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레벨업 속도는 9.8m/s^2 133화
쾅!
바토리가 장검으로 내리치자 그룬헤잘드는 살짝 뛰어 공격을 피했다.
“윤성! 정신 차려! 디버프를 거는 거다!”
바토리가 소리쳤다.
“뭐?”
깜짝 놀란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혼란을 주는 말을 던져서 정신의 빈틈을 만든 후에 디버프를 거는 거다! 한 번이라도 당하면 끝장이야!”
“이미 늦었다.”
그룬헤잘드가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윤성은 황급히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디버프 : 스킬 봉쇄(천사의 종, 3,323초>
이럴 수가!
저놈 버프를 제거하는 것 말고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던 건가?
게다가 하필 천사의 종이 봉쇄되다니!
그러나 다음 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룬헤잘드가 매서운 기세로 윤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익!
그의 장검이 위에서 아래로, 윤성의 미간을 향해 쇄도했다.
캉!
윤성은 간신히 종단 속도의 단검으로 방어했지만 팔뚝이 파르르 떨린다.
아무래도 장검과 단검의 리치와 무게감이 다르니 막아내기가 버겁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쾅! 깡!
그룬헤잘드의 공격이 이어졌다.
하나하나 받아 내거나 피하는 게 몹시 어려웠다. 샐리단과 똑같은 모양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방향이 좋지 않다. 샘에서 멀어지고 있다.
<용조 발동!>
빈틈을 노려서 강력한 일격을 날렸지만 그조차도 그룬헤잘드는 손쉽게 피해내거나 장검으로 방어했다.
“윤성!”
다시 바토리가 끼어들었다.
“내가 돕겠다. 넌 아래쪽을 공격해라!”
그녀가 아르동의 장검을 휘둘러 그룬헤잘드를 공략하면서 말했다.
똑같이 장검을 들고 있는 바토리 쪽이 메인이 되었다. 윤성은 단검의 투척 능력을 이용하여 서브를 넣는 식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협력해도 그룬헤잘드를 근접전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무리였다.
그룬헤잘드는 가뿐하게 모든 공격을 받아내면서 중간중간 등골이 서늘한 공격을 날렸다.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 거야?’
여태 상대했던 그 어떤 적들보다도 강하다. 일산에서 싸웠던 엘리지아 일호보다도 더하다.
그놈은 재생력이 엄청난 게 문제였지, 움직임 자체는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룬헤잘드는 마치 거대한 벽처럼 보인다.
‘틈이 없다.’
윤성이 이를 꽉 깨물었다.
카앙!
결국 그룬헤잘드의 장검에 바토리의 검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 바토리는 일격을 맞지 않기 위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윤성도 마찬가지였다.
“샐리단도 물속이 아니었다면 네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마력은 글로디안보다도 못한 수준이지만 검술만은 나보다도 뛰어났던 기사였으니.”
그룬헤잘드가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윤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검이나 용조로 근접전을 벌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바토리가 검을 잃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투는 어렵게 되었다.
그룬헤잘드는 바토리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툭-
그러고는 갑자기 윤성에게 던져주었다.
“네가 인계에서 제법 강한 편이라 들었다. 네 실력의 한계를 봐야겠으니 다른 수가 있다면 전부 써라. 네 주특기는 단검이 아니라 장검일 듯하니.”
“무슨 소리야? 난 단검밖에 써본 적이 없는데.”
“헛소리.”
그룬헤잘드가 고개를 저었다.
“요르진의 몸에 난 상처들은 단검으로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네 스킬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상흔의 크기가 다르다.”
“아 그거.”
핏빛야수의 클로를 얘기하는 것일 테다.
“그건 이놈이 한 거야.”
<폴리모프 발동!>
윤성은 핏빛야수로 둔갑했지만 아직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마스크를 벗는 순간.
“이건…….”
그룬헤잘드의 눈이 커졌다.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마력의 질이 달라졌다. 좀 전까지 잔잔하게 사방에 끓어오르던 그룬헤잘드의 마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공기가 달라졌다. 세계가 묵음 처리된 것처럼 끔찍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뭐야?”
파사사사-
숲속의 나무들이 흔들리며 새 떼가 날아올랐다. 소름이 오싹 끼친다. 윤성의 팔등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바토리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룬헤잘드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콜로라…… 성인이었느냐……?”
