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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60화 (160/260)

# 160

레벨업 속도는 9.8m/s^2 160화

허리케인처럼 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퀸의 몸은 산산히 쪼개어져 분해되었다.

극단의 순간에 놓인 윤성에겐 마치 몇 분에 걸친 펀치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일순간의 사건이다.

파아앙!

거대한 마력의 풍압이 사방을 휩쓸었다.

챙그랑!

UN 플라자 앞, 이스트 42번가와 1번가의 교차로.

반경 400미터 안 모든 빌딩의 창문이 깨졌다. 금이 가고 벽돌이 쏟아져 내렸다.

쿠우우웅!

윤성의 빛펀치의 잔파가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된 도로는 아예 무너져버렸다.

지면이 윤성과 함께 꺼져서 퍼스트 에비뉴 지하 터널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 인근. 성체 엘리지아를 향해 광전자포를 겨누던 아톰은 공격을 멈추었다.

엘리지아들이 물풍선이 터진 것처럼 액체가 되어 바닥에 번져 흘렀기 때문이다.

퀸의 소멸과 함께 그녀의 마법으로 체력을 회복하던 엘리지아들이 일순간 전멸하고 만 것이다.

완전히 전투가 종료되어 메탈로이드들이 라이트를 켠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탁!

지하 터널 내부에서 지상으로 뛰어 올라온 윤성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거의 헐벗은 상태.

랜더의 코트와 전투화, 시계 따위는 믿을 수 없는 내구력으로 이 전투를 견뎌냈지만 전투복은 찢어진 비닐봉지 비슷한 상태가 됐다.

다행히 하반신은 그나마 멀쩡해서 민망한 상황은 면했지만.

‘마스크가 찢어져 버렸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데도 노파심에 얼굴을 가렸다.

“괘, 괜찮으냐?”

충격 받은 표정으로 다가온 바토리가 물었다.

“생각보다 주위 피해는 덜하구나. 엄청난 힘이었는데.”

비행 스킬로 다가오던 에어포스가 대신 답했다.

“빛펀치는 마력이 집적도가 높은 스킬입니다. 한 데 모든 마력이 밀집해서 퀸이 혼자 다 덮어 썼을 겁니다.”

그녀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윤성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스크가 사라졌군요.”

그녀 역시 이전에 썼던 빛펀치로 상의가 오른쪽 어깨부터 손목까지 날아간 상태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윤성은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다.

사실 미국 헌터나 시민들이 강윤성이라는 한국 D급 헌터를 알 리 없으니 얼굴 노출돼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 같은 때는 그래도 주의를 기울여야지.

“어떡하죠?”

“잠깐 기다려요.”

에어포스가 향한 곳은 바로 앞의 튜도 타워. 잠시 후에 그녀는 목도리와 야구모자,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가지고 나타났다.

“타워 안에 의류몰이 입점되어 있어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적당히 덮어써서 얼굴을 가렸다.

“아무튼 큰 피해 없이 처치했으니 다행…….”

“잠깐만요.”

선글라스를 쓰고 고개를 든 윤성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뭐야, 이거?”

<퀸의 핵이 하나 남았습니다.>

<엘리지아의 관리자가 절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안 죽었어요.”

“네?”

“퀸 말입니다.”

윤성은 눈을 감고 기감을 극대화했다. 등 뒤, 수십 미터 거리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쪽이에요!”

에어포스를 두고 번개처럼 움직인 윤성이 향한 곳은 좀 전에 에어포스 갔던 튜도 타워였다.

관공서 바로 옆에 처박힌 사슬.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퀸의 힘은 확실히 사슬에 전해져 있었죠. 이쪽으로 옮겨온 겁니까?”

뒤따라온 에어포스가 물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요.”

마력의 느낌이 퀸과는 좀 다르다.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너 뭐야!”

그가 사슬을 콰직 짓밟으며 소리쳤다.

“크학!”

사슬 한쪽이 부풀어 오르면서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전반적으로 바싹 마른 시체 같았다. 두 눈에는 검은색 연기 같은 게 일렁였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도 검은 연기가 입김처럼 흘러나왔다.

“헉. 헉.”

그는 숨을 헐떡이며 사슬을 꼭 쥐었다.

