 뻔했다.

“최고 전사님! 진정해요!”

뒤에서 그의 양팔을 붙잡은 래티시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최소한 지금은 죽이면 안 돼요.”

차희가 끼어들었다.

“왜 안 되지?”

“저희가 살려주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자는…….”

“잠깐만!”

래티시아가 날카롭게 들어오면서 말을 끊었다.

“최고 전사님. 이거 이상하잖아요? 인계는 콜로라에 적대적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협력 제안을 한 마이어를, 마스크맨이 우리에게 팔아넘긴다니?”

쯔위민이 씩씩거리며 차희를 쳐다보았다.

“아. 그건 또 사정이 있죠.”

차희가 싱긋 웃었다.

“마이어의 협력 제안은 뒤가 구린 일이라서 마이어와는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게 대표님 뜻이에요.”

“뭐라고?”

“마이어는 인계를 집어삼킬 생각인 것 같던데요. 인간을 좀비로 타락시키는 영약 같은 걸 개발했다고 들었거든요.”

쯔위민의 표정이 또 한 번 얼어붙었다.

이 새끼들 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야?

“누가 알려준 거지?”

차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미들로드를 가리켰다.

“우리가 그 많은 시간 동안 이 자를 심문해 보지 않았을 것 같나요?”

“테쿰세와 제다이를 구해주고 협력 제안하는 사자를 잡아다 심문을 했다?”

“물론이죠. 마이어계의 좀비들은 이미 인계를 한 번 침공한 적 있으니까요. 아무리 테쿰세를 구해줬다 해도 믿을 수 없었거든요.”

차희가 말했다.

“그래서 대표님은 이자가 찾아왔을 때 체포해 버렸죠. 학대하진 않았어요. 다만 왜 중동에서 알리야 같은 반군에게 좀비들을 대주면서 나라를 엎으려고 했는지. 그 좀비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따위를 물어봤죠. 공손하게 푸시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레 그 정보가 나오더군요.”

차희의 눈이 반짝였다.

“차원 연합을 만들지, 말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하지만 연합을 만든다 해도 마이어는 낄 수 없어요. 언제 우리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이들이니까.”

“그렇다고 우리에게 오픈할 이유가 있나?”

“앞으로 콜로라와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다면 미리 주는 선물이 될 거고, 그렇지 않다면 인계를 노리는 마이어를 우리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되든 이득이죠. 설마 한 번 배신한 마이어를 꺼삐딴에서 살려두진 않겠죠?”

쯔위민이 굳은 얼굴로 미들로드를 쏘아보았다.

“좋아. 생각해 보겠어. 배신이 확정적이라면 마이어는 내 손으로 직접 죽인다. 이제 왜 이놈을 처형하면 안 되는지 말해봐.”

쯔위민이 미들로드를 가리켰다.

“당연히 꺼삐딴으로 압송해야 하니까죠. 이자는 마이어계의 간부예요. 저나 마스크맨 대표님께 알려준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텐데요.”

차희가 말했다.

“예를 들면 납치된 척루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그동안 실종된 다른 콜로라 전사들이 어디에 있는…….”

“그만.”

쯔위민이 말을 끊었다.

“충분히 알았다.”

그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하다.

차희는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쯔위민의 머릿속엔 이미 실종된 동생 씀푸가 마이어계의 지하에서 죽어가는 그림이 아른거렸다.

차희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 거의 다 됐다.

“쯔위민 최고 전사님. 이 마이어계의 간부를 데려가셔도 좋아요.”

차희가 말했다. 쯔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래티시아. 이 녀석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순간이동석을 꺼내라.”

쯔위민이 명령하자 차희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쯔위민 전사님만이라도 좀 남아주실래요?”

“왜?”

“오늘 저녁에 마이어계에서 손님이 오거든요. 이 녀석을 데려가고, 반콜로라 전선 구축을 논의하러요. 그자와 얘기할 때 쯔위민 전사님이 참석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가 참석하다니?”

“생각해 둔 게 있어요. 그리고 래티시아 님? 이 마이어 전사를 데리고 먼저 가셔도 좋지만 순간이동석은 건물 안에선 안 돼요.”

“왜죠?”

“순간이동석을 쓸 때마다 마력 파장에 진동이 생기는데 건물 내에 그 진동값에 반응하는 무기들이 많거든요.”

“건물 밖에선 괜찮겠죠?”

래티시아가 물었다.

“물론이에요, 다녀오세요.”

차희가 생긋 웃었다.

아리가 나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백마길드 근처엔 일명 순간이동 명소 같은 게 있거든요. 길거리에서 하면 사람들 주의를 끄니까요.”

그는 미들로드의 머리에 천을 하나 덮어씌운 후, 래티시아와 함께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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