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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36화 (136/260)

# 136

레벨업 속도는 9.8m/s^2 136화

A급 헌터들은 일제히 무기를 거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를 더 벌일 수 있음에도 빠져나가는 적들을 보고 마족들은 의아한 표정이다.

“주군!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관이 달려와 그룬헤잘드에게 말했다.

“그래. 좀 이상하군.”

“적들을 쫓을까요?”

“그럴 필요 없다. 우린 백마 길드로 갈 것이다.”

“혹시 함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쯤 게이트가 다시 열리고 있을 겁니다. 저희 본대 2군이 내려오기 시작할 테니, 그들이 도착하면 함께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얼 두려워하느냐?”

그룬헤잘드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겁먹지 마라. 그 어떤 변수가 생겨도 내 앞에선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전군!”

그룬헤잘드가 군대를 불러 모았다.

“부대 진열!”

병사들이 다시 대열을 갖추었다. 사상자는 그렇게 많진 않다. S급 기사 여섯과 A급 병사들 열한 명이 쓰러졌을 뿐.

“백마 길드로 진격한다!”

그룬헤잘드가 검을 겨누며 외쳤다.

재정비된 군대는 그의 호령을 따라 발을 맞추어 착착 진군했다.

“준비 다 됐습니까?”

작전 지역을 이탈하면서 김성인이 통제실에 무전을 쳐 물었다.

“다 됐어요. 놈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돼요!”

차희가 말했다.

게이트가 생성되려는 마력 반응만 가지고는 사실 그 무엇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게 범람형인지 일반형인지는 물론이고, 범람한다면 마수들이 한 마리씩 나와서 사방으로 흩어질지. 아니면 한꺼번에 수십이 나올지. 나온 이들이 한 곳에 밀집할지. 모든 게 미지수다.

그러나 차희는 윤성과 관련된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게이트의 모든 것을 예측했다.

‘마족들은 전에도 동해 바닷속 영리한 위치에 게이트를 만들어 북한을 노렸었지.’

그들의 게이트 범람 위치는 목적지를 잘 겨냥한 최적의 장소다.

그렇다면 삼각지 인근에 열린 게이트는 그곳에서 사열된 군대가 덮치기에 가장 좋은 목적지를 노린 것일 터이다.

근처에서 윤성과 관련된 거라면 백마 길드밖에 없다.

작전 회의 당시 이 안건을 얘기했을 때 신차민이 말했다.

“그럼 게이트 바로 아래에 폭탄을 설치하는 건 어때요?”

하지만 김성인이 고개를 저었다.

“스쿨 때 졸았니? 게이트 아래는 절대 안 돼. 마정석 폭탄이 설치 도중에 게이트의 마력에 반응해서 폭발해 버릴 수 있어.”

“저들이 마족이라면 아마 백마 길드로 갈 겁니다. 그 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광장 지역에 폭탄을 설치해요.”

차희가 말했다.

그 계획이 받아들여져 마정석 폭탄 19개가 백마 길드 앞 광장에 매설되었다.

차희는 이제 백마 길드 작전 통제실에서 모니터를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생각대로 잘 되었다.

그녀는 폭파 버튼을 쥐고 홍창민과 함께 카운트를 셌다.

적들은 이제 펜스를 부수고 백마 길드 앞까지 몰려왔다. 이미 마정석 폭탄의 영향권이다.

100미터. 50미터, 20미터.

“지금입니다!”

홍창민이 소리쳤다.

차희는 폭파 버튼을 꾹 눌렀다.

쿠궁!

지면 아래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충격이 전해졌다. 그 위력이 심상찮음을 느낀 기사 하나가 병사들의 행군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병력이 마정석 폭탄 19개의 범위 내에 있다.

픽!

땅 한 곳에 구멍이 뚫리더니 푸른색 연기가 솟아올랐다. 마족들은 경악하며 물러났지만 주위에는 동일한 게 19개나 있었다.

“처, 처형인의 샘 같은 느낌입니다.”

병사 중 하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

기사들이 그룬헤잘드를 향해 달려왔다. 마치 그들의 주인을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

콰아앙!

강렬한 폭음이 퍼졌다.

파란색 불꽃과 함께 으깨진 땅의 파편들이 튀어 오른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강력한 마력의 풍압.

자욱하게 일어나는 연기가 마족들 전부를 뒤덮어버렸다.

재포니카 같은 괴수 타입이라도 저걸 맞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멋지게 적중했다.

통제실에서 차희와 홍창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떻게 됐어요?”

뒤늦게 나타난 신차민이 물었다.

“성공했어!”

“잠깐만요…….”

홍창민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기가 걷히기 시작한 적진에 새까만 반구체 같은 게 보였다.

“뭐야 저게?”

그룬헤잘드 영지의 상급 마족들은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어막을 칠 수 있다.

<암흑의 장막>

글로디안 역시 이것으로 윤성의 중금속 폭우와 빛의 탄환을 방어해낸 적 있었다.

그러나 같은 스킬이라도 그룬헤잘드가 쓰면 차원이 다르다.

마정석 폭탄 19개의 폭발력은 가히 그 어떤 S급 방어마법이라도 너끈히 부숴버리고 적을 먼지로 만들어버릴 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룬헤잘드의 장막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룬헤잘드가 말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서서히 가라앉는 폭약의 잔파. 이제는 그 파장의 수준이 A급 마족이라면 충분히 견뎌낼 만한 정도가 되었다.

