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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64화 (164/260)

# 164

레벨업 속도는 9.8m/s^2 164화

메시지창으로부터 윤성의 손안으로 무언가가 톡 떨어졌다.

<퀸의 핵 획득.>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조그만 흰색 캡슐.

부화하기 직전의 도마뱀 알 같은 느낌이다.

‘퀸의 핵이라니. 굉장히 위험해 보이잖아.’

<퀸의 핵 : 자아가 없는 순수한 엘리지아의 핵. 엘리지아 차원의 토양에 심으면 엘리지아계 퀸의 유체가 탄생함.>

설명도 소름 돋는데. 그 괴물을 부활시킬 수 있다니.

“그게 뭐죠?”

에어포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음. 아닙니다. 잠깐 화장실 좀.”

윤성은 에어포스에게 보이지 않게 핵을 감추고 방에서 빠져나왔다.

인벤토리에 물건 넣는 걸 에어포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로 이동한 다음 주머니에서 인벤토리 쌕의 주둥이를 열었다.

<인벤토리>

넓찍한 창에 구울로 트랜스폼하는 영약과 오크 제사장의 엄니, 순간이동석들 따위가 나타났다.

윤성은 그 사이에 핵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금색 메시지창 하나를 발견했다.

<최초로 다른 계를 정복하였습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마왕이 윤성을 관리자로 처음 인정해주었을 때에도 파격적인 보상을 얻었었다.

최초로 다른 계를 정복한 것에 대한 보상

두고 볼 것 없지.

윤성은 Y 버튼을 눌렀고, 갑자기 검은색 옷 한 벌이 튀어나왔다.

<랜더의 전투복 획득.>

“앗.”

대박.

윤성은 떨리는 손으로 전투복 여기저기를 매만졌다.

미끈하고 신축성이 좋은 재질이다.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마력.

윤성은 화장실 가장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좀 전에 에어포스와 함께 쇼핑했던 후드티를 벗고 전투복을 입었다.

‘와, 뭐야 이거?’

전투복을 입는 순간 눈앞에 새로운 홀로그램 버튼 두 개가 나타났다.

<랜더의 전투복 Lv.1 옵션>

디스가이징, 사용 가능.

인비져빌리티, 사용 가능.

스킬이다. 이 전투복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처음 보는 스킬이지만 친절하게 설명창이 떠올랐다.

<디스가이징 = 모든 사물의 외형은 표면에서 반사된 가시광선이 주는 정보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스킬은 빛을 교란시켜 타인의 눈에 보이는 당신의 외형을 조작합니다. Lv.1에서는 복장만 조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이브된 외형 : 없음.>

‘미친…….’

스킬 정보를 읽고 있는데 화장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는 둘.

오싹.

뭔가 불편한 감각에 털이 곤두섰다. 윤성은 재빨리 마력을 억눌러서 기척을 숨겼다.

“헌터국은 당신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왜 이제야 온 건가요?”

S급 헌터 제임스의 목소리.

“위험해 보였다면 참전했을 겁니다. 옌뚜르께서 모두 생각이 있어 지켜보신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다른 남자가 답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다. 대체 누구지?

“그보다 마스크맨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내셨습니까?”

남자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헌터국이 확인한 정보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뿐입니다. 이것 역시 확실하진 않고 추측만 있죠.”

“한국인이라면 그가 활동했던 지역들 인근의 한국인들을 모두 조사해서 색출하면 되지 않습니까?”

“노력 중이지만 마스크맨이 활동한 시기와 겹치는 한국의 입출국 기록들이 지워져 있습니다.”

“뭐라고요?”

“특히 중동에서 마스크맨이 활동했던 때 말입니다. 중동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마스크맨은 그 전에 한국에 있었으니까 분명 비행기를 탔을 텐데.”

“그런데 출국 기록이 없단 말입니까?”

“다 지워져 있었습니다. 아마 고제하 협회장이 그를 감추기 위해서 굉장히 무리한 모양입니다.”

“짜증 나는 영감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죽여 버려야겠어요.”

“뭐라고요? 고제하를?”

“우리와 접촉하고 있었으면서 관리자를 숨겨둔 남잡니다. 내버려 두면 안 돼요. 본보기로 처리해야죠.”

“그, 그렇군요.”

“제임스. 당신도 조심하십시오. 콜로라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

남자의 말이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저벅, 저벅.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떡하지?’

윤성은 고민에 잠겼다.

