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레벨업 속도는 9.8m/s^2 175화
“더 이상 카엘룩스 님을 모욕하는 걸 참아줄 수 없어.”
칼을 뽑은 거지가 헬라엘을 겨누었다. 그가 자기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그렇지 않냐? 얘들아!”
“맞아!”
거지들이 저마다 품속에서 무기를 꺼내더니 일제히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분은 마제스티엘이 싼 똥을 다 치워준 위대한 천사야. 모욕하지 마라!”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린 콜로라의 지배하에 있었을 거라고.”
“죽여 버려!”
다른 거지들도 모두 칼을 빼 들었다. 그들은 헬라엘을 빙 둘러싸고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봐. 잠깐만. 다들 말로 하지.”
윤성이 말리려고 하자 그들은 사나운 표정으로 칼을 붕붕 휘둘렀다.
“넌 빠져 있어. 우리는 이놈을 죽여버릴 거니까. 아무리 리베르티라도 최소한의 예의와 법도 같은 게 있는 거야.”
“헬라엘 천사님을 사칭하는 것까진 정신병자니 그러려니 했다만 저 놈은 선을 넘었어.”
헬라엘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한때 플라멘이었다는 그 말이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그에겐 이 거지들의 공격을 당해낼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죽어!”
거지 하나가 단검을 역수로 쥐고 헬라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칼끝이 헬라엘의 가슴을 찌르기 직전.
콱!
윤성이 단검을 붙들었다. 맨손으로 검날을 잡았지만 마력을 듬뿍 머금은 피부는 강철보다 단단하다.
검날이 상하면 상했지 그의 피부에 상처가 생길 수는 없었다.
“익……!”
거지는 단검을 빼려고 위아래로 손을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만하고 가시죠. 굳이 피 볼 필요가 있습니까?”
“뭐야 너!”
다른 거지들이 윤성을 향해 으르렁댔다. 그러나 겁에 질린 표정들이다.
“다, 당장 그 손 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좋아요.”
와지직!
윤성은 손에 힘을 줘서 단검의 날을 박살 내버렸다.
“놓았습니다.”
손바닥을 펴며 단검 파편들을 후두둑 털어내자 거지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리, 리베르티가 아냐…….”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대체 정체가 뭐냐?”
“카엘룩스 님한테 알려!”
거지들이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이대로 보내줄 순 없지.
하지만 죽이기엔 시체를 처치하는 게 곤란하고.
윤성의 눈에서 붉은 빛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안 발동!>
털썩. 쿵!
땡그랑. 따랑.
거지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손에서 떨어진 단검들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좀 도와줄래요? 이놈들 벽에다 붙여놓게. 술 퍼먹고 잠든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에요.”
윤성이 헬라엘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앞에서 마안을 사용한 것은 일종의 떠보기이기도 하다.
마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거지들이 떨어뜨린 단검 하나를 집어 들고서.
“코, 코, 콜로라…….”
그가 윤성을 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나를, 날 죽일 거냐?”
그가 뒷걸음질 쳤다.
“그럼 이놈들을 왜 막았겠어?”
윤성이 바닥의 걸인들을 발로 툭 차며 피식 웃었다.
“너는 원래 플라멘이었다고 했지. 그냥 죽이기엔 너한테서 얻을 정보가 좀 많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라고?”
“넌 콜로라 본국으로 연행될 거다.”
“크윽.”
헬라엘이 검을 꽉 쥐었다.
“콜로라에 끌려가느니 여기서 싸우고 죽겠다. 덤벼! 어차피 마제스티엘 대천사님이 돌아가신 후 내 삶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어!”
“죽겠다고?”
“아무런 정보도 네놈한테 넘겨주지 않겠다.”
“넌 죽을 수도 없어. 내가 마안을 써서 기절시키면 되니까.”
윤성의 눈에 붉은빛이 차올랐다.
“크윽!”
놀랍게도 헬라엘이 단검으로 자신의 목젖을 향해 힘껏 찔렀다.
콱!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윤성이 그의 손목을 붙잡아 멈추었다.
“좋아, 합격이야. 콜로라로 데려간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난 콜로라의 적이니까.”
“뭐?”
“내가 여기서 믿을 수 있는 녀석이 없어서 널 잠깐 테스트했어. 이젠 콜로라에 대한 네 적개심과 마제스티엘에 대한 충절을 믿어보겠다.”
윤성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천사가 아니다. 콜로라 전사도 아니지.”
헬라엘이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윤성이 계속 말했다.
