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레벨업 속도는 9.8m/s^2 116화
“크윽.”
요르진은 지팡이를 앞으로 뻗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그는 윤성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했다.
“으음!”
하지만 기분 나쁜 마력을 느낀 윤성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버렸다.
지능에 차이가 있었다.
4,500점에 이른 윤성의 지능은 요르진이 지배하기에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는 S급 헌터도 지배해 본 적이 있지만 윤성은 평범한 S급 수준을 한참 넘어선 상태. 게다가 모든 능력치가 그렇다는 점에서 요르진이 만나본 S급 인간을 통틀어 최강인 상대였다.
-휘이익!
윤성의 채찍이 요르진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먼지가 되어 산화하는 피부를 보고 요르진이 경악하여 물러났다.
“크윽, 샐리단이 네놈을 용서할 것 같으냐!”
그가 소리쳤다.
“그 기사 말이냐? 그놈은 이미 죽였지. 내가 어디서 들어왔는지 잊었어?”
윤성이 받아치자 요르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지이잉
게이트를 열었다.
“안 돼!”
윤성이 채찍에 의지를 싣자 요르진의 발목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요르진을 끌어내려고 채찍을 잡아당겼더니,
-찌이익!
“끄아악!”
요르진의 발목이 잘려 나갔다.
이건 아닌데.
윤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요르진을 쳐다보았다.
그가 막 게이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빛의 탄환 발동!>
그 뒷모습에 대고 윤성이 섬광을 발사했다.
“크헉!”
요르진은 섬광을 맞으면서 게이트 안쪽으로 고꾸라졌다.
-쉬익.
게이트는 요르진을 삼킨 후에 닫혀 버렸다.
“쳇. 놓쳤군.”
윤성이 바닥에 쓰러진 마족 패잔병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살아 있는 것은 불과 다섯.
“너희 대장이 어디로 갔는지 아나?”
윤성이 마족들의 언어로 물었다.
마족들 다섯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대, 대장…….”
“닥쳐라! 안다고 해도 우리가 말해줄 것 같…….”
한 녀석이 용감하게 윤성에게 대들었지만,
-콰앙!
빛의 탄환에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다음. 아는 사람?”
윤성이 물었다.
마족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이, 너희도 잘 생각해 봐. 너흰 전부 죽었는데 너네 대장은 너네 버리고 도망갔잖아?”
“하, 하지만…….”
“여기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지휘부가 있다. 그쪽으로 도망쳤을 거다.”
눈치 빠른 마족 하나가 윤성에게 알려주었다.
“고마워. 그럼 같이 갈까?”
“뭐, 뭐라고?”
“내가 길을 잘 모르니까 말이야. 함께 가줘야겠어.”
윤성은 마족들을 앞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이 황폐한 땅은 마치 화성 표면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풀도 벌레도 하나 없이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 중간중간 보이는 돌과 자갈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오브젝트가 없었다.
그러나 1킬로미터 정도를 걸었을 때, 윤성은 멀리 떨어진 조그만 건물을 발견했다.
“저기가 지휘부인가?”
“그, 그렇다. 아마 저기로 도망쳤을 거다.”
“좋아.”
윤성이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냄새가 난다.
피 냄새.
그리고 몹시 빡치고 기분 나쁜, 아주 소름 끼치는 감각.
-콰앙!
윤성이 재빨리 문을 뜯어 열었다.
안에는 요르진의 시체가 있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기 전에 윤성이 입힌 피해 때문은 아니다.
요르진의 사체에는 날카로운 것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끄아악!”
“아악!”
갑자기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았더니 윤성을 안내해준 마족 넷을 무언가가 무참히 살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윤성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핏빛야수…….”
날카로운 클로로 닥치는 대로 마족들을 살해하고 있는 그것은 분명 핏빛야수였다.
이럴 수가.
윤성이 단검을 역수로 쥐고 마족들이 있는 언덕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요르진을 해친 것도 저놈일 것이다.
딱 보기에도 상당한 마력이 느껴진다. S급? 아니면 그 이상인가?
그리고 굉장히 이상했다.
저놈은 옛날 코르소, 카다시안 킴과 함께 들어갔던 구스타프 던전에서 만난 놈보다 훨씬 셌다.
그 녀석은 A급 헌터 셋이 힘을 합쳐서 잡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핏빛야수는 S급이 힘을 합쳐도 장담하기 어려워 보였다.
-지잉.
놈의 눈빛이 이쪽을 향했다.
윤성은 마력을 쏘아 보내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콰악!
마지막 마족의 목을 베어버린 핏빛야수가 윤성에게 다가왔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일단 적을 좀 파악해야 했다. 역시 견제에는 이만한 스킬이 없지.
