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81화 (181/260)

# 181

레벨업 속도는 9.8m/s^2 181화

“X바……. 이딴 식으로 전개될 줄이야.”

윤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충격적이다.

역사책이 책장에 가득했던 것이, 마제스티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엘룩스의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다니.

“카엘룩스는 배신자가 아니었군?”

“굉장한 충신이었지. 사지가 모두 찢어진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저항하려 했다.”

“나쁜 새끼들.”

“X등급 전사가 모든 걸 파괴해 버리는 걸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핑계대지 마. 그 놈은 이미 마제스티엘이 쫓아버린 상황이었잖아!”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는 상황이었지. 우리가 그때 X가 없어져서 시간을 벌었으니 마제스티엘을 살려 보내고 설득해야 했다고 생각하나? 만약 X가 정말로 차원 이동된 게 아니었다면? 이동한 곳이 바로 근처였다면?”

“뭐라고?”

“가능하면 가장 확실한 수단을 취한다. 이것이 옌뚜르 전사님의 모토다. 그게 최선이었다. 이후 나는 지혜롭고 강력한 카엘룩스로서 일리엘 같은 플라멘들을 하나씩 설득하기 시작했지. 지구의 수호자를 통해서 용제나 마왕은 이제는 내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지만.”

카일란이 말했다.

“이미 늦었다. 천계의 지배층은 나와, 콜로라에 붙은 플라멘들이니까. 우리는 이제 X로부터 이 차원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닥쳐!”

윤성이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관리자를 죽이고 모두를 속이고 자원을 빼돌린 새끼들이 할 말이냐? 조폭이 연쇄살인마한테서 사람 구출해 주면 그놈한테 처맞아도 감사해야 하냐?”

“좋을 대로 생각해라.”

“난 절대 용납 못 해. 내가 너희들을 전부 다 치워 버릴 거야.”

“좋다. 강한 적으로 보이는데 전력으로 받아주마.”

카일란이 말했다.

윤성은 바닥에 누워 있는 일리엘의 복장을 슬쩍 더듬었다.

<랜더의 전투복 발동!>

<디스가이징 발동!>

윤성의 복장이 일리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신기한 기술도 갖고 있군.”

카일란이 감탄했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에서 발사된 섬광이 카일란의 어깨를 스쳤다. 그는 오랫동안 천계에 눌러앉아 있었던 녀석답게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빠르고 유연하게 윤성의 공격을 회피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다음 스킬의 시전을 위해 한 박자 시간을 벌려고 했을 뿐이다.

랜더의 시계가 발동된 한 시간 안에 끝장을 보려면 모든 힘을 다 때려 박아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랜딩하면서 얻었던 버프 스킬.

<활화산 발동!>

쩍!

소름 끼치는 파손음. 바닥 아래에서 건물에 균열이 생겼다.

건물만이 아니다. 지면이 마구 찢어버린 종이처럼 사방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막대한 열기가 솟아오른다.

“뭐야?”

카일란이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쩍!

이제는 건물 외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매캐한 탄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군…….”

카일란의 얼굴에 여유가 싹 가셨다.

그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일곱 차원 중 어디에도 허락된 스킬이 아니다. 이런 건 수호자만이 간직하고 있는 것일 텐데……. 넌 대체 정체가 뭐지?”

콰아아앙!

결국 건물 토대와 기둥이 붕괴하여 무너지기 시작했다.

윤성은 인벤토리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건물이 박살 나면 야외전투가 될 거다.

얼굴을 공개한 채 이놈과 싸우는 모습을 여기저기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 네가 그놈이었군.”

카일란이 말했다.

“나는 네가 콜로라의 최대의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옌뚜르 전사님은 아직 너를 포섭할 생각인 모양이지만. 나는 절대 널 살려 보내지 않겠다.”

“동감이야.”

윤성이 그를 사납게 쏘아보면서 말했다.

“카엘룩스, 아니, 카일란.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

옥토리타스 말리엘은 다시 공터로 나왔다. 날아간 팔에 붕대를 잔뜩 감고서.

몹시 화가 난 표정이다.

“야, 이 도마뱀 새끼야.”

그가 실렌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내가 옥토리타스인데 어떻게 사제가 됐는지 모르지?”

콰앙!

그가 실렌티의 턱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아까 내 팔 날린 새끼 누군지 얘기해. 넌 봤지? 드래곤 정도 되는 동체 시력이면 봤지?”

