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레벨업 속도는 9.8m/s^2 152화
“어떻게 된 거야?”
원반형 제트기를 타고 건물에서 탈출하며 윤성이 물었다.
제트기가 1인용이었기 때문에 조종석에 아리가 앉고, 양쪽의 좁은 틈에 윤성과 다니엘이 쪼그려 앉아야만 했다.
“메탈로이드계로 들어온 저는 레지스탕스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들과 세를 합쳐서 에이비를 칠 궁리를 하고 있었죠.”
“에이비를?”
“넵.”
“그 정도로 레지스탕스의 세력이 강해? 에이비 본인의 전투력은 둘째 치고 여기 굉장히 많은 메탈로이드 군대가 있었는데.”
“바로 그게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주인님. 레지스탕스는 EMP 충격탄을 개발했어요.”
“EMP? 하지만 너희도 영향을 받을 것 아냐?”
“레지스탕스는 EI라는 전파 방해 차단막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아직 마더한텐 없는 거예요. 레지스탕스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이걸 독자적으로 준비했거든요.”
“그럼 내가 쓴 지자기 폭풍도 그걸로 막은 건가?”
“그 미친 스킬을 지자기 폭풍이라고 부릅니까? 크! 저희는 감탄했습니다. EMP 수천 발도 견딜 수 있는 EI가 단 두 방에 몽땅 망가졌어요.”
“그랬냐? 좀 미안한데.”
“아닙니다! 다들 좋아했습니다. 사실 EMP를 아무리 잘 써도 휴보와 T505 1,000기를 전부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거든요.”
여태 생산된 EMP탄은 30발. 그걸 전부 퍼부어도 범위 안에 1,000기나 되는 적을 한꺼번에 다 넣는 건 굉장히 어렵다.
게다가 EMP로는 적을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 기절시키는 게 고작. 군대가 무력화된 시간 동안 에이비를 죽이지 못하면 역으로 당한다.
따라서 레지스탕스가 계획했던 작전은 리스크가 매우 크고 성공률이 낮은 도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웬 미친놈이 들어와서 무지막지한 스킬로 도시 전체의 메탈로이드를 박살 내버렸다.
지하 기지의 EI 아래 숨어 있었던 레지스탕스들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적들은 전멸.
이보다 상황이 좋을 수가 있을까?
“전 그 현장을 보자마자 바로 느꼈습니다. 아, 이것은 주인님이다. 주인님께서 오셨다. 이런 미친 짓을 벌일 분은 주인님뿐이다. 레지스탕스한테도 그렇게 광고했죠.”
“레지스탕스가 날 알고 있어?”
“주인님, 지금 이 동네 지하세계의 히어로입니다. 조크 아니고 실제로요.”
“미친…….”
“운명입니다. 받아들이시죠. 레지스탕스 입장에선 통쾌하게 마더 측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기적의 남자인걸요. 아무튼 저는 그 길로 주인님을 찾아서 제트기를 하나 강탈해 출발했죠.”
“근데 내가 건물 꼭대기 층에서도 지자기 폭풍을 한 번 썼는데, 혹시 너 거기에 말려들진 않았어?”
“말려들었죠. 간이 제작된 EI를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아작 났답니다.”
“근데 용케 무사했군.”
“사실 잠깐 의식이 나갔었는데 곧 회복했습니다! 제트기도 맛이 갔었는데 제가 고쳤습니다. 예비 마정석을 가지고요.”
“대단하군.”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인계 최고의 전투 로봇, 일산의 엘리지아들을 싹 다 불태워 버린 소각의 화신, 바토리를 때려잡을 유일한 철인, 주인님이 인계에서 가장 아끼는 존재!”
“마지막 건 빼라.”
“슬쩍 묻어가려 했는데 실패했군요. 역시 날카로우십니다.”
짝짝짝.
아리가 핸들에서 손을 떼고 박수를 쳤다. 윤성이 식겁해서 소리쳤다.
“운전해! 운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비행선은 제가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저, 저기, 마스크맨. 이 로봇은? 대체 무엇인지…….”
다니엘이 해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메탈로이드입니다. 믿어도 좋아요.”
윤성이 짧게 답했다.
“저도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요, 주인님?”
“아. 괜찮아.”
“좋습니다. 그럼 재밌는 것을 알려드리죠. 주인님, 우린 지금 레지스탕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엄청난 게 있어요.”
“엄청난 거?”
“보시면 진짜 깜짝 놀라실 겁니다.”
아리의 제트기는 빠른 속도로 일루미나 타워의 동쪽으로 이동했다.
높은 고도에서 보이는 메탈로이드 도시는 아래에서 볼 때와 완전히 다른 전경이었다.
동시에 윤성은 자신이 지자기 폭풍으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막대한 크기의 도시가 끝에서 끝까지 전부 정전이다.
저절로 작동된 비상 동력이 군데군데 불빛을 밝히고 있었지만 겨우 그뿐이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건물들에서 일을 할 로봇들이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도시 전체의 90%가 마비됐어요.”
아리가 신난 듯 말했다.