장막이 서서히 걷혔다.

“가라.”

그룬헤잘드가 백마 길드 빌딩을 검으로 겨누었다.

“그 무엇도 살려두지 마라.”

“오오오!”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길드 정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작전은 실패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마스크맨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드가 최대의 위기에 처한 지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신변에 변고가 생겼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길드에는 삼중 외부 방어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수들의 테러 등을 대비한 최후의 방어 라인이다.

하지만 금방 무너질 것이 뻔했다.

적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동안 차희는 모든 헌터에게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

“차희 씨도 피하셔야죠.”

홍창민이 차희에게 말했다.

“전 안 가요.”

“왜요?”

“창민 씨나 다른 헌터분들은 나가서 김성인 대표님과 합류해서 다음은 노리세요. 에어포스가 귀국할 테니 함께 저들을 방어하면 될 거예요.”

“차희 씨는 왜 안 가세요?”

“누군가는 길드를 지키고 있어야죠.”

작전 통제실을 나와서 대표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길드의 지하에 있는 비상 대피로를 따라 상급 헌터들은 모두 건물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이게 아무런 해결책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철컥.

대표실 문이 열렸다.

마족 기사 세 명과 병사들 다섯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대표실에 그룬헤잘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룬헤잘드는 차희에게 통역 스킬을 걸었다.

“네가 작전 지휘관인가?”

그가 차희에게 물었다.

“지금은 그래.”

“길드 안이 텅 비어 있더군. 병사들은 모두 어디 갔나?”

“이미 모두 빠져나갔다.”

“너도 콜로라성인인가?”

“뭐라고?”

“너희 대표는 콜로라성인이었다. 그리고 이 길드도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이곳을 먼저 분쇄하러 온 것이다.”

“콜로라성인이라니. 뭘 잘못 알고 있군.”

“확실하다.”

“그래서……. 마스크맨은 어떻게 했지?”

차희가 물었다.

“죽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 차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울컥 흘러내렸다.

“만약 네가 인간이라면.”

그룬헤잘드가 차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가올 전쟁에서 내게 힘을 보탤 기회를 주마.”

그의 손아귀가 차희의 이마를 짚었다.

온몸의 수분이 빨려나가는 기분이다. 차희는 그룬헤잘드의 손목을 움켜쥐고 고통에 발버둥 쳤다. 바로 그 순간.

콰쾅!

갑자기 대표실 문밖에서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그룬헤잘드가 움찔하더니 차희를 내려놓았다.

“컥, 컥.”

힘겹게 숨을 토하면서 호흡을 고르던 차희는 대표실 문밖에 서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번질거리는 강철 몸체에 마족의 피를 흠뻑 묻힌 아리였다.

“어깨가 끼는군요. 죄송.”

아리는 문틀 옆을 주먹으로 쳐서 부숴 버렸다. 그룬헤잘드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아까 전의 그 특이한 메탈로이드구나.”

아리는 그룬헤잘드의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았다.

“바로크가 또…….”

“뭐라고?”

“백마 길드 입단하시려면 그 옷차림은 안 됩니다.”

“무슨 소리냐?”

“조크였습니다. 어땠나요?”

“별 특이한 로봇이 다 있구나. 왜 인계에서 이러고 있느냐?”

아리가 다가가자 기사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우지직!

그러나 아리가 곧바로 그의 팔을 꺾어 부러뜨렸다.

“크아악!”

팔꿈치 관절이 뒤로 접혀버린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룬헤잘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리는 마족들을 가로질러 차희 앞에 가서 섰다.

“왜 왔어……? 너도 나가서 헌터 팀에 합류해. 너 정도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제 시스템이 주인님이 위험에 처하면 무시할 수 없는 구조라.”

아리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해지해도 되니까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난 더 살고 싶지 않아.”

“왜요?”

“윤성이가 죽었대…….”

“푸하하!”

갑자기 아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바로크 대장이 그랬습니까?”

아리가 눈의 라이트에서 노란색 빛을 반짝거렸다. 그가 박수를 짝짝 치면서 말했다.

“조크 전문가로서 10점 만점에 9점 드립니다. 괜찮았어요.”

“무슨 소리야?”

차희가 물었다.

갑자기 차희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네 개 떠올랐다.

강윤성, 강다윤, 강소윤, 민차희, 네 사람의 프로필.

“제 시스템에선 주인으로 등록된 분이 죽으면 주인 탭에서 프로필이 자동 삭제됩니다. 큰 주인님은 보시다시피 잘 계시고요.”

차희의 눈이 커졌다.

“그럼……?”

“무사하십니다. 아까 통신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겐 위치 신호도 잡혀요. 바로 여기 근처입니다! 이제 곧 오실 거예요.”

아리가 창밖을 가리켰다.

“셋, 둘, 하나!”

그가 박수를 짝 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는 네 장난질에 시간을 쓰지 않겠다.”

그룬헤잘드가 장검을 빼 들면서 말했다.

“라비린토스도 쓰러뜨릴 정도의 적이었으니 내가 직접 상대해 주마. 물론 아까에 비해서는 힘이 많이 떨어진 것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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