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레벨업 속도는 9.8m/s^2 167화
턴파이크 국도.
한 명의 중년 남성과 30대 여성이 서성이고 있었다.
마력을 억누르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엘리지아 퀸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리암이 치명상을 입고 콜로라로 돌아와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음을 알린 시점으로부터 30분 후다.
대전사 척루인이 애먹을 정도의 상대라는 얘기에 상급 전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꺼삐딴의 간부들이 움직였다.
중년 남성으로 폴리모프한 최고 전사 쯔위민은 현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발견한 거라고는 약간의 핏자국뿐.
단서가 될 만한 게 없다.
최소한 부서진 리무진의 파편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리무진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인벤토리에 담아서 옮기기라도 한 것처럼.
“척루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정장을 차려입은 30대 여자, 꺼삐딴의 법관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그 새끼 요즘 마정석 좀 먹었다고 나댈 때 사고 칠 줄 알았어.”
쯔위민이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말하지 마요. 일 열심히 하는 후배인데.”
“그런 놈이 무관 학교 에이스라니. 학교 질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쯧.”
“아이고.”
“클리앙 정도는 되어야 에이스라 할 수 있지.”
“클리앙이 천재인 거지, 척루인이 부족한 게 아니에요.”
“척루인 그 녀석 이제 클리앙이랑 일대일로 겨루면 밀리지 않나?”
“아마도……. 하지만 그건 클리앙이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서 그런 거라고요. 그리고 조만간 우리도 따라잡힐걸요.”
쯔위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넌 모르겠지만 내가 따라잡힌다면 축하할 일이다. 쯔위민이 두 명이라는 것은 곧, 꺼삐딴의 전력이 두 배라는 뜻이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척루인 찾아낼 방법이나 생각해 봐요.”
베아트리체가 핀잔을 줬다.
“순간이동석이 있으니까 알아서 귀환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지금쯤은 콜로라로 돌아갔겠죠. 우리도 연락을 받았을 테고요.”
“그렇네.”
“쯔위민. 이 사건에 인계의 관리자가 개입했을까요?”
“그건 모르지. 리암 얘길 토대로 보면 지금까지 팩트는 마이어 쪽의 강력한 놈 하나가 척루인과 대치했다는 것뿐이야.”
“하지만 마이어계에 지난번에 가봤을 때 당신도 봤겠지만. 마이어 그 녀석도 별것 아니었잖아요?”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그래도 마이어는 척루인한텐 무리야. 관리자급은 간부가 아니면 어려워. 클리앙이 몇 달 더 크면 될지도.”
쯔위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에 척루인과 대결한 건 마이어가 아니에요. 마이어는 그 시각에 우리와 통신하고 있었잖아요?”
치지직!
마력파의 잡음이 튀었다.
공간이 붉은빛으로 일렁이며 뒤틀리더니 안에서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맙소사, 옌뚜르.”
쯔위민이 입을 쩍 벌렸다.
“양심이 있으면 50대 정도로 했어야지. 나처럼. 네가 뭐 베아트리체 또래냐?”
“인간 폴리모프는 서툴러서.”
꺼삐딴의 지도자, 콜로라의 집정관 옌뚜르가 말했다.
“척루인은?”
“없어졌어. 그리고 테쿰세도. 제다이도. 그 마이어계 괴물도 없고. 그냥 다 날아갔다고.”
“곤란하게 됐군.”
옌뚜르가 바닥의 핏자국을 찾아내 그 앞으로 이동했다.
“일단 마이어에게 따진다.”
옌뚜르가 말했다.
“그리고 인계의 관리자를 만나봐야겠어.”
“나중에 만난다면서요? 신원에 대해서 좀 알아낸 후에?”
베아트리체가 물었다.
“그러려고 했지만 척루인이 없어졌으니 어쩔 수 없지. 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척루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검은 컨테이너 안에 갇혀 있었다.
전신이 포박된 상태.
모든 장비는 해제되었고 소지품은 전부 강탈당했다. 인벤토리 주머니도 없고 순간이동석도 없다.
“크으…….”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렇게 강력한 마안이라니. 간부급이잖아?
