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레벨업 속도는 9.8m/s^2 154화
엘리지아 게이트의 범람.
미국 전역, 아니,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뉴스로 생중계되는 현장을 보고 있었다.
방송 헬기에서 카메라맨이 인류를 멸망시킬 재앙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엘리지아 군단은 이제 300이 넘었다. 이미 일반적인 상급 게이트의 범람에서 나오는 마수의 수를 넘었다.
그러나 게이트의 범람은 아직도 진행형. 하나씩 꾸준히 나오는 엘리지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다.
존F케네디 공항에는 몇 개의 여객기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이게 단순히 뉴욕의 문제, 혹은 미국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은 세계 곳곳의 최상급 헌터들이 더 몰려온 것이다.
일본에서 후발대 헌터들의 추가 지원이 왔고,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터키, 태국의 헌터들이 지원하러 왔다.
심지어는 미국과 복잡한 정치 문제들로 마찰을 겪고 있는 중동에서도 여객기 한 대가 날아왔다.
안에서 내린 상급 헌터들 30여 명 중에는 조국이 미국과 전쟁 중인 이들도 있었다.
매우 특수한 상황으로 미 외교부의 특별 허락과 요청을 받고 들어온 것이다.
전 인류가 최초로 힘을 모아 외세에 저항한 기념비적인 전쟁.
이 사건은 훗날에 분명히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기록을 남길 이가 만약 존재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이럴 수가…….”
공항 터미널로 나오면서 아리즈가 탄식을 뱉었다.
히샴과 아이샤도 숨이 턱 막히는 끔찍한 마력압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기감이 뛰어난 아이샤는 벌써 몸이 후들거렸다.
재포니카 던전 안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도 체감되는 마력의 파장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돼. 이런 게 있을 수가…….”
맨해튼에 열렸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곳 공항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세기가 이럴 수가 있는가?
범람형 중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퍼지는 진하고 강력한 잔파는 단 한 번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도대체 게이트의 마력이 얼마나 강하면 이럴 수 있는 거지?
“어서 오십시오. 형제들.”
공항에 미리 나와 있었던 파리츠가 세 사람을 맞이했다.
“환대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미 헌터 연방국에서 전해 달랬습니다. 지금 게이트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거든요.”
“이해해요.”
“너무 강한 적들이 나왔습니다. 아시죠? 아이샤? 느껴지죠?”
“너무……. 너무 절망적이에요.”
갑자기 아이샤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이샤? 우는 겁니까?”
히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S급 헌터 아이샤가 게이트를 보기도 전에 공포에 질려 운다고?
“근접형은 기감이 낮아서 좋겠네요. 아직까지 상대가 어떤 것인지 모르니.”
“마수들이 많이 나오긴 했다더군요.”
“그런 게 아니에요.”
아이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도 전 느껴져요. 헌터국에서 전해줬던 보스의 프로필. 트리플 S라고 했나요? 그게 나왔어요.”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그것이 카메라에 찍혔을 때는 엘리지아가 500기만큼 나왔을 시점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끔찍한 것이 머리를 내밀었다.
생중계를 하던 앵커는 잠깐 말을 잃었다.
비각성자이므로 마력을 느끼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니터 화면으로 보아도 저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호랑이라곤 한 번 본 적도 없는 시골 멧돼지들이 동물원 호랑이의 분변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 것처럼.
그것이 나오는 순간, 중계를 지켜보던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털이 곤두서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퀸.
트리플 S의 위용은 단순히 강력하다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입에서 하얀 김을 뿜으며 지상에 사뿐히 내려앉은 그것은 다른 엘리지아들보다 훨씬 키가 컸고 전신에서 새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비쩍 마른 여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회색의 나뭇가지 같기도 하다.
헬기 안의 카메라맨은 퀸의 모습을 중계하면서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 저것이 퀸…… 으로 보입니다.”
앵커가 간신히 말했다.
“아. 지금 말씀드리는 순간, 퀸이 이상한 움직임을 취하는 것 같은데요?”
퀸은 상공의 헬기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다음 순간.
콰악!
갑자기 퀸의 손아귀에서 촉수 한 줄기가 총알처럼 튀어 올랐다. 날카로운 끝이 단번에 헬기를 꿰뚫었다.
파일럿은 즉사했다. 현장에 연결되어 있던 기자도 마찬가지다.
“아아아악!”
놀란 카메라맨이 지른 비명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살려줘! 살려! 제발! 헬기가 공격받았……!”
콰지직!
끔찍한 소음에 카메라맨의 목소리가 묻혔다.
퀸의 촉수는 헬기를 관통한 다음 허리띠처럼 가운데를 감싸 찌그러뜨렸다.
퀸은 천천히 그것을 잡아당겨 바닥에 내려놓았다. 불쌍한 카메라맨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살아 있었다.
“데려와.”
퀸이 명령했다.
엘리지아 성체 둘이 다가와 카메라맨을 안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반쯤 실신한 상태로 바닥에 질질 끌려 나왔다.
“이걸 보며 얘기하면 되는 건가?”
퀸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반갑다. 인계의 모두들. 나는 엘리지아계의 관리자, 퀸이다.”
퀸이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영어로 말했다.
“나는 학살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일곱 차원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 그렇지?”
그녀가 성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당하십니다.”
엘리지아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방송국에서 앵커들은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다.
“마, 마수들이 영어를 쓰고 있습니다.”
퀸은 카메라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나 역시 인계를 멸망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X등급에 이르게 되면, 그때까지 살아 있는 이들은 살려주겠다. 그리고 이 차원을 콜로라의 침탈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하지.”
