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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38화 (138/260)

# 138

레벨업 속도는 9.8m/s^2 138화

뱀의 송곳니는 랜더의 코트를 뚫지 못했지만, 부식성의 독이 그 아래로 번졌다.

코트 안에 입은 전투복은 <헌터의 품격>에서 구매했던 보급품이다. 웬만한 중상급 던전의 독성에도 내성이 있지만 이걸 버틸 정도는 아니다.

칙 소리와 함께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전투복. 피부가 따끔거린다.

<디버프 : 신경독 600초>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창.

윤성은 펄쩍 뛰어서 그룬헤잘드와 거리를 만들었다. 독 때문에 움직임이 약간 둔해진 느낌.

실수했군. 뱀과 계속 거리를 유지해야 했는데.

이제 어떡하면 좋지?

‘그룬헤잘드는 이 스킬을 쓰는 데 뭔가 제약조건이 있다고 했다.’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일까? 아예 움직일 수 없고 뱀만 조작 가능하다거나.

팍!

윤성은 힘껏 달려들어 그룬헤잘드에게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룬헤잘드는 가뿐히 뒤로 스텝을 밟으며 공격을 피했다.

그룬헤잘드의 장검이 야구 배트처럼 묵직하게 날아왔다.

콰앙!

윤성은 간신히 방어했지만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핏물이 끈적하게 몸에 들러붙었다.

‘저놈 힘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잖아? 움직임도 더 가볍고.’

순간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룬헤잘드는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영악한 적이다. 여태 상대했던 그 어떤 상대보다도 영리하다.

그런 녀석이 굳이 자신의 스킬에 제약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렇다면 그걸 알아도 윤성 입장에서 지금 뭘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수명이 며칠 준다거나 그런 종류의 제약. 지금의 전투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앗!

‘아니면 애초에 제약 조건이라는 게 없었던 건 아닐까?’

날 혼란에 빠뜨리려고, 심리전을 벌였던 거라면?

그 순간 윤성은 그룬헤잘드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구나.”

그룬헤잘드가 말했다.

“섬광탄을 써도, 단검을 휘둘러도, 드래곤의 손톱을 흉내 내도,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적. 약점이 있을 듯하지만 알아채기 어려운 적.”

뱀이 쉭 소리를 내며 그룬헤잘드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와 나의 경험치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이쯤 되면 상대가 거대한 벽으로 보이는 법이지. 내가 권좌를 두고 마왕과 결투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칫.”

“초조, 불안. 두려움, 열등감. 네 능력을 좀먹는 것들이지. 단순히 기세가 꺾여서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 내 앞에서는 의식에 빈틈을 잠깐이라도 만들지 마라.”

<디버프 : 신경독 419초, 스킬 봉쇄(빛의 탄환 1,241초)>

큰일 났다.

방금 전의 혼란의 틈을 타고 그룬헤잘드가 디버프를 걸었던 것이다. 제약이 어쩌고 할 때부터 모든 게 다 놈의 설계였다.

가장 손에 익은 견제 스킬을 잃었다. 근접전만으로 저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지. 이런 걱정 자체가 내 능력을 좀먹는 거라고 했던가?’

윤성이 검을 꽉 쥐었다. 어쩌면 그 말조차 더욱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생각은 그만.’

이놈을 상대로 수 싸움은 통하지 않는다. 정말로 경험치 차이가 압도적이니까.

최선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팍!

윤성은 단검을 휘두르며 힘껏 그룬헤잘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

“바, 바토리 님…….”

마계 기사가 풀썩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적이었다. 이제는 대표실 문 앞까지 온 바토리는 흉흉한 마력을 느끼고 당혹감에 몸이 굳었다.

“블러드 스페이스?”

그룬헤잘드의 최강의 기술이다. 마력 소모량이 엄청난 탓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다.

엘리지아와 전쟁을 벌일 때 이걸 썼다고 들었다. 퀸이 라센 북부를 침략하는 걸 방어하기 위해서.

‘마왕에게 도전할 때도 이걸 썼지.’

결과적으로 패배했지만 인근 지역이 초토화되었었다.

‘이걸 어떻게 부숴야 하지?’