철컥
문이 열리면서 마스크맨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마안은?”
척루인이 물었다.
“글쎄.”
마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콜로라 성인이라는 뜻이다.
척루인은 힌트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윤성의 몸 곳곳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피부색이나 질감, 문신, 콜로라의 물건들이 없는지 관찰했다.
그러나 전신을 감싼 전투복과 코트에는 피부가 노출된 곳이 없고 눈에 띄는 소품도 없다.
척루인의 시선을 느낀 윤성이 그 앞에 쪼그려 앉으며 웃었다.
“그만 힐끔거려.”
“넌…… 콜로라 성인이냐? 인계의 관리자인 줄 알았는데.”
마스크맨이 어깨를 으쓱했다. 척루인이 이를 뿌득 갈았다.
“왜 콜로라를 배신한 거지?”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그런데 지금 질문하는 쪽은 네가 아니라 나야. 죽고 싶지 않으면 성실하게 대답해.”
“하하. 콜로라 대전사인 날 협박하려고 하다니.”
척루인이 비웃었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것 같나?”
“어떻게 나갈 건데? 귀속된 순간이동석으로?”
윤성의 물음에 척루인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너와 일정 거리가 떨어지면 순간이동석은 다시 네게 돌아간다. 그렇지? 그럼 그걸 써서 콜로라로 돌아가려 했지?”
윤성이 피식 웃었다.
“자, 봐라.”
그가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건 반으로 쪼개진 순간이동석이었다. 척루인의 눈이 커졌다.
“순간이동석을 부쉈어……?”
“귀속되는 아이템이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부숴 버렸지. 기능을 잃어버리도록.”
“이걸 어떻게 부순 거지?”
“그냥 마력을 담아서 힘으로.”
충격적이다.
지구의 관리자들도 그 정도 마력과 완력을 가지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꺼삐딴 간부 수준의 실력.
게다가 귀속되는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안도 쓸 수 있었고.
척루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콜로라성인인가?’
척루인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마스크맨이 질문했다.
“넌 꺼삐딴 소속이냐?”
척루인은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꺼삐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지구 침공 사업을 맡은 최강의 길드다.
지구의 일곱 차원을 통틀어서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 난 꺼삐딴이다.”
척루인이 순순히 불었다.
“꺼삐딴의 군대가 얼마나 되지?”
“글쎄. 워낙 많아서.”
“넌 거기서 몇 번째 정도냐?”
“몇 번째냐고? 전투력으로?”
척루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하하 웃었다.
“나 같은 건 순위권에 들지도 못한다. 꺼삐딴의 핵심 전력은 최고 전사와 법관들이지. 나 같은 대전사는 삼류다.”
“흠.”
“내가 이런 얘길 해주는 이유는 네가 결국은 꺼삐딴의 간부진과 만나서 협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척루인이 말했다.
“그럼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지. 지금 지구로 오고 있는 X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도.”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데?”
“그가 오면 꺼삐딴의 비호 아래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다.”
“X등급 전사는 언제 지구에 도착하지?”
“모른다.”
“왜?”
“나도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그분은 너무 강력해서 인공적인 게이트를 이용한 순간이동은 불가하다고 들었다. 게이트가 부서져 버리니까. 때문에 우주 곳곳의 웜홀을 타고 오시는 중이다. 그리고 정확한 도착 시간은 간부들만이 아신다.”
“그렇게 됐군. 몇 개만 더 물어보자. 마이어계는 너희와 손을 잡았나?”
“그에 대해선 나도 모른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척루인은 감추었다. 꺼삐딴의 위세나 X의 강력함에 대해 설명해 주는 건 괜찮지만 마이어계의 포섭은 다른 얘기다.
윤성이 질문을 바꿨다.
“천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척루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천계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단 말인가?
‘콜로라성인이 아닌가?’
시사에 관심이 없는 쯔위민조차도 그건 안다. 워낙에 유명한 일이니.
“이건 대답하기 싫은 모양이군?”
윤성이 물었다.
