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59화 (159/260)

# 159

레벨업 속도는 9.8m/s^2 159화

퀸의 촉수를 용조로 끊어버렸을 때가 두 번 있다.

한 번은 에어포스 앞으로 랜딩하며 현장에 난입하던 때. 또 한 번은 빛의 강체를 쓰기 전 촉수 줄다리기를 했을 때.

퀸은 후자의 경우엔 별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전자의 경우엔 촉수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까지 질렀다.

두 경우의 차이는 ‘핵’을 촉수에 연결했느냐 아니냐 뿐이다.

아무리 많은 공격을 퍼부어도, 에어포스가 빛펀치로 머리통을 날려버려도 큰 피해 없이 재생하는 회복력을 지녔지만.

‘핵을 파괴하는 건 데미지가 있다.’

문제는 퀸의 핵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는 것.

엘리지아의 성질을 생각해 보았을 때 모든 핵을 파괴해야 퀸을 죽일 수 있을 텐데.

‘전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공격해서 닥치는 대로 몽땅 파괴하면 되지.’

윤성은 퀸을 번쩍 들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쓰러진 그를 향해 빛의 탄환을 난사했다.

펑! 펑! 펑!

몸 곳곳에 숭숭 뚫리는 구멍.

카앙!

사슬이 날카로운 창처럼 윤성을 향해 날아왔지만 몸을 돌려서 쓱 피했다.

사슬은 수십 미터를 날아가 뒤쪽의 빌딩에 처박혔다.

추우욱

갑자기 퀸의 몸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녹아버릴 것처럼 흐물흐물. 하체는 점성 높은 진액 같은 상태가 되어 바닥에 번지고 있었다.

탁!

윤성의 등 뒤에 내려온 에어포스는 역겨운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게 대체 뭐죠? 사슬은?”

“사슬은 저 뒤에 날아갔어요. 그리고 저건 아마 테라포밍일 겁니다.”

“네?”

갑자기 바닥이 진득거리는 암회색 진액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위를 덮어버리는 진액 곳곳에서 버섯이 피어오른다.

마치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끄으으으…….”

“으어어…….”

메탈로이드의 막강한 폭격을 받고 무너져 내렸던 엘리지아들이 진액 속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재생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부활한 엘리지아들은 전보다 더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퀸의 몸에서도 계속해서 마력이 올라간다.

“이럴 수가…….”

“저건 퀸의 비장의 수 중 하나에요. 사용할 때 무리도 많이 간댔는데. 점점 한계에 몰리는 모양이군요. 희망이 보입니다.”

“저 스킬을 알고 계세요? 어떻게 아는 거예요?”

“바토리가 알려줬습니다.”

“네?”

윤성은 마스크 안에서 빙그레 웃었다.

50. 엘리지아 퀸(2)

바토리에게 마정석을 넘겨받았을 때. 순간이동석을 써서 메탈로이드계로 돌아가려던 윤성을 바토리가 붙잡았다.

“나는 부대가 정렬되는 대로 곧장 출격할 것이다. 퀸이 네 말대로 정예 부대를 끌고 인계로 간다면 엘리지아 차원에서 날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렇지.”

“하지만 넌 퀸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지?”

“뭐, 메탈로이드계에서 생각하고 있는 작전이 하나 있긴 해. 그걸로 퀸을 잡을 정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퀸은 테라포밍을 할 수 있다.”

“테라포밍?”

“사실 퀸만이 아니지. 모든 관리자는 자신의 차원의 영역을 일부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지아 퀸은 그쪽 방면으로는 일곱 차원에서 최고의 실력자다.”

“그걸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거지?”

“엘리지아는 습도나 기온, 퀸의 핵과 연결된 바닥 따위에 전투력의 영향을 꽤 많이 받는다. 퀸이 자신의 땅을 소환하면 모든 엘리지아의 전투력이 크게 올라가겠지. 퀸을 포함해서.”

“흠.”

“그리고 병력을 소환할 수도 있다.”

“그건 좀 문제가 되겠군.”

“아니. 내가 전부 쓸어버릴 테니까 증원하진 못할 거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역으로 이용한다고? 어떻게?”

“그렇게 소환된 테라포밍의 점액질이 굳어버리기 전에, 액체 상태일 때 독을 타는 거다.”

“독을?”

