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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31화 (13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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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131화

가문이 몰락한 후 바토리는 여러 귀족의 저택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 어느 영지에서도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녀는 점점 사람에게 마음을 닫게 되었다.

그녀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고, 이 때문에 매일같이 검을 휘두르고 마력을 갈고 닦았다.

그룬헤잘드의 저택에 정착한 후에도 그런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새벽 이른 시간, 훈련장에서 검술과 마력을 연마하던 바토리는 하인스와 마주쳤다.

젊은 병참관 하인스는 바토리의 실력에 탄복하여 대련을 요청했다.

결과는 바토리의 가뿐한 승리.

“가소롭구나. 내가 여자라고 우습게 보았느냐? 난 귀족가의 영애지만 기사이기도 하다. 평민 병참관인 네 하등한 실력으로 내게 대련을 신청하다니.”

바토리의 공격적인 비웃음에도 하인스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그는 이후 매일같이 대련을 요청했다.

약 두 달에 걸친 대련은 모두 바토리의 승리였다.

“한 번도 날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대체 왜 하자는 것이냐? 귀찮구나, 그만 좀 요청해라.”

그녀는 평소처럼 비아냥댔는데, 다음 날 정말로 하인스가 그녀에게 대련 신청을 하러 오지 않았다.

은근히 기다려졌다.

바토리는 자신의 방에서 하루 종일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대련하러 안 가시나 봐요?”

하녀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그러게. 오늘은 안 오는구나.”

바토리는 하인스와의 대련이 일상적인 즐거움 중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그가 대련 요청을 하지 않는 오후가 이렇게 길 줄 몰랐다. 책을 읽고, 바이올린을 켜고, 혼자서 검술을 다듬어도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마주치는 병사들, 하인마다 오늘은 하인스와 대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들과 언제부터 말을 트게 되었더라.’

고민하던 바토리는 하인스와 대련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련장에 물과 음식을 가져다준 하인, 수건을 가져다준 하인, 심판을 봐준 부관, 부러진 검을 교체하는 심부름을 해준 말단 병사까지.

모든 게 하인스와 얽혀 있었다.

다음 날, 바토리는 그가 그룬헤잘드의 비밀 임무를 받아 하루 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바토리는 하인스의 실력을 다시는 비웃지 않았다.

“하인스…….”

골목 안쪽에 도달한 바토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인스가 죽어 있었다.

그룬헤잘드의 병사들은 바토리에게 겁을 먹고 모두 일정 거리만큼 물러난 상태였다. 바토리를 포위한 채 그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인스.”

하인스의 어깨를 흔드는 바토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루비가 빛났다.

바토리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내가 꼭 네 복수를 해주마.”

슈우우우우-

계곡에 바람이 드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인스의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와 바토리의 루비로 옮겨갔다.

바토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르동의 목걸이를 기반으로 한 스킬.

<돌풍 발동!>

엄청나게 강력한 바람이 바토리로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던 병사들이 넘어지고 구르기 시작했다.

마치 에어건으로 먼지를 쓸어버리는 듯한 모양새. 약 30여 명의 병사들이 한 데 엉켜서 40여 미터를 날았다.

그들은 골목의 벽과 쓰레기, 무너진 담벽 따위에 부딪히며 몸 곳곳이 박살 났다. 그대로 골목 밖까지 야구공처럼 날아가 버린 녀석들은 이미 의식이 없다.

그 앞에는 그룬헤잘드가 서 있었다.

“이런. 바토리.”

그룬헤잘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병사들의 상태를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

그룬헤잘드의 말에 바토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표정으로 장검을 들고 다가올 뿐이다.

그녀는 그룬헤잘드와의 일전을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발견한 바토리의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윤성이었다.

약 10여 분 전, 윤성은 그룬헤잘드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인간형의 강적들과 싸울 때 늘 하던 것처럼 그의 전투 방식은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공격들을 뒤섞은 변칙적인 공격이다.

그 모든 공격이 적절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윤성의 모든 능력치가 골고루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룬헤잘드와 전투를 시작한 윤성은 충격에 빠졌다.

그룬헤잘드가 윤성을 향해 손을 뻗고 눈을 번쩍인 후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버프가 제거됩니다.>

버프 제거.

그룬헤잘드의 고유 스킬 중 하나였다.

윤성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버티려고 했지만 간단치 않았다. 그룬헤잘드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공격력은 일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은 후 윤성은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윤성!”

바토리가 그를 향해 곧장 달려왔다.

“으으으…….”

윤성은 신음을 토하면서 고개를 들었지만 바로 움직이진 못했다.

“그룬헤잘드한테 당한 것이냐?”

“하인스는?”

“……죽었다.”

“그래.”

두 사람이 잠깐 침울한 분위기가 되었다.

“넌 움직일 수 있느냐? 일단 여기서 피해야겠다.”

바토리가 속삭였다.

하인스에 이어 윤성까지 죽게 둘 수는 없다. 그룬헤잘드와의 싸움은 조금 뒤로 미룬다.

부하들을 살펴보던 그룬헤잘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그룬헤잘드보다 달리기 잘 하냐?”

윤성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바토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룬헤잘드는 순간적인 순발력이나 반응 속도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마 내가 더 잘 뛸 거다.”

“셋 하면 뛴다. 하나…….”

윤성이 카운트를 했다.

그룬헤잘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둘.”

