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51화 (151/260)

# 151

레벨업 속도는 9.8m/s^2 151화

윤성은 다니엘과 함께 메탈로이드의 기지 깊숙이 진입했다. 수많은 휴보와 T505의 사체들을 지나치면서.

가끔씩 그 로봇들의 엔진에서 칙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때마다 다니엘은 호들갑을 떨며 윤성의 뒤로 숨었다.

정말 겁 많은 사람이군.

하지만 이해는 된다. 갑작스러운 일격이 어디서든 날아온다면, 다니엘에겐 그걸 지각할 능력도, 피할 순발력도, 견뎌낼 힘도 없으니까.

그야말로 태풍 한가운데에 있는 촛불 같은 상태다.

약 30여 분 정도 진입했을 무렵, 윤성의 눈앞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 어쩐지 눈에 익은 광경이다.

깎아지른 듯 거대한 타워, 그 상층부에 로고 하나가 새겨져 있다.

<일루미나>

옛날 아리의 어깨에 박혀 있었던 로고다.

전에 순간이동석을 써서 갔던 메탈로이드의 도시와 흡사한 구조다.

“여기는 전초 기지 같은 게 아니군.”

인계를 정복하기 위해 만든 임시 거처가 아니라 진짜 메탈로이드계다.

‘아리가 레지스탕스를 조직해서 마더를 방해하겠다며 메탈로이드계로 갔었는데.’

혹시 아리도 지자기폭풍을 맞고 뻗은 건 아니겠지……?

걱정된다.

그리고 저 일루미나 건물 내에 이 15개 던전의 통합된 보스가 존재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쪽에서 알 수 없는 파장대의 마력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증거는 일루미나 건물 앞에 서 있는 T505였다.

약간 과충전된 상태로 보였고 멀쩡한 상태였다. 지자기폭풍이 여기까진 미치지 않은 것이다.

<단검 투척 타깃>

윤성은 단검을 던져 하나를 맞추고 나머지 하나는 빛의 탄환으로 머리를 날려 버렸다.

“저 건물 안에서 지자기폭풍을 써야겠군요.”

윤성은 거의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표정의 다니엘과 함께 일루미나 건물 입구로 접근했다.

“무, 문이 잠겨 있어요.”

다니엘이 말했다.

“이거 여는 방법이 있죠.”

“어떻, 어떻게?”

윤성은 익숙하다는 듯 T505의 어깨 부분을 뜯어내 그 바코드를 메인 게이트의 잠금장치에 인식시켰다.

삑!

신호음과 함께 파란색 불이 들어왔다. 대문이 철컹 열렸다.

“가죠.”

윤성은 바짝 주의를 기울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 안의 흉흉한 마력은 상당히 무겁다.

어떤 적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마더가 있을 수도 있다.

35,000점 버프로 마더를 잡을 수 있을까?

윤성은 비관적이다.

차원문을 열기 전, 최상의 컨디션인 그룬헤잘드 정도는 어찌해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한 체급 위인 마더나 마왕을 제압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침입자 감지.”

휴보 몇이 윤성과 다니엘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갑니다.”

<지자기폭풍 발동!>

막대한 마력. 어마어마한 전자기 펄스가 건물을 휩쓸고 지나갔다. 1층에 있던 휴보들은 당연히 다운되었고 전등이 팍! 소리와 함께 꺼졌다.

“아, 안 보여요.”

겁에 질린 다니엘이 말했다.

“불을 켜드리죠.”

라이트 같은 보조 마법을 쓰면 간단히 빛을 밝힐 수 있지만 윤성에겐 그 스킬이 없다.

<빛의 탄환 발동!>

하지만 훨씬 더 고출력의 빛 마법이 있다. 윤성은 빔을 발사하는 대신 손가락 끝에 걸어두었다.

마지 손전등을 들고 있는 것처럼 주위가 환해졌다.

“보스는 위층에 있는 것 같은데.”

윤성이 고개를 들며 혀를 찼다.

최상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맛이 가버린 것이다.

건물 밖으로 다시 나온 윤성은 고개를 뒤로 젖혀 건물 최상층을 살펴보았다.

약 170층의 건물.

꼭대기의 열 개 정도엔 불이 들어와 있다. 지자기폭풍이 저곳까진 미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의 전투를 생각하면 스킬의 범위 자체가 저 높이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상층부에서 흘러나오는 저 기이한 마력이 지자기폭풍을 막아버린 것일 터다.

“이렇게 하죠. 다니엘.”

윤성이 작전을 설명했다.

***

약 10분 후, 다니엘은 비명을 지르며 윤성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윤성이 랜더의 전투화를 한 번 사용한 후였다.

