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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63화 (163/260)

# 163

레벨업 속도는 9.8m/s^2 163화

“잠깐 자리 좀.”

뒤로 빠져나가려던 윤성은 골목 입구를 꽉 메우고 있는 아리를 발견했다.

이쪽으로는 못 나가겠군. 위로 가서 통신할까.

<랜더의 전투화 발동!>

훌쩍 점프해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버린 윤성은 통신을 열었다.

-인계의 관리자인가?

마이어가 물었다.

“그래.”

-네가 엘리지아의 퀸을 죽였다는 얘길 접했다.

“소식이 그렇게 빨라?”

-지금 TV에 네 얘기와 퀸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을 거야. 내가 인계에 심어둔 언데드 하나가 중동에서 그 뉴스를 보고 내게 연락했지.

“아아. 근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계의 헌터에게 왜 구울들을 보내줬지?”

-그때는 나 역시 인계를 삼키고 힘을 키울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고?”

-퀸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관리자를 가진 계가 아닌가. 함부로 칠 순 없지.

“내가 없었으면 여길 쳤을 거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후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콜로라에 대한 얘길 너도 알고 있지 않나?

“그래, 좋아. 지금은 침탈할 생각이 아니라고 하니 일단 그 얘긴 나중에 따지고. 내게 통신을 건 이유가 뭐야?”

-본론만 간단히 하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 콜로라를 막았으면 한다.

“관리자 둘이 힘을 합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계획이 있나?”

-엘리지아계는 멸망했다고 들었지만, 퀸의 마력은 점액질 토양을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다. 엘리지아 계는 전부 그 토양으로 뒤덮여 있지.

“그래서?”

-그 땅에 퍼져 있는 퀸과 엘리지아의 마력을 모으면 급격한 마력 상승이 가능할 것이다.

“X가 된다는 건가?”

-그 정도까지 간다면 더 좋고. 안 되더라도 나쁠 것 없지. 그리고 메탈로이드계 역시 반파되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마더의 마력도 먹을 수 있겠지.

“거긴 건드리지 마. 지금 작업 중인 게 있는데 네가 들어가면 상황이 복잡해져.”

-오. 벌써 작업 중이라니, 인계의 관리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움직임이 빠르군.

“하지만 그저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콜로라를 막을 수 없어. 콜로라성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

윤성이 말했다.

사실 그는 순간이동석을 쓰면 콜로라의 전초 기지나 탑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그런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마이어를 아직 믿을 수 없으니까.

-난 콜로라의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

“정말이냐?”

이건 뜻밖의 정보인데. 마이어도 콜로라로 가는 순간이동석을 가지고 있는 건가?

-게다가 폴리모프도 습득했지.

“폴리모프?”

-핏빛야수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이다. 넌 어떠냐? 혹시 배웠나?

‘잠깐만.’

어쩐지 느낌이 안 좋은데.

얼마 전 마왕은 윤성에게 폴리모프를 배웠느냐고 물을 때, 그 어떤 관리자도 아직까지 그 마법을 습득하지 못했다고 했었다.

물론 마이어가 그 마법을 배워놓고 마왕에게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윤성 역시 마왕을 믿지 못해서 폴리모프를 감추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그 중요한 비밀을, 처음 말을 섞어본 인계의 관리자에게 오픈하는 건 이상하잖아?

-나는 콜로라에서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한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네가 만약 폴리모프를 배웠다면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마이어가 말했다.

-그 때문에 묻는 것이니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군. 그래도 날 의심한다면 폴리모프나 순간이동석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라. 가지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지.

윤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가는 중이었다.

만약 관리자 중 하나가 폴리모프를 배웠다면 그 사실 자체가 콜로라 측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보로 취급될 거다.

관리자의 정체까지 알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콜로라 측에서 보안을 삼엄하게 해서 전쟁 기밀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

폴리모프를 배웠느냐는 마이어의 질문은 그런 면에서 찝찝하다.

순간이동석이나 폴리모프 마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수 있다고 해도 그를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콜로라와 내통하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해당 정보와 자료를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난 못 배웠어. 마왕에게 폴리모프 마법이 어떤 건지 정도는 들었지. 하지만 실제 사용자가 있다니 관심이 생기네. 폴리모프를 쓰면 어떻게 되는데?”

한 번 떠봐야겠다.

-내 경우엔 몸에 가죽이 생기고 심장이 다시 뛴다. 희멀겋고 거친 피부와 듬성듬성한 털 같은 걸 갖게 되지. 완전한 콜로라 성인으로 변신하는 거야.

“순간이동석은?”

-사용하면 눈앞에 이동할 계에 대한 메시지창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갈 곳을 고르면 이동할 수 있지.

“대단한데.”

윤성이 칭찬했다.

“콜로라에 가봤다고 했지? 가서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그렇다.

“어땠어?”

-굉장히 거대한 도시였다. 호전적인 군대가 가득했어.

