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26화 (126/260)

# 126

레벨업 속도는 9.8m/s^2 126화

40. 꺼삐딴

꺼삐딴 길드는 콜로라 행성 최고의 길드 중 하나다.

최상급 전사인 옌뚜르, 쯔위민 등을 필두로 중상급 헌터들을 대량 보유하고 있으며, 최고의 유망주인 클리앙까지 합류했다.

길드에서는 최근 ‘클리앙의 최연소 210층 클리어’ 기록을 갈아치운 전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클리앙은 중역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팀원들을 데려갔다.

우수한 실력자라면 확인 후 직접 영입해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런데 지금 만나보니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레벨이 670? 이 정도면 이미 길드 내에서도 상급 전사다.

‘은근히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아예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잖아?’

“아하하!”

갑자기 클리앙 뒤에서 핏빛야수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전사였다.

“당신 대체 왜 210층대에서 헤매고 있는 거예요? 팀 제대로 짰으면 지금쯤 300층 근처까지 갔을걸요?”

“길을 못 찾아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당신은 이름이 뭐죠?”

“피클.”

거 이름도 참…….

“아무튼 잘해 봅시다.”

클리앙이 손을 내밀었다.

윤성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롬펠 쪽에서는 손 인사를 그렇게 합니까? 재밌군요. 보십시오.”

클리앙은 피클을 향해 똑같이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하이파이브를 하듯,

짝!

클리앙의 손바닥을 기세 좋게 날려 버렸다.

“이렇게 인사해야죠!”

“이게 콜로라의 손 인사입니다. 잘해 봅시다, 윤성 씨.”

“잘 부탁드립니다.”

핏빛야수 레이드 팀의 일원이 된 윤성이 말했다.

클리앙은 신입이었지만 놀라운 실력 덕분에 공격대 내에서 서열은 2위였다.

공격대의 대장은 ‘쭈코’라는 여자. 핏빛야수 기준에서도 나이가 많은 장년의 여전사였다.

사실 전투력만을 놓고 보면 클리앙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오랜 경력과 많은 경험치 때문에 리더를 맡았다.

남은 멤버 하나는 클리앙과 피클을 합쳐놓은 것처럼 거대한 덩치의 시커먼 전사다.

아주 무시무시한 캐릭터였다. 윤성의 허리통만 한 크기의 팔뚝. 공격대에 막 합류한 윤성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기적의 과묵함.

한쪽 눈은 끔찍한 상처로 찢어져 있었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하다.

“분위기 보고 처음엔 이쪽이 리더인 줄 알았습니다.”

윤성이 그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함께 레이드할 텐데, 아직 이름을 모르네요.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놀랍게도 그는 수줍은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이럴 수가. 이 덩치에 부끄럼을 탄다고?

“이름 물어보잖니?”

리더인 쭈코가 자상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빠에야…….”

그가 옹알거렸다.

클리앙은 그 소심함이 짜증 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빠에야, 윤성. 어서 가요.”

그가 순간이동석을 내밀었다. 윤성과 빠에야가 그의 순간이동석에 손을 얹자,

<몇 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0 to 210.>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210.”

공격대 다섯의 몸이 하얀빛으로 산화했다.

이제 210층 로비.

“저희도 219층까지는 진행했었답니다.”

211층 문을 열면서 쭈코가 말했다.

“길을 계속 헤매셨다고 하셨으니, 그곳까지는 우리가 길 안내를 할게요. 윤성 씨는 뒤에서 우리의 전투법에 적응하는 데 주력해 주세요.”

“근데 사실 레벨이 600이 넘으면 그런 거 필요 없잖아요?”

클리앙이 말했다.

“혼자서도 보스 잡을걸…….”

“하지만 우리는 격전지에 가도 페어를 맞춰야 하니까.”

“뭐. 그렇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빠에야가 조용히 앞장섰다. 그의 양손에 달린 클로에서 강력한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쭈코가 빠에야를 앞세우며 말했다.

“잠깐만요.”

윤성이 그들을 멈추었다. 211층을 헤맸던 지난날들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쪽으로 진행하는 게 맞긴 하다. 다만 심시티가 워낙 예술적이라서 한참을 빙 돌아가야 한다. 15분 이상 걸리지.

하지만 이번 랜딩 버프로 받은 스킬 ‘폭격.’ 이거 어쩌면…….