윤성이 잇달아 쏘아 보낸 섬광이 적중했지만 핏빛야수는 큰 대미지를 입지 않은 듯 보였다.
그 대신,
-부웅
야수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크악!”
정신 공격이다. 요르진 따위보다 백배는 강하잖아?
너무 어지럽다.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 속에서 탁, 탁, 탁! 하는 핏빛야수의 발자국 소리가 귀에 송곳처럼 꽂혔다.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다. 마안의 정신 공격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금 처치하려고.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자.’
눈을 뜨고 있으니 더 어지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청력은 비교적 정확했다.
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속도로 뛰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날카로운 클로의 칼날이 지금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까아앙!
정확한 타이밍에 치켜든 단검. 윤성은 아슬아슬하게 핏빛야수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리고.
<용조 발동!>
지금 가진 공격 스킬 중에서 근접 공격력이 가장 우수한 스킬을 사용했다.
핏빛야수는 자신의 몸을 노리는 줄 알고 재빨리 방어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윤성은 애초에 놈이 한 방에 손쉽게 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노린 것은 처음부터 핏빛야수의 몸통이 아니라 클로였으니까.
-카아앙!
야수의 오른손 클로가 박살이 나버렸다.
약간 당황한 마수의 얼굴에,
-콰앙!
윤성이 펀치를 먹였다. 5,000점에 이른 완력이 주먹에 쏠리면 맨손으로 강철도 부술 수 있었다.
윤성의 주먹은 핏빛야수의 코와 앞니를 으깨면서 놈을 날려 버렸다.
나가떨어진 핏빛야수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네일 블레이드가 온다.’
전에 코르소와 함께 던전에서 핏빛야수를 상대할 때 보았던 스킬.
아니나다를까 핏빛야수의 클로가 채찍처럼 길어지기 시작했다.
<대천사의 채찍 발동!>
윤성도 스킬을 발동했다.
날아오는 핏빛야수의 클로를 대천사의 채찍이 휘감았다. 윤성은 그 상태로 핏빛야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면서,
<빛의 탄환 발동!>
섬광을 가슴에 맞추고,
-싸아악!
단검으로 목을 쳤다.
<핏빛야수를 사살했습니다.>
메시지창이 또 하나 나타났다. 마수를 죽였다고 메시지창이 떠오르는 건 처음이었다.
전에 코르소, 카다시안과 함께 힘을 합쳐서 핏빛야수를 죽였을 때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아, 그때는 죽이지 못했나? 놈의 쓰러진 몸뚱이가 분명 하얗게 빛나면서 증발해 버렸지? 순간이동 같은 거였나 보군.
확실히 이번에는 핏빛야수의 사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윤성은 가까이 다가가서 핏빛야수를 관찰해 보았다.
눈동자는 루비를 박아놓은 것처럼 붉고 번질거렸다. 입안에는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윤성은 놈의 몸을 뒤지다가 마정석 두 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A급 정도로 보이고 하나는 어쩌면 S급까지 갈지도 모를 듯싶었다.
그리고.
“있다.”
이 핏빛야수도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붉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색이었다.
그리고 윤성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약간 더 컸다.
자세한 크기 비교를 위해 윤성이 자신의 인벤토리 주머니를 꺼내 둘을 포개는 순간.
-쉬이익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큰 인벤토리 주머니가 윤성의 것을 흡수해 버렸다.
깜짝 놀란 윤성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자.
-순간이동석(탑)
-순간이동석(마계)
-순간이동석(메탈로이드)
-스킬석(힐링)
-마정석(S급)
-편지
원래 윤성이 가지고 있었던 순간이동석들에 더해 이상한 것 세 개가 나타났다. 일단 그중 두 개는 탄성이 나올 정도의 보물이었다.
마정석 S급도 굉장한 가격이 나가겠지만 그보다.
“스킬석…….”
‘라이트’나 ‘에너지볼트’ 같은 하급 스킬들의 스킬석도 경매에서는 흔히 시가 수억까지 갔다.
하지만 힐링 스킬의 스킬석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다.
보조 계열 헌터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물량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수요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인, 가치를 따지기 힘들 정도의 스킬석이었다.
수확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핏빛야수를 잡았다는 것.
이제 정체를 감추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이 괴물이 실존하는 마수라는 것을 세계에 알릴 생각이었다.
‘편지는 뭘까?’
윤성이 그것을 꺼내어 읽어보려던 순간.
-콰르릉!
갑자기 게이트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렸다.
게이트가 닫히고 있었다. 다만 퍼져 나가는 마력이 너무 많고 그 속도가 빨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런 기세면 순식간에 닫혀 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윤성은 이를 갈면서 핏빛야수의 사체를 짊어졌다.
이걸 버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그는 전력을 다해서 게이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