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77화 (177/260)

# 177

레벨업 속도는 9.8m/s^2 177화

56. 카엘룸

부둣가 근처.

한 무리의 천사들이 그물을 당겨 물고기를 꺼내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방울이 사방에 튀어 올랐다.

천계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깔. 자체 발광이 가능한 미세 플랑크톤들이 바닷물을 아름답게 반짝인다.

영양이 높은 그 플랑크톤들을 먹고 자란 생선들 역시 맛과 살이 풍부하다.

어부들은 커다란 통에 생선들을 담고, 그중 다섯 마리를 꺼내어 조그만 바구니에 넣어 한쪽에 두었다.

버리는 생선이다.

바닷가에서 생활하며 어업에 종사하는 천사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불문율,

그들은 잡은 물고기 중 일부를 항상 부둣가에 버려둔다.

마제스티엘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동네 고양이와 갈매기를 위한 문화였으나, 지금은 거지들을 위한 일이 되었다.

“버리시는 거죠?”

리베르티 계급의 천사 하나가 다가와 그들에게 물었다.

한때 위대한 플라멘이었으나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추락한 천사 헬라엘이다.

“네. 가져가셔도 돼요.”

젊은 노빌리스가 환히 웃으며 생선 바구니를 내밀었다.

헬라엘은 바구니를 들고 부둣가 구석으로 이동했다.

화물을 쌓아놓는 곳 근처. 썩은 생선 더미에서 악취가 풍겼다. 폐기된 그물이 가득 엉켜 있고, 그 옆에 남색 지붕의 집이 있다.

헬라엘이 지쳐 버린 일생을 무기력하게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철컥

집 안으로 들어섰다. 헬라엘은 지저분한 부엌문을 열고 냄비를 꺼내 물을 끓였다.

“어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헬라엘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화들짝 놀랐다.

아무도 없어야 할 그의 집에 누군가가 있었다.

“누, 누구야!”

고개를 돌린 헬라엘의 눈앞에 윤성이 서 있었다.

“나야. 좀 도와줘.”

그가 말했다.

신중석을 업고 정신없이 달려온 윤성은 헬라엘의 집에 숨어들어 왔다. 현관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파괴할 필요는 없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신중석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몸 곳곳의 상처는 치유 마법으로 이미 모두 고쳤다.

그러나 전투로 생긴 부상보다 탈진이 더 심각하다. 시간이 지나 깨어나더라도 바로 움직이는 건 무리다.

“이 사람은?”

헬라엘이 신중석을 보며 물었다.

“인계 친구야.”

윤성이 말했다.

“인계로 돌려보낼 거야.”

“이 사람 수배되어 있는 그 사람인가?”

“맞아. 카엘룩스로부터 구출했어.”

“카엘룩스한테서!”

“갑자기 드래곤들이 공습해서 카엘룩스와 싸움을 벌이더라고. 그 틈을 타서 쓱 빼냈지.”

“드래곤이 또 왔단 말인가?”

“전에도 온 적 있나?”

“후후후. 용제는 마제스티엘과 가장 친한 관리자였어. 그자는 마제스티엘의 죽음의 뒤에 카엘룩스가 있다는 걸 알지.”

헬라엘이 말했다.

“마제스티엘의 복수를 하려고 카엘룩스를 죽이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던데. 카엘룩스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드래곤은 누가 왔지?”

“굉장히 커다랗고 등줄기에 가시가 돋친 블랙 드래곤.”

“실렌티군. 용제의 오른팔이다. 아주 의리 있고 고결한 놈이지. 나하고도 친했어.”

“하지만 냉정히 얘기해서 카엘룩스를 이기진 못할 거야.”

윤성이 말했다.

“못 이긴다고?”

헬라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윤성이 설명했다.

“카엘룩스의 힘은 웬만한 차원의 관리자 수준이었어. 난 엘리지아의 퀸을 본 적 있는데 그 녀석보다도 더 강했다.”

“정말이냐?”

“그래.”

“말도 안 돼…… 카엘룩스는 분명 강력한 플라멘이었지만 실렌티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일곱 차원에서 관리자들을 제외하면 실렌티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메탈로이드 마더의 분신인 에이비 정도뿐이야.”

“그래? 하지만 아까 전엔…….”

“설마.”

헬라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그놈이. 마력 스톤을?”

“마제스티엘의 스톤을 카엘룩스가 가졌다는 건가?”

“그것밖에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그건 마제스티엘만 쓸 수 있는 물건 아냐?”

