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레벨업 속도는 9.8m/s^2 153화
다니엘의 손을 거쳐 재구축된 에이비의 바디는 전과 사뭇 달랐다.
비효율적인 관절 구조 몇 개가 재구성되었고 훨씬 더 유연하고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또 하나 훌륭한 것은 마정석 엔진의 작동 과정에서 메인 바디에 전해지는 충격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내구도가 훨씬 높아졌다. 이는 장기전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역시 최고의 장점은 바로, 다니엘의 손을 한 번 거쳐서 최강의 광전자포를 장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이비의 바디 오른팔에 탑재된 이 무지막지한 흉기는 충전 정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지만, 최대 출력 기준으로 에어포스의 빛펀치보다도 강한 화력을 낼 듯 보였다.
완성된 바디를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이 된 다니엘이 아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이걸 이 로봇이 장착, 장착할 건가요?”
“네.”
윤성이 답하자 다니엘의 스킬이 다시 발동되었다.
<로봇 동기화 시작. 메탈 재조합 완료. 프로세스 리부팅.>
마치 강철 갑옷을 새로 입는 것처럼, 아리의 신체 부속품 곳곳이 빠지고 찢어지면서 그 자리를 에이비의 바디가 대체했다.
에이비의 엔진이 들어가서 작동하기 시작하자 아리의 눈이 새하얀 빛으로 번들거렸다.
“엄청난 힘입니다, 주인님. 저 지금 퀸이고 마더고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오바 아니냐?”
“맞습니다. 조크였죠. 하지만 에이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군요.”
“좋았어.”
“근데 광전자포는 진짜 뜻밖이었습니다. 주인님, 당신은 대체……. 이건 어떻게 얻으신 건가요? 마더의 최고 극비 병기인데.”
“음, 어쩌다 보니.”
“아. 리.”
로봇들 한 무리가 다가와서 인사했다.
“그, 힘으로. 에이비를. 파. 괴. 해줘.”
“물론입니다. 그깟 놈은 쨉도 안 되죠. 한 번 충전만 하면요.”
아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한 번 테스트해 볼까?”
“테스트요?”
“네 엔진 한계까지 과충전 해줄게. 에이비 정도의 마력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윤성이 말했다.
<마력 주입 발동!>
어마어마한 힘.
옆에서 지켜보던 다니엘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이건 대체……. 주인님?”
“됐냐? 어때?”
“최고입니다. 바토리도 일격에 보낼 수 있을 것 같군요.”
“바토리하곤 싸우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보다, 이 로봇들은 지금 날 따르는 건가?”
윤성이 레지스탕스 로봇들을 힐끔거리며 아리에게 속삭였다.
“그럼요.”
아리도 윤성에게 속삭였다.
“레지스탕스 로봇들은 자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에요. 명령 인풋이 들어오고 그걸 수행하는 데 익숙하거든요.”
“그래?”
“그리고 주인님은 지금 저들한테 거의 신화적인 인물입니다. 물론 메탈로이드한텐 신화라는 게 없지만요.”
“좋아.”
윤성이 빙긋 웃었다. 굉장히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에이비는 아리에게 맡기자. 개조된 에이비의 바디에 광전자포를 들고 35,000점 마력을 충전시켰다.
정말로 이길 수 있을 거다.
“다니엘, 혹시 이 로봇들도 개조해 줄 수 있나요? 바깥에 휴보와 T505 사체들이 가득하잖아요? 그걸 써서 말입니다.”
“하, 할 수는 있는데 강력한 마정석이 필, 필요해요.”
다니엘이 말했다.
“이, 있는 부품을 개조하는 건 할, 할 수 있지만 이들 엔진의 마정석은 다 B급 이, 이하라서. 근데 마정석은 없, 없으니까. 다 터졌고요.”
“흠. 잠깐만 기다려요.”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발동했다.
<순간이동석>
1. 층간 이동 : 지금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2. 차원 이동 : 이동하시겠습니까? (인계, 마계, 메탈로이드계, 용계, 엘리지아계, 마이아계, 천계)
“마계.”
휘이익!
