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50화 (150/260)

# 150

레벨업 속도는 9.8m/s^2 150화

사실 대피령은 이미 예전에 내려두었다. 뉴욕 상공에 게이트들이 막 형성되던 때에 말이다.

메탈로이드 던전들이 일반형이었지만 평범한 일반형과 다르게 쉽게 범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범람 전까지 모두 처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장 세기 10,000sY를 찍어버린 역대급 게이트가 형성되는 중이었다.

때문에 헌터국은 모든 시민에게 뉴욕에서 나갈 것을 권고했었다.

그러나 이곳은 뉴욕이다. 인구는 900만. 각종 상업, 금융, 미디어, 연구, 기술,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다.

당연히 일주일 사이의 시간 동안 모든 시민이 대피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헌터국에 대한 막연한 믿음으로, 어떤 이들을 자포자기 해버린 심정으로 남았다.

파슨스 뉴 스쿨의 일리나와 그 동기들 역시 작품 전시 준비로 무리하게 남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헌터국 역시 던전 클리어 외의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남은 사람들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엘리지아 던전도 거의 무르익어 간다. 메탈로이드 던전 15개가 통합된 던전이 범람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미연방 헌터국은 15개의 S급 던전들을 통합하여 한 번에 파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작전명 <맨해튼 스톰>을 발표하겠습니다.”

이튿날 열린 기자회견. 테쿰세가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지자기폭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고, 통합된 15개 던전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모든 뉴욕 시민들은 뉴욕에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연방 헌터국에서 적극 돕겠습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전부 저질러 버렸다. 구체적인 작전 내용에 대해선 엠바고를 걸까 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사실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뉴욕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테니까. 이 나라의 국민들 모두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 지자기폭풍이란 걸 어떻게 일으키는 겁니까?”

“SS급 헌터 마스크맨이 할 겁니다.”

“헌터 한 명이 그런 걸 일으키는 게 가능합니까?”

“이미 그는 이번 CEA 던전 중 하나에서 그 스킬을 시험하여 5분 만에 던전을 클리어한 이력이 있습니다.”

“헌터국에서 그 스킬을 확인하였나요?”

“이쪽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S급 헌터 다니엘 윈턴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그들이 내놓는 실시간 뉴스들. 인터넷 인기 검색어와 트윗은 실시간으로 변했다.

[지자기폭풍]

[CEA 게이트 통합]

[마스크맨]

[SS급 던전]

정치인과 기업가, 연예인.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헌터국의 결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테쿰세가 <맨해튼 스톰> 작전을 발표한 후, 뉴욕에선 이미 많은 수의 시민들이 대피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교통 혼잡이 초래됐다.

우습게도 에어포스나 샌드맨 같은 최상급 헌터들이 시민들의 대피나 돕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것은 윤성과 다니엘, 두 사람에게 맡겨졌다.

늦은 저녁, 세계 무역 센터 앞.

던전 통합 조작기의 설치가 완성되었다. 대상은 S급 게이트 중에서 가장 컸던 녀석이다.

다니엘은 조작기에 S급 마정석을 꽂고 작동시켰다.

꽤 많은 시민이 아직도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응원하거나 집에서 TV로 생중계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다.

***

윤성은 세계 무역 센터 내부의 휴게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있었다.

다니엘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간 직후의 몇 가지 경우의 수들에 대해 점검하는 중이다.

에어포스가 나타났다.

“제가 함께 들어갈까요?”

에어포스가 윤성에게 물었다.

“왜요?”

“그냥……. 지자기폭풍을 쓸 때까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제가 지켜줄 수 있고요. 그 스킬, 작동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아요.”

윤성이 설명했다.

“게다가 펄스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지하에 대규모 전류가 흐르면서 휴보들이 다 마비되더라고요. 걱정 마요.”

“하지만 그래도…….”

“오히려 에어포스가 거기 있으면 지자기폭풍에 휩쓸릴까 봐 걱정돼서 제가 스킬을 잘 못 쓸 것 같아요.”

윤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에어포스는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전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그 누구도 마스크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가 없다.

