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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74화 (17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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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174화

“비서님!”

신차민이 신나서 소리쳤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옛날에 다윤이와 데이트를 하던 중 대표님에게 아르동의 장검과 루비 목걸이를 가져다준 적이 있다.

그때 분명 다윤은 차희 비서님과 친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다윤이의 오빠, 그러니까 윤성 형님이 비서님하고 동창이랬던가?’

신차민의 눈앞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백마 길드 대표 사무실 민차희.

아무 힘도 없는 일개 사원 신분으로 도 협회를 박살 낸 사람이다.

협회의 비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친분을 갖게 되었다는 마스크맨에 의해 숨겨진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백마 길드 지휘탑에 앉은 여자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백마 길드를 엄청난 크기로 키운 실질적 사령관.

“그건 뭐야?”

차희가 다윤이 집어 든 서류를 가리키며 물었다.

“비서님! 들어봐요.”

신차민이 잽싸게 달려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속사포처럼 따따따 떠들어댔다.

차희는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신차민의 얘기에 집중했다.

점장은 어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전부 사실이에요? 장학금을 분배하라고 하셨다는 거?”

차희가 점장에게 물었다.

“네. 우리 매장 규칙이 그래요.”

“그렇게 안 하면 고소한대요.”

신차민이 끼어들었다.

“6천 원짜리 샌드위치 먹은 거 횡령인가 뭐라면서.”

차희가 피식 웃었다.

“고소나 횡령으로 점장님이 고소하실 수는 있죠. 분명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점장님이 이미 매장 음식을 먹는 것에 동의하셨어요. 그리고 5천 원, 6천 원, 차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 오인을 주장하면 실제 처벌은 불가능할 거예요.”

차희가 다윤이 들고 있는 서류를 빼앗았다. 몇 번 접어서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대한민국 법이 아무리 허접해도, 판사도 10년 이상 법 공부한 사람인데 스무 살짜리 아르바이트생이 샌드위치 하나 먹었다고 절도나 횡령으로 처벌하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점장님은 협박죄가 적용될 것 같네요. 법을 이용해서 겁박하고 학생의 금품을 갈취하려고 했으니까.”

점장이 당황했다.

“저, 잠깐만요. 어디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왜 남의 매장 내부 사정에 끼어드세요?”

“전 다윤이 친한…….”

“그리고 다윤이 얘.”

점장이 재빨리 차희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차희를 꺾기 위해서 약간 세게 나가기로 했다.

“얘 지금 근무 시간인데 올라와서 남자 친구랑 노닥거리다가 걸린 거거든요? 업무 태만으로 징계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안 하는 것도 같은 식구니까 그런…….”

“원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네 시간에 30분씩 휴식 시간을 줘야 해요. 다윤아, 그런 거 받았니?”

다윤이 고개를 저었다. 차희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대부분 사업장 사장들이 그런 거 보장 안 해주지. 다윤아, 근로 계약서는 썼어?”

“아뇨…….”

“비정규직도 그런 거 써야 해.”

차희가 딱하다는 눈빛으로 점장을 쳐다보았다.

“노동청에서 점장님을 되게 좋아하겠어요.”

“아니…….”

“전 백마 길드 대표 사무실의 민차희입니다. 다윤이 친한 언니고요. 아직 법적으로 따지실 것 있으면 저희 회사 법무팀에 물어봐 드릴까요?”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

“그리고 장학금 받으면 점장님 포함해서 사내 직원들하고 다 나누라고 하신 거. 그게 여기 지점 규칙이라고요?”

“…….”

차희가 가소롭다는 듯 미소지었다.

“헌터커피 본사 대표인 S급 조쉬 헌터님이 마침 지금 백마 길드에 계세요. 조쉬 헌터님이 속한 길드 유니콘의 예속 문제를 처리하러 오셨죠.”

차희가 말했다. 그녀는 휴대폰에서 주소록을 찾아 누르더니 스피커폰을 켰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사람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점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저기, 지, 지금 어디에 전화 거시는……?”

“조쉬 헌터님한테 직접 여쭤보려고요. 그렇게 본사에서 학생에게 지원하는 장학금을 지점 점장이 매장 식구들과 나눈다는 명목하에 갈취하는 게 가능한지.”

