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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22화 (122/260)

# 122

레벨업 속도는 9.8m/s^2 122화

광부들은 아연실색하여 저마다 벽에 딱 달라붙어 주저앉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다.

“황혁수 씨 계십니까?”

그 마수가 깔끔한 서울말로 물었다.

“저, 저가 황혁수입네다.”

“아버님 부고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예에?”

“군인들이 총으로 쐈습니다.”

황혁수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유언으로 당신을 여기서 빼달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나가시죠.”

윤성이 케지를 가리켰다.

하지만 마수가 하는 말을 누가 선뜻 듣고 따르겠는가.

광부들은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싹. 휘리리릭.

위에서 누군가가 케지의 로프를 잘라 버렸다.

“밑에서 굶어 뒈져 버려라! 괴물 새끼야!”

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성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전부 케지에 타십시오.”

하고 말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케지의 로프가 끊어진 이상 광부들은 모두 이곳에서 말라 죽는 수밖에 없다. 군인들은 마수가 죽을 때까지 로프를 내리지 않을 테니까.

“하, 하갔소.”

광부 중 하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

케지에 모두가 타자.

“흠!”

윤성은 그것을 번쩍 치켜들어 둘러멨다.

사람 스물다섯 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승강기다.

윤성의 어깨가 부들거렸다.

하지만 버틸 만했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윤성이 케지와, 거기에 탄 스물다섯 명을 업은 채로 수직으로 치솟았다.

몰려드는 군인들을 처치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윤성은 광부들 앞에서만 서울말을 쓰고 군인들 앞에서는 자중했다. 인민군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마수가 튀어나와서 광부들을 탈출시키려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밖을 지키고 있던 상급 전사들이 윤성에게 무수히 총을 쏴댔지만 전혀 의미가 없었다.

“마수가 나타났다고 전보를 치라!”

인민군들이 소리를 질렀다.

곧 하사 하나가 날쌔게 초소로 뛰어가더니 무전을 날렸다.

아오지 앞에 마수가 나타났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군사 참모부로 전달되었다.

대대장 박팽천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전술 연구 수련을 마친 군 내 엘리트였다. 게다가 북한 내에서 몇 안 되는 A급 헌터이기도 했다.

‘정말로 마수가 나타났구나. 남한 외교부 말처럼!’

박팽천은 곧바로 평양에 연통을 넣고 움직였다.

“옌벤에도 연통 넣으라! 그기 에어포스가 있다지 않았니?”

박팽쳔이 명령하자 부하들이 깜짝 놀랐다.

“남조선 마전사한테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입네까?”

“지금이 그런 거 따질 때이디? 저 마수 가만 두면 평앙으로 간다! 니 그거 알간?”

“즈, 즉각 연통하겠습네다.”

부하들을 내보낸 후 박팽천은 온 힘을 다해 아오지로 달려갔다.

아오지에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외모의 마수 하나가 서 있었다.

갱 입구였다.

수많은 군인이 죽어 있었고 마수는 몸 어디 한 군데 상하지 않은 채 멀쩡히 서서 박팽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간나 새끼!”

박팽천이 권총을 꺼내어 쏘았다. 윤성은 이번에도 무시하려 했지만 날아오는 마력을 느끼고는 재빨리 피했다.

맞아도 별 부상을 입지는 않았을 테지만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헌터잖아?’

윤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박팽천을 바라보았다.

“내 부하들을 간드리고 니가 무사할 성싶었어?”

박팽천이 연달아 마법 권총을 쏘아대며 윤성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A급 헌터였다. 사실 윤성이 버프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해도 그가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성은 박팽천의 권총을 빼앗아 부숴 버리고는 팔을 꺾어 제압했다.

근처의 인민군은 모두 제압되었다.

광부들이 탄 배 한 척이 두만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윤성은 그들을 힐끔 본 후에 박팽천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크악!”

그가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윤성도 그렇게 거칠게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쫓아가면 귀찮으니까.

아오지 탄광에서 나온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는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이 부류는 이미 북한에서의 삶을 포기한 지 오래다.

둘째는 탄광의 광부들의 대기실로 이동해서 명령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들은 도망칠 의지도 없는 인민군의 노예들이었다. 딱하긴 하지만 그들까지 구해줄 방법은 없었다. 윤성의 손이 닿는 것은 첫 번째 부류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류인 황혁수 같은 사람들은,

“아부지!”

오열하며 마을로 달려갔다. 황혁수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탄광에 들어간 몇몇 인민 죄수는 너무나 보고 싶은 가족들을 향해 뛰어갔다.

골치 아프지만 이해는 됐다.

아무리 유언이 탈출하라는 것이래도 아버지가 죽었다는데 집에 가보지도 않고 홀가분하게 중국으로 튀면 그것도 정상은 아니지.

‘그냥 두고 갈까?’

사실 아오지 탄광에서 꺼내주었고, 배를 탄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때까지는 지켜줄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 붙잡아서 데리고 나가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북한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선진국 국민의 오만이 아닐까? 저 사람에게는 저곳이 집인데.

윤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철컥

황혁수를 향해 총을 겨누는 군인을 발견했다.