“옛날에 네가 일산에서 일호를 죽였을 때 썼던 독 같은 것.”

“그건 이제 없어.”

“아쉽군. 아무튼 잘 해결해 봐라. 그 타이밍이 오히려 역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

윤성은 세 번째 슬롯의 스킬을 팔찌에서 불러왔다.

<중금속 폭우 발동!>

빛의 강체 없이도 거의 100,000점에 근접한 지능의 폭우.

여태껏 써왔던 것과는 규모나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하늘 위에는 거대한 마력의 구름이 형성되었다.

메탈로이드는 이런 스킬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헌터들은 대부분 대피했고.

문제 될 건 없다.

“에어포스, 빛의 강체 써서 몸 지켜요.”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보며 윤성이 말했다.

백마중이 사용했던 스킬 중금속 폭우가 엘리지아에게 쥐약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유는 마력이 가득 담겨 독성이 높은 빗물이 엘리지아의 체액이나 점액질 피부에 잘 스며들기 때문.

퀸이 만들어낸 액체 상태의 홈그라운드도 마찬가지겠지.

“끄윽.”

“칵!”

엘리지아들이 폭우 아래에 하나씩 주저앉기 시작했다.

“잔재주를 써봤자다.”

빗물을 올려다보며 퀸이 말했다.

그녀 역시 머리 가죽과 어깨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독성을 중화하는 모양이다. 녹은 부위가 곧바로 재생되었으니.

“내 차원을 소환하는 순간 이 마법은 엘리지아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퀸이 말했다.

“차원문을 열 거냐?”

“이미 반은 열렸다. 모르겠나?”

“하하.”

윤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 추천하진 않아. 그거 열어도 네 병력을 증원하거나 하긴 어려울걸.”

“닥쳐라.”

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차원문의 제약 때문에 쓰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이제 직접 문을 열겠다. 내 고향의 모든 군대를 끌어오겠다. 그리고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삼킬 것이다.”

퀸의 눈이 새까맣게 변했다. 하얀 증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치지지직!

기괴한 마력 파장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력 파장 축의 균열.

‘차원문이 열린다.’

이런 식으로 여는 거였군. 신기한데.

“마,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내버려 둬요. 안에서 뭐가 나오는지 봅시다.”

윤성이 팔짱을 끼며 빙긋 웃었다.

콰지지직!

마치 용접 불꽃처럼 파란색 빛이 사방에 튀어 올랐다. 잠시 후엔 붉은빛으로 색이 변했다.

부우우웅

윙윙거리는 잡음과 함께 완성된 게이트.

그러나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을 본 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것은 바토리였다.

그녀는 중금속 폭우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돌풍 발동!>

거센 바람이 머리맡에서 하늘을 향하여 발사되었다. 바람으로 된 우비를 덮은 듯한 느낌이다.

빗방울을 사방으로 튕겨내자 바토리는 천천히 게이트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 퀸을 못 잡았군. 마스크맨.”

그녀가 퀸을 힐끔 보며 윤성에게 말했다.

“확실히 관리자는 세더라고. 넌 끝났냐? 어째 벌써 나와?”

“거의 끝났다.”

“굉장히 빠르군. 그룬헤잘드 힘을 흡수하고 나서 그 정도로 세진 거냐?”

“아. 마왕께서 지원해 주셨다. 마계도 정예를 전부 보낸 셈이었지. 엘리지아는 거의 전멸이다. 이젠 내가 없어도 상관없을 정도인데. 버거우면 이쪽을 도와줄까?”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엘리지아계를……. 공격한 건가……?”

“남의 동네 빈집털이했으면 엘리전을 각오했어야지.”

윤성이 비웃으며 말했다.

퀸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지금이 기회다.

쿵쿵쿵쿵!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퀸의 키는 윤성보다 훨씬 크지만 살짝만 뛰어올라도 그 머리에 충분히 주먹이 닿는다.

랜더의 전투화를 쓸 필요조차 없다.

<빛의 강체 발동!>

<용조 발동!>

아직 그 막대한 능력치 총합을 한 쪽에 몰아넣는 섬세한 마력 컨트롤은 못한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해본 것처럼, 스킬 둘을 함께 쓰는 건 어렵지 않다.

퀸은 재빨리 양팔을 교차해서 윤성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했지만,

콰아아앙!