“난 너희 편이다. 그리고 아까 이놈들과 나의 대화를 들었다면 알겠지만, 난 천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헬라엘이 당혹감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히 이 남자는 도시 이름도, 카엘룩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건 천사라고 하든 콜로라 전사라고 하든 이상한 일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속는 셈 치고 날 한 번 믿어봐.”
윤성이 말했다.
“내게 천계의 역사에 대해서 브리핑해줘. 얘기하기 곤란한 부분은 건너뛰어도 좋지만 진실만 얘기해라. 난 마제스티엘을 부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마제스티엘을 부활시킨다고……?”
“그래.”
헬라엘은 잠깐 고민하다가 곧 결심을 굳혔다. 윤성을 믿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뭘 떠들어 댄다고 더 이상 손해 볼 것도 없다.
그가 얘기할 정보들은 이미 콜로라도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니까.
“좋다. 뭘 알고 싶나?”
“카엘룩스가 마제스티엘을 죽였다는 것 이후부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줘.”
“콜로라는 카엘룩스와 손잡고 천계에 연기를 해주었어. 마치 카엘룩스가 그들을 막아낸 것처럼 꾸며준 거야.”
헬라엘이 말했다.
“그렇게 카엘룩스는 천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대로 마제스티엘의 빈자리에 앉았지. 그놈은 카엘룸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이 도시의 이름도 카엘룸으로 바꾸었고, 쭈욱 천계를 독재했다.”
“근데 그런 연기를 해줘서 콜로라가 카엘룩스에게서 얻는 게 뭔데?”
“마정석을 얻지.”
“마정석?”
“난 마제스티엘 대천사님의 곁에서 콜로라와 함께 싸웠던 천계의 사제였어. 콜로라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아. 큰 비밀을 하나 알려주지. 오직 콜로라 성인들만 아는 정보야.”
그가 윤성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의 귓가에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콜로라 전사들은 마정석을 먹어서 전투력을 높일 수 있어.”
“그래?”
윤성은 놀란 척 리액션을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김이 빠져서 얼떨떨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윤성이 별로 놀라지 않자 약간 머쓱해진 헬라엘이 계속 말했다.
“그들은 마정석을 계속 갈취하고 있다. 이미 엄청난 양이 콜로라로 들어갔을 거야. 놈들의 전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겠지.”
“그렇군.”
“게다가 놈들은 천계의 마정탑도 파괴했다.”
“마정탑이 뭐지?”
“관리자의 마력 스톤을 보관하는 탑이었다. 그게 파괴되면서 마력 스톤이 소실되었고, 이제 천계의 마력은 매우 불안정해졌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천계에서 관리자가 태어나도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마제스티엘이 부활할 수 없다는 뜻이야.”
윤성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임수향이 전해주었던 얘길 토대로 생각해 보면 에어포스가 천사일 가능성은 꽤 높다.
그리고 만약 협회의 추측대로 그녀가 정말 천계의 관리자라면?
“관리자가 다른 계에서 성장할 가능성은 없나?”
“관리자가 성장하려면 그가 몸담은 차원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해야 해. 그러니까 관리자가 이미 존재하는 차원에선 마제스티엘이 성장할 수 없어. 젖병 하나로 애 둘 먹이는 꼴이니까.”
헬라엘이 말했다. 그는 말끝에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글쎄. 인계라면 가능성이 있겠군. 그곳은 관리자가 없다고 들었으니.”
윤성은 비교적 최근에 이 힘을 각성하게 되었으니 그 전까지는 인계에 관리자가 없는 셈이 맞다.
그럼 확실히 에어포스가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잠깐만. 그럼 나도 태어날 때부터 관리자였고 내가 흡수할 마력을 에어포스가 전부 먹어버려서 최근까지 난 각성을 못 했던 건가?’
이러면 또 상황이 복잡해지는데.
‘마제스티엘의 힘이 관리자 중 최고였다는 걸 볼 때, 에어포스의 성장이 끝난 건 아니다.’
마력 스톤이 없어서 인계의 마력을 흡수하는 ‘턴’이 윤성에게 넘어온 거라면?
‘그걸 에어포스에게 찾아주면 난 이제 성장을 못 하는 건가?’
심각한 고민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헬라엘이 혼자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인간들은 천사와 외모가 비교적 비슷하니까 대천사님이 그곳에서 성장했다면 어릴 때 해코지당하는 것 없이 인간처럼 컸을지도 모르겠군. 혹시 넌 인간인가? 마제스티엘 님께서 보내신 건가?”
“…….”