잠깐 윤성을 바라보더니 사슬을 날렸다.

촤아악!

그러나 이미 힘 다 빠진 놈의 공격.

퀸의 몸 안에서 날뛰던 미들로드의 공격도 제압할 수 있었던 윤성에겐 아무런 위협도 못 된다.

콱!

한 손으로 사슬을 낚아챈 윤성은 사슬을 힘주어 쥔 채로 가만히 미들로드를 내려다보았다.

미들로드는 사슬을 당기려고 끙끙거리다가 상대와의 힘의 격차를 깨닫자 얌전해졌다.

“퀸을 죽여서 이놈이 살아난 거 같죠?”

윤성이 에어포스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

“퀸을 죽였다고?”

에어포스의 말을 자르면서 미들로드가 끼어들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의식을 찾았군.”

미들로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어깨와 옆구리, 다리 등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나는 마이어의 제1군단장, 미들로드다. 옛날 엘리지아와의 전쟁에서 퀸에게 잡아먹혔었지.”

“엘리지아 그놈들은 무슨 전투 민족이냐? 모든 차원이랑 다 싸우잖아?”

“엘리지아의 퀸은 일곱 차원의 관리자 중에서 가장 난폭한 존재였다.”

“미들로드!”

뒤늦게 도착한 바토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누구냐 넌?”

“마계 백작. 바토리다.”

“바토리?”

미들로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 옛날에 몇 번 봤는데.”

“앳되어 보이는군. 애들 이름까지 기억하진 못한다.”

미들로드가 차갑게 답하는 순간, 건물 바깥에 무언가가 쿵 소릴 내며 날아와 착지했다.

아리가 안으로 성큼 들어서다가 미들로드를 보고 경고등을 켰다.

“미들로드!”

“넌 또 뭐지? 메탈로이드인가?”

“강한 마력이 느껴져서 와 보았는데 설마 마이어계의 군단장이 있을 줄이야. 주인님, 퀸에 이어서 이 녀석도 꺾어버린 겁니까? 당신은 도대체…….”

“뭐. 퀸에게 빙의된 걸 쓰러뜨리긴 했는데.”

“주인님! 제가 막강한 군대를 준비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미들로드부터 어떻게 하자고.”

아리는 약간 시무룩해진 것 같았지만 윤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들로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퀸한테서 나왔으니 축하해. 이제 이 동네 사람들 겁주지 말고 썩 마이어로 돌아가. 헌터들이 너 보면 레이드하려고 할걸.”

“난 지금은 마이어계로 돌아갈 수 없다.”

“왜?”

“마이어는 나를 버렸다. 퀸과의 결정적인 싸움에서 나를 돕지 않으셨지. 그리고 나를 마이어계에서 추방해버렸다. 나는 추방된 난민이다. 나는 더 이상 마이어를 따르지 않는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마이어계는 망자와 시체들의 세계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은 죽음뿐. 마이어조차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죽음의 하수인이다.”

“……?”

“난 마이어에게 복수할 것이다.”

미들로드가 말했다.

“그 방법을 찾고 힘을 키울 때까진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뭐라고?”

“네가 인계의 관리자로 보이는데. 네 허락만 있다면…….”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꾸 이상한 놈들이 인계에 눌어붙으려는 거야?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전력에 보탬이 될 것 같기도 한데.

“휴우. 일단 너 여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지금은 퀸의 숨을 끊어야 해서 좀 바쁘다. 이따 얘기해.”

몸을 돌리는 윤성을 미들로드가 붙잡았다.

“퀸의 마지막 핵을 찾는 거냐?”

“어떻게 알았지?”

“나는 얼마 전까지 퀸의 몸속에 있었다. 그녀의 힘이 느껴지는군. 그녀가 있는 곳은 여기서 꽤 멀다.”

“어딘데?”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쪽에 뭐가 있죠?”

윤성이 에어포스에게 물었다.

“음. 글쎄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윤성의 안색이 싸해졌다.

“지금 철수한 헌터들 그쪽으로 갔죠? 설마 헌터들 중에 감염된 사람이 있습니까?”

-끄아아아악!