헌터국에서 은근히 무시 받던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빠지지직!

통합 조작기가 마력을 모아준 게이트가 불안정한 파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휴우.”

메이를 비롯한 헌터들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테쿰세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그동안 게이트들은 몇 개가 다시 복구되어 이젠 열네 개가 되어 있었다.

맨해튼 전역에 아홉 개, 퀸스에 둘, 브루클린에 하나, 브롱크스에 하나.

그들은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더니 서서히 소멸하듯 일그러졌다. 다니엘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성공한 거예요?”

지켜보던 메이가 앤더슨에게 속삭였다.

“모르겠는데요. 일단 더 지켜보면…….”

그때, 갑자기 통합 조작기에서 스파크가 번쩍 튀었다.

“힉!”

다니엘은 깜짝 놀랐지만 통제를 놓치진 않았다.

그가 조작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힘이었다. 단 한 개의 던전도 버겁다.

마치 버튼 몇 개와 레버와 핸들로 거대한 여객기를 조종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 그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약 30분이 지난 후.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굉음이 뉴욕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전투 휴대폰으로 소식을 듣던 앤더슨의 표정이 환해졌다.

“게이트들이 없어지고 있답니다!”

각 게이트 위치에 파견된 헌터들이 무전으로 연락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통합 조작기로 모여든다.

눈앞의 게이트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크기가 삽시간에 불어났다.

삐, 삐, 삐!

마력 측정기가 신호음을 울렸다.

“10,000sY…….”

측정기를 확인한 앤더슨이 소름 끼치는 팔을 문질렀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대한 게이트다.

찰칵!

또다시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SS급 게이트 출현. 과연 헌터국의 선택은 뉴욕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재앙을 초래할 것인가?]

[지자기폭풍을 일으킬 SS급 헌터, 마스크맨은 누구인가?]

[뉴욕의 미래가 걸린 결전의 시작.]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인터넷 뉴스를 휩쓸었다.

“다 준비됐군요.”

무역 센터 건물에서 마스크맨이 나왔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그를 향했다.

놀랍게도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입고 있지 않았다.

S급도 아닌 평범한 전투복 차림이었던 것이다.

제다이의 옆자리에서 앤더슨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윤성은 곱게 개어 쇼핑백에 담은 샌프란시스코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제다이한테 소중한 물건 같던데, 지자기폭풍 쓰다가 상할까 봐 벗었어요.”

“어, 어…….”

얼떨떨한 기분으로 앤더슨이 샌프란시스코를 받았다. 원래 시나리오는 이런 게 아닌데.

윤성이 제다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보관하세요. 나중에 저 같은 좀도둑 기질 있는 동양인 말고 백인 헌터한테 꼭 물려주셔야죠.”

제다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무슨 소립니까?”

앤더슨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게…….”

샌드맨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모-뻐킹 레이시스트가 너더러 그렇게 말했나? 좀도둑이라고?”

윤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샌프란시스코 망가져도 되니까 마스크맨이 가지고 가시죠.”

앤더슨이 황급히 전투복을 도로 내밀었지만 윤성은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다니엘한테 줄까 했는데 다니엘한텐 너무 커서 안 되겠더라고요. 다니엘도 싫댔고.”

앤더슨이 제다이를 째려보았다.

“마스크맨.”

에어포스가 그에게 다가왔다.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마요.”

게이트를 향해 다가가던 윤성은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니엘이 따라 했지만 누가 봐도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이었다.

사실 이젠 혼자서도 지자기폭풍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되니까.

다니엘의 전문성은 그때 꼭 필요하다. 한 번만 실수해도 뉴욕의 명운이 달라지는 일이니까.

“다니엘, 괜찮죠?”

게이트 앞에 선 윤성이 물었다.

“괘, 괘, 괘, 괜찮…….”

“갑시다.”

두 사람은 SS급 게이트 내부로 입장했다.

“앗!”

무언가를 발견한 앤더슨이 소리를 질렀다.

마스크맨이 입장한 후 게이트의 파장이 급격히 불안정하게 기울었다.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놀란 에어포스가 소리쳤다.