“그렇군. 최근에 인간 둘이 천계에 숨어들어서 논란이 됐었지. 용모파기가 너완 다르지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대천사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건. 비록 천계를 기억하진 못하시겠지만, 지구의 일곱 차원에 희망이 있다는 뜻이 되니까.”
“마제스티엘이 그렇게 강했나?”
“전설적인 존재였지. 무엇보다 그분은……. 다섯 쌍의 날개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그건 기적이었어. 그 어떤 천사도 하늘을 날 수는 없거든. 하지만 그분은 날 수 있었던 거야.”
이거 너무나 에어포스잖아?
“혹시 마제스티엘의 마력 스톤이 어디에 있는지 아나?”
윤성이 물었다.
“그건 모두가 추적하고 있는 물건이지. 카엘룩스조차도. 하지만 마정탑이 파괴되었을 때 그 물건도 소실됐어. 그곳에 보관되고 있었거든.”
“그래?”
“전에 온 인간들처럼 너도 그걸 찾는 것이군? 대천사님을 각성시키려고?”
신중석과 임수향의 이야기다.
“혹시 그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윤성이 물었다.
“잘 몰라. 하지만 사방에 그들의 수배 포스터가 깔려 있다. 아직 치우지 않는 걸 보니 잡히진 않은 모양이지.”
“좋아.”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 즐거웠어. 난 이제 가봐야겠어. 헬라엘, 다음에 또 보자고.”
“잠깐만. 혹시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부둣가에서 남색 지붕의 집을 찾아와라.”
“알았다.”
골목에서 빠져나온 윤성은 광장 가운데, 종탑 근처로 이동했다.
인벤토리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천계가 어떤 상황인지 대강 알았으니 이제 신중석을 찾아 움직일 때다.
‘상가 방향.’
종탑 옆 분수 근처에 두 명의 젊은 천사가 앉아서 얘길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날개는 한 쌍. 날개가 아예 없는 리베르티가 최하 계급이라면 저들은 그보단 위인 모양이지.
확실히 좀 전의 거지들에 비해선 훨씬 차림이나 표정이 좋다.
피부도 에어포스처럼 희다 못해 창백하다. 날개 한 쌍 이상 달린 천사들의 특징으로 보였다.
윤성은 광장을 쭉 가로질러 상가 거리에 들어섰다. 건물들이 모두 번쩍이는 광을 내며 열성적으로 영업 중이다.
사방에서 천사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신전에서 새로운 사제가 한 분 들어오셨는데 날개가 셋이더라.”
“날개가 세 쌍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사제가 돼? 옥토리타스 계급이란 거 아냐?”
“그러니까 말이야. 플라멘 사제 몇 분이 항의했는데 대천사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대천사님이 허락하셨으면 어쩔 수 없지. 무슨 뜻이 있을 거야.”
뿌우우!
갑자기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가로등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카엘룩스 대천사님께서 행차하십니다! 모든 천사들은 예를 갖춰주십시오!”
길을 바쁘게 지나가던 천사들은 모두 멈추어 서서 도로변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어이. 빨리해.”
윤성이 가만히 서 있자, 날개가 하나 달린 천사 한 명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리베르티 아니랄까봐 눈치도 없냐?”
그의 핀잔에 윤성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저 끝에서부터 거대한 천사들의 행렬이 몰려오고 있었다.
윤성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들을 관찰했다. 전면에 서 있는 남자 넷은 아름다운 네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다.
“고개 숙여 멍청아!”
옆자리의 천사가 윤성의 뒤통수를 쥐고 땅을 향해 쑤셔 박았다.
그러나 윤성은 보지 않아도 기감으로 느낄 수 있다.
강력한 힘.
찌릿찌릿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체감상 행렬을 이끄는 천사들 모두가 최소한 에이비 이상이다.
하지만 그 뒤, 거대한 마차에 올라탄 이의 힘은 차원이 다르다.
“카엘룩스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갑자기 도롯가에 엎드린 천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카엘룩스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엘룸의 영광!”
“카엘룩스 님의 빛으로!”
“광휘의 카엘룩스께 축복을!”
윤성은 고민하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 관리자를 확인했다.
중년의 남자 얼굴.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할 정도. 거대한 빛의 날개는 다섯 쌍이다.
그 마력은 정말로 예외적이었다. 엘리지아 퀸보다도 한 수 더 높은 듯싶었다.
관리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저런 힘을 갖고 있지?
“어이.”
날개 네 쌍이 달린 천사 하나가 윤성에게 다가왔다.
“왜 고개를 들지? 일어나라.”
그가 명령했다. 윤성의 옆자리에 있던 천사가 작게 아이고 소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