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레벨업 속도는 9.8m/s^2 143화
S급 마정석을 엔진으로 사용하는 제트기는 대류권을 엄청난 속도로 날았다.
출발 후 약 8시간이 지났을 무렵. 제트기는 뉴욕 퀸스의 존F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쿠우우우우-
소음 속에서 윤성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읽었다.
<최종 속력=0.8m/s, 낙하 거리=10,781m, 낙하 시간= 29,412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10,781점. 남은 시간 6,912,00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EMP 남은 시간 6,912,000초>
<현재 레벨에서는 이 낙하 구간의 스킬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됐다!
그리고,
<랜딩 임무 : 10,000미터에서 랜딩. -완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윤성은 재빨리 Y버튼을 눌렀다.
‘이건?’
메시지창과 함께 검은색 가죽 재질의 팔찌 하나가 나타났다.
<랜더의 팔찌 : 현재 스킬 셋을 저장할 수 있음.>
마치 필름처럼 검고 미끌거리는 감촉이었다. 윤성은 랜더의 손목시계의 반대편 손목에 팔찌를 찼다.
촤악!
갑자기 팔찌가 고무줄처럼 줄어들어서 손목에 딱 맞게 달라붙었다.
‘어떻게 쓰는 거지?’
팔찌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더니 <현재 스킬 보기>라는 탭이 나타났다.
그것을 누르자 메시지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1슬롯 : 빛의 탄환, 2슬롯 : 급속 냉각, 3슬롯 : 중금속 폭우, 4슬롯 : 용조>
힐링 같은 스킬은 스킬석을 이용해 습득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았다.
‘랜딩으로 얻은 영구적 스킬들만 저장 가능한 모양이군.’
저장해 두면 랜딩으로 새로운 스킬을 얻어도 이전의 것으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럼 다시 네 개의 슬롯의 스킬들을 얻었던 높이에서 한 번씩 랜딩해야 하는 건가?’
좀 귀찮군.
그리고 세 번째 슬롯이나 네 번째 슬롯 같은 경우는 그저 랜더의 전투화로 점프하는 것만으로는 획득하기 힘들 듯 하다.
‘에어포스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에어포스의 도움을 받으면 분명 높은 고도에서 랜딩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랜딩 능력에 대해서 공개해야 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에어포스가 감으로나마 눈치를 챌 수 있다.
에어포스한테 랜딩 능력과 J등급에 대한 걸 오픈할까?
똑똑.
마침 에어포스가 노크했다.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마스크맨. 가시죠.”
“네. 이제 나가요.”
밖으로 나온 윤성은 잠깐 머뭇거리다 에어포스에게 물었다.
“에어포스는 혹시 최상의 컨디션일 때 몇 미터 높이로 날 수 있나요?”
“글쎄요. 그런 걸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제선의 운항 고도와 비슷할 겁니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자주 봤으니까요.”
“10㎞ 정도 되겠군요?”
“그렇겠죠. 그리고 그 이상 올라가면 숨이 가쁘더군요. 산소 분압이 떨어져서요.”
그런 문제가 있었군.
10㎞면 지금 얻은 버프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 버프는 이미 80일 치나 획득한 상태.
그렇다면 에어포스에게 랜딩 능력을 공개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다. 스킬 두 개를 좀 편하게 얻을 수 있다는 것 정도니까.
게다가 최상급 헌터들은 대부분 자신을 지킬 비장의 스킬을 하나씩 감추어두곤 한다.
‘랜딩 능력 공개는 나중으로 미루자. 꼭 필요한 때가 생기겠지.’
“가시죠.”
제트기에서 내린 윤성은 뉴욕 퀸스의 땅을 밟았다.
기온은 한국보다는 약간 따뜻했다.
45. 뉴욕
미국 연방 헌터국 의회의 의장, S급 헌터 앤더슨은 존F케네디 공항에 나와 있었다.
그의 곁에는 S급 헌터 메이와 SS급 헌터 테쿰세가 있다.
그들은 에어포스와 마스크맨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트기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곧 터미널로 나올 겁니다.”
앤더슨이 말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맞이하는 데 셋이나 꼭 필요할까요?”
메이가 귀찮다는 듯 투덜댔다. 앤더슨이 그녀를 달래주었다.
“어차피 지금 회의 시간이라 급히 할 일도 없잖습니까? 먼 데서 온 중요한 손님들인데 최선을 다해 맞아야죠.”
“그렇다기엔 복장이 너무 에러인걸.”
