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레벨업 속도는 9.8m/s^2 145화
ft는 미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거리 단위 ‘피트’다.
대체 왜 국제 표준 단위인 미터법을 쓰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윤성은 휴대폰을 열어 구글에서 단위 환산기를 열었다.
값을 입력하자 환산된 미터 값이 나타났다.
20,000ft = 6,096m
6천 미터? 겨우 이것밖에 안 돼?
아니, 잠깐만.
일산에서 에어포스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8,000미터까지 올라갔었다.
하지만 지구의 표면과 검은 우주의 경계 같은 걸 보진 못했다. 그런 게 보일 만한 경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토리의 돌풍으로 9천 미터를 올라갔을 때 눈에 보였던 풍경도 그렇지 않았다.
물론 마계의 하늘이니 좀 다르다고 할 순 있겠지만.
아무튼 광고에 묘사되어 있는 홍보 문구와 그 높이 값은 부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열기구가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건 사실이지.’
간단한 장비들을 열기구와 연결해서 우주를 관측하는 경우는 꽤 흔하다.
좀 똑똑한 대학생 수준에서도 벌룬에 카메라를 연결하여 20킬로미터 이상 높이에서 지구의 전경을 촬영할 수 있다.
현대에 사용되는 기상 관측 기구 중에도 벌룬에 작은 센서를 달아서 날려 보내는 것들이 있고.
같은 기술을 스케일만 거대하게 키운다면 분명 열기구에 사람을 태우고 성층권까지 올라갈 수도 있을 거다.
윤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어스뷰사에 전화를 걸었다.
앞뒤 맞지 않은 이 광고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20,000피트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헤, 헬로.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목소리가 작고 우물거리는 발음이다. 그가 말을 더듬었다.
-어, 어스뷰입니다. 무엇을 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홍보 광고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네에.
“광고 보면 20,000피트 높이로 올라갈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 높이면 우주와 지구의 경계를 보긴 어렵지 않나요?”
-아.
남자가 머뭇거렸다. 기다려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네 여,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건가요? 20,000피트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게, 저, 잘못 인쇄했나 봐요.
“네?”
-20,000미터라고 원래 찍으려고 했, 했는데. 추, 출판 맡긴 데서 잘못해 줬, 아! 아니다, 제가, 제가 잘못 입력했어요. 찾아보니까. 47일 전에 만든 건데, 이, 이게 왜 이렇게 돼 있지?
뭐야, 이 새끼?
어처구니가 없다. 광고를 잘못 냈다고? 뭐가 이렇게 허술해?
사람을 성층권까지 날려 보낸다는 회사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게다가 그걸 지금까지 몰랐고?
갑자기 신뢰도가 뚝 떨어진다.
-제, 제가 미터법으로 써, 썼다가 사람들한테, 더, 더 친숙한 단위 쓰는 게, 더 친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해서. 피트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미터로 쓰는 게 낫지 않나. 했는데 수정하다가…….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몇 미터나 올라갈 수 있는 건가요?”
-20,000미터요. 그, 그러니까.
남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65,616피트…….
“피트값은 됐어요. 앞으로도 미터로 얘기해 주세요.”
높긴 높다.
여기 날아올 때 가지게 되었던 제트기의 고도의 거의 두 배다.
하지만 좀 아쉽군.
“혹시 더 높이 올라갈 순 없습니까? 20,000미터 이상으로.”
-그게, 지, 지금은 물건이 좀 없어서……. 그, 그 이상 높이는 힘들, 힘들어요.
“물건이 없다뇨?”
-기, 기체에 마법, 마법을 걸어서 엔진을 도, 돌리, 돌리는데 피, 필요한 S급이 없어서.
“S급이요?”
-지, 지금은 B급바, 밖에 없어서. 아! 잠, 잠깐만요. A급이, 하나, 하나 있긴 있는데.
“뭐가 A급인데요?”
-원래는 있었는데, 가, 가, 강한 게 없는데 지금은. 마, 마정석이랑 보, 보조 발사대도 고, 고쳐야 하는데, 에, 엔지니어가…….
저 횡설수설하는 걸 듣고 있자니 마음이 성층권까지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혹시 그쪽에 상사가 있으면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말을 너무 더듬는다.
하지만 상처 주고 싶진 않다.
“아니면 회사 오너와 얘기하고 싶은데요. 좀 중요한 일이라서 가능하면 내일 당장에라도 타고 싶거든요. 일정과 가격을 직접 조율하고 싶어서 그래요.”