“어? 아니, 그건 아닌데. 이건 폴리모프 마법이다. 난 인간인데.”
“닥쳐라. 인간은 그 마법을 쓰지 못한다.”
“뭐라고?”
“그 마법은 우리 차원 바깥의 마법이다. 차원의 경계에 있는 마왕이나 엘리지아 퀸 같은 존재들이 아닌 이상 네가 그걸 쓸 방법은 없다. 그러니 네놈은 콜로라 성인임이 명백하다.”
“아니, 잠깐만…….”
“내 앞에서 머리를 굴리지 마라. 나는 네놈이 수 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날 흥분시켜 빈틈을 찾아볼 생각이었나 본데 큰 실수였다.”
그룬헤잘드는 바토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바토리. 원래는 네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샘 앞에서 반성시킬 계획이었지.”
“뭐?”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과 친구가 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으나 콜로라의 앞잡이가 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뭐, 뭐라고?”
바토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윤성과 그룬헤잘드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직 핏빛야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콰앙!
갑자기 달려든 그룬헤잘드의 장검이 윤성의 아랫배를 찔렀다.
“크악!”
아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다. 그리고 무자비하다.
“아아아악!”
고통 속에서 폴리모프가 풀렸다. 하지만 그룬헤잘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윤성을 꿰뚫은 장검을 그대로 치켜들고 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윤성!”
놀란 바토리가 황급히 뒤쫓았다. 윤성이 떨어뜨린 아르동의 장검을 들고.
그녀는 그룬헤잘드의 등을 향해 모든 마력을 실어 힘껏 검을 내리쳤으나 소용없다.
카앙!
장검은 그룬헤잘드의 등을 가르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마력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다.
‘하지만 샘 앞까지 오게는 되었어.’
<용조 발동!>
윤성의 손가락이 그룬헤잘드의 목젖을 후려쳤다. 급소를 노린 공격에 그룬헤잘드도 잠깐 움찔했다.
윤성은 재빨리 배를 관통한 장검에서 빠져나왔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큭.”
바닥에 쓰러진 채로 윤성이 바토리에게 소리쳤다.
“돌풍을 써!”
“하지만 너도…….”
세 사람이 직선에 놓여있다. 바토리가 돌풍을 쓰면 그룬헤잘드 뿐 아니라 윤성도 함께 샘에 빠질 것이 뻔했다.
“빨리!”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바토리가 장검을 겨누었다.
<돌풍 발동!>
<랜더의 코트 발동!>
윤성은 체중을 7톤으로 고정했다.
<용조 발동!>
그리고 주먹을 힘껏 땅속에 꽂아 넣었다.
엄청난 바람이 맞은편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룬헤잘드를 날려 버려!’
윤성은 폭풍 속에서 간신히 실눈을 뜨며 그룬헤잘드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이번엔 바토리 역시 절망적인 표정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풍압 속에서 그룬헤잘드가 꼿꼿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바람이 그의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냐?”
그룬헤잘드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라센 북부의 지배자다. 바토리. 마계의 서열 2위. 그룬헤잘드 후작이다.”
그가 바토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 돼!”
윤성이 비명을 질렀다.
바토리는 그룬헤잘드를 향해 장검을 휘둘렀지만 그룬헤잘드에게 그건 아무런 저항도 되지 못했다.
-카앙!
그룬헤잘드는 장검으로 한 번 공격을 받아내더니 맨손으로 바토리의 장검을 움켜쥐었다.
콰직!
그러고는 마력을 주입해서 장검을 파괴해 버렸다.
돌풍 마법은 저절로 소멸되었다.
“이, 이 정도로 강하다니…….”
“그래. 비교적 젊은 마족인 너는 마계의 전쟁사를 모르니 내 힘의 끝을 본 적이 없겠지.”
콰악!
그룬헤잘드의 손아귀가 바토리의 목을 억세게 죄었다. 그는 한 손으로 바토리를 번쩍 들고는 다시 윤성을 향해 다가왔다.
콱!
이번에는 윤성의 목덜미를 쥐었다. 7톤으로 보정된 무게다. 게다가 용조로 땅을 붙잡고 있다.
“묵직하군.”
그룬헤잘드의 팔에 힘줄이 불끈 섰다. 이번엔 순수 완력만으로는 안 된다.
그의 손아귀에 마력이 실렸다.
윤성의 몸은 거대한 나무가 뽑히는 듯한 느낌으로 땅에서 들어 올려졌다.