메이가 전투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 사람은 모두 정장이 아니라 전투복을 입고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연방 헌터국의 현재 행동 지침이 이러니까 따라야죠.”
“그래요, 뭐. 헌터국 대표인 테쿰세도 여기 있는데 내가 불평하면 안 되지.”
메이가 테쿰세를 힐끔 쳐다보았다.
사실상 미국 연방 헌터국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SS급 헌터들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영리하며 인간적인 남자다.
SS급 제다이는 헌터국의 지시를 잘 따르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매우 부족하다. 철저한 개인주의자라 일단 팀워크 자체를 혐오한다.
당연히 최상급 던전의 컨트롤러로 집어넣으면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팀원들은 뒤처져서 마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혼자 들어가서 보스를 처치한다거나.
헌터로서의 실력은 확실하지만 헌터국을 이끄는 인물이라기엔 부적합하다. 차라리 앤더슨이 나을 정도.
SS급 슬렌더맨은 더하다. 이 남자는 애초에 집밖에 나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엄청 강력한 히키코모리라고 보면 된다. 연락도 잘 안 된다. 통화하려면 전화를 기본 열 통 이상 걸어야 하고, 문 앞까지 찾아와도 만나기 어렵다.
그야말로 자기 내킬 때만 움직이는 기분파인 것이다.
샌드맨은 말할 것도 없다. 제다이와 슬렌더맨의 단점을 합친 다음 분노 조절 장애를 얹으면 샌드맨이다.
그 셋을 생각하면 테쿰세 같은 참된 리더가 연방 헌터국에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에어포스의 귀국 타이밍이 너무 빠른 것 같은데.”
생각에 잠겨 있던 테쿰세가 말했다.
“한국에 S급 던전이 범람해서 그걸 막으러 귀국한다고 했던 것 아닌가?”
“맞습니다.”
앤더슨이 답했다.
“하지만 제트기의 운항 시간을 생각해보면 거의 가자마자 돌아온 수준인걸.”
“실제로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니? S급 던전 범람을 그렇게 빠르게 정리할 수가 있나?”
“아뇨. 그건 마스크맨이 혼자 했다고 합니다. 에어포스는 마수 구경도 못 했고요.”
“마스크맨이 혼자서?”
“네.”
테쿰세가 다시 고민에 잠겼다.
전에 이집트에서 마스크맨이 활약하던 동영상을 보았다. 분명 그의 전투력은 S급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엘리지아 던전을 클리어하러 갔다 온 샌드맨은 마스크맨에 대해 SS급 수준이란 얘길 했다.
‘한국에서 S급 던전 범람을 에어포스 없이 혼자서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보면 후자가 사실인 모양이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를 준비한 건가?”
테쿰세가 물었다.
“SS급 헌터를 귀화시키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이번 S급 던전 범람들은 예삿일이 아니니.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SS급을 더 확충해 두는 게 좋겠지.”
“에어포스를 귀화시킬 수 있다면 아주 좋을 텐데요.”
“그 여자는 불가능해.”
테쿰세가 머리 장식 깃을 만지면서 말했다. 인디언계 아메리칸의 후손인 그는 항상 모자에 원주민들처럼 장식깃을 꽂고 다녔다.
“에어포스는 한국 헌터 협회의 간부야. 그리고 꽤 애국심이 진한 사람이지. 귀화시키는 건 불가능해.”
“그렇겠죠.”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요?”
메이가 끼어들었다.
“저랑은 작전지가 달라서 전투하는 걸 못 봤어요. 근데 사실 그동안 그 사람에 대해서 뭐 하나 들어본 적도 없는데.”
“실력과 등급에 비해 명성은 부족하지.”
테쿰세가 말했다.
“나이가 어려서 그래.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말끝에 앤더슨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에어포스 그 사람, SS급 사이에서도 상위권일 거예요.”
“정말요?”
메이가 깜짝 놀랐다. 앤더슨은 동의를 구하듯 테쿰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죠?”
“내가 볼 땐, 날 포함해서 연방 헌터국의 SS급 헌터 넷 중 그 누구도 에어포스를 이길 수 없다.”
“그 정도라고요?”
이번엔 앤더슨도 함께 놀란 표정이 됐다.
테쿰세가 설명했다.
“옛날에 러시아에서 S급 메탈로이드 던전이 열렸을 때, 동북아시아 협동 레이드 팀에 에어포스가 있었다고 들었다. 팀의 S급 헌터 중 하나를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데 에어포스는 정말 굉장했다더군.”