말리엘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정체는 카일란 길드의 대전사.

카일란 길드는 천계 전쟁 이후 대표 카일란을 필두로 해서 천계의 지배를 전담했다.

다만 길드의 크기가 꺼삐딴에 비해 훨씬 작았던 만큼, 천사로 폴리모프하고 카일란을 보조할 전사의 수가 부족했다.

인력을 짜내고 짜내어서 최근에 카일란은 자신의 곁에 말리엘을 두었지만 그는 실력도 경험도 모든 게 부족하다.

말리엘은 아직도 실렌티의 전력이 회복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쿠웅!

그가 다시 한번 실렌티의 턱을 걷어찼다.

“크르르르르…….”

실렌티가 낮게 위협했다.

이미 말리엘의 공격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회복됐다. 아직도 실렌티가 엎드린 채 기다리는 것은 인계의 관리자라는 남자와 헬라엘이 뭘 꾸미고 있는지 몰라서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게 됐다.

“……!”

무언가를 느낀 실렌티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갑자기 신전 본관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지면이……?’

실렌티가 경악했다.

“이런 미친. 헬라엘!”

실렌티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말리엘이 뒤로 쿵 쓰러졌다.

<드래곤 피어 발동!>

“크아아아아아!”

실렌티의 포효가 신전 전역에 울려 퍼졌다. 패닉 상태에 빠진 천사들은 다리가 풀려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진짜 절망은 땅 아래에서부터 일어나는 중이다.

활화산.

화산 폭발을 구현하는 스킬.

윤성이 미국에서 척루인과 싸울 때는 이 미친 스킬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겨우 복구되었다는 그 턴파이크 국도 일대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괴물 같은 기술을 쓰지 않아도 척루인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카엘룩스는 아니다.

이 자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엘리지아 퀸처럼.

완전한 전투용으로 스킬 슬롯을 재조합했다.

1번 슬롯 : 빛의 탄환

2번 슬롯 : 급속 냉각

3번 슬롯 : 빛의 산탄

4번 슬롯 : 용조.

일대일 전투에 특화된 조합이다. 중금속 폭우나 인페르노는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폭발적인 위력을 가지지만 카엘룩스 하나를 잡기 위해서는 이런 조합이 낫다.

그러나 5번 슬롯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어팝토시스는 엘리지아 퀸의 핵도 제거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콜로라 전사를 상대로도 통할까?

그리고 마안은 조무래기들을 기절시키기엔 최적이었지만 카엘룩스를 상대로도 먹힐까?

‘일단 마안을 쓴다. 최소한 카엘룩스가 이쪽에 마안을 시전하면 그걸 맞찔러 방어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의외로 최면이 먹힐지도 모르는 일이고.

“마스크맨!”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부터 총알처럼 튀어 오른 카일란이 윤성을 향해 클로를 휘둘렀다.

캉!

윤성의 단검과 부딪히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일었다.

그들은 서로 합을 주고받으며 무너지는 건물 내벽을 달렸다.

<빛의 산탄 발동!>

윤성의 손아귀에서 발사되는 수십 발의 섬광에 카일란의 눈이 커졌다.

“헬라엘의 기술을!”

<디펜시브 윈도우 발동!>

카일란의 바로 앞에 반투명한 유리 장벽 같은 게 나타났다. 콜로라 행성에서만 전해지는 최고급 방어 스킬.

콰과광!

강력한 마력으로 통제된 산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 번에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윤성에겐 더 높은 공격력을 가진 스킬이 있다.

<용조 발동!>

콰앙!

드래곤의 손톱이 디펜시브 윈도우를 파괴하고 안으로 난입했다.

“큭!”

손톱 끝이 카엘룩스의 옆구리를 찢어발겼다.

<빛의 탄환 발동!>

콰악!

헬라엘이 절묘하게 윤성의 손목을 꺾어 공격을 흘렸다.

퍽!

이어진 발차기에 수 미터를 날아간 윤성은 공중에 뜬 상태로 빛의 탄환을 다시 쏘았지만,

<디펜시브 윈도우 발동!>

또다시 가로막혔다. 착지한 윤성은 이번엔 용조 대신 단검을 집어 들었다.

어깨와 팔뚝에 힘줄이 불끈 치솟는다.

<단검 투척 타깃.>

콰앙!

던져진 단검이 디펜시브 윈도우를 파괴하고 카엘룩스의 미간을 정확히 노렸다.

