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레벨업 속도는 9.8m/s^2 180화
57. 카엘룩스
“대천사님!”
천계 대전의 마지막 날.
플라멘 헬라엘은 검을 꽉 쥐고 마제스티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하늘 위에서 끔찍한 천둥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천계의 대기가 뒤틀려 있다.
그 불안정한 파장의 기이함이란.
X등급이 사라졌다.
아무리 관리자라지만 이것은 천사 하나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성공……. 성공하셨군요.”
헬라엘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감동이 차올랐다.
“X등급을. 그 괴물을 정말로 관리자님이 차원이동시켰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군요.”
바닥에 쓰러졌던 마제스티엘이 헬라엘의 팔을 붙잡으며 일어났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거의 모든 마력이 고갈됐습니다.”
마제스티엘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성공했습니다.”
“시간 벌이일 뿐입니다. 그놈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옌뚜르와 꺼삐딴도 문제예요.”
“대천사님이 조금만 회복되면 그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제가 X를 날려 버리는 동안 전장은 전혀 살피질 못했습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카엘룩스가 사라졌습니다.”
“카엘룩스가?”
“부상 입은 쯔위민을 뒤쫓는 걸 마지막으로 봤는데, 그 이후 보이지 않습니다.”
“쯔위민을 뒤쫓았다고요?”
“적진으로요.”
“카엘룩스는 강한 전사지만 쯔위민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마제스티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의 불안감은 카엘룩스가 위험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카엘룩스는 영민한 남자다.
적과 자신의 실력차를 느끼지 못하고 객기를 부리는 혈기 넘치는 그런 천사가 아니다.
“언제 들어갔습니까?”
“두어 시간 정도 되었……. 앗! 저거 카엘룩스 아닙니까?”
헬라엘이 전장 근처를 가리켰다.
피투성이가 된 카엘룩스가 검을 쥐고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었다.
“면목 없습니다. 쯔위민을 놓쳤습니다. 위험해 보여 중간에 빠졌습니다.”
그가 마제스티엘의 앞에서 고갤 숙이며 말했다.
‘단순한 기우였나?’
마제스티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괜찮습니다. 카엘룩스. 다친 덴 없습니까?”
“큰 부상은 아닙니다.”
“치료해 드리죠. 이리 오세요.”
“괜찮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아, 그리고 헬라엘. 일리엘한테 옌뚜르의 현 위치를 파악해 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다녀오죠.”
헬라엘이 마제스티엘에게 인사하고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대천사의 힐링 발동!>
마제스티엘의 고유 스킬이 발동했다.
일반 치유 스킬과 다르게 천사에게만 듣는 스킬이다. 빛이 스며들어 빠른 속도로 모든 부상을 회복시키는 최고위 치료 마법.
우우웅-
빛이 모여들어 카엘룩스의 팔뚝의 자상을 뒤덮었다.
그러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마제스티엘의 표정이 굳었다.
마력의 파장이 어긋나 있었다.
이 자는 천사가 아니다.
“이건……!”
푹!
카엘룩스의 칼끝이 마제스티엘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튀어 오르는 피.
짧은 순간의 신음과 그 살기에 반응한 헬라엘이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카- 엘룩- 스!”
칼을 뽑은 헬라엘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카엘룩스의 힘은 몹시 강하다.
캉! 깡!
몇 번 칼을 주고받은 다음, 카엘룩스가 약간의 거리를 벌리자 헬라엘이 주특기를 사용했다.
<빛의 산탄 발동!>
콰아앙!
산발적으로 치솟은 빛의 탄환들. 카엘룩스는 몇 발은 쳐냈고 몇 발은 피했지만 상당수가 몸에 박혔다.
헬라엘은 그에게 달려들기보다는 마제스티엘의 상태를 살폈다.
심각한 상황.
마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대천사님! 대천사님!”
헬라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큭…….”
마제스티엘의 손이 덜덜 떨렸다.
“헤. 헬라엘……. 카엘룩…… 크헉!”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치솟았다.
“카엘룩스! 이 개자식아!”
분노한 헬라엘이 카엘룩스에게 다시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우!
하늘에서부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형 호버링 전투선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 안에서 뛰어내린 것은 옌뚜르.
“성공했군.”
그가 박수를 쳤다.
“모두 옌뚜르 전사님 덕분입니다.”
카엘룩스가 말했다.
“이, 이 새끼들이…….”
“가자. 마지막이다.”
옌뚜르의 눈에서 붉은 빛이 차올랐다.
<마안 발동!>
“끄아아악!”
헬라엘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의 네 쌍 날개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방출되고 있었다.
“마안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습니까?”
카엘룩스가 감탄하며 물었다.
“숙달되면 누구나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옌뚜르가 날카롭게 클로를 세웠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헬라엘이 숨을 헐떡이며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엔뚜르의 클로가 헬라엘을 찌르기 바로 직전.
우우웅.
헬라엘의 몸이 새하얀 빛에 감싸였다.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대, 대천, 대천사님…….”
차원이동.
마제스티엘의 입과 두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대천사는 이미 생명이 한계에 이르렀다.
