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레벨업 속도는 9.8m/s^2 165화
다니엘 윈턴은 윤성과 함께 일한 이후 지금까지 어스뷰 서비스를 하지 않았다.
천생 겁쟁이였던 이 남자는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이라는 규격 외의 초거대 게이트에 다녀온 후 몸살이 났던 것이다.
“으으으…….”
어스뷰를 만드는 데 들인 돈이 워낙 막대한 액수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집도 팔아치웠었다.
때문에 지금 그가 끙끙 앓고 있는 침대는 어스뷰 연구소 내에 딸린 조그만 방 안에 있었다.
몇 번이고 악몽을 꿨다.
S급 마수 휴보와 그보다 훨씬 강력한 T505. 막강한 괴물들 사이에 뛰어든 마스크맨이 악마처럼 웃었다.
“히이익!”
이제 어느 쪽이 마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
로봇들은 저항 한 번 못 하고 모두 지자기 폭풍에 쓸려 나가고 말았다.
마스크맨은 깔깔 웃으며 다니엘의 손을 잡고 타워 옥상까지 전력 질주했다.
“사, 살려줘요. 살려, 살려주세…….”
눈물 콧물 짜내며 엉엉 울던 다니엘을 누군가가 깨웠다.
“다니엘! 일어나요!”
그를 깨운 것은 마스크맨이었다.
“헉.”
“마수들한테 쫓기는 꿈이라도 꿨나 보죠.”
“비, 비슷해요.”
정확히는 마스크맨한테 레이드 끌려가는 꿈이었지만.
“몸살이에요?”
“네, 네에…….”
다니엘이 식은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어, 어떻게 들어오신 거, 거예요?”
“문을 부쉈습니다. 미안해요. 나중에 배상해 드리죠.”
“…….”
<힐링 발동!>
윤성이 힐링 스킬로 다니엘의 몸살 기운을 몰아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치유 스킬들은 외상 치료가 전문이기 때문에 몸살 등의 인체의 면역 반응 같은 걸 어찌하진 못한다.
하지만 A급 이상의 상급 헌터들이 쓰면 몸살을 치유할 수도 있다. 그 인력이 비싼 탓에 대부분은 다니엘처럼 병원에서 약을 먹고 집에서 쉬면서 회복하지만.
윤성은 다니엘을 치료하고 일으켜 세웠다.
“같이 어디 좀 갈래요?”
“어, 어딜요?”
“메탈로이드 던전이요.”
“히익.”
다니엘이 질색했다.
“거, 거긴 또 왜, 왜요?”
“좀 도와주세요. 테쿰세가 위험합니다. 이번엔 안전해요. 메탈로이드도 없고. 아니, 없진 않은데 우리 편이에요. 엘리베이터만 한 번 수리해주세요.”
퀸이 만들었던 엘리지아 게이트는 시간이 지나 모두 소멸했지만,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 게이트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윤성은 다니엘과 함께 맨해튼으로 돌아와서 늦은 밤, 통합 던전 게이트에 입장했다.
아리는 에이비의 도시를 요새화하고 있었다.
마더가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하여 EI 차단기 수십 개를 만들어내고 마정석 대공포를 설치했다.
바토리에게 받은 마정석으로 로봇들을 부활시키고 있지만 작업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주인님! 대체 언제 오십니까? 다니엘 데려온다면서요?”
에이비의 타워 꼭대기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아리는 곧 무언가를 느끼고 재빨리 건물에서 내려왔다.
게이트의 파장이 매우 불안정하게 일렁거렸기 때문이다. 막강한 누군가가 통과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마스크맨이 아니면 대체 누구겠는가.
윤성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아리를 발견했다.
갑자기 처음 유나의 보육원에서 만났던 농구공만 한 크기의 아리가 떠올랐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이지 폭풍 성장이다.
윤성 역시 엄청난 각성을 이루었지만 아리 쪽은 뭐랄까.
강아지를 데려다 키웠더니 곰이 된 느낌?
그 막대한 힘과 덩치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오는 꼴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어쩐지 흐뭇한 기분.
“주인님!”
그러나 윤성 앞에 도착한 아리는 심각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서 피해야 합니다!”
“뭣?”
“마더가 침공하려고 합니다. 지금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여기로 쳐들어오고 있어요!”
“진짜냐?”
“당연 조크죠. 후후, 방심하셨군요.”
“너 혹시 양치기 소년 이야기 아냐?”
“모르는데 지금 서치해 보겠습니다.”
“아냐, 됐어. 근처 엘리베이터로 우릴 좀 안내해 줄래?”
메탈로이드계의 전투기 한 대를 타고 이동하는 길.