“이런!”

<빛의 탄환 발동!>

반사적으로 쏘았다. 섬광에 맞은 군인이 고꾸라지는 걸 보고 윤성은 얼른 황혁수의 집으로 뛰어갔다.

황혁수는 노인의 사체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갑시다.”

윤성이 말했다.

“나는 마수지만 당신 아버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북한에서 탈출시켜 주라고 부탁받았죠.”

사실 뒤쪽은 거짓말이지만.

윤성은 황혁수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무언가를 포기해 버린 듯 순순히 따랐다.

두만강에는 아직 배 두 척이 남아 있었다. 광부들 몇 팀이 추가로 배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윤성은 황혁수를 그곳에 태우고 자신도 올라탔지만,

“저기 있다!”

“괴물이 저기 있다!”

“저놈을 쏴 죽이라우!”

뒤쫓는 인민군들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군. 먼저 가십시오.”

윤성은 배를 탄 광부들에게 말하고는 인민군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는 군인 중에 헌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C급, D급 정도의 하급 헌터들이었다.

윤성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윤성은 가능한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서 제압했다.

불과 10여 분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배는 이미 강을 수십 미터 건넌 상황이지만,

<랜더의 전투화 발동!>

윤성의 몸은 비인간적으로 도약하여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실제로 핏빛야수의 몸 자체도 인간이 아니지만.

워낙 높이 치솟았기 때문에 거기서 추락하면 배가 박살 날까 봐 광부들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랜더의 코트 발동!>

하지만 체중을 1㎏으로 조절한 윤성은 사뿐히 배 위에 올라앉았다.

아직까지 윤성은 핏빛야수 상태였기 때문에 아오지를 탈출한 광부들은 윤성을 경계했다.

“걱정 마십시오. 해치지 않을 테니.”

윤성이 그들에게 말했다.

두만강은 북한과 중국의 천연 국경이다.

이 강을 넘으면 중국.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중국 공안에게 붙잡힌 탈북민들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니까.

윤성은 탈북민들과 함께 두만강 동쪽으로 이동했다. 한 번 동그랗게 구부러진 땅을 넘으면 201 국도가 나왔다.

거기서 더 동쪽.

밤늦은 시간이 되자 탈북민 43명 중 하나가 풀썩 쓰러졌다.

그들은 오랜 과로에 시달려 몸이 많이 상했고 만성적인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날씨는 영하 17도. 너무 가혹한 추위다.

“여기서 좀 기다리세요.”

윤성은 탈북민들을 세웠다.

남쪽으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중국 민가가 하나 있었다. 탁 트인 평야에선 윤성의 시야에 조그만 점처럼 건물들이 잡혔던 것이다.

윤성은 전속력으로 달려 중국 민가에 들어갔다.

마수의 출현에 시민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사방으로 달아나고 난리였지만 윤성은 태연히 걸어가 상가를 찾았다.

“으악!”

놀란 상가 주인이 달아나려 했지만 윤성이 그를 콱 붙잡았다.

“해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역 스킬이 패시브로 발동 중인 윤성이 말했다.

그는 상가 주인에게 마정석 하나를 내밀었다. B급.

그것은 가게 주인이 10년 이상 돈을 모아도 부족할 보물이었다.

“먹을 것과 옷을 좀 주십시오.”

“먹을 것과 옷…… 이요?”

“파시는 것 전부 다요.”

그걸 모두 어떻게 들고 갈 것인지 주인은 궁금했지만 윤성은 간단히 인벤토리 안에 모두 쑤셔 넣었다.

이틀 후, 탈북민들은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 A189 국도를 가로질러 꽁꽁 얼어 있는 빙판을 건넜다.

그들이 이른 곳은 포시예트 만. 러시아 연해주의 최남단인 하산스키 군에 위치했다.

크라스키노 같은 작은 마을이 세 개 있는 곳이었다.

“로씨야다…….”

탈북민들은 감동과 걱정, 설렘과 불안으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근원을 파악하기 힘든 감정의 눈물을 흘렸다.

“그 마수는 어디에 갔소?”

황혁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마수가 사라졌다. 추위로 와들와들 떨면서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가 없어진지조차 몰랐다.

게다가 눈이 펑펑 내리는 중이었으니까.

“아까 중간에 하늘로 치솟았디.”

윤성의 마지막을 목격한 탈북민 중 하나가 말했다.

윤성은 크라스키노 마을 안을 걷고 있었다.

그는 마을 도착 직전에 빙상에서 점프했다.

공중에서 머문 시간은 폴리모프를 풀고 방독마스크를 착용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핏빛야수가 아니라 마스크맨이 된 셈이다.

‘솔직히 지치는군.’

벌써 며칠째 생고생인지.

차희와 다윤이는 무사히 잘 있을까? 아직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으려나?

윤성은 무심코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가,

“어라?”

무언가를 발견했다.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

처음에는 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에어포스!”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중국에 있을 텐데 어째서 블라디보스토크 방향에서 날아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분명 에어포스였다.

하지만 에어포스는 윤성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북한 땅을 향해 비행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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