“그렇긴 한데 무슨 방법을 찾아낸 모양이지…….”

갑자기 방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신중석이었다.

“깨어났나?”

윤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신중석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지만 누운 채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꿈틀대고 있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양새다.

“이봐요. 괜찮아요?”

윤성이 그의 어깨를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다, 당신은?”

신중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보여.”

신중석이 두 눈을 감싸 쥐며 말했다.

“일종의 정신 공격이군.”

뒤에 서 있던 헬라엘이 끼어들었다.

“카엘룩스가 자주 쓰는 스킬 중 하나다. 아직 의식이 절반은 날아간 상태야. 아마 우주 속을 헤엄치는 기분일 거다.”

“이 스킬에 대해 알아? 치료할 수 있나?”

“내버려 두면 하루 이틀 안에 깨어날 거야.”

“지, 지금 대화하는 분 누구십니까?”

신중석이 누운 채 물었다.

“임수향은, 제 아내는 무사합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신중석 헌터. 저는 인계의 관리자입니다.”

윤성이 말하자 헬라엘이 깜짝 놀랐다.

윤성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소릴 냈다.

헬라엘은 그걸 윤성이 신중석을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안전합니다. 임수향 헌터 역시 인계로 무사히 송환되었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그리고 윤성은 신중석과 마법 연결된 손목시계를 그의 손아귀에 쥐여 주었다.

“내게 이 손목시계를 주면서 당신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확실하군요.”

그 마력을 느낀 신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

그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져 내렸다.

“관리자님.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대신전의 기도관에 마력 스톤이 있습니다. 카엘룩스가 그걸 가졌습니다. 내버려 두면 카엘룩스가 그것의 힘을 전부 흡수할 겁니다.”

“마제스티엘의 힘을 카엘룩스가 무슨 수로 가져가는 거지? 그 녀석은 관리자가 아닌데.”

“스톤의 파장 변환기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카엘룩스가 연구했던 기록이 있어요.”

“파장 변환기?”

“스톤의 마력 파장을 바꾸어서 마제스티엘이 아니라 카엘룩스에게 맞추는 것 같습니다.”

“대신전에 있다고요?”

“네. 그 정보를 얻고 나서 마력 스톤을 훔치러 기도관에 숨어들려고 하다가 발각됐습니다. 도망치다가 잡혔죠.”

“그 정보는 어떻게 얻은 거지?”

헬라엘이 물었다.

“카엘룩스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갈 곳 없는 리베르티인 척, 청소부로 신전에 취직해서 일하는 도중에요. 방 청소 명목으로 들어가 슬쩍 봤죠.”

“좋아. 정보의 출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당신을 믿을 거니까요.”

윤성이 말했다.

“그보다 마력 스톤을 인계로 가져갈 수 있습니까?”

“스톤 자체는 사람 주먹만 한 크깁니다. 기도관에서 빼낼 수만 있으면 될 겁니다.”

“다행이군.”

“파장 변환기는 나도 안다.”

헬라엘이 끼어들었다.

“아마 변환기를 제거하기만 하면 카엘룩스가 여태 얻은 힘을 모두 소실할 거다.”

“정말인가?”

“그래.”

잠깐만.

생각이 변했다.

‘그럼 변환기를 제거하고 마력 스톤을 빼낸 다음, 아예 카엘룩스를 제거해 버리는 건 어떨까.’

그자는 앞으로도 에어포스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거대하고 강력한 차원을 통째로 콜로라에 넘긴 배신자다.

앞으로 만들 연합에 천계를 포함시키기 위해서라도 그자를 살려두는 건 절대 안 된다.

이왕 죽일 거라면 방심하고 있는 지금, 변환기를 제거한 다음이 가장 좋지 않을까?

“기도관의 위치가 어딥니까?”

윤성이 물었다.

“대신전 동편입니다.”

“헬라엘, 날 좀 도와줘.”

윤성이 헬라엘에게 말했다.

“음?”

“나는 지금 가서 마력 스톤을 훔치고 카엘룩스를 살해할 생각이다.”

“뭐라고?”

헬라엘이 경악했다.

“그동안 이 사람을 지켜줘. 그럼 보상으로 마제스티엘을 부활시켜 주지.”

“대천사님께서 정말로 인계에 계신가?”

“더 이상 그의 이름은 마제스티엘이 아니다. 인계의 헌터 에어포스. 빛의 강체와 비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인계 최강의 헌터야.”

“비행…….”

“그리고 에어포스는 갓난아기 때 천계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그 사람한테 마력 스톤을 주고 마제스티엘의 힘을 각성시킬 거다.”