윤성이 물었다.
“근데 마더는 왜 아직까지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않는 걸까? 에이비가 죽고 이쪽 구역이 통째로 마비되었는데.”
“여긴 메탈로이드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입니다. 인계로 치면 뉴욕 같은 비즈니스 중심지죠.”
“근데?”
“섣불리 전쟁을 걸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쪽 군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꽤 치열할 거고, 이 도시는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질 거예요.”
“마더 본인이 오면 좀 쉽지 않을까?”
“바로 그게 포인트죠. 엘리지아 퀸도 잡아다가 척추를 꺾어버린 인계 최강, 최고의 관리자인 주인님이 있으니까 섣불리 못 건드리는 거죠.”
“그럼 내가 자리를 비우면 칠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만 쉽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원래 에이비가 죽으면 에이비의 마력은 마더에게 되돌아가는 구조입니다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죠. 마더의 힘은 반토막 난 상태예요.”
“왜 그게 안 됐지?”
“제 몸체가 에이비와 똑같았기 때문에 호환이 됐습니다. 에이비 엔진을 꽂았을 때 마력을 그대로 흡수했어요.”
“아아.”
“에이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시스템에 혼란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게이트도 안 닫혔죠.”
“그렇게 된 거였군.”
“이제 엘리베이터에 거의 이르렀습니다. 주인님이 저기 올라갔다 오시면 강해졌었죠? 이번엔 마왕 잡으러 가십니까?”
“그건 아니고. 아무튼 다니엘. 부탁해요.”
“네, 네에. 최선을 다, 다할게요.”
공돌이 그 자체나 다름없는 다니엘의 스킬이 발동하면서 엘리베이터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오전 아홉 시. 테쿰세는 리무진에 올라탔다.
헌터국에서 일하는 A급 헌터 클로이가 운전을 맡았다. 테쿰세와 앤더슨을 도와 여러 가지 어려운 업무를 쓱쓱 처리해 주었던 유능한 헌터다.
“왜 클로이가 운전을?”
앤더슨이 타면서 물었다.
“내 비서는 아파서 병원에 있거든.”
테쿰세가 답했다. 사실은 일부러 빼놓았던 것이다.
전날 밤 에어포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들었다. 그는 비각성자인 비서에게 휴가를 주고, 대신 A급 헌터 클로이를 불렀다.
물론 A급 헌터에게도 과한 업무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래도 A급이면 전투 중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10여 분 후에 도착한 제다이가 타고 마지막으로 제임스가 좌석에 앉자 곧 차량이 출발했다.
“근데 테쿰세. 그 고양이는 뭡니까?”
제임스가 물었다.
“에어포스가 맡긴 고양이야. 예쁘지?”
“냄새나는데요. 왜 데려가요?”
운전석에서 클로이가 말했다.
“둘 데가 마땅찮아서.”
“저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는데.”
“알레르기 반응 나면 얘기해. 내가 직접 잡아주지.”
테쿰세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손길이 미세하게 떨렸다.
고양이는 차량 뒷좌석에 앉은 제임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약 두 시간 반이 지난 후.
존F케네디 고속도로로 들어섰던 차는 델라웨어 강을 건너 브룩사이드를 지났다.
“뉴어크로 갈까요?”
클레이가 물었다.
“그쪽으로 경유하면 교통 체증에 차가 밀릴 거예요.”
제임스가 말했다.
“턴파이크 국도 따라서 쭉 가죠.”
이 일대는 옛날에는 민가가 꽤 있었지만 약 20년 전에 던전 범람으로 파괴된 곳이다.
현재는 턴파이크 국도만 간신히 복구된 상황.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복구 이전에 사용되었던, 뉴어크를 경유하는 간이도로를 더 많이 쓴다.
클레이는 제임스의 말대로 턴파이크 국도로 들어섰고, 이 도로에는 민가는커녕 차량도 드물다.
여기까진 계획대로다.
“후우.”
제임스가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테쿰세. 전에 헌터국 내부 긴급 미팅에서 그랬죠?”
“뭘?”
“마스크맨이 만들려고 하는 연합 길드를 믿어보자고요.”
윤성이 제다이에게 영입 제안을 한 후 미들로드를 만나러 갔던 때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에 테쿰세는 헌터국 긴급 미팅을 소집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안에 있던 S급 이상의 연방 헌터들을 소집했었다.
테쿰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얘기했지.”
“하지만 테쿰세도 아시잖습니까? 그런 길드 연합 같은 걸로 막을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란 걸.”
“…….”
“바가지로 물을 퍼다가 산불을 막겠다는 거와 비슷한 발상이에요. 진심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군요.”
