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레벨업 속도는 9.8m/s^2 115화
36. 뜻밖의 여정
“혹시 수중 호흡과 수중 발성 마법이 있으면 저한테 걸어주실 수 있나요?”
켄지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수중 호흡 발동!>
<수중 발성 발동!>
윤성은 아가미가 생긴 것처럼 입술을 뻐끔뻐끔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가시려고요?”
“이렇게요.”
윤성은 종단속도의 단검을 번쩍 들더니 벽을 콱! 찍었다.
물이 똑똑똑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스크맨!”
“걱정 말고 기다려 봐요.”
윤성은 단검을 쓱쓱 돌려서 벽에 60㎝ 정도 되는 너비의 사각형을 만들었다.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놀란 켄지는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시민들도 이쪽을 보고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윤성은 구멍으로 머리와 팔 하나를 들이밀었다.
3,000미터 높이의 수압이라 물이 매우 세차지만 그래도 윤성의 현재 힘은 너무나 높아서 그 해류를 거스를 수 있었다.
윤성은 간신히 바깥으로 빠져나간 다음,
<급속 냉각 발동!>
스킬을 써서 벽을 얼려 버렸다.
엄청난 두께의 단단한 얼음벽이 구멍을 완전히 차단했다. 녹으려면 수십 시간은 걸릴 듯했다.
켄지는 놀라서 몸이 굳었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지?’
해저 3,000미터였다. 보통 사람은 수압을 견디지 못해서 죽고 마는 곳.
여기서 전투를 벌이겠다고?
켄지의 어깨가 떨렸다. 그는 솔직히 무서웠다.
하지만 저 남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쿠우우우.
던전이 열렸다. 심해저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지만 윤성은 그것을 느꼈다. 모든 감각이 잘 벼려진 칼처럼 첨예했다.
‘숨어 있어야겠군.’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요르진이었으면 좋겠네. 시작부터 보스를 잡을 수 있게.
윤성은 해류가 흘러오는 방향으로 이동해 해초 사이에 몸을 숨겼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절박하고 절묘한 상황 전개였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마일하이클럽 랜딩을 할 때만큼 세졌다는 거다. 알겠냐?”
윤성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샐리단이 윤성에게 장검을 겨누었다.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아라.”
샐리단이 윤성을 향해 번쩍 날아들었다. 하지만 아직 윤성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윤성은 단검을 꺼내어 샐리단의 공격을 빠르게 받아냈다.
귀족들의 검술은 매우 우수하지만 이번엔 견딜 만했다.
물속이라 샐리단의 공격이 느려져서 더 잘 보이는 덕도 있고, 아르동 때에 비해 윤성이 지금 가지고 있는 버프가 더 큰 덕도 있었다.
-캉! 캉! 깡!
물속에서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검술에만 의존하는 샐리단과 달리 윤성에게는 여러 가지 수가 더 있었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왼손이 마법 섬광을 쏘았다. 샐리단은 재빨리 몸을 틀었지만 섬광은 그의 옆구리를 찢어놓았다.
<급속 냉각 발동!>
이번엔 냉각이다. 얼음 속에 가둬주지. T505처럼.
-쩍, 쩌적.
엄청난 한기가 샐리단의 몸을 엄습했다.
그러나 갑자기 샐리단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킬 번 업. 몸의 신진대사를 끌어 올려 순간 엄청난 힘과 순발력을 짜내는 기술이었다.
부작용으로 몸에 열이 잔뜩 오르는데, 지금 상황에선 부작용이 아니었다.
번 업은 사용 시에 빠르게 체력이 고갈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능력치의 뻥튀기 정도가 강해서 단점을 보완하고도 남았다.
-콰앙!
갑자기 샐리단의 공격이 빨라졌다.
당황한 윤성은 움직임이 약간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놈 갑자기 움직임이?’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잠깐만. 이 녀석 그냥 잡몹인 줄 알았는데 뭐야, 이 전투력은?
게다가 아까 죽였던 척후병이 이놈한테 ‘대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탁!
샐리단과 거리를 만든 윤성이 물었다.
“네 이름이 샐리단이냐?”
바토리가 그룬헤잘드의 충직하고 강력한 두 신하에 대해 얘기해 줄 때 분명 그중 하나가 불세출의 기사 샐리단이라고 했었다.
“그렇다.”
정말이었군.
“과연. 아르동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세네.”
“아르동 남작에게 검술을 가르친 게 나다.”
샐리단이 장검을 붕붕 돌리면서 말했다.
“또한 그룬헤잘드 후작님에게도 검술을 가르쳐 드렸지. 그분에게는 사실 검술이 필요 없지만 말이다.”
“흠.”
“바토리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도 나다. 인간, 네 눈앞에 있는 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샐리단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나는 후작님의 3천 근위병의 무술 교관이며, 라센 지역 최강의 검객이다. 마계의 걸출한 영웅들을 모두 내가 키워냈는데, 인간 따위가 내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하느냐? 지상이었다면 세 합 안에 결판이 났을 것이다.”
샐리단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도 너한테 검술은 배우고 싶은데.”
“난 인간을 키우지 않는다.”
-콰앙!
다시 두 사람의 공격이 부딪쳤다.
윤성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샐리단의 공격은 너무 빠르고 강력해서 받아내는 것도 버거웠다.