갑자기 에어포스의 전투용 휴대폰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슬렌더맨! 버텨내! 켄지! 도와주세요! 발작해요!

“이런! 빨리 갑시다.”

윤성이 모자를 푹 눌러쓰며 말했다.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헌터 임시 본부의 헌터용 병실

슬렌더맨의 발작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가슴에 박힌 핵에서부터 신경 줄기가 퍼져 나오며 주변 조직을 침식했다.

암이 전이되는 것처럼 혈관을 통해 엘리지아 세포가 이동한다.

“크아악!”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슬렌더맨의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콱!

솟아오른 촉수 한 줄기가 켄지의 뺨을 스치며 벽을 뚫어버렸다.

쾅! 쾅!

그것을 시작으로 촉수들이 잇달아 사방을 찔러댔다.

샌드맨은 몸을 모래로 만들면서 그 공격들을 계속 흘려 버리고 슬렌더맨을 제압해서 억누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Shit!”

화가 난 샌드맨이 슬렌더맨의 머리를 주먹으로 쾅 내려쳤다.

“샌드맨!”

놀란 앤더슨이 소리를 질렀다.

“환자입니다!”

“환자는 무슨! 이 새끼 이러다가 주위 사람들 다 죽이겠는데!”

“메이. 테쿰세는요?”

“메탈로이드 게이트 쪽이에요.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러 간다고. 오려면 멀었어요.”

메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한 번 지져서 기절시킬까?”

일렉트로닉스가 물었다.

“잠깐만요.”

셩 지에가 주의를 환기했다.

발작이 잦아들고 있었다.

헌터들 모두가 그가 이대로 다시 잠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끔찍한 목소리가 슬렌더맨의 핵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마침 좋은 양분들이 사방에 가득하군.”

퀸이 말했다.

슬렌더맨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쾅!

튀어 오른 촉수 한 줄기가 제다이의 허리를 관통했다.

“아악!”

제다이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촉수가 마치 꼬치처럼 그를 꿰어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제다이의 비명.

SS급 헌터가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제다이!”

헌터들이 제다이 쪽으로 달려들어 촉수를 뜯어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제다이는 주머니칼을 꺼냈다.

<광선검 발동!>

그러나 그의 광선검으로도 촉수를 자를 수가 없다.

그리고 슬렌더맨의 몸에서는 또 한 줄기의 촉수가 솟아오른 상태.

그것은 이번엔 앤더슨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쨍그랑!

창문이 박살 나며 무언가가 안으로 난입했다.

그것은 에어포스와 그녀가 껴안고 있는 마스크맨이었다.

그는 바닥에 착지하면서 단검을 꺼냈다.

<단검 투척 타깃>

팡!

제다이를 꿰뚫은 촉수가 단번에 찢겨나갔다.

퀸은 두 번째 촉수를 황급히 윤성을 향해 휘둘렀다.

콰악!

그러나 윤성은 그걸 가뿐히 붙잡고는 가까이 성큼 다가섰다.

콰앙!

먼저 펀치를 한 방 먹여서 제압했다. 명치에 끔찍한 일격을 당한 슬렌더맨은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미안. 슬렌더맨.’

대신 지금 구해줄게.

“마스크맨?”

앤더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스크가 날아가서 좀 바꿨습니다. 다들 물러나요. 이놈은 이미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뿐.”

<빛의 강체 발동!>

강력한 마력이 감각 능력과 지능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윤성의 높은 기감에는 슬런더맨의 몸속에서 인간과 다른 엘리지아만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그 세포들 하나하나의 흐름까지도.

<어팝토시스 발동!>

마치 골수 이식 전에 모든 면역 세포들을 방사선으로 죽여 버리는 것과 같다.

슬렌더맨의 혈관에 흐르는, 그리고 조직에 침투한 모든 엘리지아 세포들이 사멸하기 시작했다.

“크흑!”

슬렌더맨이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윤성은 그의 이마를 손으로 꽉 쥔 채 바닥에 눕히고 가슴팍을 쏘아보았다.

<어팝토시스 발동!>

퍽!

마치 계란이 깨지는 것처럼 핵이 터져 버렸다.

<엘리지아의 퀸을 죽였습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엘리지아계에 관리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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