“잠, 잠깐만요! 선생님! 잠시만요.”

점장이 황급히 차희에게 매달렸다.

“이다음엔 법무팀에 걸 거예요. 협박 및 금품 갈취로 형사 고발할 겁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

“헌터커피 본사가 체인 점장들한테 굉장히 잘해 준다고 들었는데, 점장님은 아르바이트생한테 왜 그래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제발 신고하지 마세요. 부탁드려요.”

“그렇게 간 작으신 분이 어떻게 사회생활 처음 하는 애들을 괴롭혀서 얼마 되지도 않는 장학금을 뺏으려고 하셨어요?”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해요?”

점장은 재빨리 다윤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 감싸 쥐었다.

“다윤아,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미안. 잘못했어.”

차희는 미소를 지은 채 다윤을 쳐다보며 눈짓했다.

다윤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차희가 휴대폰에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점장님, 근로 계약서부터 쓰세요.”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 다윤이 통해서 안 좋은 소리 또 들리면, 그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거예요. 헌터커피는 본사에서 헌터들 제휴 할인해 줘서 보통 고객 절반이 헌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차희가 창문 쪽을 쓱 훑어보았다.

“이 위치면 역 뒤에 유성 길드가 매출의 30퍼센트는 책임지고 있겠네.”

그들에게 이 지점의 이용을 자제하라는 은근한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백마 길드의 영향력은 헌터들에게 절대적인 것이니까. 조쉬나 법무팀을 쓸 필요조차 없다.

“죄송합니다…….”

점장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차희는 그녀를 잠깐 쳐다보다가 다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용도실에서 빠져나왔다.

“잠깐 둘이 얘기 좀 할게요.”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골목 옆에 서자 갑자기 다윤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고마워요. 너무 속 시원했어요.”

“네가 나 모르는 사람이었대도 이렇게 했을 거야. 난 저런 거 보면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사람이라.”

“언니가 와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와서 진짜 다행이지. 윤성이가 왔으면 여기 매장 없어졌을걸.”

다윤이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그보다 다윤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기특하네.”

차희가 다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르바이트 마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어?”

“이제 한 시간쯤. 내려가 봐야겠어요.”

“좋아. 끝나고 언니랑 맥주나 한잔할래? 차민이랑 같이. 언니가 술 가르쳐줄게.”

“좋아요!”

다윤이 활기차게 답했다.

“근데 오빠 어디 갔는지 아세요? 전혀 안 알려주고 가서.”

“걱정돼?”

“솔직히 항상…….”

다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여태까진 무사히 잘 돌아왔지만. 오빠가 갔던 곳들 보면 항상 위험한 곳이었잖아요. 10,000sY의 엘리지아 던전이나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 이번에도 평범한 곳은 아니죠?”

“내가 알기로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곳이야.”

다윤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걱정하지 마.”

차희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무사히 잘 돌아올 거야. 근거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어.”

55. 천계

천계로 이동하기 직전, 윤성의 채비는 약간 복잡했다.

일단 순간이동 직전에 마스크를 벗었다.

콜로라에 의해 멸망한 도시라고 했으니, 콜로라 전사들이 가득하다는 전제하의 선택이었다.

마스크맨을 발견한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그러나 강윤성의 얼굴이라면 여차하면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꺼삐딴 전사 강윤성인 척 연기할 수가 있다.

물론 천계에 아직 천사가 있을지, 아니면 콜로라 성인만 득실댈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 얼굴을 들이미는 건 꽤 도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계로 순간 이동할 수 있었던 배짱은 당연히 버프에서 나왔다.

비록 척루인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메탈로이드계의 버프는 이미 풀렸지만,

‘랜더의 시계가 있다.’

그 후에 한 번도 랜딩을 한 적 없고, 랜더의 시계에는 아직 100,000점에 이르는 막대한 버프가 저장되어 있다.

게다가 능력치 포인트도 찍었다. 생각이 있어 전부 분배한 건 아니지만.

만약 천계로 이동한 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천사이고,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랜더의 시계를 발동하고 제압하거나 내뺄 셈이었다.

만약 눈에 보이는 게 콜로라 전사들이 바글거리는 장면이라면 콜로라 성인으로 폴리모프할 계획이었고.

“우와, 뭐야, 이게?”