근접전은 괜찮지만 검투전은 안 된다.
단검은 다른 방식으로 쓰자. 다행히 아직 샐리단은 모르니까.
-까앙!
윤성은 일부러 검을 부딪친 다음 단검을 놓아버렸다.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종단속도의 단검.
그리고.
<단검 투척 타깃>
샐리단의 가슴에 떠오르는 메시지.
종단속도의 단검이 좋은 점은 현재 최고 종단속도를 바로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속 시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항을 무시한다.
물과 공기가 밀도만 다를 뿐 똑같은 성질의 유체로 취급된다면 종단속도의 단검은 물의 저항도 무시할 것이다.
물속에서는 모든 움직임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윤성의 투검은 그렇지 않았다.
-쐐애액!
윤성의 오른쪽 어깨 위로 떠오른 단검이 저절로 날아들었다.
샐리단이 경악했다.
이 공격은 그에게도 정말 뜻밖이었다.
-콰악!
하지만 곧 죽어도 최강의 기사다.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 단검이었으나 샐리단은 절묘한 순간에 몸을 돌려서 어깨의 갑옷 부분으로 막아내었다.
하지만 윤성에게는 근접 공격 스킬이 또 있었다.
<용조 발동!>
드래곤의 날카로운 발톱이 샐리단의 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푹, 소리와 함께 다섯 손가락 끝이 샐리단의 허리를 찔렀다.
“크악!”
샐리단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윤성은 그를 향해 손가락 총을 겨누었다. 이걸로 끝이다.
-파지지지직!
그때 갑자기 던전 게이트가 열리더니 마족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을 너무 끌었다. S급 마족 기사를 뱉은 직후라서 잠깐 동안 범람이 잦아들었는데 다시 시작되었다.
<빛의 탄환 발동!>
섬광이 샐리단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일단 샐리단은 처치했고.
“대장!”
게이트에서 나온 마족들이 소리를 질렀다. 숫자는 어느덧 20여 마리.
하지만 고맙게도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샐리단은 스스로 열을 끌어 올릴 수 있었지만 이깟 잡놈들은 그런 기술을 못 쓰겠지.
<급속 냉각 발동!>
윤성이 스킬을 시전했다.
강력한 추위가 마족들을 덮쳤다.
T505조차 순식간에 얼려 버렸던 스킬이었다. A급, 또는 간신히 S급 턱걸이에 이른 마족들로서는 이 스킬을 견뎌낼 수 없었다.
하얗게 얼어버린 동상들을,
-쾅! 쾅!
윤성은 하나씩 파괴했다.
그리고.
-피지지직.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게이트는 마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단 물이 없어서 좋았다.
굳은 땅을 밟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적갈색의 흙이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마계의 황무지지만 너무 행복했다.
윤성은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펴보았다.
약 300 정도 되는 숫자의 마족 병사가 게이트 앞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윤성을 보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윤성이 단검을 꽉 쥐었다.
좀 많지만 해볼 만했다.
그가 전투를 시작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치지지직.
갑자기 요란한 소음이 울리면서 허공에 게이트 하나가 더 생성되었다.
매우 작은 게이트였다. 파장의 크기를 볼 때 마계와 인계를 잇는 차원 게이트 같은 건 아니었다.
‘순간이동 게이트인가.’
전설 속의 스킬 중 하나다. 순간이동 게이트.
대기 중의 마력 파장을 비틀어서 비교적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할 수 있는 차원 연결 통로를 만드는 것.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잿빛 피부에 눈이 흰자위만 남은 노인이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뻗쳐 있고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요르진.
이놈이 정신 조작계 마법사라고 했던가?
정신 공격에 주의해야겠군.
“죽여라.”
요르진이 짧게 명령하자 마족들이 일제히 윤성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대지를 울렸다. 광폭하게 내달리는 전투화들 아래 흙과 먼지가 바닥에서부터 튀어 올랐다.
하지만.
<단검 투척 타깃>
윤성이 4,800점의 힘을 단검에 실었다.
-콰과과광!
일렬로 날아가 버린 마족들.
적들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게 보였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은 연속으로 섬광을 난사해 댔다.
요르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빛의 마법을……?”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윤성이 랜딩 버프로 얻은 스킬을 꺼내 든 것이다.
<대천사의 채찍 발동!>
다수의 적을 상대로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그 예상이 적중했다.
채찍은 약 15미터.
거대한 빛의 채찍이 윤성의 손에서 튀어나와 허공 위에서 살아 있는 뱀처럼 몸부림쳤다.
번쩍이는 빛깔은 사방의 어둠을 몰아내는 심판과 같았다.
-콰아앙!
떨어져 내린 채찍이 엄청난 마력을 발산하며 다수의 적을 쓸어버렸다.
이번엔 횡 방향이다.
윤성은 대천사의 채찍을 힘껏 잡아당긴 다음 왼쪽에서부터 휘둘렀다.
채찍 끝에 닿는 마족들의 몸뚱이가 먼지가 되었다.
채찍이 찢고 지나간 살갗은 재생되지 않았다. 그저 주황색, 노란색의 뜨거운 빛의 잔상이 남고 이내 회색 잿더미가 되어 공기 중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불과 몇 차례 채찍을 휘두른 윤성은 순식간에 적들의 상당수를 제압해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요르진.
윤성의 눈이 사납게 그에게 돌아갔다.