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레벨업 속도는 9.8m/s^2 170화
김성인이 나서자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굴러온 대형 길드 대표답게, 김성인은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오후 네 시 무렵, 백마 길드 대표 사무실로 김성인의 전화가 온 것이다.
-아이고, 백마 대표님! 다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지금부터 언제든지 국군수도병원에 가시면 면회 가능할 겁니다. 대표님 길드에 계신 그 헌터님도요. 이름이 뭐랬죠?
“신차민입니다.”
-신차민 헌터님도요.
“감사합니다. 면회 시간 같은 건 따로 없나요?”
-하하. 걔네 입장에선 지금 엄청 똥줄 타들어 가는데 그런 걸 무슨 배짱으로 따지겠습니까. 새벽에 가도 면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근데 격리는 왜 한 건지 혹시 아시나요?”
-아, 임무 실팹니다. 근데 신중석 헌터님은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임수향 헌터님은 정신 놓은 상태고. 뭐 그러니까 일단 외부에 공개하지 말고 안에서 치료하면서 상황 두고 보자. 뭐 이런 식으로.
“쓰레기 같은 놈들.”
-동의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김성인 대표님.”
윤성이 끊으려 하는데 김성인이 황급히 붙잡았다.
-잠깐만요! 대표님?
“네?”
-혹시 예속 길드 지금도 계속 받으시는지……?
“고민 중입니다. 길드의 최상급 헌터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예속 신청하는 길드들은 많아서요.”
-아, 그렇군요.
“세인트 길드처럼 우수한 실력파 길드들만 있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 얘긴 혹시 저희 길드는 예속 가능하시다는 말씀이신지?
“그럼요.”
-알겠습니다. 제가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죠.
김성인의 목소리에 묘한 흥분감이 담겼다.
윤성은 전화를 끊고 차희와 신차민을 불렀다.
신차민은 진즉에 일 보러 나갔었고, 차희는 협회에 갔었다. 고제하를 백마 길드에 숨기는 일 때문에 윤성 대신 에어포스와 상담하러 갔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차희가 에어포스와 함께였다.
“에어포스?”
윤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어포스는 어쩐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면목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윤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네? 뭐가요? 아니, 에어포스가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아, 마스크맨만이 아니라 이쪽에도 사과해야겠군요.”
에어포스는 먼저 와서 소파에 앉아있던 신차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신중석 헌터님과 임수향 헌터님을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놀란 신차민이 허둥거렸다.
“에어포스는 워낙 바쁘시니 몰랐겠죠. 그리고 신중석 헌터님과 임수향 헌터님의 임무는 약 4년 전에 시작된 겁니다.”
윤성이 말했다.
“당시 에어포스는 아마……. SS급 헌터로서 국제무대에서 S급 던전들을 처리한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때였겠죠. 극비 임무였으니 모르실 만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고제하 협회장님 대신 협회의 책임자니까요. 신중석 헌터님과 임수향 헌터님의 임무 담당자는 아까 징계 조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근데 협회장님은요?”
“백마 길드 내 헌터 치료용 VIP 병동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직접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가급적 조용히 처리할 겁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좋아요. 치료계 헌터들한테 일러두겠습니다.”
갑자기 신차민이 끼어들었다.
“근데 대표님의 마력으로 힐링 스킬을 쓰면 협회장님 치료 가능한 각 아닙니까?”
윤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
“해봤다고요?”
신차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어포스가 끄덕였다.
그들이 귀국했던 밤늦은 시각의 일이었다.
제다이의 치명상을 치유하고 슬렌더맨의 핵을 파괴한 윤성의 능력을 믿은 에어포스가 고제하의 치료를 권유했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갔던 것은 실패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미 고제하는 모든 부상이 다 나았기 때문이다. S급 헌터 켄지가 현장에 있었고, 이후에도 치료를 도왔으니까.
찢어졌던 환부는 모두 아물었고 혈압도 호흡도 모두 정상이다.
즉,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부상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혼수 상태는 ‘치유’ 마법으로 치료할 수 는 없다.
고제하는 헌터로서 이미 은퇴할 시기를 넘겼다.
일산 전투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전투원으로 나섰지만 사실 전투를 치르기엔 위험한 나이였다.