그러나 윤성이 천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엄청난 크기의 종탑이었다.

샌텀 타워 같은 빌딩 하나가 광장에 우뚝 서 있고 그 꼭대기 바로 아래에 덤프트럭만 한 크기의 황금 종이 매달려 있었다.

“와아…….”

아름답긴 하지만 구경할 겨를이 없다. 윤성은 고개를 숙인 채 근처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광장 방향으로 머리만 내밀어 상황을 살펴보았다.

은과 황동으로 장식된 빛나는 건물들. 은근하게 번지는 장미향. 먼지 한 톨 없는 이 세계는 빛과 향기만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콜로라 성인이 아니라 천사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지나가다 윤성과 눈이 마주쳤다.

‘과연 인간의 얼굴에 어떻게 반응할까?’

윤성은 약간 긴장하며 전투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으나 천사는 그에게 무관심했다.

그는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읽던 책을 옆구리에 끼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뭐야?”

이 차원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해서 별로 적대감이 없는 건가?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콜로라 때문인가?

“어이.”

골목 안쪽에서 남자 넷이 나타났다. 걸친 것이 누더기뿐이라 그야말로 네 명 모두 거지꼴이었다.

“혹시 먹을 것 좀 있나?”

그들 중 하나가 물었다.

“없는데.”

“돈 좀 있어 뵈는데, 같은 리베르티끼리 좀 돕지?”

“리베르티가 뭐지?”

“리베르티가 뭐냐니? 바보냐? 우리들을 보고 리베르티라고 부르잖아. 천계 최하 계급. 날개가 없고 피부에 색소가 있는 놈들.”

그가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종탑 앞을 지나갔던 그 천사는 에어포스처럼 피부가 창백하고 연했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는 훨씬 인간적인 외모였다.

북유럽 백인 같은 느낌. 알비노 같은 에어포스나 천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아, 그렇지. 근데 지금은 가진 게 없어. 미안.”

“쳇.”

“여기가 무슨 도시지?”

울성의 물음에 거지 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어디 아프냐? 문제 있으면 카엘룩스 님한테 가서 봐달라고 해!”

그가 말했다.

“카엘룩스가 누구지?”

“아픈 게 확실하군……. 우리 차원의 관리자님이잖아. 멍청아.”

“천계에 관리자가 있어?”

“……거 왜 X같은 마제스티엘 그 새끼가 천계를 팔아먹었을 때 콜로라 전사들을 물리치고 이 도시를 구해낸 분이 카엘룩스 님이야.”

“콜로라 전사들을 물리쳤다고?”

“그래. 너 상태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카엘룸 신전으로 가서 도와달라고 해라.”

“카엘룩스가 날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멸망한 동네라고 했는데 무슨 관리자가 있다는 건지.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골목 한쪽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흐.”

쓰레기더미 사이에 앉아 있는 걸인이었다.

“꼬마. 저놈들 말 믿지 마. 카엘룩스 그놈은 사기꾼이니까.”

걸인이 쓰레기통을 짚고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난 원래 플라멘이었다. 날개가 네 쌍 있는, 신전의 사제였지. 이름은 헬라엘.”

“저놈 정신병자니 무시해. 헬라엘 사제님은 예전에 전쟁 때 죽었다고. 그리고 저놈은 날개가 하나도 없잖아.”

다른 거지들이 말했다.

“내 날개는 모두 뜯겨진 거다. 나는 리베르티 계급이 되어버렸지.”

헬라엘이 억울하다는 듯 그들에게 항변했다.

윤성은 헬라엘에게 약간 관심이 생겼다.

“카엘룩스에 대해서 더 얘기해 봐.”

윤성이 그에게 물었다.

“카엘룩스도 나와 같은 플라멘이었다. 하지만 먼 옛날. 마제스티엘 대천사님께서 목숨을 걸고 콜로라를 막을 때 그분을 배신했어.”

그가 말했다.

“카엘룩스는 전장에서 대천사님의 등 뒤에 칼을 꽂은 거야. 아직도 왜 대천사님께서 그따위 놈을 나보다 더 신뢰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놈은 천계를 통째로 콜로라에 팔아버렸다고.”

“흠.”

“으으…….”

거지들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헬라엘을 노려보았다.

그들 중 하나가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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