막대한 양의 빛을 머금은 20만 점 완력의 용조는 퀸의 두 팔을 박살 내버렸다.

“끄아악!”

그러고는 안으로 바짝 파고들어 퀸의 가슴팍을 향해 오른손을 쭉 내뻗었다.

오기 전에 한 번 써봤는데 반동 장난 아니다. 오른손을 펼쳐서 스킬을 쓸 때 왼손으로 손목을 붙잡아 반동을 잡아야 한다.

<빛의 산탄 발동!>

콰아앙!

빛의 탄환의 샷건 버전.

무수히 발산된 섬광이 퀸의 가슴을 박살 내버렸다.

그녀의 몸이 무너져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찢어지고 부서진 몸뚱이가 빠른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성의 스킬은 아직 하나가 더 있다.

<어팝토시스 발동!>

최초의 5번 슬롯 스킬.

어팝토시스란 세포 자살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생체 내의 노화한 세포들이 스스로 알아서 사멸하는 과정.

퀸의 어깨에서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던 이유는 세포 사멸 속도가 회복 속도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물론 인계에는 아직까지 보고된 적 없는 스킬이지만 그 화력은 탄소 기반 생명체들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특히 엘리지아처럼 회복력이 주특기인 적이라면.

“크학!”

퀸이 피를 토하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녀의 몸 곳곳이 찍찍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폐포와 심근 세포, 피부와 혈구. 전신의 모든 세포가 빠른 속도로 죽어 나간다.

숨을 헐떡이는 퀸.

이쪽으로 달려오는 에어포스가 소리쳤다.

“빛펀치로 끝내요!”

“어떻게 쓰는데요?”

“빛의 강체 써요! 최고 출력!”

<빛의 강체 발동!>

전신의 모든 마력이 극단적으로 치솟는다.

여태까지는 모든 능력치를 두 배까지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다.

퀸이 무력화되어 있으니 마력을 끌어올리는 동안 공격받거나 할 염려가 없으니까.

이 스킬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 있다.

“끄으윽!”

마력 상승과 함께 전신의 모든 핏줄이 다 터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팔 근력으로 감당 못 할 만한 바벨을 강제로 들어버린 기분.

삐삐삐!

갑자기 알람 소리가 울렸다.

<현재 레벨의 한계 이상의 마력을 끌어올렸습니다.>

<스킬의 마력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합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빨간색 메시지창.

<경고 : 마력 수준을 낮추세요.>

<경고 : 마력 수준을 낮추세요.>

연속으로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다.

“큭…….”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퀸이 윤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도저히 감당 못 할 크기의 마력이지만 참아내야 한다.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내 손 잡아요!”

바로 뒤까지 달려온 에어포스는 빛의 강체를 전신에 둘러싼 상태였다.

그녀가 윤성의 오른손 손목을 살짝 그러쥐었다.

<빛펀치 발동!>

알몸이 된 듯한 기분.

메시지창이 떠오르는 순간 몸 겉을 둘러싸고 있던 엄청난 마력이 일순간에 싹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힘이 전부 오른손에 집중되었다.

“마, 마스크맨! 미쳤느냐?”

바토리가 경악했다.

저게 말이 되는 힘인가?

처형인의 샘을 압축해서 폭탄으로 만들면 저렇게 될까? 퀸이고 자시고 닿으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릴 것 같은 마력이다.

“크윽.”

퀸은 모든 힘을 짜내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악!”

마력의 압에 눌려 버렸다.

빛펀치를 두른 윤성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너무나 무겁고 강하다.

부상 당한 몸으론 그걸 지탱하고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다.

게다가 어팝토시스 때문에 몸이 재생되지 않는다. 세포가 지속적으로 괴사하고 있다.

윤성의 뒤에 서 있어서 빛펀치의 마력 파장을 정면으로 맞지 않은 에어포스조차도 전신이 찌릿찌릿하다.

심지어 그녀는 똑같은 빛의 강체를 둘러서 마력의 잔파를 옆으로 흘려내는 중인데도.

‘너무 강하다.’

공포와 경이로움.

꽤 오랫동안 알아온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것은 오직 그 감정뿐이다.

쿠구구구구!

마치 막강한 폭발 그 자체를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윤성의 주먹이 퀸의 머리부터 목, 가슴, 허리, 골반까지를 세로로 짓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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