윤성의 몸이 빛으로 감싸이며 증발해버렸다.
***
새롭게 라센 북부의 패자가 된 바토리는 그룬헤잘드의 재산들의 상속 문제로 각종 서류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드디어 다 끝났군.’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기지개를 쭉 켰다.
영지 안을 둘러보며 기분 전환을 할 겸 산책을 나섰다.
빌티톤이 수행원으로 따라나섰다.
전엔 나무꾼이었던 그는, 윤성이 모두를 죽여 버리려 했을 때 그를 구해주었던 바토리의 성품에 반해 성으로 들어왔다.
원래부터 성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룬헤잘드처럼 무시무시한 영주와 함께 지내는 게 두려워서 포기했던 것뿐.
하지만 바토리는 괜찮다.
바토리와 빌티톤은 함께 영지 북쪽과 동쪽을 빙 돌았다.
“내일 기조연설입니다.”
빌티톤이 바토리에게 말했다.
“그렇지.”
“연설 준비는 다 되셨나요?”
“들어보겠느냐?”
“네.”
“그룬헤잘드의 뒤를 이어 라센 북부의 영주가 된 바토리 백작이다. 잘 부탁한다. 지금부터 우리 영지의 앞날에 대한 기조연설을 하겠다. 첫째, 품격 떨어지는 하등한 언행을 모두 금한다. 둘째, 인계에 대한 공격은 특히나 하등한 짓이니 엄격히 금지한다. 셋째…….”
“정말 그렇게 하실 겁니까?”
“그래.”
“……근데 인계에 애정이 많으신 모양이죠? 그 마스크 쓴 괴한도 인간이라고 하던데요.”
바토리가 잠깐 머뭇거렸다.
윤성이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겠지?
사실 그녀가 이만큼 성공하게 된 것은 모두 윤성 덕이 컸다. 그룬헤잘드는 그가 인계의 관리자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와 함께 일할 때가 은근히 즐거웠던 듯하다. 영지의 주인이 되었을 때보다도.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까마귀를 날리라고 했지만. 과연…….’
“혹시 그분 좋아하십니까?”
“컥!”
바토리는 사레가 들러서 잠깐 기침을 했다.
“머,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우린 그냥 친구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인간을 좋아하겠…….”
콰앙!
갑자기 눈앞에서 포탈 하나가 열리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마스크맨!”
바토리의 눈이 커졌다.
“앗, 이동하자마자 바토리를 만나다니 엄청나게 운이 좋군.”
윤성이 말했다.
“사실 순간이동석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마계엔 라센 북부 말고 다른 지역도 잔뜩 있을 텐데, 이걸 써서 이동하면 마왕 저택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서 긴장했거든.”
“무슨 소리냐?”
“아냐.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마지막에 마계에 있었던 곳이 이쪽이라서 여기가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었나봐. 아무튼 바토리! 부탁이 있어.”
“내 도움이 필요하면 까마귀를 날리면 되는데.”
“내가 직접 들고 가야 할 것들이라. 혹시 마정석 좀 있냐? A급 이상, 대량으로. 한 500개 이상.”
“있긴 있다만, 창고 안에 있는 물량의 절반 이상이구나. 무슨 일인데 마정석을 그렇게 많이 쓰느냐?”
“엘리지아를 쓸어버릴 거야.”
“흐음. 엘리지아.”
바토리가 팔짱을 꼈다.
“괜찮지. 마계 역시 엘리지아에 빚이 있다. 그룬헤잘드 또한 엘리지아와 오랫동안 싸웠고. 우리도 참전할까?”
“에이. 아냐. 넌 영지 주인이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집안 다스리기도 버거울 텐데.”
“거의 안정되었다.”
“그래?”
“그리고 사실은…….”
바토리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그룬헤잘드의 뒤를 이어 영지의 주인이 된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다질 중요한 사건 하나가 필요했다.
엘리지아에 대한 복수전이라면 어떨까? 그룬헤잘드는 엘리지아의 침공을 최전선에서 막아낸 남자다.
엘리지아에 의해 죽은 라센 북부의 마족의 수는 당시 영지 인구의 2할이 넘었다.