제임스가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클로이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마스크맨 연합 길드? 뭐예요, 그게? 못 막는 상대는 또 뭐고?”
제다이는 황당한 듯 코웃음을 치고는 제임스를 쏘아보았다.
“그 정도 보안의 기밀을 지금 떠들어댈 이유가 있나? 클로이가 듣고 있는데 입조심 좀 하지.”
그러자 제임스는 갑자기 코트 안주머니를 살짝 열어 통신기를 보여주었다.
반짝거리는 파란색 불빛. 통신기가 켜져 있다. 제다이의 표정이 굳었다.
제임스는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통신기가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대화를 콜로라가 감청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충성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테쿰세를 용서해 줄 가능성은 높진 않다.
그들은 마스크맨을 중심으로 집결하려는 헌터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처형할 최상급 헌터를 물색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테쿰세가 살해당하는 것은 그의 지지 대상과 상관없이 예정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제발 콜로라 편에 남겠다고 얘기해요. 테쿰세!’
“미국은 오래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네. 제임스. 난 미국 원주민의 후손이니까.”
테쿰세가 말했다.
“내 선조들은 미국인처럼 독립된 국가를 만들지 못했네. 우리는 그냥 미국인이 되어버렸어.”
“갑자기 무슨 얘길 하는 겁니까?”
“그건 내 선조들에게 총과 화약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냐. 전쟁에서 연패해서도 아니네. 백인이 가져온 전염병 때문도 아니었지.”
“테쿰세? 지금 무슨……?”
클로이가 당혹스러운 듯 돌아보았다.
“우리가 독립하지 못한 건 연합력이 부족했고, 무력감에 저항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야.”
테쿰세가 말했다.
“부족들은 서로 갈라져서 공동 전선을 짜지 못했네. 그리고 패배가 거듭되자 조금씩 타협해 버렸지. 동해안의 원주민이 전멸하자 하나씩 식민지 사회에 동화된 거야.”
테쿰세는 고개를 저었다.
“콜로라의 힘과 기술은 일곱 차원을 모두 억눌러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이네. 나도 알아. 저항할 수 없는 적이라는 걸 안다고. 내 선조들에게 영국 개척자들이 그랬듯이 말이야.”
“…….”
“그러나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끝내는 이길 거라는 믿음으로, 시민들과 후손들을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그들 앞에 뛰어들어야만 해.”
“테쿰세. 지금 통신기 연결돼 있어요. 말조심해요.”
제다이가 테쿰세의 어깨를 움켜쥐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나 테쿰세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히어로 영화들에선 그런 걸 슈퍼히어로랜딩이라 부르더군. 설사 이길 수 없는 상대라 하더라도 우리의 자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뛰어드는 용기. 필사의 저항. 그걸 포기하면 나처럼 과거의 망령이 되어 미국인으로 남는 거야.”
“…….”
“물론 난 히어로가 아니지. 랜딩해 봤자 그들의 주먹 아래 짓이겨질 일반 시민에 불과해.”
콱!
갑자기 테쿰세가 제임스의 멱살을 쥐고 잡아당겼다.
그가 거칠게 통신기를 뜯어냈다.
“하지만 다들 똑똑히 듣게.”
그가 헌터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마스크맨을 믿어. 메탈로이드와 엘리지아 게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저력을 믿는다고. 그가 만들 연합 길드는 찢어진 차원들을 통합해서 결국엔 그들을 막아낼 거라고 믿네.”
“테, 테쿰세…….”
당황한 제임스의 눈이 커졌다.
“클로이, 차 세우고 도망치게!”
테쿰세가 소리를 질렀다.
클로이는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깨달았다.
그녀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테쿰세의 명령 때문이 아니다. 도로 저 앞에 사람이 둘 나타났기 때문이다.
“뭐야 저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산발한 흑갈색 머리카락과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진.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건장한 체구를 가진 괴물.
꺼삐딴의 대전사 척루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마법 투창 발동!>
그의 손아귀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해 한 줄기의 창을 만들어냈다.
“안 돼!”
클로이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콰아아앙!
맞은편에서 날아온 투창.
리무진은 상급 방어막 스킬이 작동하고 있었으나 바늘로 찌른 비누 거품처럼 터졌다.
투창은 전면 유리를 박살 내며 클로이의 뺨을 스쳤다. 뒷좌석에 앉은 테쿰세의 가슴을 뚫어버리기 직전.
팡!
썩어가는 시체 같은 팔이 나타났다. 투창을 움켜쥐어 허공에 세워버린 손아귀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팔은 고양이의 어깨에서부터 솟아 나온 것이었다. 고양이의 입가가 기이하게 일그러지며 끔찍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