“젠장! 안 돼! 안 돼!”
“지금에라도 콜로라에 통신을 전해라. 지구의 일곱 차원에서 네놈들이 약탈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 잠깐만!”
파악!
그룬헤잘드가 두 사람을 공중으로 던져 버렸다.
윤성의 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발아래는 처형인의 샘이다.
여태 수없이 많은 자유낙하를 했지만 이 정도로 공포스러운 건 처음이다.
높이는 불과 몇 미터 되지도 않는데.
어마어마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샘에서 치솟고 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피가 들끓는 기분이다. 심장이 거칠게 뛴다. 모든 신경이 뒤틀리는 것 같다.
아직 저 마력에 몸을 담그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다. 끓는 물 위에 올라오는 증기에 덴 정도인데.
물속에 들어가면 정말 잠깐 사이에 먼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첨벙!
윤성과 바토리의 몸이 샘에 빠져버렸다. 샘은 둘을 삼키고도 고요했다. 수면에 파장이 몇 개 일었을 뿐.
“일을 서둘러야겠다.”
그들이 들어간 처형인의 샘을 바라보며 그룬헤잘드가 혼잣말을 했다.
<차단막 발동!>
그룬헤잘드는 마법을 써서 다시 처형인의 샘의 뚜껑을 덮었다.
마스크맨은 인계에 있는 한국이란 나라의 백마 길드 수장이다. 샐리단과 요르진이 사망한 후 그에 대해서 충분한 조사를 이미 마쳤다.
‘그 길드는 콜로라 성인의 소굴이겠군.’
그곳을 먼저 소탕한다.
인계를 흡수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거기 누구 있느냐?”
그룬헤잘드가 소리쳤다.
“네, 네에……. 후작님.”
글로디안의 부관이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면서 나타났다. 그룬헤잘드가 좀 전에 보여주었던 힘은 재앙 그 자체였다.
새 떼가 날아오를 때 부관은 함께 도망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던 것이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남자는 언젠가 정말 마왕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인계로 가야겠다.”
그룬헤잘드가 말했다.
“지금 당장이요?”
“샐리단과 요르진을 먼저 보내어 그곳의 전력을 약화시킨 후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일정을 조금 당겨야겠구나.”
그룬헤잘드가 장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앞장서라. 모든 군대를 불러 모아라.”
“하지만 후작님이 이동할 정도로 큰 게이트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직접 연다.”
“네? 그러면 후작님의 마력이 크게 소모될 텐데요.”
“자꾸 토를 달 것이냐? 마력은 인계로 가서 보충할 수 있다. 인계의 한국에 현재 에어포스가 없다는 첩보가 있지 않았느냐? 그곳에서 학살을 벌여도 날 막을 이가 없다.”
“그, 그렇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부관이 인사를 올리고 재빨리 숲 밖으로 뛰쳐나갔다.
***
윤성은 눈을 떴다. 연두색, 파란색 마력의 파장이 사방에서 일렁거렸다.
아름답긴 하지만 끔찍하다. 온몸에 오한이 돌고 모든 근육과 신경이 욱신욱신 쑤신다.
‘그런데 아직 안 죽었잖아?’
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된 거지? 마력의 파동이 너무 강해서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릴 줄 알았는데.’
“윤성!”
뒤에서 바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윤성은 비로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게 되었다.
바토리의 목에 걸린 루비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수중 호흡 발동!>
<수중 발성 발동!>
바토리가 윤성에게 마법을 걸어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목걸이?”
“근처에서 엄청난 마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안전한 것이다.”
“그거 그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단 말이야?”
“나도 그럴 줄 몰랐다. 지금 발견한 것이다.”
바토리가 말했다.
사실은 바토리뿐만 아니라 그룬헤잘드조차도 몰랐다.
루비 목걸이는 아르동이 직접 제작한 물건으로 마계의 금서에 기록된 오리지널과는 성질이 달랐으니까.
“그룬헤잘드가 사라지면 여기서 나간다.”
바토리가 말했다.
“잠깐만.”
윤성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돌풍 스킬을 그 루비로 썼던 거지?”
“그렇다.”
“그럼 지금은 훨씬 더 강한 바람을 쓸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거다.”
“얼마나?”
“모르겠다. 어쩌면 아까의 수십 배는…….”
윤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 수직으로도 쓸 수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