“게이트가……. 사라지고 있다?”

테쿰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스크맨!”

놀란 에어포스가 닫히는 던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쾅!

무언가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오고 말았다.

“침식형 던전처럼 변했어.”

세르게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테쿰세 헌터님!”

갑자기 헌터국의 상급 헌터 한 명이 무전을 받고 달려왔다. 그의 얼굴이 완전히 울상이 되었다.

“큰, 큰일 났습니다.”

“뭐야?”

“엘리지아 게이트가…….”

그곳에 모여 있던 헌터들 모두가 그다음 이어질 말을 예상하고 공포에 질렸다.

“게이트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범람 조짐은 어떻습니까?”

에어포스가 물었다.

“일단 범람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범람이 거의 초재기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파장대가 엄청나게 불안정해요.”

“이럴 수가…….”

“하지만 그게 10,000sY가 넘은 최상급 게이트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죠.”

앤더슨이 말했다.

“그런 크기의 게이트는 보고된 적이 없으니까 파장대가 어떤지 기존에 데이터가 없잖습니까?”

“범람을 지금 하든 나중에 하든 달라질 건 없어요. 만약 퀸이 나오면 그걸로 끝일 수도 있습니다.”

테쿰세가 말했다.

“에어포스 전에 퀸이 SSS급이라고 했었죠?”

“네.”

“게이트의 크기와 마력 파장의 세기를 볼 때 퀸이 나올 확률이 꽤 높아요. 그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트리플 S.

도대체 그 전설의 마수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도 안 된다.

헌터들 모두가 바짝 긴장한 표정이다.

에어포스는 윤성을 생각했다.

회의실에서 느꼈던 막대한 마력. 웬만한 SS급 헌터를 서너 명 이상 합쳐놓은 듯한 그 힘.

그라면 퀸을 막을 수 있을까?

엘리지아 게이트의 범람이 윤성이 나온 후라면 어쩌면…….

‘앗.’

에어포스는 무언가를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남에게 의지하다니.’

이전에도 윤성에게는 많은 것들을 빚지거나 심적으로 기대었다. 하지만 방금 전엔 그런 것과 달랐다.

내 일을 나누어주길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마치…….

‘구해주길 바라는 것 같잖아.’

에어포스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던전이 범람한 현장에서 수많은 시민을 구할 때, 마수들 사이로 뛰어들 때와 같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구원을 바라는 눈빛들.

‘지금 내 눈이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윤성의 구출을 기다리면서?’

에어포스는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SS급 헌터로 각성한 후 자신의 힘 자체가 모자람을 이렇게 통감한 적은 없었다.

더 힘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

“침식형으로 변했잖아?”

메탈로이드 내부에 진입한 윤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게이트를 돌아보았다.

엄청난 양의 휴보와 T505가 사방에 득실댔다.

<지자기폭풍 발동!>

아직 거리와 범위를 재진 않았다. 다만 지하의 전류를 발생시켜 그들의 움직임을 묶을 셈이다.

다니엘이 와들와들 떨면서 윤성의 팔을 꽉 붙들었다.

“거리 이 정도면 되겠죠?”

신호에 교란이 생겨 버벅대는 메탈로이드들을 보면서 윤성이 물었다.

“네, 네에…….”

이젠 다니엘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막대한 전자기 펄스가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마치 각각의 로봇들에게 낙뢰가 한 방씩 떨어진 것처럼 그들의 엔진이 터져 나갔다.

이윽고 다시 마정석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저게 다 최소 A급 이상 마정석인데 굉장히 아깝군.’

한꺼번에 팔면 국제 마정석 시세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정도의 양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1,000여 기가 넘는 S급 마수들의 사체들을 보면서 윤성은 게이트를 돌아보았다.

잔파 방출이 일어나지 않았다.

“보스가 안 죽었군요.”

“그, 그러게요.”

“통합된 게이트라서 좀 큰가?”

지자기폭풍이 미치는 범위 밖에 보스가 있다거나, 그런 상황인가?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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