“어땠는데요?”
“거기서 나온 마수의 타입은 휴보라는 메탈로이드였다. 제트엔진이 부착된 다리로 점프하고 하늘을 활강하며 폭격을 퍼붓는.”
“꽤 골치 아팠겠군요.”
“휴보의 8할을 에어포스가 혼자 파괴했다.”
“정말입니까?”
“그녀는 비행을 할 수 있으니까. 날아다니면서 손에 닿는 대로 휴보를 종이처럼 찢었다더군. 대부분의 레이드 팀원은 아래에서 지켜만 보았고.”
“굉장하군요.”
앤더슨은 감탄했지만 메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SS급 대부분이 그 정도는 하지 않아요?”
테쿰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만 시간이 중요한 거지. 에어포스가 휴보 70여 기를 파괴하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다섯 시간이었어.”
“다섯 시간!”
“보스도 그녀가 거의 혼자 처치했다고 했고. 엄청난 인물이야. 그러니 내가 맞이하러 나올 수밖에 없지. 뉴욕을 구할 핵심 전력이니까.”
세 사람이 수다를 떠는 동안, 윤성과 에어포스는 터미널로 나왔다.
윤성은 나가는 방향을 못 잡아 사방을 두리번댔다.
“이쪽입니다.”
에어포스가 그를 이끌고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공항의 VIP 라운지.
“어서 오십시오.”
테쿰세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일단 두 분에게 통역 마법을 걸어드리겠습니다.”
“전 됐어요.”
윤성이 거절했다.
“이미 쓰고 있습니다.”
“그럼 에어포스에게만 걸어드리죠.”
테쿰세의 마법이 발동하여 에어포스에게 영어 통역 마법이 걸렸다.
“뉴욕을 구하러 와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테쿰세가 에어포스와 악수했다.
그리고 윤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스크맨은 처음 뵙는군요. 얘긴 많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테쿰세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뭐야, 이 마력은?’
테쿰세의 예리한 기감은 백마중 이상이다.
SS급 헌터인 제다이나 슬렌더맨 같은 이들은 주력 능력치가 10,000점이 넘는다. 비주력은 보통 4,000점대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능력치 총합은 3만 점 안팎.
그러나 마스크맨의 마력은 그보다 더 높아 보였다.
‘4만 점? 아니면 그 이상……?’
에어포스의 마력이 샌드맨보다 약간 낮은 것은 <빛의 강체> 스킬을 쓰지 않아서겠지만, 마스크맨의 전투력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
뜻밖의 전력에 테쿰세의 표정이 얼었다.
‘이 사람 이 정도였어?’
“무슨 일 있습니까?”
윤성이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근데 저한테 전투복을 주신다고 하셨죠?”
윤성이 앤더슨에게 물었다.
“네. 샌프란시스코를 준비해 뒀습니다. 보여드릴까요?”
그가 거대한 슈트케이스에서 전투복 샌프란시스코를 꺼냈다.
드래곤의 가죽이 가공된 붉은 색의 전투복. 군데군데 드래곤의 이빨과 합성금속을 덧대어져 있었다.
멋지고 강력하다.
“이걸 저한테 주시다니. 정말 받아도 되는 거예요?”
윤성이 환히 웃으면서 전투복을 집어 들었다.
‘이제 뭔가 조건을 걸려고 하겠지?’
윤성이 앤더슨을 힐끔 보았다.
“마스크맨의 명성을 익히 들어 최강의 전투복을 준비했습니다.”
앤더슨이 영업적인 미소를 띠었다.
“뉴욕을 구해주실 분께 그 정도 선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연방 행정부에서 국보급 장비라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증여는 불가능하다고 막아버렸습니다.”
“흠,”
“하지만 대여는 가능하니 일단 쓰시죠.”
앤더슨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강력한 전투복을 입고 레이드를 하다 보면 그 힘에 매료되어서 벗기 싫어질 거다.
그 기간 동안 미연방 헌터국은 그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귀국하기 직전에 ‘미국인이 된다면 그 전투복을 가질 수도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행을 쉽게 결정지을 수 없다. 고민에 잠기겠지.
왜냐하면 그는 ‘백마’라는 길드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백마 길드의 미국 진출을 허가해 준다. 그리고 파격적으로 지원해서 생착을 돕는다.’
SS급 헌터 하나를 귀화시키는 데 이 정도 씀씀이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좋아요.”
윤성이 샌프란시스코를 받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