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레벨업 속도는 9.8m/s^2 155화
제다이와 에어포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엘리지아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것은 핵을 재생하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샌드맨을 똑같이 닮은 외모다.
갑자기 지휘실 안으로 불쑥 들어와서 폭파 버튼을 눌러 버린 것이다.
“어떻게 샌드맨의 외형을 놈들이 딸 수 있었지?”
제다이가 분통을 터뜨렸다.
“일산에서 샌드맨이 전투를 치렀기 때문 아닐까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큭큭큭.”
바닥에서 흐물거리던 엘리지아가 웃었다.
“멍청하긴. 우린 메탈로이드와 손을 잡았다. 메탈로이드 게이트에서 샌드맨이 흘린 머리카락을 마더가 수집해서 전해줬지.”
헌터들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엘리지아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애초에 그 폭탄들을 맞췄어도 퀸께는 별 해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맞는 말이다. 폭탄이 적중해도 저 괴물에게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을 것 같진 않았다.
다만 헌터들의 표정이 나빠진 것은 더 걱정스러운 정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메탈로이드와 손을 잡았다고?”
에어포스가 물었다.
“그래. 곧 그쪽 차원 게이트가 다시 열릴 거다. 그리고 인류는 멸망하겠지.”
“메탈로이드 게이트는 이미 정리했다.”
“하하하! 그 15개 게이트들을 총괄하는 건 에이비라는 마더의 분신이다. 인간의 힘으론 그 로봇을 어찌할 수 없다.”
엘리지아가 말했다.
“시끄럽군.”
제다이가 주머니칼을 꺼냈다.
<광선검 발동!>
부우웅!
주머니칼 끝에서 뜨거운 마력이 형상화된 장검이 발생했다.
제다이는 광선검으로 엘리지아의 핵을 쿡 찔러 부숴 버렸다.
“이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꼴이 되는 걸 볼 수 없다.”
제다이가 말했다. 옆에서 테쿰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헌터국의 전력은 조금도 손실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엘리지아를 전멸시킬 겁니다.”
“갑시다.”
에어포스가 빛의 강체를 쓰면서 말했다.
엘리지아의 성체는 일산에서보다 더 성장했다. 본 차원에서 마계와 전쟁을 벌이던 당시 활동하던 완성된 성체들.
그들의 힘은 SS급 헌터와 맞먹는다.
분진 폭발을 일으킨 안토니오는 그 사실을 곧장 깨달았다. 이들은 일산에서 상대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성체 엘리지아들이 막강한 폭발 속을 차분히 헤쳐 나왔다. 회색 피부에는 상처 하나 없다.
러시아 SS급 헌터 세르게이의 몸이 갑자기 크게 부풀더니 거대한 흑곰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
우르수스 아크토스. 세르게이의 이명이다.
러시아에 대한 장난기 어린, 불곰국이라는 별칭은 유럽이나 미국 등의 서구권에 잘 퍼져 있는 것이었지만 정작 러시아인들은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불곰에 의한 피해가 매우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그러나 세르게이의 등장 이후 ‘불곰국’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불곰 변신 상태에서의 그의 완력은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헌터를 통틀어 정점이다.
그 막강한 일격이 성체 엘리지아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아앙!
“캬아악!”
이 공격에는 성체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엘리지아의 가장 큰 무기는 방어력이나 맷집이 아니라 회복력이다.
찌그러진 머리와 갈라진 가슴이 순식간에 복구되면서 성체는 세르게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오오!”
세르게이는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지르며 성체와 엉켜 뒹굴었고, 그 뒤에서 최상급 헌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안토니오는 일곱 개의 마법 다이너마이트를 적들 한가운데 집어던졌다.
콰과광!
폭발에 뒤이어 푸른 빛이 번쩍였다.
거대한 뇌격이 적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힌다. SS급 헌터 루이 알뤼세르의 마법.
그러나 그 막강한 번개는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에 불과했다.