“사실 내가 꽤 오래전에 콜로라 전사 하나를 잡은 적이 있는데 말이야.”

윤성이 말했다.

“마계에서 얻은 통역 스킬을 쓰니까 대화가 되더라고. 그 녀석 얘기론 콜로라에 엄청난 크기의 탑이 있대. 전사들을 훈련시키는 탑.”

-아, 맞아. 그런 게 있다.

“콜로라의 전투용 순간이동석은 모두 그 탑으로 이동된다던데. 너도 순간이동석을 썼다면 그곳에 간 건가?”

마이어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목소리에 미묘하게 자신감이 빠졌다.

“우리가 공격한다면 그 탑을 치는 게 좋을 것 같아. 거긴 전사들을 훈련하는 곳이랬거든. 어때?”

-나쁘지 않지.

“아. 그리고 그 탑에서 브리트마를 본뜬 보스가 나온댔는데. 혹시 봤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1층에서 잡몹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탑으로 이동하자마자 볼 수밖에 없댔는데.”

-아. 기억났다. 하하……. 브리트마를 잡몹 취급하다니 어이가 없더군.

사실은 210층에서 나왔던 보스였다. 일단 이놈 탑에 대해선 잘 모르는군. 적어도 순간이동석을 썼다는 건 거짓말이다.

“같은 층에서 아르동 남작도 나온대. 혹시 알아? 마계 남작이야.”

-음.

“실물하고 똑같다던데. 콜로라가 어떻게 아르동의 외모를 아는 건지 굼금한데, 브리트마도 실물과 똑같았나?”

-아. 그래. 흉내를 잘 냈더군. 아르동도, 브리트마도. 똑같았어. 콜로라 놈들이 그 정도로 일곱 차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거다. 우리가 함께 정보전을 펼쳐서 따라잡아야 해.

마이어가 말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마스크맨. 나와 동맹을 맺을 건가?

마이어가 화제를 바꾸려 했다.

“좋지. 난 콜로라를 막고 싶으니까. 근데 그 순간이동석은 두 명이서도 쓸 수 있는 물건인가? 혹시 귀속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냐?”

-귀속되는 아이템은 아니다.

윤성은 피식 웃었다.

미끼 하나만 더 던져볼까.

“근데 내가 그 콜로라 전사를 놓쳐버렸는데 말이야.”

윤성이 말했다.

“그놈을 포박해 뒀던 곳 지하실에 꽤 값나가는 마법 물품이 몇 개 있었는데 훔쳐가지 않았더라고. 원래 콜로라에는 뛰어난 마법 아이템이 풍부한 모양이지? 그런 보물들을 탐내지 않는 걸 보면.”

마이어는 고민하는 듯 잠깐 뜸 들이다 답했다.

-그렇다. 네가 나와 손을 잡고 함께 콜로라를 친다면 그만큼 많은 재물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곳의 마법 물품들은 굉장히 우수하니까.

‘우수하긴 개뿔. 하급 마법 반지만 가져가도 빠뜨 같은 귀금속점 주인이 놀라서 펄쩍 뛰던데.’

진성 스파이 마스크맨의 정보력을 몰라보고 어디서 어설프게 주워들은 지식으로 감히 농락하려 하다니.

‘근데 궁금하긴 하군. 내가 넘어갔으면 뭘 어쩌려고 한 걸까?’

마이어가 순간이동석에 폴리모프 같은 무리한 거짓말을 한 것은 이쪽의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려는 것 같았다.

같이 정보전을 하자는 식으로 끌어내면 콜로라에 반항적인 윤성이 폴리모프를 배웠다는 것 정도는 얘기할 수도 테니까.

설마 이쪽에서 콜로라에 대해 이미 그 정도로 잘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겠지.

“좋아. 함께하자고.”

윤성이 말했다.

“동맹의 증거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가 미들로드를 잡았는데 넘겨줄까?”

-미들로드를?

“엘리지아 퀸이 흡수했었다. 내가 퀸을 죽이니 거기서 떨어져 나왔지.

-정말이냐?

“물론.”

-그 녀석은 마이어계의 반역자다. 잡아다 처형해야 해.

“일주일 후에 인계 한국의 백마 길드로 날 찾아와.”

-일주일이나?

“길드를 비운 지 오래돼서 돌아가면 할 일이 많을 거야. 손님맞이에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 시간 동안 미들로드를 회복시켜놓을 생각이다.

-알겠다.

“네가 직접 올 거야?”

-아니, 브리트마를 보내지.

“좋아.”

-나도 선물을 좀 준비하겠다. 동맹의 증표로 말이지.

“기대하겠어.”

통신을 종료한 윤성은 다시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그가 미들로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자. 네가 마이어가 되도록 해주지. 대신 앞으로 내게 협력해야 한다. 콜로라의 침공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해.”