돌풍을 써서 하늘 높이 날려달라는 윤성의 정신 나간 요청을 몇 번이나 들어주었고, 그의 우스꽝스러운 착지도 몇 번이나 지켜봐 주었다.

그 낙하 고도와 착지자세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힘은 분명히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스 안에서 그룬헤잘드를 상대할 순 없다.

마족 특유의 기감으로 바토리는 두 사람의 전투력을 정확히 진단해 알고 있었다.

처형인의 샘 앞에서 분노한 그룬헤잘드의 힘은 그야말로 믿어지지 않는 경지. 마왕이 어떻게 그를 패배시켰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하물며 그의 모든 힘이 폭발적으로 치솟는다고 알려진 블러드 스페이스 안이라면 윤성에게 승산은 없다.

‘하지만 이걸 부술 방법이 없어.’

엘리지아 퀸조차도 이걸 완력으로 파괴하려다 실패해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인니임!”

밑에서 아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앗. 이건 뭡니까?”

아리가 블러드 스페이스를 발견하고 적개심을 보였다.

“조용히 좀 해라. 하등한 철덩이야. 이걸 어떻게 부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니.”

“제 데이터에 없는 스킬이군요. 하지만 마력 파장대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아리는 손바닥을 펼치고 작은 마력 파장을 흘렸다.

현대의 마력 측정기도 마력 파장의 진폭과 진동수 따위를 대충이나마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기능도 메탈로이드의 기술력이 동원된다면 훨씬 더 정교해진다.

아리는 파장대를 조절해가며 블러드 스페이스의 파장을 진단했다.

“굉장히 진폭이 크고 조밀하군요. 하지만 일종의 튼튼한 아치 구조 같은 느낌입니다. 한 조각만 빼버리면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

바토리가 관심을 보였다.

“그 한 조각을 어떻게 빼지?”

“저는 못합니다. 아주 강력한 물결 같은 걸 이 안에다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파장을 한 번만 상쇄시키면 파괴할 수 있을 텐데요.”

“물결……?”

바토리의 눈이 커졌다.

“혹시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가능할 겁니다만 그런 스킬이 있습니까?”

“미천한 메탈로이드는 불을 쏴서 태워 버리는 것밖에 못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 같은 스킬을 쓸 수 있다.”

바토리가 장검을 핏물 장벽 앞에 가져다 댔다.

<돌풍 발동!>

그러나 바람은 모조리 튕겨 나왔다.

“끄앗!”

강력한 바람에 바토리가 휘청거렸다.

“뭡니까? 몸 개그? 조크는 제 전담이니까 넘보지 마세요.”

“쳇.”

“하지만 그 정도 파워면 괜찮을 것 같군요. 파장대를 정확히 측정해서 써야 합니다. 이리 오세요. 제가 타이밍과 방향을 알려드리죠.”

***

“너 대체 왜 마왕이 아닌 거냐…….”

피투성이가 된 윤성이 말했다.

아리는 분명 메탈로이드의 마더, 마계의 마왕, 엘리지아의 퀸 등이 SSS급이라고 했다.

그보다 한 급수 아래라면 이놈은 SS급 정도여야 하는 것 아냐?

‘X발 이게 어떻게 SS야? 샌드맨, 안토니오, 세르게이가 셋이서 팀 짜서 싸워도 못 이기겠다.’

윤성은 숨을 헐떡였다.

“힘들어 보이는군.”

그룬헤잘드가 천천히 윤성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모든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해있었다. 이제는 경험치와 전투 센스, 정신력에 육체 능력, 수 싸움까지. 모든 게 그룬헤잘드가 우위다.

핏물로 만들어진 뱀은 수없이 윤성을 물어뜯었다. 그 공격들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신경독이 쌓임에 따라 점점 힘이 빠졌다.

“이 스킬 안에 들어온 후에 살아나간 존재는 마왕 하나밖에 없다. 엘리지아 퀸조차도 이 안에 포획하는 데 성공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쉬이이이익-

뱀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주저앉은 윤성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넌 제법 강적이었다. 편히 쉬어라.”

그룬헤잘드가 마지막 공격을 날렸다.

“캬악!”

뱀의 송곳니가 윤성의 머리를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윤성은 눈을 감았다.

에어포스가 떠올랐다.

‘에어포스, 당신이라면 이놈을 이길 수 있나요?’