거기서 퍼져 나온 전류를 일렉트로닉스가 받았다.
빠지직!
뜨거운 전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마치 사슬처럼 엘리지아들을 묶었다.
제다이와 슬렌더맨이 그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광선검 발동!>
제다이의 주머니칼에서 솟아오른 마력 장검은 엄청난 고온, 고밀도의 마력 파동으로 닿는 모든 것을 찢고 불사른다.
쓰걱!
그러나 광선검이 잘라 버린 성체 엘리지아의 몸은 꾸물꾸물 회복되고 있었다.
슬렌더맨의 몸에서 수백 개의 촉수가 튀어나왔다. 마치 성게 같은 모양이지만 그 촉수 하나하나가 위협적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적들을 향해 날아가 박히는 촉수들. 엘리지아들의 몸 곳곳에 구멍이 생기면서 고통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매섭게 적들을 파고들었고, 안쪽까지 들어간 세르게이와 합류했다.
“크아아아!”
세르게이의 포효와 함께 순간 적들의 대열이 무너지는 듯했다.
“앞에 비키게.”
일렉트로닉스를 뒤로하고 불쑥 튀어나온 남자는 중국의 최상급 헌터 티엔 메이.
<황룡 참파 발동!>
그의 손아귀에서 거대한 마력이 일렁이더니 곧 황금용의 형상을 갖추었다.
“비켜! 나탈랴!”
독일의 프리드리히가 소리 질렀다. 황룡이 지나간 뒤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서 있을 수 없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쩍이며 고압 용수철처럼 뛰쳐나간 황룡은 엘리지아 퀸을 향해 직격으로 날아들었다.
황룡을 발견한 엘리지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피하려고 했지만,
<사자후 발동!>
S급 헌터 쥔 차이의 포효가 현장을 울리면서 잠깐 움직임이 멈추었다.
문제는 1선에서 그들과 엉켜서 싸움을 벌이던 나탈랴까지 굳었다는 것.
“보호막을 걸겠습니다!”
일본 팀의 S급 헌터 켄지가 재빨리 나탈랴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지만 필요 없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프리드리히가 나탈랴를 잡아당긴 것이다.
콰광!
동시에 황룡은 엘리지아 준성체 둘을 그 아가리에 와직 깨물고 곧장 퀸을 향했다.
그러나 퀸의 가슴께 바로 앞.
피시시-
황룡은 마치 낡아빠진 헝겊 조각을 양쪽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북 찢어지고 말았다.
“저런……!”
이 스킬로 제압하지 못한 적은 여태 단 하나도 없었다.
티엔의 당혹감만큼 헌터들의 사기가 꺾였다.
“틈을 주지 마!”
목소리는 머리 위에서 울렸다.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퀸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에어포스의 몸에서 막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에어포스의 시선이 날카롭게 퀸을 포착했다.
그녀의 몸에서 끓어오른 빛의 강체가 주먹에 집중되고 있었다.
황룡 참파를 간단히 파훼한 것처럼 보이지만 순간 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리는 티엔의 최상급 스킬이다. 전 세계의 모든 헌터들의 공격 스킬들을 통틀어 단연 한 손가락에 꼽히는 파괴력.
그만한 일격은 퀸의 입장에서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확실치는 않지만 더 많은 공격을 쏟아부어 착실히 데미지를 누적시키면 분명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황룡 참파보다 더 강력한, 사실상 유일한 근접 공격기를 에어포스가 가지고 있었다.
<빛펀치 발동!>
일전에 성체 중에서도 특이 케이스였던 신민수를 한 방에 제압했던 최강의 공격기다.
그 비밀은 빛의 강체 상태에서 에어포스의 각 능력치가 유동적으로 조율된다는 데에 있다.
최대 출력 빛의 강체를 썼을 때 에어포스의 모든 능력치들은 각각 20,000점 정도에 이르지만.