***

파슨스 뉴 스쿨 오브 디자인 2학년 일리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헌터국 임시 본부에 와 있었다.

그의 동기들, 그리고 함께 일한 뉴욕대의 공대생들이 함께였다.

빌딩엔 그야말로 헌터 업계 최고 거물들이 가득하다. 방금 엘리베이터에선 퀭한 표정의 슬렌더맨을 봤고 복도에선 세르게이를 봤다.

일리나는 카운터의 직원에게 마스크맨에 대해 물었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직원들도 몰랐다.

“오우, 시그노라.”

어디선가 나타난 안토니오가 눈을 찡긋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곳 헌터국 같이 험한 곳은 당신처럼 예쁜 꽃송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무슨 일로 여길 찾으셨나요?”

“어…….”

당황한 일리나가 어버버했다.

“마스크맨을 만나려고 왔어요.”

그의 친구인 뉴욕대 공대생이 말했다.

“마스크맨은 자릴 비웠는데, 어쩐 일로?”

“전해드릴 게 있어서요.”

“전해줄 것?”

안토니오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의 뒤에서 엘리베이터가 띵 소릴 내며 멈추었다.

거기서 내린 것은 에어포스와 마스크맨. 그리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윤성은 에어포스와 함께 근처 백화점에서 옷 한 벌을 사서 갈아입고 유정란 한 판을 사다가 미들로드에게 먹인 후였다.

에어포스는 게걸스럽게 계란을 먹어치우는 미들로드를 보고 경악했다. 정말로 저 괴물을 같은 팀으로 쓸 거냐고 일곱 번이나 물었다.

“강력한 아군이 될 거예요.”

윤성이 에어포스를 진정시켰다

“근데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헌터들이 무서워할 정도의 외모인데요?”

에어포스가 윤성의 귀에 속삭였다.

“음.”

확실히 바토리나 아리에 비해 훨씬 더 그로테스크하다. 검은 연기만 이글거리는 눈과 썩은 살점들. 퀴퀴한 냄새. 바토리나 아리도 굳이 분류하면 인계 기준에선 마수 쪽이지만 이쪽은 훨씬 심하다.

“아이가 보면 바로 울 것 같은데요. 마수에 민감한 헌터들이 협조해 줄까요?”

“익숙해지면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은 고양이로 하죠.”

윤성은 미들로드를 고양이로 변신시켜 함께 헌터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바토리와 아리는 각자 벌인 일들을 정리하러 갔고.

“오우! 안젤로!”

안토니오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에어포스에게 다가왔다.

“떨어져요.”

에어포스가 질색하며 안토니오를 밀어냈다. 떨어진 안토니오는 윤성을 보고 피식 웃었다.

“마스크맨이죠? 마스크가 날아가서 마력이 아니었으면 못 알아볼 뻔했군요. 선글라스에 모자에. 그것들은 얼굴을 가리려고?”

“그래요. 그리고 마스크 쓰긴 했습니다. 방한 마스크지만.”

윤성이 콧대까지 덮은 마스크를 톡톡 두드렸다.

“마스크맨이세요?”

일리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누구시죠?”

“팬이에요. 제 이름은 일리나고. 파슨스 스쿨 학생이에요.”

그녀가 배낭을 열어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바로 윤성의 새로운 가면이었다.

“뉴욕대 공돌이들하고 같이 밤새웠어요. 전 패션 디자인 쪽이 아니라서 더 고생했죠.”

“이건……?”

“선물이에요.”

일리나가 약간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뉴욕을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윤성은 마스크를 살펴보았다. 가공된 마정석을 이용해 마법을 걸어두었다. 아마 이건 학생들이 하진 못했을 거고 전문 헌터에게 부탁했겠지.

아이언맨 가면 같다. 다만 신축성 좋은 가죽 재질에 색은 검은색.

사실 파슨스 스쿨의 학생이 디자인을 아무리 잘해봤자 명품 브랜드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드는 게 훨씬 우수하다.

한국에서 차희가 골라줬던, 협찬받은 마스크 같은 게 그랬다.

하지만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이 귀엽고 애정 어린 선물도 나쁘지 않다.

플라즈마로 만들어진 입 부분은 버튼 하나로 언제든 없앴다가 다시 만들어낼 수 있어서 식사도 가능하고.

“이건?”

가면 아래쪽에 작은 이니셜이 몇 개 들어가 있었다.

“그건. 음……. 저희들 이름 첫 글자예요.”

일리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헌터 본부 내의 작은 방으로 이동하는 길.

에어포스가 말했다.

“광고 효과 장난 아닐 텐데. 모델료 받지 그래요?”

“하하. 인계 관리자가 대학생한테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에어포스가 피식 웃었다.

“앗. 참.”

윤성이 무언가를 떠올리곤 메시지창을 열었다.

<엘리지아의 퀸을 죽였습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이걸 아직 안 받았군.

윤성이 Y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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