마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폐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 몸으로 차원 이동을 쓴다고?”
옌뚜르조차 마제스티엘의 결정에 감탄했다.
“아, 안 됩니다……. 대천사님…….”
헬라엘이 눈물을 흘렸다.
“비행을. 그 남은 마력으로……. 비행을……. 쓰세요. 제발……. 여기서 탈…… 출…….”
슈우우우!
헬라엘의 말끝이 차원이동 파장 간섭음에 묻혀 버렸다.
그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쿠웅.
동시에 마제스티엘의 몸이 쓰러졌다.
“고생했다.”
옌뚜르가 그에게 말했다. 마제스티엘은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편하게 해주마.”
“처, 천계를…….”
마제스티엘이 말했다.
“너희가…….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옌뚜르는 그를 잠깐 지켜보다가 클로를 날카롭게 세웠다.
푹.
칼날이 마제스티엘의 경동맥을 끊었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적이었다.”
옌뚜르가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아까전의 카엘룩스도. 좀 전의 헬라엘도. 천사들은 모두 명예와 의리가 대단하군.”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카엘룩스가 물었다.
“작전대로 가야지. 마제스티엘 같은 이의 명예를 더럽히려니 마음이 안 좋지만.”
<폴리모프 발동!>
“간신히 죽인 강적의 페이스다. 잃어버릴 순 없지.”
옌뚜르의 얼굴이 마제스티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근데 그냥 그 모습으로 통치하시면 안 되는 겁니까?”
“나는 비행을 못 쓰잖아. 금방 탄로날 거다.”
마제스티엘이 된 옌뚜르가 앞장서며 말했다.
“하지만 카엘룩스는 특별히 대단한 고유스킬이 없다. 속이기도 어렵지 않을 거다. 위치로 가 있어라. 카일란.”
***
옌뚜르는 마제스티엘의 얼굴로 콜로라 전사들을 이끌고 천사들의 본대를 침공했다.
“대천사님이 우릴 버렸어!”
“대천사님! 왜 이러십니까!”
절망에 빠진 천사들이 달아나며 절규했다.
X를 고원으로 유인하여 차원이동 시킬 테니 말려들지 않도록 그곳을 전장에서 분리되게끔 하라는 지시는 페이크였다.
마제스티엘은 쓰레기 같은 변절자다. 고원에서 그는 X등급과 옌뚜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마제스티엘과 콜로라 전사들이 수십의 천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제스티엘!”
하늘 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브레스 발동!>
용제가 뿜어낸 초고온의 화염이 지상을 뒤덮었다. 그러나 마제스티엘을 불사르기엔 역부족이다.
퍼억!
순간 무언가가 용제의 어깨에 날아와 박혔다. 소름 끼치는 기운을 뿜는 검은색 투창.
최고 전사 쯔위민이 지상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용제!”
실렌티가 고속으로 그를 향해 날아오며 소리쳤다.
“지금은 피하셔야 합니다! 마제스티엘이 배반한 시점에서 저 조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옌뚜르라도 오는 경우엔…….”
“크윽.”
날개에 박힌 투창이 스멀스멀 독을 퍼뜨리고 있었다. 드래곤의 마력으로도 제압할 수 없는 극독.
“용제! 당신의 지위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천계의 관리자가 아니라 용계의 관리자입니다. 이대로는 드래곤도 전멸합니다!”
실렌티가 소리쳤다.
용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원문 발동!>
콰아아앙!
강대한 차원문이 열렸다.
“모든 드래곤은 차원문으로 대피한다!”
실렌티가 포효했다.
차원문을 넘는 용제의 눈가가 젖어 있다.
“천계는 지구의 일곱 차원 중에서도 유독 대기 중 마력이 풍부해서 강력한 차원문을 쉽게 열 수 있지.”
그가 실렌티에게 말했다.
“그건 마제스티엘이 이곳의 대기에 마력을 지속적으로 퍼뜨렸기 때문이야.”
“…….”
“그는 차원 연합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래서 차원 간 다리를 만들려고 했지. 믿을 수가 없구나. 그 녀석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걸.”
용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분노보다도 슬픔이. 견딜 수가 없다.”
드래곤들이 떠나 버린 후, 현장에서는 마왕군과 마이어군도 차례로 빠져나갔다.
연합군은 와해됐다.
천사들을 지켜줄 이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들의 관리자가 차원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 끝이다.”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이자.”
“암전의 시간이다.”
오랜 전쟁에 지친 천사들은 저항을 포기했다.
땡그랑.
그들이 무기를 버렸다.
그러나 모두가 죽음만을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카엘룩스였다.
“일어나라. 천사들아.”
카엘룩스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끓어올랐다.
“배신한 마제스티엘을 징벌할 힘이 내게 주어졌다! 들어라! 천계의 위대한 존재들아!”
카엘룩스가 소리쳤다.
“수호자가 우리에게 광명을 내렸다! 천계는 굴하지 않는다!”
카엘룩스가 마제스티엘을 향해 돌격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마제스티엘과 콜로라 전사들을 모두 쫓아버렸다.
역사적인 전투.
천계의 진정한 지배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카엘룩스는 빛의 마법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