‘빛펀치는 순간 80,000점 완력에 해당하는 힘을 내보낼 수도 있다.’
<빛펀치 발동!>
제트기의 속도로 날아든 에어포스의 빛펀치는 마치 작은 미사일처럼 보였다.
퀸의 머리에 날아들어 꽂힌 미사일.
그 폭발력 역시 어마어마하다.
쿠구구구구-
사방에 퍼져 나오는 풍압과 마력의 잔파에 모든 헌터들과 엘리지아들의 전투가 잠깐 중단되었다.
“이게 뭔 미친 스킬이야…….”
중국 헌터 러 씬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심지어 셩 지에는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몇 미터 날아가 굴러 버렸다.
티엔은 황룡 참파보다도 훨씬 강력한 저 공격에 혀를 내둘렀고 동시에 질투했다.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이면 퀸에게 일격이 먹히지 않았을까?’
티엔의 눈이 가늘어졌다.
“피해!”
에어포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력 구름과 피어오른 흙과 모래 먼지 사이로 무언가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콱!
퀸의 촉수가 슬렌더맨의 가슴을 뚫었다.
“앗, 실수.”
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른 녀석을 죽이려고 했는데.”
에어포스의 빛펀치는 분명 먹혔다. 퀸의 머리 일부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초 사이에 완벽하게 재생됐다.
당황한 에어포스는 현장에서 훌쩍 뛰어 빠져나왔지만 그 과정에서 퀸이 반격을 날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크학!”
슬렌더맨의 입에서 피가 울컥 흘러나왔다.
S급 헌터 켄지와 셩 지에가 황급히 달려와 슬렌더맨의 상처를 잡으려고 했지만 환부를 보고 둘 다 표정이 굳었다.
“이게 뭐, 뭐야?”
구멍 뚫린 가슴의 상처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부패.
“아아아악!”
슬렌더맨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얌전히 있어.”
퀸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놀란 켄지와 셩 지에는 슬렌더맨을 안고 뒤로 물러났고, 그들 앞으로 제다이와 세르게이가 뛰어들었다.
“어라, 너희 그 애 계속 안고 있으면 안 되는데.”
퀸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켄지와 셩 지에에게 말했다.
“뭐?”
콱!
갑자기 슬렌더맨의 몸에서 촉수 한 줄기가 튀어 올라 켄지의 옆구리를 찔렀다.
“크악!”
놀란 셩 지에는 재빨리 떨어져 나와 거리를 만들었고 제다이가 황급히 촉수를 잘라 버렸다.
일렉트로닉스가 전기 방출로 슬렌더맨을 지지면서 켄지를 질질 끌어냈다.
“이럴 수가!”
에어포스가 소리쳤다.
“감염됐어!”
슬렌더맨이 숨을 헐떡이며 일어났다.
그의 구멍 뚫린 가슴에 핵이 자리 잡아 꿈틀거렸다.
“촉수를 쓰는 걸 보고 훌륭한 동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자, 이리 와라.”
퀸이 손을 벌리면서 슬렌더맨을 불렀다.
슬렌더맨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그는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 비틀비틀, 퀸을 향해 기다시피 걸어갔다.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손등에 키스했다.
“맙소사…….”
그 모습에 모든 헌터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콰악!
슬렌더맨의 뒤통수에서 튀어 오른 촉수가 그대로 퀸의 턱부터 정수리까지를 뚫어버렸다.
“오, 내 통제에 저항하다니.”
머리가 관통당한 상태로 퀸이 손뼉을 짝짝 쳐주었다.
“역시 SS급은 다르구나. 하지만 반항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얘야. 착하지.”
그녀의 손바닥이 슬렌더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퀸의 머리를 꿰뚫은 촉수가 천천히 줄어들어 슬렌더맨의 몸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그의 피부 곳곳이 회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희의 전력을 한 번 보았는데, 그리 나쁘진 않구나. 너희 중 몇몇은 마력을 흡수하는 대신 엘리지아로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