풀썩.

다리가 풀린 헬라엘이 주저앉았다. 그가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천사님께서…….”

“그러니 내가 올 때까지 여길 좀 지키고 있어줘.”

“안 됩니다.”

신중석이 말했다.

“뭐가 안 돼?”

“헬라엘이라고 하셨습니까? 플라멘 헬라엘. 맞죠?”

신중석이 주위를 더듬거리며 헬라엘을 찾았다.

“당신의 힘은 천계에서 마제스티엘 다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카엘룩스조차 당신보다는 약했다고. 우리 관리자를 도와주십시오. 여긴 저 혼자 있어도 됩니다.”

“미안하지만 난 힘을 전부 잃었어.”

헬라엘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냥 늙은 리베르티일 뿐이야.”

“파장 변환기와 마력 스톤이 있지 않습니까.”

신중석이 말했다.

“아!”

윤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수가 있었지. 그 물건의 파장을 너한테 맞추면 플라멘의 힘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가능은 할 테지만, 그게 그리 간단할까?”

신중석이 누운 채로 미소지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기도관으로 가는 길은 꽤 복잡합니다. 천사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관리자님께서 혼자 찾긴 어려울 겁니다.”

“신중석 헌터님은 정말 혼자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윤성이 물었다.

“저도 A급 헌터입니다. 버틸 만합니다.”

“좋아요. 헬라엘. 가자. 길 안내를 해줘. 나머진 내가 맡을 테니.”

***

윤성은 마치 리베르티 계급의 천사처럼 보이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핏빛야수 강윤성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했다.

카엘룩스를 만나면 콜로라 성인인 척해서 들어갈 것이고, 다른 천사들을 만나면 신전에 밥을 얻으러 온 거지나 잡일꾼인 척할 생각이다.

바로 옆에 실제 거지인 헬라엘이 있으니까 리얼리티가 살아난다.

윤성은 헬라엘과 함께 대신전에 들어섰다.

“와아……. 저게 뭐야?”

대신전 입구에 거대한 무언가가 쓰러져 있었다. 끔찍한 쇠사슬에 포박된 그것은 바로 실렌티였다.

수많은 천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멍청한 도마뱀. 아직 살아 있나?”

천사 하나가 그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날개가 세 쌍. 옥토리타스 계급이다.

플라멘만이 될 수 있다는 ‘사제’ 직위에 새로 임용된 유일한 옥토리타스.

굉장히 젊다. 나이에 비해서 옥토리타스라는 계급과 사제라는 직위는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이긴 하다.

여자들이 지켜보자 그는 으스대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퍽!

쓰러진 실렌티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옥토리타스는 그 앞에 쪼그려 앉고는 실렌티의 재갈 물린 턱을 어루만졌다.

“까칠까칠하군.”

“어머! 말리엘 님! 조심하세요!”

여자들이 그를 걱정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까짓 도마뱀.”

천사 말리엘이 권투 자세를 취하더니 드래곤의 콧잔등을 연달아 두들겼다.

실렌티는 너무 같잖아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걸 잠깐 지켜보다가 이윽고 짜증을 냈다.

“크르르르르르!”

입을 한 번 벌리지도 못하고 포박되어 엎드린 상태. 포효도 아니고 그로울링이다.

하지만 크기가 실렌티 정도이고 거리가 바로 코앞이라면 보통 사람은 혼절할 수 있을 정도로 공포스럽다.

너무 놀란 말리엘은 뒤로 쿵 쓰러지고 말았다.

“이, 이 새끼가!”

창피한 만큼 화가 오른 그가 벌떡 일어나서 실렌티를 힘껏 걷어찼다. 이번엔 마력이 실린 발차기다. 실렌티 입장에서도 꽤 아팠다.

드래곤의 머리가 꿈틀하자 말리엘은 신이 났다. 그가 실렌티에게 공격을 더 퍼부으려는 순간.

퍽!

무언가가 눈앞을 날쌔게 지나갔다. 그리고 실렌티에게 휘두르려던 주먹이 사라져 버렸다.

“으…….”

잘린 손목에서 끔찍한 고통이 엄습한다.

“아아아악!”

말리엘은 손목을 움켜쥐고 울부짖었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말리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실렌티는 방금 날아간 게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포착했다.

‘단검……?’

그 단검은 하늘을 빙 돌아서 다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대신전 동편 정원의 돌담 사이.

리베르티 두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실렌티에게 낯익은 얼굴이다.

‘헬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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