회사 오너나 비행 책임자와 연결되면 곧바로 최고 높이까지 열기구를 타고 올라갈 생각이다.
하지만 남자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 저 혼자, 혼자입니다.
“네에?”
-시, 실리콘, 실리콘 밸리에서 차, 창업한 지 얼마 안 됐…… 안 됐어요.
“사람을 우주 보내는 사업인데 직원이 당신 혼자라고요?”
-죄, 죄송합…….
“죄송하실 필요는 없고요. 어떻게 혼자 이 큰일을 매니지하시는 거예요?
-그, 그게…….
남자가 우물쭈물했다.
-아, 아직 아무, 아무도 탄 적은 없어서……. 저, 호,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이, 일하는 건 제 성격상 힘들어서…….
그래, 아직 한 번도 서비스를 한 적이 없단 말이지?
하긴 이런 놈을 어떻게 믿고 20,000미터 상공으로 올라가겠어.
“어떤 방법으로 비행선을 띄우는 건가요? 아까 마정석이 어쩌고 하셨는데 그럼 마법을 쓰는 건가요?”
-네, 네에……. 자기부상 마법, 마법을. 제가 걸어서.
“자기부상 마법으로 20,000미터 높이로 열기구를 보낸다고요?”
-마, 마정석에다가 걸면 하, 할 수 있어요. 저, 저는 원래, 원래 S급 헌터여서…….
“네?”
윤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S급 헌터라고? 근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다, 다니엘 윈턴. 이에요.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 드리죠.”
통화를 종료한 윤성은 휴게실 한쪽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는 샌드맨에게 다가갔다.
미국 헌터니까 알겠지?
“샌드맨, 안녕하세요.”
“Fuck off.”
“…….”
그래, 이 성격 파탄자가 뭘 알아도 가르쳐줄 것 같진 않네.
아까 회의실에서 제다이가 옷 내놓으라고 날뛰던 때, 이쪽 편을 들어주어서 잠깐 정이 갔나 보다.
‘하긴 다시 생각해 보니 내 편 들어준 게 아니고 그냥 제다이가 싫어서 씹었던 거겠군.’
윤성은 곱게 물러났다.
“여기 계셨군요?”
좋은 타이밍에 휴게실에 들어온 앤더슨이 아는 척을 했다.
“제다이 헌터님이 무례하게 행동하셨죠. 사과드리려고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앤더슨이 인사했다.
“괜찮아요. 근데 앤더슨. 혹시 다니엘이라는 헌터 아시나요?”
“다니엘이요? 그런 이름 미국에 엄청 흔한데요.”
“S급 헌터라던데요.”
“혹시 다니엘 윈턴?”
“네, 그 사람이에요.”
“아!”
앤더슨의 표정이 매우 복잡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사람 S급 헌터죠. 하지만 좀 뭐랄까요. 성격이 레이드 같은 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 그건 확실해요.”
레이드 할 성격은 절대 아니지. 소심한 건 둘째 치고 일단 현장에서 팀원들하고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안 될걸.
“게다가 그 사람 굉장히 특이체질이었어요.”
다니엘이 기억을 더듬으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특이체질이요?”
“지능이 4,800점이 넘었거든요. S급 중에서도 상위권이죠.”
“대단한데요.”
“근데 보통 그러면 힘이나 순발력 같은 것도 아무리 적어도 700, 800점 이상은 되는 게 일반적인데 그 사람은 힘과 순발력이 40점 정도였어요.”
세상에 이 언밸런스 실화?
충격으로 윤성이 잠깐 말을 잃었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40점.
저 힘과 순발력은 윤성이 E급이었을 당시와 비슷하다. 아니, 그보다도 더 낮다.
지능이 S급 상위권인 헌터가 힘과 순발력은 E급이라고?
“감각 능력은요?”
보통 마법 계열은 감각 능력이 지능 다음으로 높다.
“그나마 좀 높은 편이었죠. 100점.”
“그 정도로 다른 능력치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정말 레이드하기 힘들겠군요.”
“그렇죠. 근데 그 사람 특이한 점은 또 있어요.”
“그게 뭐죠?”
“IQ가 200이 넘는 천재였거든요. 스무 살에 학위를 땄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초인적인 에피소드들이 꽤 있죠. 찾아보세요. 헌터보다 그쪽으로 더 유명해서 구글에 검색하면 잔뜩 나올 겁니다.”
윤성은 바로 구글에서 다니엘 윈턴에 대해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IQ231.