퀸이 말했다.
“자신의 힘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너희의 가여운 관리자를 대신해서 말이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이곳을 침공 시작 지점으로 고른 이유가 있다. 이 도시에는 UN 본부가 있지. 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연합이라고 들었다. 예고하지. 나는 그곳을 공격할 것이다.”
“으…… 으으…….”
공포에 질린 카메라맨이 뒷걸음질을 쳤다.
“넌 내 이야기를 세계에 전달해 주었으니까 특별히 살려주마. 네가 마지막 남은 인간이 될 때까지 내가 X가 되지 못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흐으으윽!”
퀸이 자비를 베풀었지만 카메라맨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로 일어났다.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어쩔 수 없군.”
퀸이 그를 가리켰다.
“처치해.”
명령이 떨어지자 성체 하나가 잽싸게 날아들었다.
그의 손날이 카메라맨의 목을 잘라버리기 직전,
콰앙!
그 둘 사이로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두 무릎을 자연스럽게 구부린, 그리고 남은 팔 하나를 펼쳐 무게 중심을 잡은.
에어포스가 빛의 강체를 발산하고 있었다.
“빛의 강체?”
퀸의 눈이 커졌다.
에어포스는 힘껏 성체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꽝!
뒤로 몇 미터를 날아간 성체는 치명상은 피했지만 갑작스러운 일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 틈에 에어포스는 카메라맨을 껴안고 튀어 올랐다.
<비행 발동!>
로켓처럼 치솟아서 날아가는 그녀의 뒤로 빛의 잔상이 남았다.
“관리자가 이곳에 있었잖아? 마더는 대체 뭘 한 거야?”
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여자가 관리자입니까?”
성체 하나가 물었다.
“빛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천계뿐이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곳은…….”
“끝났죠.”
“그래. 그리고 천계의 관리자가 인계로 내려온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은 인계의 관리자가 되었을 것이고. 그럼 저 여자일 텐데.”
“하지만 관리자라고 하기엔 너무 힘이 부족했습니다.”
“정말. 천계의 관리자는 일곱 차원 중에서 최강이었는데.”
“마제스티엘 말씀이십니까?”
“존경할 만한 친구였지.”
퀸은 잠깐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금방 극복했다.
“다른 차원들도 그런 결말을 맞이해선 안 된다. 내가 X가 되어 모든 차원을 지켜줄 것이다.”
“옳습니다.”
“가자. 얘들아.”
퀸이 병력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슬렌더맨! 여기 있었군요. 한참 찾았잖아요. 샌드맨은 어디 갔어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지금 막 들어온 앤더슨이 헌터들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물었다.
“코카인 하러 간댔는데.”
슬렌더맨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앤더슨은 잠깐 말을 잃었다가 곧 분노에 차서 소리 질렀다.
“아 진짜! 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왜 안 말렸어요?”
중동에서 쓰이는 마정석이 들어간 카트가 아니다. 일반 약물로 SS급 샌드맨을 취하게 하려면 그 양이 엄청나야 한다.
그야말로 고래 수준의 섭취량이 필요할 것이다. 당연히 인간인 샌드맨이 그 정도의 약을 취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앤더슨은 화가 났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약간이라도 육감이 떨어질 일을 왜 하는 거야?’
“샌드맨 마약 끊은 지 오래됐어. 각성한 후로는 맛도 없고 의미 없다더군.”
슬렌더맨이 약간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갑자기 다시 왜?”
“그놈도 불안한 거지. 각성 전에 옛 버릇이 나올 정도로.”
“젠장.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하지만 말 끝나기 무섭게 샌드맨이 작전 지휘부로 들어왔다.
약간 멍한 듯 보였지만 의식은 차분한 상태였다.
“가자.”
“샌드맨!”
“잔소리는 나중에 해. 다들 어디에 있나?”
“UN 본부 근처예요.”
“엘리지아도 그쪽으로?”
“곧 도착할 거랍니다. 어서 가시죠.”
UN 본부. 이스트 강을 바라보는 맨해튼의 터틀만 이웃에 자리 잡고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는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
이 정도면 최상급 헌터들한테는 차를 타는 것보다 뛰는 게 더 빠르다.
세 사람은 곧장 작전 지휘실을 나와서 달리기 시작했다.
엘리지아의 UN 본부 공격은 이미 헌터국에서 예상했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샌드맨이 가지고 온 정보에 따르면 적들은 굉장히 지능적이고, 인계 자체를 침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본보기로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인 뉴욕을 파괴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아마도 인류 차원에서 상징적인 곳을 파괴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뉴욕에는 그런 게 수두룩해서 어떤 건물이 첫 번째 타깃이 될지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었는데, 후보는 크게 셋이었다.
1. UN 본부
2. 월스트리트 및 증권거래소
3. 세계무역센터
헌터국은 이미 옛 저녁에 세 군데 모두 시민들을 강제 대피시켰고, 그곳에 마정석 폭탄을 잔뜩 매설해 두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UN 본부 쪽에서 마정석의 마력이 농축되어 생긴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뭐야!”
달려가던 세 사람이 멈칫했다.
“UN 본부를 폭파했군!”
샌드맨이 소릴 질렀다.
“엘리지아가 이미 도착해서 터뜨린 건가?”
치직-
전투용 휴대폰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앤더슨이 휴대폰을 들고 물었다.
-엘리지아가 도착하기도 전에 마정석 폭탄이 터졌습니다.
상급 헌터 하나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떤 놈이 터뜨린 거예요?”
-헌터가 아니에요…….
“네?”
-엘리지아가 들어와서 터뜨린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그게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