“레지스탕스가 개발하던 EMP탄 같은 거랑은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었죠, 주인님.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을 손에 넣으신 건가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근데 레지스탕스는 아직이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제트기가 곧 강하하기 시작했다. 착륙한 곳은 동편 초거대 제철소 뒤편의 후미진 곳이다.
“따라오시죠.”
아리는 제트기를 인근 지역에다 버려두고 무작정 움직였다.
“저렇게 내팽개쳐놔도 되는 거야?”
“원래 안 됩니다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 도시의 모든 로봇이 다 죽었으니까요. 제철소도 작동 중지 상태에요.”
아리는 윤성과 다니엘을 데리고 제철소 지하 통로로 내려갔다.
“미안하지만 물속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리가 물었다.
현재 윤성은 완력과 순발력이 35,000점을 넘었다. 이미 초인 중에서도 초인이다.
생명력과 운동 능력이 이쯤 되면 수중 호흡 같은 스킬이 없다고 해도 별 상관없다.
고래가 아가미 호흡을 못 한다고 물속에서 문제가 되겠는가.
“난 괜찮은데…….”
윤성이 다니엘을 힐끔 쳐다보았다.
다니엘의 신체 능력은 거의 일반인과 다름없는 수준.
“잠깐 기다려.”
윤성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랜더의 팔찌 발동!>
새로 얻은 아이템의 네 슬롯에 현재 가지고 있는 스킬들 넷을 각각 세이브했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이번엔 점프.
통합된 던전의 모든 휴보와 T505를 쓸어버리면서 수직 상승한 레벨은 291에 이르렀다.
2,910미터를 모두 올라갈 필요는 없다. 수중호흡 스킬의 범용성을 생각해볼 때 그 스킬이 나올 만한 구간은 앞쪽이다.
수중호흡 같은 편의성 보조 스킬이 용조나 중금속 폭우 같은 최상급 전투 스킬과 견줄 만한 것은 아니니까.
아이언피스트가 나왔던 첫 번째 슬롯, 또는 급속 냉각이 나왔던 두 번째 슬롯에서 나올 게 뻔했다.
점프 높이는 가능한 낮게.
<최종 속력=51.47m/s, 낙하 거리=814.29m, 낙하 시간=19.44s>
<랜딩 성공!>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인형술-마력 주입’>
“마력 주입?”
윤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만.
인형술은 본래 인형의 전투력도 중요하지만 시전자의 마력도 매우 중요하다.
S급 부품과 SS급 엔진을 가지고 있었던 아리가 최예빈의 마력 주입을 받아서 엘리지아 성체를 두들겨 팬 적도 있으니까.
‘지금 내 지능은 순수 능력치를 포함해 36,000점이 넘는다.’
여기서 나오는 이 막대한 마력을 아리에게 불어넣어준다면?
에이비와 한 번 겨루어보았을 때 체감된 힘은 서로 비등했다.
단지 에이비 측은 윤성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와 인공지능 특유의 연산 능력에 기반하여, 윤성의 모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달랐다.
하지만 같은 힘을 아리가 쓴다면? 연산으로는 뒤지지 않을 테고 아리의 전투에 대한 정보는 에이비에게도 없을 거다.
그럼 승산이 있지 않을까?
윤성은 아리의 전투력 폭등을 잠깐 상상하다 관두었다.
부품이 S급이다. 아무리 강한 힘을 받아봤자 에이비와 겨룰 정도는 안 될 것이다.
마력을 최대 충전시킨 다음 이 대 일 전투를 하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군.
일단 수중 호흡부터 얻자. 마력 주입은 꽤 쓸만해 보이니까 내버려 두고 첫 번째 슬롯에서 찾아볼까.
윤성은 몇 번의 점프를 거듭한 후에 결국 원하는 스킬을 얻었다.
<최종 속력=49.80m/s, 낙하 거리=368m, 낙하 시간=10.7s>
<랜딩 성공!>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수중 호흡’>
지하실로 돌아와서 곧바로 다니엘에게 수중 호흡을 걸어주었다.
“대, 대체, 뭐, 뭐 하시는 분입니까?”
다니엘이 종잡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윤성이 여태까지 보여준 것들은 그야말로 최강 잡종 같은 느낌이다.
근접전 헌터들을 다 쌈 싸먹을 정도로 막강한 단검술과 철권, 마법 계열 레인저보다 우수한 장거리 공격 마법, 이제는 보조 계열까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시죠.”
윤성은 아리를 앞세우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원래 그 물은 용광로의 열기를 식히는 냉각수다. 따라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펌프가 강력한 압력으로 물을 빨아들인다.
그런 공간에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비밀 통로는 마더나 에이비에게 여태껏 들키지 않았다.
물론 위험 부담은 꽤 있다. 펌프가 작동하는 타이밍을 아무리 정확히 분석해도 예상외의 돌발 상황들이 가끔 벌어지니까.
하지만 지금은 매우 안전하다. 제철소가 완전히 작동 중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해저 비밀 통로를 따라 쭉 이동하자 어느 순간 물살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떨어질 겁니다. 조심하세요.”
아리가 말했다.
‘떨어진다고?’
“우그르를!”