그 일행 중에서 고제하만 부상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증거다.
고제하가 혼수 상태에 빠진 것은 단순히 상처와 엘리지아 마력의 중독만이 아니라 많은 나이 탓에 생긴 체력저하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랜딩을 통해서 고제하를 치료할 수 있는 스킬을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윤성은 그런 것을 줄곧 생각해 왔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단 메탈로이드 계의 우주 엘리베이터는 엄청난 버프를 줄 수 있지만 고제하를 치료할 스킬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번 타는데 S급 마정석을 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자주 사용하기 부담스럽다.
일단 고제하를 백마 길드에 숨겨놓고 보호하면서, 다른 바쁜 일들을 처리하며 방법을 찾아봐야한다.
“근데 지금 국군 병원으로 가십니까?”
에어포스가 물었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셋 다 같이 이동할 겁니다.”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에어포스가 물었다.
“에어포스가요?”
“국방부에서 담당했다곤 하지만 협회 소속 헌터입니다. 공동 전선 임무 수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제가 들어봐야죠. 그리고…….”
“그리고?”
“임수향 헌터님은 제 은사님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라도 뵙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윤성이 세 사람을 데리고 회사 리무진에 탔다.
차희가 운전석에 오르자 신차민이 붙잡았다.
“제가 운전할게요!”
“면허 있어요?”
윤성이 물었다.
“지난주에 땄습니다!”
“차희가 운전하는 걸로 하죠…….”
윤성이 조수석에 오르며 말했다.
신차민은 에어포스 같은 거물과 뒷좌석에 함께 앉게 되었지만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자 특유의 성격으로 다시 들떴던 것이다.
차희는 네비게이션에 국군 수도 병원을 찍고 차를 출발시켰다.
***
군 병원 입구.
경비 초소에서 젊은 군인 하나가 나와서 윤성의 리무진을 세웠다.
“어떻게 오신 분입니까?”
“임수향 헌터님 면회 왔습니다.”
차희가 설명했다.
그러자 이 젊은 군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면회 시간은 오후 네 시까지입니다. 다음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중요한 문제인데 오늘 뵈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윤성이 조수석에서 말했다. 그의 마스크를 보고 군인이 깜짝 놀랐다.
“마, 마스크맨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마스크맨이어도 안 됩니다. 규율은 모두가 지켜야 합니다. 면회 시간은 오후 네 시까지입니다.”
차희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에어포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히익.”
군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번엔 에어포스가 등장하다니?
“이미 국군수도병원 의무사령관하고도 얘기가 된 겁니다.”
“아,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얘기 못 들었습니다!”
“지금 확인해 보십시오.”
에어포스가 초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군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에어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으로 돌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아무런 탈 없게 무마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당신 입장을 고려해 주고 있는 것이니 어서 초소에 가서 전화해 보세요.”
“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군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초소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야!”
안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는 병사를 붙잡고 뭐라고 얘길 하더니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재빨리 윤성의 리무진 옆으로 튀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국군 수도 병원 소위 이운섭입니다. 실례지만 백마 길드 대표님 되시는지?”
“네.”
윤성이 대답했다.
“임수향 헌터님을 면회하러 왔는데, 지금 볼 수 있습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소위가 환하게 웃으면서 차량 차단기를 열어주었다.
임수향 헌터는 VIP 병동에 있었다. 대령급 이상만 사용하는 1인실. 그나마 대우가 좋아서 다행이지만 역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병실에 들어서자 신차민이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으며 임수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 차민을 발견하고는 복잡한 표정이 되더니 곧 울음을 터뜨렸다.
신차민을 꽉 껴안고는 흑흑 흐느꼈다.
그녀가 진정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소요됐다.
윤성은 바깥으로 나가서 담당 의사를 찾아 물었다.
“지금 임수향 헌터님의 정신 상태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상탭니까?”
“아, 그거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처음에 너무 과한 충격을 받아서 계속 횡설수설하셨는데 심한 정신질환은 아니고요.”
의사가 설명했다.
“지금은 괜찮긴 합니다만. 근데 천계가 어쩌고 하면서 계속 이상한 소릴 하시긴 합니다. 근데 문진 소견으로는, 솔직히 저는 심하다고 생각 안 합니다. 좀 안정되면 나을 수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천계 어쩌고라면 헛소리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다행히 제정신일 수도 있겠군.