샌드맨이나 안토니오 같은 다른 SS급과 얼마나 힘의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에어포스에게 패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신민수 같은 강적에게 고전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멋진 일격 한 방으로 역전을 일으키는.

그 어떤 마수와 싸우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최강의 헌터.

윤성의 손등에 핏줄이 불끈 섰다.

<용조 발동!>

드래곤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변한 손톱 끝이 핏물 뱀의 입천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치지지직-

송곳니에 찔린 어깨와 가슴으로 신경독이 퍼진다.

이 뱀은 수없이 공격해도 핏물 속에서 몸이 재생되는 소환수다.

하지만 이번에 윤성이 노린 것은 핏물 속에 들어 있는 흰색 독사다.

콰직!

윤성이 뱀의 몸체를 찢어버렸다.

“흠.”

그룬헤잘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뱀이 녹아내려 핏물 속에 첨벙첨벙 떨어졌다.

“이 뱀이 네 힘의 근원이지?”

윤성이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뱀에게 물릴 때마다 내 체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네 힘은 점점 강해졌지.”

“잘 눈치챘군.”

“내 전투력을 빼앗은 거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넌 완전히 지쳤고 난 충분히 많은 힘을 얻었으니.”

“이렇게 마력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 인계를 침공하려 했던 거군.”

“그건 아니다. 블러드 스페이스로 마력을 보충하는 것은 한계가 있거든.”

“한계?”

그룬헤잘드가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바로 블러드 스페이스가 강제 파괴되었을 경우 그 안에서 획득한 마력을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력의 흐름이 꼬여 극심한 체력 손상을 입는다는 큰 제약 조건도 있다.

“난 죽기 직전의 적이라도 내 스킬에 대해 약점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사실 얘기해 줘도 상관은 없다. 뱀을 죽이면 마력의 파장이 약해져서 파괴하기가 더 쉬워지긴 하겠지만.

기감이 마왕 수준이 아닌 이상 파장의 진폭과 진동수를 티끌만 한 오차도 없이 맞춘다는 건 불가능하다. 생물인 이상 그런 오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잘 가라.”

그룬헤잘드가 윤성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 순간.

콰지직!

촤아아악!

마력 장벽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사방에 튀었다.

그리고 아리의 기계적이고 시건방진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바토리. 무려 일곱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앞으로 당신을 전설의 박자 감각이라고 불러드리죠.”

“닥쳐라!”

바토리가 얼굴을 붉혔다.

“윤성! 괜찮으냐?”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들이 윤성 옆으로 다가왔다.

“블러드 스페이스가…… 깨지다니?”

그룬헤잘드가 말을 더듬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다. 블러드 스페이스에 사용했던 마력이 역류하고 있었다.

“크헉!”

그룬헤잘드가 피를 토하며 휘청거렸다.

윤성에게서 빼앗았던 마력을 모두 상실했음은 물론이고 체내의 마력 흐름이 꼬였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룬헤잘드를 본 윤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디버프 : 없음>

디버프도 모두 사라졌다. 방금 전에 물리면서 생겼던 신경독도, 스킬 봉쇄도.

“지금이 기회다!”

윤성이 말했다.

“저놈을 죽여 버려야 해!”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양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아리가 눈치 빠르게 보조를 맞췄다.

<소각 발동!>

그러나 검은 장막 하나가 그룬헤잘드를 감쌌다. 마정석 폭탄을 막아내던 그 스킬이다.

하지만.

<단검 투척 타깃.>

윤성의 팔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11,000점에 이른 힘.

‘제발. 이 한 방에 뚫리길.’

야구 선수가 공을 던지는 모양새로 윤성이 온 힘을 다해 단검을 투척했다.

콰아앙!

암흑의 장벽이 파괴되면서 안으로 파고든 단검이 그룬헤잘드의 어깨를 찔렀다.

“카악!”

그룬헤잘드가 비틀거렸다.

“바토리! 나한테 돌풍을 써라!”

윤성이 소리쳤다.

“최대한 높이 날려!”

그가 달려가서 그룬헤잘드를 힘껏 껴안았다. 박살 난 대표실 창문을 박차고,

<랜더의 전투화 발동!>

솟아올랐다.

바토리가 그 아래에서 돌풍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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