윤성은 손목시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손에서 마력이 끓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랜더의 손목 시계 발동!>

<최종 속력=239m/s, 낙하 거리=3,275.8m, 낙하 시간=26.29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3,275.8점. 남은 시간 3,60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천사의 종 남은 시간 3,600초>

강력한 버프와 함께 전신에 힘이 끓어올랐다. 통증은 씻은 듯 가라앉았다.

“셋!”

윤성은 곧바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바토리가 나란히 뛰었다.

정말 그룬헤잘드보다 빠르다.

그룬헤잘드는 아예 쫓아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붙박여 서 있는 그곳에서 윤성과 바토리의 뒷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힐링 발동!>

달리면서 윤성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들을 치료했다. 그가 물었다.

“너 이대로 성벽 넘어서 도망갈 수 있냐?”

뛰면서 윤성이 물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럼 이대로 도망치면 되겠네. 난 순간이동석 써서 인계로 돌아가고.”

하지만 성벽 근처까지 이르렀을 때 바토리가 우뚝 섰다.

“난 안 간다.”

“뭐? 왜?”

“하인스의 복수를 하겠다.”

“미쳤냐? 저거 상대로 무슨 복수를 어떻게 해?”

“마력은 꽤 회복했다.”

바토리가 자신의 루비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절대 안 돼! 그거 써봤자 아르동이지. 저놈은 아르동하고 레벨이 완전 다른 놈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날 좀 도와다오. 내게 작전이 있다.”

“무슨 작전?”

“나는 지금 돌풍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다. 이건 언뜻 보면 바람을 무작정 발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세심한 마력의 손으로 적을 밀치는 것이다. 정확한 유도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바토리는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스킬을 사용했다. 그녀가 일으킨 바람이 작은 화물 상자 하나를 공중에 띄워서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그래서?”

“이걸 한 번에 힘주어 쓰면 꽤 먼 거리를 날릴 수도 있다.”

바토리가 화물 상자에 돌풍을 수직으로 일으켰다. 상자는 백 미터 상공으로 치솟아버렸다.

“그룬헤잘드를 처형인의 샘 앞으로 유인하자. 내가 거기서 돌풍을 써서 그룬헤잘드를 샘에 빠뜨리겠다.”

“처형인의 샘?”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영지의 동편에 있는 천연의 마력 샘이다. 거기 들어간 것은 무엇이든 먼지가 되어버린다.”

듣고 보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하다.

더 강력한 버프를 가지고 와서 그룬헤잘드와 싸운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버프 역시 그룬헤잘드가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룬헤잘드라는 인물은 분명 언젠가는 맞닥뜨릴 큰 위협이다.

샐리단이나 요르진이 죽었다고 이 자가 인계 침공을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

바토리가 도와줄 때 함께 그룬헤잘드를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한번 해보자고.”

윤성이 말했다.

***

처형인의 샘은 성의 북쪽 외곽 미개발 지역에 있었다.

크고 질 좋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가구나 집을 만들기 위해 영지 내의 마족들이 벌목을 하는 곳이다.

마족 빌티톤 역시 벌목업자 중 하나였다. 그는 오늘 역대급으로 거대한 오동나무를 베고 동료들과 함께 낮술을 나누고 있었다.

“이봐!”

갑자기 누군가가 벌목업자들의 산장에 난입하며 소리쳤다.

키가 큰 군인이었다.

“이쪽으로 올라온 젊은 남자와 귀족 아가씨 못 봤나? 남자는 인간이고 이상하게 생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못 봤습니다.”

목수들이 고개를 저었지만 빌티톤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동나무를 베던 중에 분명 수상한 남녀 한 쌍이 산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봤습니다!”

빌티톤이 소리쳤다.

“그놈들이 어디로 갔지?”

“산 뒤편 중턱 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

“이쪽 길 잘 아나?”

“어, 예에…….”

“따라와라. 긴급 상황이다. 길을 안내해라.”

마족 병사가 빌티톤의 팔을 잡아끌었다. 빌티톤은 일어나면서 몹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 대신 동료들이 항변해 주었다.

“여기 형님은 우리 팀 대장인데 데리고 가시면 저희 작업은 어떡해요?”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따라와라!”

그러자 빌티톤이 애써 웃으면서 상황을 중재하려고 했다.

“저희가 이번에 큰 작업을 하나 했는데 그거 어떻게 할지 지시만 내리고…….”

“이 새끼들이 진짜!”

스르릉-

군인이 칼을 빼 들고 빌티톤의 어깨에 가져다 댔다.

“긴급 상황이라지 않느냐? 후작님 친명이다. 당장 따라와라!”

“가, 가겠습니다! 갈게요!”

빌티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군인을 따라간 곳에는 그룬헤잘드의 친위대 80여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대와 오를 맞추어 서서 산 위로 오를 준비를 마친 채다.

그뿐 아니다. 그 대열의 선두에 서 있는 남자는 바로 그룬헤잘드 후작의 아들, 글로디안이었다.

물론 벌목업자 따위가 글로디안의 얼굴을 알 리는 없지만, 글로디안의 문장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 위용을 본 빌티톤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까 그 사람들이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들이구나.’

빌티톤은 아는 척 한 것을 후회했다.

이런 큰일에 말려들어서 결과가 좋은 경우를 못 봤는데.

“아는 사람이 있었느냐?”

글로디안이 빌티톤을 데려온 군인에게 말했다.

“네. 바로 이놈입니다.”

군인은 큰 소리로 답하며 빌티톤의 등을 툭 떠밀었다.

“앞장서라. 중턱 뒤쪽이 어느 방향인지.”

하지만 빌티톤이 안내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에 마스크맨과 바토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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