두 살 때 사칙연산을 완벽하게 했다는 기사가 먼저 나왔다.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여덟 살 때 칼텍 영재 청소년 학교에 들어갔고, 열한 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 수상.
열네 살 때 칼텍 물리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체검사를 하다가 각성 판정을 받았다.
자신의 천재성이 각성 탓인지 알아보겠다며 칼텍을 휴학하고 돌연 헌터 스쿨에 입학.
스쿨 1학년 때 수업용으로 나눠준 마정석을 폭탄으로 만들어버렸다.
‘헌터도 아니고 헌터 스쿨 1학년에 마정석을 폭탄으로 만들었다…….’
중동에 그런 걸 만들 줄 아는 이가 있을 리 없다면서 방심하고 쳐들어갔다가 알리야한테 당했던 제임스와 스티븐이 떠올랐다.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군.’
스무 살에 <순간이동석의 마법 역학의 수학적 규명> 이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그가 학사 학위조차 없었던 헌터 스쿨 졸업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텍은 그 논문에 감동해서 박사 학위를 줘버렸다.
사실 헌터 스쿨로 가지 않고 칼텍을 계속 다녔으면 스무 살 이전에 학위를 받았을지도.
‘앗?’
다니엘 윈턴에 대한 자료들을 읽던 중 윤성은 눈에 띄는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어스뷰>
아직 덜 만들어진 웹사이트다.
특히 디자인은 거의 최악이다. 글자색은 검은색과 빨간색 둘뿐이고 바탕은 촌스러운 초록색.
그리고…….
홈페이지 타이틀 옆에 반투명 보노보노는 왜 있는 거야?
‘디자인을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어…….’
차희 같은 애가 봤으면 기절했을 화면이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들은 좀 있다. 열기구가 어떻게 나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용하는 마정석의 종류에 따라서 상승 고도가 달라진다.
B급 마정석을 썼을 때 20,000미터. A급 마정석을 쓰면 28,000미터.
윤성은 다시 사측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어, 어스뷰입니다.
“다니엘 씨! S급 마정석을 쓰면 몇 미터나 올라갈 수 있나요?”
-S급, 이요?
“네.”
-35,000 정도……. 미터요.
“그거 언제 탈 수 있습니까? 절 태워주실 수 있나요? S급 마정석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지, 지금은 그렇게 못 날아요.
“어째서죠?”
-출력포가 없, 없어요. S급을 겨, 견딜 수 있는 게.
“왜요? 원래 S급 마정석을 써서 나는 걸로 설계된 게 아닌가요?”
-아, 아뇨. 맞, 맞는데 재정이 안, 안 좋아져서. 팔았…….
“재정이 안 좋아져요?”
윤성이 묻자 안 그래도 작고 소심하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더욱 풀이 죽었다.
-요즘 열기구 우주여행은……. 많아요……. 제, 제가 일을 잘 못해서, 사람들이 저한텐 아, 안 와요.
“…….”
이런 종류의 스포츠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사고가 나면 사망률이 매우 높으니까.
따라서 전직 S급 헌터가 걸어주는 자기 부상 마법으로 성층권에 다녀오는 거라고 하면 사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에 손님들을 다 뺏기는 이유는 역시…….
-저, 저는 그게 제, 제가 미터법을 써서 그런 줄 알았어요.
다니엘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생판 잘못 짚으셨는데요…….
-그, 그래서 피트로 다, 단위를 바꾸면, 바꾸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 생각해서……. 근데, 과, 광고만 잘못 찍고.
“말 더듬는 버릇이랑 소심한 목소리 때문에 손님들 뺏기시는 거 아닐까요?”
-그, 그런가요?
그리고 윤성 역시 다른 업체들이 더 있다면 굳이 여기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경우엔 높은 데서 떨어진다고 죽진 않지만, 같은 값이면 좀 더 제대로 굴러가는 회사에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혹할 만한 장점을 어필했다.
-하, 하지만 제가 다른 회사들보다 더 잘, 잘해요. 다, 다른 회사들은 승무원도 많고 서, 서비스가 좋지만. 고, 고도는 낮거든요.
“낮다고요?”
-아, 아무리 높이 날려도 25,000미터 이내에요.
“다니엘 씨는 35,000미터까지 가능하고?”
-네에……. 지금은 20,000미터밖에 못 보내지만요.
그럼 얘기가 다르지.
“출력포와 S급 마정석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네에…….
“제가 구해보겠습니다. 출력포는 정확히 어떤 걸 구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메, 메탈로이드 부속품으로요. A급 출력포가 있, 있어요.
“저한테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소를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