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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32화 (132/260)

# 132

레벨업 속도는 9.8m/s^2 132화

“그룬헤잘드는 없냐?”

마족의 군대를 보며 윤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스크맨!”

글로디안이 검을 빼 들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윤성이 도발적인 목소리로 그를 비웃었다.

“한 번 패배하고도 수준차를 모르겠냐? 네 아버지를 데려왔어야지.”

글로디안은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패배를 논하니 하는 얘기인데, 네놈도 이미 아버님께 패하고 돌아갔다 들었다. 한데 어째서 다시 나타난 것이냐?”

“난 패한 게 아냐.”

“무슨 소리냐?”

“화장실 다녀왔다.”

시간도 벌고 도발도 할 생각으로 아무 말이나 막 던진 것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리한테 몹쓸 조크병이 옮은 게 아닌가 싶다. 이거 좀 소름 돋는데.

<중금속 폭우 발동!>

윤성이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금속 폭우가 이전처럼 모든 적을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글로디안이 곧바로 방어 마법을 시전했기 때문이다.

반투명하고 거대한 검은 장막 같은 것이 80명의 마족 친위대의 머리 위를 덮었다.

쏟아지는 폭우는 그것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빛의 탄환 발동!>

파앙!

한 점에 집중해서는 최고의 화력을 발휘하는 빛의 탄환마저 글로디안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섣불리 나가지 마라.”

글로디안이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폭우는 끔찍한 마력을 담고 있다. 한 방울이라도 맞았다가는 갑옷이 녹아내릴 것이다.”

“그럼 어떡합니까?”

부관 중 하나가 물었다.

“이만한 공격을 장시간 지속하진 못할 거다. 폭우가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그 후 한 번에 덮쳐야 한다.”

윤성은 글로디안과 부관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살벌한 표정과 입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고 눈치챘다.

‘저걸 파괴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천사의 종>

이번 버프로 얻은 일시적인 스킬이다. 그 설명은 아주 대단하다.

<천사의 종 : 대천사 수르엘이 길을 잃고 마계에 빠진 영혼들을 인도할 때 울린 종소리를 퍼뜨린다. 마족에게 상태 이상의 디버프를 걸어 행동을 제약한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에게도 사용 가능하지만 효과가 떨어짐.>

경험상 버프 스킬도 더 높은 데서 떨어질수록 더 강력해진다.

폐건물에서 얻었던 힐링과 이집트에서 얻었던 ‘라 호라티크’, ‘광폭한 물결’ 따위를 비교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니까.

이번 버프는 2,575미터에서 얻은 값이다. 3,000미터 정도였던 라 호라티크의 파괴력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글로디안의 정신을 흩뜨릴 수는 있겠지.

아까 글로디안과 일기토를 벌일 때는, 이전에 테스트해본 적이 없는 스킬이니까 사용에 신중을 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쪽도 대기하는 중이니 여유가 있다.

시전 시간이 굉장히 길다거나 예상치 못한 패널티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대처해서 감당할 수 있겠지.

<천사의 종 발동!>

폐 속이 한겨울 공기를 훅 들이마신 것처럼 차가워졌다.

머릿속이 찌릿찌릿하다.

윤성의 눈앞에 천사의 상이 양각된 조그만 은색 종이 나타났다.

마법으로 생성된 물건이다. 이런 고농도의 마력 밀집은 비자연적이니 금방 흩어질 것이다.

윤성은 재빨리 종을 들었다. 묵직하다.

“안 돼!”

글로디안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그의 순발력이라면 순식간에 도약해 타종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였다간 장막이 사라지고 폭우에 병사들이 전멸한다.

그가 잠깐 머뭇거린 사이였다.

땡!

종의 크기와 맞지 않는 굉음.

거대한 단발성의 타종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단순히 글로디안과 80의 친위대만 당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숲을 뒤지던 7개의 마족 팀 모두의 움직임이 굳었다.

글로디안은 휘청거리다가 결국 풀썩 주저앉았다. 순간 머리가 파괴되는 줄 알았다.

마치 누군가 그의 두개골을 절개해서 얼음물을 들이부은 기분.

종소리가 가라앉은 후에도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는 찢어질 듯 아프고 코에서는 코피 한 줄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우우욱!”

갑자기 병사 몇 명이 구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서 있는 마족이 없었다.

글로디안의 손이 공포로 저려 왔다. 게다가 끔찍한 것은 아직 더 있다.

파스스스-

온 힘을 다해 버텨냈으나 결국 장막이 이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후두둑.

중금속 폭우는 시전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이 사그라들었으나 아직도 멎지는 않았다.

떨어지는 잔 비가 명사들의 갑옷과 피부를 태웠다.

“끄으윽”

“으으으!”

“흑흑.”

사방에서 병사들이 울고 신음하며 고통에 굴렀다.

