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레벨업 속도는 9.8m/s^2 141화
“그럼 가볼까요?”
에어포스가 윤성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길드원들한테 인사만 좀 하고.”
“그럼 저도 김성인 헌터님이나, 코르소, 카다시안과 함께 협회 운영에 대해 얘기 좀 하겠습니다.”
아무리 이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 원정을 떠나는 거라고 해도 윤성은 한 길드의 수장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길드를 비워서 차희와 길드원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해놓고 또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질 순 없다.
작전 통제실로 돌아가는 길.
윤성을 계속 힐끔거리던 에어포스가 갑자기 그의 전투복을 가리켰다.
“이건 다른 걸로 갈아입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흠.”
윤성이 전투복을 살펴보았다. 완전 너덜너덜 걸레짝이 다 되었다.
하긴, 재포니카 던전 때도 꽤 손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룬헤잘드의 어마어마한 공격까지 받아냈으니.
보급형 전투복 따위가 S급, SS급 괴수들이나 마계의 패왕과 전투를 벌이는 데 굴렀으니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랜더의 코트가 바깥에서 피해의 대부분을 완충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옛 저녁에 못 입을 물건이 됐을 거다.
“이거 오래 입긴 했죠.”
“협회에 유니크한 전투복이 잔뜩 있습니다만 지금 가지러 갈 시간은 없군요. 대신 미국 연방 헌터국에 전투복 한 벌을 준비해 두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그냥 가서 아무거나 사면 되는데요.”
“아닙니다. 미국을 지원하러 가는 한국 최상급 헌터로서 그 정도는 요청해도 됩니다. 창고에 있는 중요한 물건을 꺼내줄 겁니다.”
“그럼 고맙고요.”
작전 통제실에 도착한 윤성은 백마 길드 헌터들과 차희를 불러 한데 모여 앉았다.
“다들 고생했어요.”
윤성이 말했다.
“미안하면 마스크 벗은 거 한 번만 보여주세요.”
신차민이 말했다.
“솔직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부분 아닙니까?”
“저도 벗고 싶군요.”
윤성이 말했다. 진심이다.
원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바토리 구출이나 뉴욕 던전들의 클리어 같은 급한 것들을 대강 정리해둔 다음 콜로라로 간다.
꺼삐딴 길드를 통해서, 에어포스가 부탁했던 대로 놈들의 규모나 목적 등을 파악한다.
그리고 상황 봐서 한두 놈 포획하고 인계로 돌아와서 매스컴 앞에다 전부 까발리는 거다. 시원하게 마스크 벗어 던지고.
그러나 이제 그렇게 하긴 힘들게 됐다. 그들과 인류가 계속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정보원이 하나는 필요할 테니.
‘하지만 영원히 마스크를 쓰진 않겠지. 이중 스파이 노릇도 그렇게 오래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근데 그동안 어디에 가 계셨나요?”
헌터들 중 하나가 물었다.
“마계에 있었습니다. 이번 마족들의 침공을 막으려고 했었는데, 잘 안 되어서 그들이 넘어와 버렸죠.”
헌터들이 깜짝 놀랐다.
“역대급으로 갑작스럽게 열린 게이트였는데 그걸 예측하셨다는 겁니까?”
“마계가 뭐 옆집 동네인가요? 대체 어떻게 가신 거예요?”
“대표님, 당신은 대체…….”
윤성은 약간의 피곤기를 느꼈다.
“미안하지만 오랫동안 얘길 나누진 못합니다. 전 또 자릴 비워야 할 것 같군요.”
“어디로 가십니까?”
홍창민이 물었다.
“뉴욕으로 갑니다.”
“에어포스하고요?”
“네.”
“솔직히 뭐, 예상했습니다. 붙잡을 순 없죠. 미국 연방 헌터국에서 세계 최상급 헌터들에게 지원 요청을 했을 때 이미 에어포스와 대표님이 가실 거라고 다들 생각했어요.”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차희 씨도 가시나요?”
“아뇨.”
윤성이 재빨리 대답했다. 차희가 약간 실망한 표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저 혼자 갑니다. 위험한 곳이니까요.”
이후 윤성은 길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짧은 미팅을 했다.
헌터들과 인사를 나눈 후 통제실 밖으로 나오자 복도에서 아리가 불쑥 다가왔다.
“잠깐만요, 주인님.”
아리가 말했다.