“좋아. 얘기 안 해도 돼. 말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보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용계는 너희와 손을 잡았나? 용계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척루인은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마스크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오자 테쿰세와 클로이, 앤더슨, 제다이, 그리고 에어포스가 서 있었다.
물론 충격적인 비쥬얼의 미들로드도 함께다.
“이번에 큰일을 해줬다고 들었어. 미들로드, 고맙다.”
윤성이 그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이 컨테이너 안에 있는 생물을 먹어도 되나?”
미들로드가 물었다.
“그건 안 돼.”
“어째서지? 네가 먹을 건가?”
“내가 그걸 왜 먹어 미친놈아. 인질이니까 건드리지 마.”
윤성은 에어포스 쪽으로 이동했다. 테쿰세에게 손짓해서 가까이 오도록 했다.
“한동안 콜로라는 계속 제다이와 테쿰세를 노릴 거예요.”
윤성이 말했다.
“백마 길드 안에 두 분이 은신할 곳을 만들어 드리죠. 한동안 거기 숨어 지내세요.”
“감사합니다.”
“고맙다.”
두 사람이 인사했다.
“그리고 저 괴물은 우리가 한국으로 데리고 갑니다.”
“핏빛야수를요?”
에어포스가 물었다.
“백마 길드 지하에 처박아 놓고 얘길 계속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미들로드도 데려갈 겁니다.”
“나도?”
미들로드가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한테 한동안 인계에 붙어 있도록 해달랬잖아? 머물 곳을 구해줄게.”
“내겐 좋은 일이지만…….”
“대신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
“콜로라는? 마족은?”
“안 돼.”
“메탈로이드는?”
“그건 씹을 수 있냐?”
“물론이지.”
“안 돼. 아무튼 미들로드도 내일 아침에 제트기에 타고, 저 핏빛야수도 포박해서 데려가겠어요. 테쿰세와 제다이도 일단은 같이 가요.”
***
에어포스와 함께 탄 제트기는 서울공항에 착지했다.
군용 공항이고 민간에 개방되는 것이 아닌 탓에 윤성은 편안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출근할 땐 아니었다.
귀국하고 다음 날 아침.
윤성은 고양이로 변신한 미들로드와 함께 백마 길드 앞에 도착했다.
“뭐야, 이거?”
백마 길드 앞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진을 치고 있었다. 몸이 굳어버렸다.
전부 기자다.
기자가 40명 정도 있다. 저마다 대포 같은 카메라와 마이크 따위를 들고 출근하는 마스크맨을 찾고 있었다.
“미친.”
윤성은 건물 뒤로 삥 돌아간 다음 스킬을 사용했다.
<은신 발동!>
<랜더의 전투화 발동!>
옥상으로 점프해서 올라간 다음 비상구를 통해서 대표실로 이동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업무를 보던 차희가 놀란 표정으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은신 상태지.’
차희가 보기에는 문이 저 혼자 열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차희는 입구로 걸어와 문을 닫으려다 바닥에서 지저분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 밖, 복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다.
“뭐야? 어디서 온 거지?”
그녀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자기 자리로 이동했다.
업무 서류들을 다시 보았지만 한 번 흐름이 깨지니 다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을 켰다.
<마스크맨 귀국>
<마스크맨 뉴욕>
<마스크맨>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
<엘리지아 게이트>
<에어포스>
최근 며칠간 실시간 검색어와 TV 시사평론 따위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내용들이다.
10,000sY에 이른 역대급 게이트 둘을 모두 혼자서 처리해버린 남자.
마스크맨의 활약에는 전 세계가 감동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한국에서는 더욱 심했던 것이다.
백마 길드에도 마스크맨과 관련된 각종 비즈니스 문의와 인터뷰 요청 따위가 빗발쳤다.
“에휴.”
윤성이 너무 커져 버린 느낌이다. 그는 점점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젠 손에 닿지 않는 높이까지 가버린 것 같다.
“언제 오는 거야.”
차희가 중얼거렸다.
쿡.
누군가가 차희의 목 뒤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헉.”
등 뒤엔 창문뿐이어야 했다. 차희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를 벗은 윤성이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