공포에 질린 다니엘이 뭐라고 비명을 지른 모양인데 입에서 물거품이 잔뜩 올라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안, 다니엘. 다음엔 수중발성 스킬도 획득해서 걸어줄게.
윤성은 앞에 뭐가 있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았다.
급류의 끝은 폭포다.
바닥면까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랜딩은 필요 없었다.
아리, 윤성, 다니엘은 순서대로 통로 끝으로 급류를 따라 분출되었다.
순간 탁 트인 전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꽤 거대한 크기의 메탈로이드의 지하 도시였다.
첨벙!
폭포 아래의 작은 저수지에 빠진 다음, 셋은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윤성은 쫄딱 젖은 옷을 벗어서 물을 털어냈다.
랜더의 코트, 손목시계, 팔찌와 전투화는 완벽한 방수가 되었지만 보급형 전투복은 그렇지 않았다.
찝찝해진 윤성은 전투복을 벗어서 한 손에 들었다.
“우, 우와. 이, 이런 건 처음 봤어요.”
다니엘이 감탄을 터뜨렸다. 과연 레지스탕스의 도시는 훌륭했다. 도시의 메인 빌딩으로 보이는 거대한 타워에는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 있었다.
<환영합니다. 마스크맨.>
“뭐야 저거!”
놀란 윤성이 아리에게 묻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지금 여기서 주인님은 도시에 발을 들이자마자 에이비의 군대 1,000을 박살 내고 에이비를 죽이러 쳐들어간 히어로라니까요.”
“으음.”
“일단 따라오십시오. 더 놀라운 걸 보여드리죠.”
더 놀라운 거라니, 기대되고 무섭다. 아리를 따라간 윤성은 곧 도시의 메인 빌딩 아래에 이르렀다.
그곳에 엄청난 숫자의 레지스탕스가 모여 있었다.
“세상에…….”
그중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아톰!”
옛날 메탈로이드 도시에 처음 갔을 때 함께 고압 프레스를 탈출했던 로봇이다.
지금 아리의 몸체인 T505를 발전소에서 얼려서 강탈할 때 도와준 로봇이기도 하다.
“안. 녕.”
그가 윤성에게 인사했다.
“아톰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더군요. 주인님. 저는 메탈로이드계에 오자마자 아톰을 만났고, 주인님의 사진을 통해서 아톰과 친구가 됐습니다. 덕분에 그대로 레지스탕스에 들어왔죠.”
아리의 눈이 노란색으로 빛났다. 갑자기 그가 레지스탕스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혁명의 때가 왔습니다!”
“혁명의 때?”
황당한 표정의 윤성을 아리가 가리켰다.
“레지스탕스를 구원할 위대한 존재가 폭풍을 몰고 오셔서 모든 메탈로이드를 쓸어버리셨습니다!”
짝짝짝.
아리가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짝짝짝!
갑자기 메탈로이드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윤성은 어버버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다가 함께 박수 치는 다니엘을 발견했다.
“뭐야? 다니엘은 왜 박수 쳐요?”
“왜, 왠지 해야 할 것 같, 같아서.”
“좋습니다!”
아리가 외쳤다.
“제 주인님께선 마더를 파괴하실 겁니다!”
그가 레지스탕스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
로봇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저는 주인님의 챔피언이 되어서 에이비를 꺾을 겁니다!”
“와아아아!”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 잠깐만!”
윤성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는 아리를 한쪽으로 조용히 데리고 가서 속삭였다.
“야, 미안한데 네 힘으론 에이비한테 안 돼. 내가 너한테 마력 주입을 하고 우리가 이 대 일을 하면 또 모르겠지만…….”
“아, 주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리가 눈을 반짝거렸다.
“여러분! 챔피언 바디를 가져다주세요!”
아리가 레지스탕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놀라운 걸 보여드린다고 했죠?”
이윽고 레지스탕스들이 가지고 온 것을 본 윤성은 진짜로 놀라서 마스크 안에서 입이 쩍 벌어졌다.
레지스탕스가 가져온 그것은 바로 에이비의 바디였다.
“레지스탕스는 오래전부터 마더를 꺾기 위해서 챔피언의 바디의 데이터를 연구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의 완성됐죠.”
“맙소사.”
“다만 이걸 소화할 수 있는 로봇이 그동안은 없었습니다. 제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죠!”
“대, 대단해요…….”
갑자기 다니엘이 황홀한 표정으로 에이비의 바디를 바라보았다.
“이거, 이거 제가 좀 만져 봐도 되나요? 몇 군데 추, 추가 개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요?”
윤성과 아리가 동시에 반응했다.
“제가 그 거대한 열기구를 혼자 어떻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니엘이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뭔가 스위치가 켜졌군.
“제 고유스킬이 뭔지 아직 안 알려드렸죠?”
다니엘이 떨리는 손으로 에이비의 바디를 만졌다.
<기계 분석 발동!>
<……캘리브레이션 완료. 최적화 분석 완료. 모델 재구축 시작.>
에이비의 바디가 빛을 뿜으며 기묘한 변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잠깐만!”
윤성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이것도 같이 해주세요.”
그가 내민 것은 에이비의 광전자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