“제가 메탈로이드 차원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메탈로이드는 왜?”
“제가 향수병이 도져서…….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리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너 이거 윤활액이지? 이렇게 막 흘려도 되는 거냐?”
“위험한 것도 아닌데요, 뭐. 괜찮습니다.”
“조크는 됐고 메탈로이드계는 왜 가?”
“이번 조크는 꽤 성공할 거라 믿었는데 주인님의 감정이 메말라서 슬프군요.”
아리의 눈이 노란빛으로 반짝거렸다.
“사실 조사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조사할 것?”
“뉴욕에 열린 던전들은 대개 메탈로이드이고 엘리지아는 아직이지요?”
“범람한 건 메탈로이드의 S급 게이트 두 개라고 들었다. 엘리지아 얘긴 못 들었어.”
“그렇죠. 제 빅데이터와 일치하는 증언이군요. 주인님, 제가 전에 메탈로이드의 레지스탕스 위치를 찾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지금 열린 메탈로이드 던전들도 사실 네가 그때 알려준 거고.”
“레지스탕스를 자극해서 여차여차 잘해 보면 마더의 신경을 돌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신경을 돌리다니?”
“뉴욕에 관심 두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럼 엘리지아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훨씬 움직이기 편하시겠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안전하게 행동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윤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너 원래는 마더의 눈을 피해서 숨어 있으려고 나한테 붙은 거 아니었냐? 근데 메탈로이드계로 직접 들어간다고?”
“이제는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요. 자신 없었으면 엘리지아들 날뛸 때도 안 움직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인계가 꽤 맘에 드는군요.”
“그러냐?”
“메탈로이드계에 가도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전 사실 메탈로이드계에서 훨씬 더 강력합니다. 거긴 과충전할 수 있는 발전소가 잔뜩 있으니까요.”
“무리하지는 마.”
“넵.”
아리가 윤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인계에 정도 붙이고 이런 인사도 할 줄 알고. 진짜 사람 다 됐군.
묘한 기분으로 아리를 쳐다보는 윤성에게 아리가 말했다.
“저한테 순간이동석을 주십시오.”
“아. 그렇지.”
윤성은 인벤토리에서 메탈로이드계의 순간이동석을 꺼내 내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리가 순간이동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본 후, 윤성은 에어포스에게 돌아와 합류했다.
“이제 가볼까요?”
***
에어포스가 타고 온 제트기는 서울공항에 있었다. 이름은 서울공항이지만 위치는 경기도 성남이다.
기본적으로 공군기지이기 때문에 군사시설 위주로 갖추어져 있었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나 해외 국빈의 방한에 주로 이용되는 곳입니다.”
제트기에 오르면서 에어포스가 설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조종사들과 승무원 두 명이 입구에서 인사했다.
굉장한 제트기다. 객실은 열두 개. 킹사이즈 침대가 있고 주방과 샤워 시설에 회의실이 있다.
게다가 커다란 소파와 쿠션, TV등이 갖추어진 고급 휴게실이 있었다.
“객실이 되게 많군요.”
윤성이 감탄하자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미국 연방 헌터국에서 빌린 겁니다. 원래는 헌터 팀이 특수 임무를 위해 외국을 방문할 때 쓰는 비행기입니다.”
“이건 뭐죠?”
윤성이 객실 옆에서 벽면에서 발견한 기계를 가리켰다.
숫자 패드 위에 마이크가 연결되어 있다.
“통신 장비입니다. 지상과 연결되어 있죠.”
“지상과 통신이 돼요?”
“인터넷도 되는데요 뭘.”
비행기 모드에 익숙한 윤성에겐 약간 충격이었다. 이런 신문물이 있었다니.
마정석을 이용한 통신망이다. 가격이 높아서 값싼 항공편들에겐 제공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 같은 VIP 제트기에는 설치되어 있다.
사실 윤성이 이집트에서 탔던 마일하이클럽의 비행기에도 존재했던 것이지만,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회의실에 더 좋은 게 있습니다. 나중에 써보시죠. 전 미국 연방 헌터국과 잠깐 얘길 좀 해야겠어요.”
“무슨 얘기요?”
“작전지에 대해서. 그리고 마스크맨의 전투복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윤성은 객실로 돌아가기 전, 승무원에게 물었다.
“이 제트기 몇 미터 고도로 날죠?”