<폭격 발동!>

윤성이 스킬을 사용했다. 설명을 읽었을 때는 분명히 거대한 마력 폭탄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적을 섬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위력을 확인해 보진 않았다.

‘뭐야? 아무 일 없잖아?’

잠깐 시간이 흐른 후에 윤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오싹한 감각.

등골이 서늘하다.

이거 생각 이상인데. 씀푸랑 같이 레이드 할 때 분명 아군의 공격 스킬은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었지? 그럼 괜찮겠지?

“다들 물러나요…….”

윤성이 레이드 팀을 뒤쪽으로 물렸다,

슈우우우우-

마치 폭격기가 지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구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클리앙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뭐죠, 이게?”

쿠구구구-

쾅! 쾅!

귀를 찌르는 폭음. 마력 폭탄에 두들겨 맞은 건물들이 장난감 집처럼 박살 나기 시작했다. 자욱이 일어나는 모래 먼지.

놀란 전사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윤성도 마찬가지다. 이거 자주 쓸 스킬은 못 되겠군.

버프 스킬은 원래 영구적 스킬보다 더 강력한 게 나오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런 오버 밸런스가 튀어나오는 거지? 시전 시간이 길다는 페널티 때문에 위력이 이 정도인 건가?

땅이 흔들린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 잔해들. 어디선가 들리는 오크들의 비명 소리. 이거 어쩌면 PTSD 생기겠는데. 나가면 정신과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냐?

“대체 뭘 한 거예요!”

피클이 소리를 질렀다.

“이거 우리한테 피해 없는 스킬 맞아요?”

“아마…… 아마도요.”

“처음 보는 스킬이군요.”

그 경험치 많은 쭈코조차 몸을 떨었다.

그렇게 충격과 공포의 짧은 시간이 지난 후, 폭음이 잦아들자 윤성이 조용히 머리를 들었다.

목적지까지 직선 통로가 생겼다. 윤성이 씩 웃었다.

“이렇게 여덟 번만 더 하면 219층까지 금방입니다.”

“그냥 천천히 돌아가는 게 낫지!”

피클이 절대 안 된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약 한 시간 후, 레이드 팀은 219층에 도달했다.

윤성은 219층 홀에서 한탄하듯 지난 경험을 털어놓았다.

“여기까지는 혼자 어떻게든 왔었는데, 220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19층을 계속 헤맸죠.”

“220층대 보스는 오크 제사장이에요. 그리고 220층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219층에서 의식을 치르면 이곳에 220층이 강림하는 구조죠. 우리가 220층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220층이 내려오는 거랄까…….”

클리앙이 설명했다.

“그게 돼요?”

“되죠. 그래서 220층 발코니는 실제로 219층에 해당하는 높이래요.”

“대체 왜 그렇게 디자인을 한 건가요?”

“마이어계의 계층 구조를 반영했대요. 현실 고증이라면서.”

마이어계가 그렇게 생겼나 보군.

아직 윤성은 가본 적이 없는 계다. 그리고 헌터계에 알려진 여러 계 중에서 가장 정보가 부족한 곳이기도 하다.

주로 알려진 계는 마계, 메탈로이드계 둘이니까. 최근엔 엘리지아가 추가되었고.

마이어계는 듣기로는 시체와 망령들의 세계라고 전해진다. 알리야가 마이어계의 구울과 앨피스를 데려왔었지.

“근데 마이어계에 오크가 나와요? 구울이나 좀비 말고요?”

윤성이 물었다.

“오크는 마이어가 돼지와 사람의 시체를 한 데 넣고 망령을 담아서 부활시킨 마수예요. 구울과 함께 마이어의 역작 중 하나죠.”

“그렇군요. 220층이 내려오게 하는 건 어떻게 하면 되죠?”

윤성의 질문에 쭈코가 끼어들었다.

“원래는 219층에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모아야 합니다만, 길드에서 의식서를 제공해 줬죠.”

그녀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콕 두드렸다.

인벤토리를 보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 주머니는 원래 핏빛야수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다시 한번 인벤토리를 열어서 작은 물병 같은 걸 꺼냈다. 조심스럽게 들고는 제단에 올라갔다.

쪼르르.

제단 위의 대야에 물을 붓자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졌다.

“보스가 나옵니다. 전투 준비해요.”

클리앙이 말했다.