그러나 그 방향을 완벽하게 읽은 카엘룩스는 자신의 장검을 들어서 방어했다.

쿠욱!

그는 방어한 장검을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반격.

<하늘의 장검 발동!>

쐐애액!

하늘에서 거대한 마법 장검이 떨어져 내리며 본관 건물이 박살 났다.

“이게 무슨?”

우연히 밖을 내다본 카엘룩스가 충격에 빠졌다. 건물은 파괴되어 기울고 있는데 시야는 점점 올라가는 기이한 광경이다.

스킬 활화산.

그것은 아직도 발동 중이다. 분화구는 아직 분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면이 치솟고 있잖아?”

스킬을 시전한 윤성조차 당황했다.

쨍그랑!

복도 천장에 달려있던 전등들이 와르르 떨어지며 깨졌다.

유리 파편이 이쪽으로 쓸려온다.

어디선가 유황 냄새와 천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새까만 연기가 어느새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난간 너머로 신전에서 탈출하는 천사들이 보였다.

아직 덜 회복된 실렌티의 포효가 모두를 제압하지 못했던 덕에 몇몇은 도망칠 힘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플라멘들이 앞장서서 천사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공터 방향에서 실렌티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치솟았다. 그는 목 뒤에 헬라엘을 태우고 있었다.

“마스크맨!”

카일란이 윤성을 향해서 날렵하게 달려들었다.

카앙!

그의 클로를 윤성이 종단 속도의 단검으로 받아냈다. 팔뚝이 떨렸다.

“내가 진짜 카일룩스를 어떻게 죽였는지 알려줄까?”

카일란이 말했다.

<엘리멘탈 캐논 발동!>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빔이 윤성의 아랫배를 뚫었다.

“크학!”

이 공격은 꽤 강력하다. 하지만 버텨낼 만하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지만 당장 움직이지 못할 부상은 아니다.

윤성이 반격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카일란의 눈에서 스멀스멀 붉은 빛이 차올랐다.

<마안 발동!>

그러나 카일란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윤성도 마안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안 발동!>

마안끼리의 충돌은 콜로라 전사들이 힘을 겨룰 때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둘 모두 정신계 공격.

“크아악!”

카일란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윤성도 마찬가지다.

마력의 혼선이 생겼다. 서로의 마력이 뒤섞이면서 뇌를 직접 공격했다.

끔찍한 고통.

“으윽…….”

쿵!

윤성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붙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전경이 만화경 속을 보는 것처럼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카일란의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질 않는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이 사방에 섬광을 난사해댔다.

“제기랄.”

눈앞이 침침하다. 카일란은 이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윤성 쪽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하지만……. 나한텐 여기서 탈출할 수단이 있지.”

윤성이 난간 너머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캬아악!”

실렌티가 고함을 지르며 윤성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이쪽이야.”

윤성이 손을 쓱 들어 올렸다.

쿠우웅!

드래곤이 네발로 난간을 움켜쥐었다. 몸집이 큰 탓에 뒷발은 아래층의 난간을 잡아야 했다.

그의 목에 올라타 있었던 헬라엘이 복도 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윤성은 그들에게 마스크를 잠깐 벗어서 얼굴을 한 번 보여주었다.

“날 좀 도와줘.”

“좀 괜찮나?”

“아니. 상태는 안 좋아.”

“카엘룩스는 알아서 죽이고 탈출한다더니 그럴 꼴이 아니군.”

실렌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작전이 좀 꼬였어.”

윤성의 답에 헬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변환기를 떼어냈는데 본관에서 카엘룩스의 마력이 급격히 치솟아서 뭔가 잘못됐다 싶었지.”

“그래서 날 구하러 온 거군?”

윤성이 물었다.

“어서 올라타라.”

실렌티가 말했다.

윤성은 헬라엘의 부축을 받아서 실렌티의 목 위에 올라탔다.

쿠우웅!

실렌티가 난간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잠깐만. 저 새끼를 끝장내야 해.”

윤성이 복도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카일란을 가리켰다.

활화산은 충분히 끓어올랐다.

<활화산 발동!>

윤성이 손을 꽉 움켜쥐었다.

“분출해라. 폭발해.”

점점 의식이 혼미해진다. 윤성은 실렌티의 목을 끌어안은 채 기절했다.

그의 마지막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세계를 불사를 기세로 솟구쳐서 신전을 삼켜 버리는 염화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