비록 힘을 억눌러서 170미터 정도만 점프했지만 다니엘을 겁에 질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런 식으로 저랑 같이 옥상까지 점프해서 올라가죠.”

윤성이 권유하자 다니엘의 얼굴이 해쓱해진 것이다.

“어, 어떻게요?”

뒤에서 절 꽉 붙잡고 매달려요. 제가 점프해서 옥상까지 뛰어오를 테니까.

“사, 살려주세요, 마스크맨.”

“엘리베이터도 없이 저 최상층까지 걸어 올라가면 확실히 죽을 겁니다. 힘들어서요.”

“하지만 그렇다고 점프를…….”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자체도 생각해보니 안 될 것 같아요. 놈들이 엘리베이터를 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경우에도 옛날 샌텀 타워 때처럼 다니엘을 등에 업으면 둘 다 살 수는 있겠지만.

에어포스에게도 숨긴 랜딩 능력을 다니엘에게 공개하는 건 사양이다.

“여기 종일 있을 것 아니잖아요. 빨리 업혀요.”

다니엘이 훌쩍이며 윤성의 허리를 꽉 안고 매달렸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엄청난 속도로 치솟는 두 사람의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부딪혔다.

“으아아아!”

뒤에서 다니엘이 비명을 질렀다.

40층, 70층, 100층, 130.

이제는 불이 켜진 층들이다.

옥상 앞.

쿠웅!

윤성은 다니엘과 함께 무사히 건물 옥상에 안착했다.

그리 높은 곳까지 뜨지는 않았기 때문에 랜딩할 필요는 없었다. 맨몸으로도 무사히 착지할 수 있는 정도다.

“가볼까요?”

윤성은 계단을 통해서 아래층으로 내려섰다.

삑!

T505 몇 기가 윤성을 발견하고 전투태세에 들어섰다.

<지자기폭풍 발동!>

이렇게 자꾸 남발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여기서 한 방 갈겨주는 편이 좋겠지.

근접한 만큼 위력도 더 강해졌을 것이다. 운 좋으면 보스도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

쿠우우웅!

강력한 전자기장이 휩쓸자 최고층의 전등들이 모두 꺼졌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은 다시 손가락을 전등처럼 사용해서 주위를 밝혔다.

그는 다니엘과 함께 계단을 통해 몇 층을 더 내려갔다.

그리고 세 층만큼 계단을 내려가자 아직 전등이 켜져 있는 곳이 나타났다.

안에는 인간형의 로봇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로봇에서는 매우 기묘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중이다.

어깨에 박힌 로고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루미나-에이비>

하지만 에이비라는 이름은 분명히 본 적 있다.

제트기를 타고 뉴욕으로 넘어오던 중에 8,000미터 랜딩 보상을 획득했을 때.

SS급 마력 광전자포의 설명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었다.

<메탈로이드를 수호하는 마더의 최강 전투로봇, 에이비의 광전자포.>라고.

저 녀석이 그 에이비인가?

48. 메탈로이드 마더의 챔피언

윤성이 바짝 긴장했다. 과연 여태껏 보았던 어떤 적들보다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룬헤잘드 이상.

“네가 인계의 관리자인가?”

에이비가 물었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네가 지자기폭풍을 막았나?”

“그래. 상당히 위협적인 스킬을 쓰더군. 하지만 내 마력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네가 마더의 수호 로봇이냐? 에이비?”

“그렇다. 날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나는 마더의 1세대 챔피언이다.”

“챔피언?”

“마더는 단일 개체의 로봇이 아니다. 그분은 메탈로이드를 통제하는 시스템 그 자체지.”

“음.”

“그분은 자신의 막대한 마력을 몇 개의 챔피언에게 나누어 담았다. 나는 그중 1세대다. 가장 많은 개조를 받았고 현존하는 챔피언 중 최강이지.”

에이비가 윤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인계의 관리자. 너는 마더의 함정에 빠졌다. 이미 인계는 끝났다. 그곳에 남은 것은 멸망뿐.”

“무슨 소리냐?”

“엘리지아 던전의 게이트는 이미 완성되었다.”

“뭐!”

윤성이 경악했다.

그 마력 파장의 흐름은 분명 조만간 게이트를 형성할 것으로 보였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벌써 게이트가 생겼다고?

“어, 어떻게 된 거지?”

“마더는 엘리지아 퀸과 거래했다. 인계를 퀸에게 주기로 했지.”

“뭐라고!”

“우리의 목표는 인계의 관리자를 이곳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퀸은 네가 관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마더의 계산은 언제나 정확하다. 인계의 관리자는 너다.”