“10㎞에서 11㎞ 사이로 올라갈 거예요. 정확한 것은 조종실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요.”
바토리의 돌풍으로 얻은 버프가 9,000이 조금 넘는다.
10,000미터 이상이라면 1,000점이나 더 높은 버프다.
게다가 돌풍으로 얻은 버프는 그룬헤잘드와의 전투를 치르면서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새 버프를 가지고 갈까.
윤성은 객실로 돌아가서 랜딩 준비를 했다.
‘미리 한 번 자세 연습해 봐야지.’
이젠 숟가락 쥐는 것처럼 익숙한 자세지만 제트기가 날아가는 동안 할 일도 딱히 없으니.
윤성은 주먹 하나를 바닥에 붙이고 두 다리를 구부렸다. 남은 팔을 사선으로 펼치고 랜딩 자세를 잡았다.
똑똑.
“마스크맨? 에어포스입니다.”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윤성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연 에어포스는 상당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미국 연방 헌터국에 연락해서 물어봤는데, 굉장한 전투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사실 저도 아는 전투복입니다.”
“어떤 건데요?”
“옛날 샌프란시스코에서 S급 던전 하나가 범람한 적 있었습니다. 보스로 거대한 드래곤이 나왔죠.”
“드래곤이요?”
“당시 앨비스라는 미국의 S급 헌터가 윙 클리핑 마법을 써서 드래곤을 추락시켰습니다.”
“아.”
들은 기억이 난다. 옛날에 샌텀 타워에서 윙 클리핑으로 가루다들을 제압했을 때, 뉴스에서 그런 얘길 했었다.
“그 드래곤은 사실 S급이라기엔 너무 강한 녀석이어서 미국 최상급 헌터들의 피해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추락시킨 후에도 말이죠.”
에어포스가 말했다.
“미국 SS급 헌터인 제다이와 슬렌더맨이 협공해서 그 드래곤을 처치했죠. 지금 윤성 씨에게 주려는 전투복은 그 드래곤의 가죽과 이빨로 만든 겁니다.”
“와.”
보통 강한 마수들은 그 사체도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살아있을 때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S급 던전의 보스인 데다 그 정도로 강한 드래곤이라면 굉장한 전투복이겠지.
“워낙 유명한 물건이라서 온라인상에 품질 보증서가 한동안 전설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땠는데요?”
“지금 함께 찾아보시죠.”
에어포스는 윤성과 함께 회의실로 가서 인터넷을 켜고 전투복 <샌프란시스코>를 검색했다.
“전투복 이름이 샌프란시스코에요?”
윤성이 황당한 듯 물었다.
“당시 희생자들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도시 이름을 붙였다더군요.”
<샌프란시스코>
화염 마법에 대한 완벽한 내성.
A급 이하 물리 공격에 대해 전혀 손상되지 않음.
A급 이상 헌터에 대하여, 힘과 지능이 평균 1,241점씩 향상.(오차 범위 34%)
5미터 범위의 구형 화염 분출 마법을 내장(S급 파괴력)
“대단하군요. 능력치가 1,000점이나 올라가는 아티팩트는 저도 본 적이 없어요.”
확실히 엄청난 물건이다. A급 헌터가 이걸 쓰면 S급이 넘는 전투력을 갖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S급, 혹은 SS급 헌터들이 앞다퉈 사려고 해서 A급 헌터에게 순번이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
“이걸 왜 여태 아무도 안 쓰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을까요?”
“한때 SS급 헌터 제다이가 썼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꽤 오래전에 반납했대요.”
“그렇군요.”
“그보다 저는 이걸 당신에게 주려고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에어포스가 뭔가 찜찜하다는 듯 말했다.
“국보급 전투복이에요. 아무리 타 국가 최상급 헌터들의 도움이 절실하다지만 이런 물건은 그 자체로 국력이기도 해요.”
“이걸 저한테 준다면서 아무런 조건이 없었나요?”
“조건을 달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얼버무리는 그런 게 있었어요.”
“흠?”
“일단 가서 직접 얘기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윤성은 자신의 객실로 돌아왔다.
남은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 침대에 앉아 빈둥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높이에 따른 랜딩 임무들을 거의 확인하지 않았네.’
이참에 랜딩 임무나 확인해 볼까.
<랜딩 임무 : 6,000미터에서 랜딩 -완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랜딩 임무 : 8,000미터에서 랜딩 -완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