아직 퀸을 제압했던 그 어마어마한 마력이 남아 있다. 놈과 싸워서 못 이길 것 같진 않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선 지금처럼 숨어서 엿듣는 게 가장 좋다.

싸움을 벌인다면 얻을 수 있는 걸 전부 얻어낸 다음이어야 한다. 전투 중에는 순간이동석으로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인비져빌리티 스킬을 써볼까?’

<인비져빌리티 발동!>

스킬을 쓰는 순간 윤성의 형체가 흐릿하게 변하더니 반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인비져빌리티 : 3,600초>

‘앗!’

변기 위에 놓인 후드티가 눈에 띄었다. 저걸 안 숨겼군!

윤성은 그걸 황급히 집어 들었다. 허공에 후드티가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철컥!

문이 열리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인벤토리에 티셔츠를 집어넣었다.

문을 연 남자는 윤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화장실 변기만 보였던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본 윤성은 숨을 헉 들이마셨다.

영국의 S급 헌터 리암 왓슨.

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너무 신경이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리암 님.”

“그런 것 같군요. 마스크맨이 그 엿 같은 연합 길드 같은 걸 만든다고 나대는 바람에 일정이 꼬이고 있습니다. 마계가 요즘 비협조적이에요. 엘리지아는 멸망해 버렸고. 메탈로이드는 거의 마스크맨의 손아귀에 절반은 들어가 있고. 이젠 인계 헌터들까지!”

리암이 짜증 난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혹시 마스크맨을 죽일 계획은 없습니까?”

제임스가 물었다.

“놈의 전투력이 예측이 안 됩니다. 섣불리 움직일 순 없어요. 그리고 옌뚜르님은 그자를 포섭하고 싶어해요. 그러니 우리가 협박이나 회유를 하기 좋게 그의 개인 정보들이 필요한 겁니다. 가족 관계라든지.”

“하지만 X등급 전사님이 오시면 그의 전투력이 얼마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임스가 물었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이 행성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배하고 싶습니다. X급 정복자처럼 전부 파괴하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제 그분이 지구에 거의 근접하셨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해요.”

“근데 테쿰세 헌터님의 생각이 바뀌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바뀌다니?”

“며칠 전부터 마스크맨이 관리자인 것 같다고 얘길 하더니, 이젠 그를 믿어보자는 식으로…….”

“콜로라를 따르지 않겠다는 겁니까?”

“아마도요.”

“정말 건방지군요. 고제하도, 테쿰세도. 한 국가의 헌터 조직을 이끄는 수장들은 모두 수호자에게 정신 교육이라도 받았답니까?”

리암이 화를 냈다.

“테쿰세의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오후 두 시에 미 대통령을 만나서 맨해튼 전투에 대해 브리핑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백악관으로 갑니까?”

“네.”

“비행기? 아니면 헬기?”

“차를 타고 갈 겁니다.”

“몇 시간은 걸릴 텐데.”

“하지만 테쿰세가 원래 비행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고제하보다 먼저 처형해야겠군요.”

“……직접 하실 겁니까? 테쿰세는 쉽지 않을 텐데요.”

“제가 그동안 먹은 마정석이 수백입니다. 지구엔 마정석이 풍부하니까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죠. 지금은 혼자서도 테쿰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리암이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테쿰세의 차량에 누가 동승합니까?”

“저와 앤더슨, 그리고 SS급 헌터 제다이요.”

“앤더슨은 별것 아니지만 제다이는 좀 거슬리는군요.”

“그자, 마스크맨의 길드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대통령을 보러 가는 걸 겁니다. SS급 헌터의 해외 길드 입단에는 대통령의 허가도 있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척루인 선배님께 부탁하겠습니다.”

“척루인?”

“당신은 본 적 없겠군요. 최강의 전사 중 하납니다. 아무튼 제임스. 차를 타고 가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면 제게 메시지를 보내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발신기의 위치에 맞춰서 근처로 순간이동 할 테니.”

“그 정도로 인적 드문 곳이 없을 겁니다. 뉴욕 시민들 대부분이 빠져나갔다가 돌아오고 있어요.”

“일반인 차량 몇 대쯤은 근처에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전부 죽여 버리면 되니까. 제 말은 민가나 주유소가 있는 데서 멈추지 말라는 겁니다.”

“아…….”

“자동차들은 인벤토리에 담아서 치워버리면 전투 흔적이 남지 않지만 민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가보죠.”

리암이 순간이동석을 써서 사라졌다.