“그럼 뉴욕에 엘리지아가 범람한 건가?”

“아직 범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곧 범람하겠지.”

에이비의 눈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관리자. 내가 너나 마더의 위계보단 모자라는 존재지만, 마더를 가장 오랫동안 모셔온 챔피언으로서 충고하지.”

에이비가 말했다.

“넌 이곳에 혼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최소한 에어포스나 샌드맨, 안토니오 같은 인계 최강의 헌터들을 대동해야 했다. 그런데 지자기폭풍의 방향과 사거리를 잡아줄 보조 계열 하나만 데려오다니.”

“무슨…….”

“최고의 선택지는 차원문을 열어 최상급 헌터들을 모두 이끌고 메탈로이드를 침공하는 것이었다. 엘리지아 게이트가 인계에 열리기 전에 이쪽을 꺾어놓는 것이지.”

“…….”

“네가 가진 지자기폭풍을 잘 이용하면 메탈로이드의 모든 군대를 손쉽게 무력화할 수 있었을 터. 그렇다면 최상급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서 날 쉽게 제거할 수 있었을 거다. 그 어떤 희생도 없이.”

에이비의 몸에서 잔잔한 마력이 분출했다.

“그러나 너는 혼자서 여기에 왔다. 때문에 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겠지. 나는 마더가 만든 최강의 챔피언이니까. 네게 승산은 없다.”

“그건 모르는 거지.”

“하하, 난 네 전투력을 정확히 집계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엔 이미 모든 데이터가 있으니.”

팍!

갑자기 윤성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것은 윤성의 35,000점 버프를 가진 상태창이었다.

동시에 동영상 수십 개가 재생되었다.

모두 윤성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네 전투 패턴과 힘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또한 내 연산 능력은 네 모든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 네게 승산은 없다.”

“이 무슨…….”

“그리고 네가 여기서 죽기 때문에, 관리자가 없는 인계의 헌터들은 엘리지아를 막지 못한다.”

윤성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인계의 관리자. 네 오만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했다. 너보다 강한 마더나 퀸조차도 인계를 침공하는데 자신의 군대를 대동했음을 왜 모르는 거지?”

갑자기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 무역 센터 휴게실에서 말을 걸었던 에어포스가 떠올랐다.

지자기폭풍을 사용하기 전까지 위험할지도 모르니 함께 가자던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난, 나는…….”

“일단 저 하찮은 바디의 마법사부터 처치해야겠군.”

쾅! 쾅! 쾅!

에이비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강철 주먹이 다니엘의 얼굴에 작렬하기 직전,

꽈앙!

간신히 윤성이 몸으로 그를 막아냈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제길!”

<용조 발동!>

윤성의 손가락이 날카롭게 변해 에이비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쩡!

그러나 손가락 끝이 약간 파고들었을 뿐, 그의 가슴을 찢어버리진 못했다.

“큭.”

윤성은 힘껏 에이비를 발로 찼지만 에이비의 팔뚝이 날아와 정확히 막아냈다.

쾅!

이번엔 펀치를 날렸지만 그 역시 에이비의 손에 막혔다.

“젠장! 다니엘! 일단 여기서 피해요!”

윤성이 에이비의 몸통을 향해 역수로 쥔 단검을 찔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은 제대로 에이비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리고 에이비는 윤성의 공격을 정확히 읽었다.

그의 억센 손이 윤성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이, 이 새끼가…….”

이 막대한 힘을 가지고도 뿌리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힘 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에이비는 윤성이 힘을 쓰는 방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윤성의 팔을 꺾었다.

“크악!”

“끝이다. 관리자.”

에이비의 주먹이 윤성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멈춰라. 에이비.

갑자기 건물 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뭐지?”

에이비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마더다. 더 이상 폭력은 용납하지 못한다.

“헛소리하지 마라. 마더는 내게 직접 통신을 보내신다. 나는 그분의 마력을 나누어 가졌으니까. 이 시스템을 해킹하다니, 대체 누구냐?”

-조크를 쳐도 다큐로 받다니. 이래서 메탈로이드는 안 됩니다. 그렇죠, 주인님?

콰아아아앙!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벽면이 박살 났다. 무언가가 건물 안으로 난입하고 있었다.

그것은 1인용 원반 모양의 초소형 메탈로이드 제트기였다.

“뭐냐?”

이것만큼은 에이비도 예상치 못했다.

철컥

제트기의 조종석이 열렸다. 안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주포.

쾅!

강력한 에너지 탄환이 에이비를 날려 버렸다.

그 안에서 익숙하고 시건방진, 너무나 반가운 로봇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시죠, 주인님.”

아리가 조종석에서 눈을 반짝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