“우리도 참전하겠다. 마정석도 빌려주지. 대신 마정석 이상의 몫을 우리에게 줘야 한다.”
“정말이냐?”
윤성이 반색했다.
“그렇다면 나한테 작전이 있어. 이건 너희 쪽에 희생이 크지도 않을 거야.”
“어떤 작전인데?”
“빈집털이.”
윤성이 마스크 안에서 사악하게 웃었다.
49. 엘리지아 퀸(1)
에어포스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오픈된 게이트에서 거대한 악마가 나오고 있었다. 한입에 이 세계를 전부 집어삼킬 수 있는 괴물.
그것은 세기말의 재앙이었다.
많은 시민의 눈빛이 에어포스에게 구원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했을 때 보이는 것은 모두 시체뿐이다.
인류의 한계를 넘어선 죽음의 왕 앞에서는 비각성 일반인과 헌터의 구별이 없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들은 샌드맨, 안토니오, 제다이, 세르게이.
에어포스는 빛의 강체를 최고 출력으로 올렸지만 그 악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 번의 주먹을 주고받았을 때 에어포스는 자신이 끔찍한 악몽 속에 빠져있음을 깨달았다.
괴물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고, 땅이 진동할 정도로 거대한 포효를 쏟아내자 에어포스는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저항할 여력이 없다.
빛의 강체는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랜더의 코트를 휘날리며, 슈퍼히어로랜딩으로 착륙한 그것은 마스크맨이었다.
“헉!”
에어포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대 시트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브랜디를 몇 모금 마시고 TV를 켰더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요즘 뉴스들의 주제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통합된 메탈로이드 던전을 클리어하러 들어간 마스크맨, 그리고 또 하나는 게이트가 완성된 엘리지아 던전이다.
뉴욕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보니 마스크맨에 대한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불과 이틀 사이에 뉴욕의 언론들은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마스크맨과 그룬헤잘드의 결투까지 다루게 되었다.
그룬헤잘드의 사체를 분석한 한국 헌터 협회는 그것에게 SSS급이라는 이례적인 판정을 내렸지만, 미국 연방 헌터국의 생각은 달랐다.
‘그룬헤잘드라는 그 괴물은 그 어떤 SS급 헌터도 못 막는 최강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SSS라고 불릴 만한 건 아니었다.’
그룬헤잘드의 사체를 보고 돌아오는 길, 앤더슨은 비행기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국 연방 헌터국은 이미 SSS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헌터국 기록 보관소에는 보안 최고 등급의 자료들이 있다. SS급 헌터 중에서도 테쿰세만이 그걸 볼 수 있다.
앤더슨도 S급 헌터이므로 원래는 열람이 불가능해야 하지만, 의회 의장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보안 등급을 갖고 있었다.
‘트리플 S는 그런 게 아니다. 그건 지구의 평행 세계들에 있는 지배자들이다.’
아무리 힘세고 사나운 맹견이라도 사자와 싸울 수는 없지 않나.
정말로 퀸이 나오면 어떡하지? 그걸 도대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마스크맨이 그룬헤잘드라는 저 비정상적인 SS급 괴물을 꺾었다고 해도 퀸의 상대가 될 것 같진 않다.
지자기 폭풍이라는 재해급 스킬도 엘리지아에게 먹히진 않을 테고.
“휴우.”
앤더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삣, 삐. 삐.
통신 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헌터국 의회 의장 앤더슨입니다.”
앤더슨이 통신을 받았다.
“앤더슨! 터졌습니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지, 지금……. 나오고 있어요. 엘리지아가…….”
“몇이나 나오고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이건……. 이럴 수가. 이건 끝이에요. 다 끝났어…….”
“좀 진정하고 상황 설명을 해봐요.”
“상황 설명이요? 의장님. 저도 A급 헌터예요. 저 기감은 높아요. 근데 지금……. 위에서 나오는 놈 중 절반이 S급이에요.”
“테쿰세 수준에서도 상대하기 버겁겠다 싶은 놈도 있습니까?”
“많아요.”
“많다고?”
“제가 본 것만 삼십……. 하지만 계속 나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