제임스까지 나간 후, 윤성은 조용히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인비져빌리티 해제>

굉장한 전투복이다. 거의 뭐 스파이질 하라고 보내준 선물 수준.

적절한 시기에 얻은 이 행운의 아이템 덕분에 중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테쿰세가 위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다이도. 이제 백마 길드의 일원이 될 텐데 죽게 둘 순 없지.

리암을 잡아다 족칠까 생각도 했지만 척루인이라는 놈한테 흥미가 생겼다.

윤성은 곧장 복도를 가로질러 에어포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에어포스!”

“와, 뭡니까? 그 전투복?”

“또 다른 팬이 줬어요.”

“대단하군요. 제가 사드린 후드티는?”

“아……. 제 사물함에 두었어요.”

윤성이 둘러댔다.

에어포스의 발치에서 고양이로 변신한 미들로드가 앉아서 쉬고 있었다.

“에어포스! 우리 귀국하는 비행기 내일이죠?”

“내일 오전 아홉 시입니다.”

“이틀만 늦춥시다.”

“네?”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내일 테쿰세가 백악관까지 차를 타고 갈 겁니다. 그걸 쫓아갔으면 좋겠어요.”

“왜요?”

“테쿰세가 핏빛야수들에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내일 가는 길에 암살당할 거예요.”

에어포스가 경악했다.

“정말입니까?”

“네. 그리고 영국의 S급 헌터 리암은 핏빛야수예요. 제임스는 그들과 내통하고 있고. 내일 제임스가 테쿰세의 차에 동승해서 콜로라 쪽에 신호를 보낼 겁니다.”

“맙소사.”

“같이 차를 타고 테쿰세 차량을 뒤쫓아야 해요.”

윤성이 말했다.

테쿰세에게 얘기하고 뒷좌석에 인비져빌리티를 사용하고 앉아 있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안 될 것 같다.

지속 시간이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워싱턴 D.C로 가는 도중에 해제될 테니까.

그리고 인비져빌리티는 아마 눈에 안 보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좌석에 앉으면 쿠션이 눌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겠지.

차를 타고 뒤따라간다.

인적 드문 곳에서 제임스가 차를 세우고 리암이 순간이동으로 날아오면 그때 놈들을 친다.

“운전할 줄 아세요?”

에어포스가 물었다.

“누가 콜로라 편인지 알 수 없는 이상, 그렇게 중요하고 위험한 일이면 아무한테나 차를 몰게 할 순 없습니다.”

“운전이야 할 줄 알죠.”

“국제 면허 말입니다.”

“지금 그걸 따질 땐가요?”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에 자신 있냐는 뜻이에요. 지금 시기엔 도로에 차량이 꽤 많을 테고, 이곳은 한국과는 교통법 차이가 꽤 납니다.”

“음.”

“여기저기 사고 내면서 쫓아가면 적들이 눈치챌 수도 있고, 차가 멈추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죠. 티 나지 않고 능숙하게 테쿰세 차량을 뒤쫓을 자신이 있나요?”

“에어포스는 면허 없나요?”

“전 비행 스킬이 있는데 운전면허는 필요 없죠.”

“그럼 절 집어 든 채 비행을 써서 차를 따라가는 건 어때요? 어느 정도 높이에서 테쿰세 차량의 바로 위를 날면 들키지 않을 것 같은데.”

“…….”

에어포스가 잠깐 말을 잃었다.

“SS급 헌터인 저를 비행 셔틀로 쓰는 건 전 세계 통틀어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하하.”

윤성이 머쓱한 듯 웃었다.

“전 에어포스와 같이 일해서 너무 좋아요. 당신은 정말 최고의 파트너예요.”

“차희 씨한테나 잘 하십시오.”

에어포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런 의미 아니었던 거 알죠?”

“압니다. 놀리지 마시길. 테쿰세가 내일 언제 출발하는지 아십니까?”

“백악관에서 오후 두 시에 만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백악관까지 네다섯 시간은 걸릴 겁니다. 아홉 시엔 출발하겠군요.”

“테쿰세한테 전화해서 몇 시에 출발하는지 물어봐요. 대강의 상황 설명도 해주시고. 전 잠깐 어딜 좀 다녀올게요.”

“어딜요?”

“메탈로이드계를 좀…….”

<랜딩, 13,320초>

버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메탈로이드 계의 우주 엘리베이터에서 랜딩할 때의 낙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쿰세한테 설명해 줄 게 또 있습니다. 안전장치를 하나 걸어두려고요.”

윤성이 미들로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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