오크 제사장이라고 했지? 어떤 놈일까?

윤성은 바짝 긴장하며 종단속도의 단검을 움켜쥐었다.

<마이어의 간부, 오크제사장.>

흉측한 어금니를 가진 거대한 크기의 마수였다. 검은 두건을 쓰고 해골 목걸이를 치렁치렁 감은 늙은 오크.

200층에서 나왔던 마이어계의 간부 브리트마보다도 더욱 강해 보였다.

<보스 레이드 시작!>

“상당히 강한 놈이에요. 빠에야는 뒤로.”

“다들 포지션 지키고. 화염에 주의해요.”

쭈코와 클리앙이 말했다.

오크 제사장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큼직한 입을 열어 우물거리듯 말했다.

“콜로라성인들인가? 하지만 마이어계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거다.”

오크 제사장이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광범위한 스킬이 발동했다.

볼케이노.

바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바닥 조심해!”

“신중하게 이동해!”

클리앙과 쭈코, 피클이 사방으로 뛰면서 외쳤다.

마이어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윤성은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다른 레이드 팀원들이 하는 것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부서지고 갈라지는 지면의 타일을 갈아타면서 용암을 피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다.

빠에야의 손아귀 끝에서 강철로 된 송곳 같은 것이 생성되었다.

스킬 <아이언 스피어>

중급 전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다.

콰악!

날아온 스피어가 제사장의 쇄골 아래를 찔렀다. 심장을 노렸지만 약간 빗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툭.

제사장은 간단히 스피어를 뽑아버렸다. 상처는 별로 깊지 않았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클리앙이 매섭게 튀어 올랐다.

그 움직임이 윤성의 눈에 익숙하다. 옛날에 몇 번 보았던 것이다.

샐리단, 요르진을 처치했던 마계 던전에서, 그리고 구스타프 던전에서 나타났던 핏빛야수들이 저렇게 움직였다.

싸악!

클리앙이 휘두른 클로가 제사장의 목을 할퀴었다.

굉장히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제사장은 날렵하게 피했던 것이다.

떨어지는 클리앙의 아래쪽엔 용암이 벌어져 있었으나,

<자기부양 발동!>

쭈코가 스킬을 사용해서 클리앙을 띄웠다.

그는 안전한 위치에 착지하며 다음 공격의 타이밍을 노렸다.

“길이 없어!”

피클이 속상한 듯 소리쳤다. 그녀는 클리앙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근접전 전문 전사지만 이 용암의 바닥을 뚫고 제사장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첨벙.

갑자기 제사장이 용암에 발을 담그며 움직였다.

“저놈은 용암 속에서도 괜찮은 거예요?”

“제사장은 화염 방어 마법이 있어요. 아마 스킬을 사용하는 중일 겁니다.”

쭈코가 설명했다.

“항상 이런 식이에요. 220층을 여러 번 공략하려고 했지만 용암 때문에 길이 막히고 장거리 마법은 큰 타격을 못 주고. 일격을 먹이려면 클리앙이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데.”

“시작하자마자 한 방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실패했으니 이번 레이드도 허탕인가.”

클리앙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벌써 제사장은 용암 한가운데라서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윤성 씨는 뭐 다른 수 있어요?”

클리앙이 물었다.

윤성은 종단속도의 단검을 손가락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퍽!

눈 깜짝할 새에 단검이 제사장의 목에 박혔다.

클리앙이나 쭈코는 그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팔을 휘두르는 동작조차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큭, 그아악!”

제사장은 목을 콱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감정에 반응한 용암이 저절로 끓어올라 레이드 팀을 향해 날아들었다.

<급속 냉각 발동!>

오크 제사장이 발동했던 볼케이노 스킬이 더 상위지만, 윤성의 지능이 한참 더 높았다. 게다가 제사장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서 스킬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아온 용암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충격으로 말을 잃은 레이드 팀을 뒤로하고,

타다다닥.

윤성이 오크 제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급속 냉각으로 발아래의 용암을 굳히면서.

<용조 발동!>

손가락 끝으로 제사장의 목을 끊어버렸다.

<220층대 보스 오크제사장을 처치하였습니다.>

<220층대를 클리어했습니다.>

<오크 제사장의 엄니를 획득했습니다.>

윤성은 단검을 회수하면서 돌아보았고 경악해 입이 쩍 벌어진 레이드 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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