윤성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제 중금속 폭우를 다시 써서 전멸시킬 생각이다. 스킬을 사용하기 직전이었다.

“윤성!”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바토리였다.

“이들을 전부 죽일 셈이냐?”

“그래.”

“저자는 안 된다.”

바토리가 빌티톤을 가리켰다.

“저 남자는 민간인이다. 살려주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복장이 다른 병사들과는 달랐다. 극도의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떠는 모습도 훈련받은 군인 같지는 않았다.

“좋아.”

윤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토리는 귓가에 작게 소곤거렸다.

“그리고 그룬헤잘드가 나타났다.”

“그걸 먼저 얘기했어야지.”

그룬헤잘드가 왔다면 여기서 마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처형인의 샘 앞에서 일어날 전투를 위해 체력과 마력을 보존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글로디안.

‘저놈은 죽여야지. 그룬헤잘드의 평정심을 흩뜨려놓기 위해서라도.’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섬광이 글로디안의 가슴을 뚫었다.

“크악!”

글로디안이 피를 쏟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기사님!”

부관이 황급히 글로디안을 부축했다. 하지만 그 역시 몸이 만신창이다. 천사의 종에 당한 정신적 부상과 중금속 폭우에 얻어맞은 피해가 꽤 컸다.

“들어라!”

갑자기 바토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룬헤잘드에게 전해라. 처형인의 샘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후작이 인계를 침공하려 했던 것을 마왕께 고하는 대신 나와 마스크맨이 결투를 신청한다고 해라.”

“건방진 년…….”

글로디안을 부축한 채, 부관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귀족 출신, 글로디안의 종자였다.

“가문이 몰락한 네년 따위가 감히 후작님께 도전할 만한 명예가 있단 말이냐? 게다가 마스크맨? 실성했느냐?”

“좋을 대로 생각해라. 하등한 네놈들과는 얘기할 게 없으니. 그룬헤잘드를 처형인의 샘 앞으로 불러라. 내가 할 말은 그게 다다.”

바토리는 도도하게 쏘아붙이고 윤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바토리의 스킬 ‘돌풍’으로 그룬헤잘드를 처형인의 샘에 던져 넣으려면 정확한 타이밍과 강도의 마력을 한 번에 써야 한다.

바토리가 윤성에게 부탁한 것은 그때까지 그룬헤잘드를 붙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변수를 만들 수 있는, 그룬헤잘드의 병사들이나 기사들을 최대한 떼어놓는 게 좋았다.

물론 결투를 신청한다고 사병을 떼놓고 오리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병사들을 떼어놔도 솔직히 이 작전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제는 믿어볼 만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천사의 종.

글로디안을 상대로 테스트해 본 결과는 매우 우수했다. 그룬헤잘드도 어쩌면 잠깐이나마 움직임이 굳을지도 모르지.

“근데 좀 전에 울렸던 종소리는 네가 쓴 것이냐?”

이동하면서 바토리가 물었다.

“그래.”

짧은 대답 끝에 윤성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바토리도 마족인데 종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거리가 멀어서 괜찮았던 건가?

“그걸 다시 쓰면 그룬헤잘드의 움직임을 잠깐이라도 묶을 수 있을 거다.”

바토리가 말했다.

“하지만 내게도 피해가 있다. 충분히 거리가 멀었을 텐데 아직도 골이 지끈거리는군. 내가 상대하던 하급 마족 병사들은 구토하기도 했다.”

“귀마개라도 줄까?”

윤성이 인벤토리에서 귀마개를 꺼내며 말했다. 랜딩할 때 현기증을 줄이려고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다.

“이런 걸로 막아질까?”

“하지만 별수 없잖아.”

“그래.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걸 귓구멍에 넣으면 되는 거냐?”

바토리가 귀마개를 의심쩍은 듯 쳐다보며 물었다.

“마력을 조금 덮으면 더 확실하게 청각을 차단할 수 있다. 내가 종을 만들어내면 재빨리 그걸 써.”

***

글로디안은 죽지 않았다. 다만 끔찍한 치명상을 입었다. 의식이 없고 출혈이 심했으며 전신에서 고열이 끓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

“기사님…….”

부관은 글로디안의 상처를 돌보다가 일어났다.

“후작님을 모셔오겠다.”

그러나 말 끝나기 무섭게 간이 천막 앞에 그룬헤잘드가 나타났다. 놀란 부관과 글로디안의 병사들이 예를 갖추었다.

“그리 강력한 적 같지는 않았는데, 글로디안이 당하다니 뜻밖이군.”

놀랍게도 그룬헤잘드는 친아들의 부상에도 그리 흥분하지 않았다.

너무나 냉혈한이라서 핏속에 얼음 조각이 떠다닐 거라고 얘기되던 남자다.

“하지만 바토리가 글로디안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 리는 없다. 마스크맨에게 내가 몰랐던 힘이 있었던 모양인데.”