윤성은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임수향 헌터는 이제 진정된 상태였다.
윤성은 침대 앞의 의자에 앉아서 임수향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마 길드 대표 마스크맨입니다. 활동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실까봐 알려드립니다. 이쪽은 민차희, 제 비서이고, 이쪽은 에어포스. 아시죠?”
임수향은 마스크를 쓴 윤성과 에어포스, 차민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백마 길드 대표님이시라고요?”
임수향이 물었다.
“네.”
“그렇게 소개하시면 안 되죠.”
임수향이 쓴 미소를 지었다.
“네?”
“앞으로는 인계의 관리자라고 말씀하세요.”
“…….”
약간 당혹스럽다.
물론 관리자 같은 개념이 고제하나 테쿰세 같은 최상급 헌터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알려지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윤성을 인계의 관리자로 지목하는 것은 매우 뜻밖이다. 뭔가 알고 있는 걸까?
“관리자님과 에어포스가 함께 저를 보러 오다니. 어쩌면 이게 다 운명일지도 모르겠군요.”
임수향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윤성이 물었다.
“저와 제 남편, 신중석은 천계로 갔습니다. 어떤 물건을 찾으려고 했죠.”
“마력 스톤입니까?”
“네. 그리고 실패했습니다. 제 남편은 아직 그곳에 남아 있고, 저는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어요.”
“천계엔 어떻게 가셨나요?”
“북한 허천읍에 순간이동 비석이 있습니다.”
“작전명 엔젤 스톤에 대해 읽어봤습니다. 찾으시려 했던 물건이 그 스톤인가요?”
“맞아요.”
임수향이 긍정하자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순간이동 비석은 작전 문서에 표시된 ‘서브젝트’ 때문에 생겼다거나, 뭐 그런 겁니까? 서브젝트가 누구예요?”
“순간이동 비석은 서브젝트를 찾으려는 천계의 천사들이 내려오며 세워둔 겁니다.”
임수향이 말했다.
“천사들이요?”
“제가 아는 모든 걸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23년 전부터 시작돼요. 제가 차민이를 갖기도 한참 전의 일이죠. 당시에 저는 유산을 한 번 했었고……. 그 아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레이드에 투입됐습니다.”
23년 전 북한 허천읍.
한반도 최강의 헌터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43세의 고제하가 이끄는 헌터 특공대. 북한 허천읍에 발생한 A급 게이트 때문이다.
그 마력의 규모가 너무 크고 강력해서 북한의 최상급 헌터들로서는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러시아는 자국 내의 S급 게이트 출현으로 정신이 없었다. 중국은 SS급 헌터 티엔과 라오후의 충돌로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내버려 두었다간 범람할 가능성이 높았고 북한 정권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
북한 정권은 비밀리에 남한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오는 길에 벌써 셋이나 처치했어요.”
28세의 백마중과 김성인이 투덜댔다. 8년 경력의 S급. 이제는 고제하만큼 숙달된 그들의 전투력은 매우 뛰어났다.
“계속 긴장하고 있어. 곧 게이트 들어갈 테니까.”
고제하가 말했다.
“누구누구 들어갑니까? 대장님하고 저, 백마, 그리고……?”
김성인이 뒤의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들 중 둘만 들어갈 수 있다.
두 사람은 상당히 숙달된 A급 에이스다. 신중석과 임수향.
하지만 이제 막 각성한 신인이 너무나 압도적인 실력자다.
“제가 들어갈게요.”
주력 능력치가 5,000점이 넘어버린 이례적인 신인.
신민수가 창을 움켜쥐며 말했다.
“신민수 들어가고, 신중석까지 들어가지. 임수향은 바깥에서 게이트 파장 지켜보고 북한 애들 엄한 짓 안 하는지 지켜봐.”
고제하가 명령했다.
게이트는 기존에 보아온 수많은 게이트들과는 다르게 새하얀 빛을 뿜고 있었다.
여태까지 오면서 만났던 마수들도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사람 모양을 한 위스프였다.
이런 타입의 마수는 도감에 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고된 일이 거의 없다.
“천계 타입이야.”
고제하가 혀를 차면서 게이트에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