“갑자기 은색 종을 울리더니 전 병력이 당했습니다.”

“천사의 종인가? 어쩌면 천계에서 온 놈일지도 모르겠군. 손가락으로 쓰던 빛의 마법도 그렇고. 어디에 있느냐?”

“그 둘이 처형인의 샘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좋다. 지금 가보마.”

“함정일 겁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후작님.”

“천사의 종을 가진 놈이라면 숫자는 의미가 없다. 인계를 다시 쳐야 하니 병력을 아껴야 한다.”

“어차피 적도 둘입니다. 명예 결투라면 숫자를 맞추는 게 일반적입니다. 제가 후작님의 서브로 나서겠습니다.”

부관이 검을 꽉 쥐며 말했다.

“좋다. 하지만 숫자를 맞출 뿐이다. 전투는 내가 하마.”

그룬헤잘드는 부관을 데리고 처형인의 샘 앞으로 이동했다.

***

“정말 병사들을 안 데려왔잖아?”

윤성이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 게다가 부관 역시 숫자를 맞춰주었을 뿐이다.”

그룬헤잘드가 무뚝뚝하게 부관에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후작님!”

“내 발목을 잡지 말라는 뜻이다. 어서 내려가라.”

그룬헤잘드의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부관은 오한을 느낄 정도로 공포감을 느꼈다.

“조금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관이 경례를 올리고 숲을 빠져나갔다. 윤성은 처형인의 샘을 힐끗 쳐다보았다.

틱! 틱!

마력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옛날에 TV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죽음의 호수가 떠오른다. 카라차이인가 하는 이름이었는데 방사능을 사방에 뿜어내는 호수였지.

여긴 방사능 대신 마력을 뿜어낸다.

돌풍을 써서 그룬헤잘드를 이곳에 집어넣는 전략은 괜찮지만 지금 그룬헤잘드의 위치는 꽤 멀다.

이미 윤성과 바토리는 그룬헤잘드가 도착하기 전에 돌풍의 사거리에 대한 테스트를 마쳤던 것이다.

그룬헤잘드를 떠밀기 위해서는 샘으로부터 최대 7미터. 그 안으로 그룬헤잘드를 유인해야 한다.

“너희 둘 다 쓰러뜨린 후 저곳에 넣어주마.”

그룬헤잘드가 샘을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쿠우우우-

그의 몸에서 마력이 끓어오른다. 윤성과 바토리는 재빨리 거리를 만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빛의 탄환 발동!>

먼저 윤성이 견제용으로 스킬을 던졌다.

팡!

하지만 그룬헤잘드의 몸에 맞은 빛의 탄환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근처로 산화해 버렸다.

‘또 저러는군.’

저게 문제다. 아까 전의 전투에서도 빛의 탄환, 급속 냉각 같은 마법 계열 공격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단검 투척이나 용조 같은 근접 공격은 통하는 것 같지만, 그룬헤잘드가 장검으로 전부 방어해냈다.

샐리단이 저놈에게 검술을 가르쳤다고 했지. 확실히 샐리단의 움직임과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샐리단보다 훨씬 강하다.

‘근데 굳이 근접전으로 놈을 쓰러뜨릴 필요는 없지.’

샘 근처로 유인만 하면 되니까.

그룬헤잘드 같은 초인과 근접전을 벌인다는 게 겁나긴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게다가 전에 벌였던 첫 전투에서도 근접전이 겁나서 거리를 만들었다가 버프를 제거당했다.

<버프 : 랜딩 1,488초.>

이제는 버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시간 안에 그룬헤잘드를 쓰러뜨리려면 서둘러야 한다.

글로디안도 바토리도 그룬헤잘드도 모두 샐리단의 검술을 쓴다. 그 품새를 대강 파악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되겠지.

‘샘 근처로 끌고 올 때까지 근접전을 벌이고, 종을 울려서 움직임을 봉쇄한 다음, 바토리의 돌풍으로 샘에 빠뜨린다.’

윤성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갑자기 그룬헤잘드가 말했다.

“내 검술이 샐리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

“뭐?”

“대충 검술의 성격을 아니까 근접전을 벌여도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겠지.”

마치 윤성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대사였다.

“놀랐느냐?”

그룬헤잘드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마계의 바닥에서 수천 년을 구르며 천계와 엘리지아와 마이어와 전쟁을 벌여온 죽음의 기사다.”

그룬헤잘드가 장검을 뻗어 윤성을 겨냥했다.

“내가 그간 죽인 적의 머릿수가 네가 평생 동안 먹은 빵의 개수보다 많을 것이다. 한데 네 얕은 수 싸움을 못 읽을까?”

얼떨떨한 기분. 갑자기 그룬헤잘드의 뿔이 기이하게 구부러지는 듯한 환각이 보였다.

바로 그때, 바토리가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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